“여호와의 사자가 아비에셀 사람 요아스에게 속한 오브라에 이르러 상수리나무 아래 앉으니라 마침 요아스의 아들 기드온이 미디안 사람에게 알리지 아니하려 하여 밀을 포도주 틀에서 타작하더니 여호와의 사자가 기드온에게 나타나 이르되 큰 용사여 여호와께서 너와 함께 계시도다”(사사기 6장 11~12절)

오늘은 ‘하나님의 판단’에 대해서 함께 은혜를 나누겠습니다.
최근 새로이 SNS를 시작하였습니다. 많은 사람들과 다시 연락이 되어 그동안의 안부를 묻고 지내왔던 이야기들을 하는 것은 참 즐거운 일이었습니다. 하지만 부작용도 있었습니다. 누군가 그러더군요 “SNS는 누군가의 아픔과 힘든 모습이 아닌 아름다운 모습만을 보여줄 뿐이다.”라고요.
그것을 보고 있노라면 우리는 너무나 쉽게 그것이 그 사람의 모든 모습이라 생각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러한 좋은 타인의 모습에 비해 그렇지 않은 나의 모습은 너무 초라하고 가치 없어 보이는 문제가 생기더라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전혀 SNS를 하지 않을 것 같은 한 사람을 이야기합니다. 아무것도 자랑할 것 없는 기드온입니다. 그는 늘 와서 자신을 괴롭히고 가진 것을 빼앗아가는 미디안 사람들의 눈을 피해서 몰래 숨어 밀을 타작하고 있습니다.
요즘 말로 참 찌질한 모습입니다.
그는 아무것도 자랑할 것 없는 부족한 사람이었고 두려움 많은 약하고 용기 없는 지극히 평범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그 기드온을 하나님의 천사는 ‘큰 용사’라고 부르고 있다는 것입니다. 무엇이 그를 큰 용사가 되게 하는 것일까요?
학생들에게 영어를 가르칠 때 정확하게 말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보다는 틀리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이 더 많이 말할 기회를 얻고 발전할 가능성이 높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지금은 비록 조금 어설퍼 보일지라도 그 가능성을 보고 학생을 잘한다고 칭찬할 때가 종종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스스로 보잘것없고 가치 없는 존재라고 생각하는 나의 판단 보다 ‘사랑의 눈으로 바라보시며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 말씀하시는 나를 향한 예수님의 말씀이 더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스스로 생각하기에 내가 부족하고 연약해서 쓸모없다고 생각하는 것은 어디까지나 내 생각일 뿐입니다.
스바냐 3장 17절에서는 이렇게 말합니다.
“주 너의 하나님이 너와 함께 계신다. 구원을 베푸실 전능하신 하나님이시다. 너를 보고서 기뻐하고 반기시고, 너를 사랑으로 새롭게 해주시고 너를 보고서 노래하며 기뻐하실 것이다”
하지만 오늘 천사가 기드온을 큰 용사라고 부른 이유는 바로 뒤에 이어지는 구절에 답이 있습니다. 12절입니다. “큰 용사야, 주님께서 너와 함께 계신다”
하나님께서 그와 함께 하시기에 비록 지금은 숨어서 밀을 수확하고 있는 연약한 모습일지라도 그는 큰 용사더라는 것입니다.
이는 고린도전서 2장 5절의 말씀과 같이 우리의 믿음이 사람의 지혜에 바탕을 두지 않고 하나님의 능력에 바탕을 두고 있기 때문인 것입니다.
독자 여러분 여호와의 사자가 기드온에게 나타나서 ‘큰 용사여 여호와께서 너와 함께 계시도다’라고 하신 그 말씀을 기억하며 오늘도 하나님의 함께 하심으로 인해 자신 있게 세상의 빛과 소금으로 살아가시는 큰 용사되시는 여러분들이 되시길 기도합니다.
글 l 황길상 목사(제주라이트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