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전에 성일을 지키는 무리와 동행하여 기쁨과 감사의 소리를 내며 그들을 하나님의 집으로 인도하였더니 이제 이 일을 기억하고 내 마음이 상하는도다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심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해 하는가 너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라 그가 나타나 도우심으로 말미암아 내가 여전히 찬송하리로다” (시편 42:4~5)

우리는 2년간 지속된 코로나 전염병과의 끝나지 않은 전쟁, 그리고 세계 도처에서 일어난 수많은 자연재해, 경제적인 어려움 등으로 그야 말로 두렵고 우울한 시대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여전히 예측불허의 불투명한 미래가 우리들 앞에 놓여 있습니다. 우리들의 힘과 지식으로는 이러한 역경을 극복할 힘이 없습니다. 정말 하루하루가 전쟁의 연속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상황을 극복하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오직 하나님만 의지하는 것 밖에는 없습니다. 우리의 참된 소망을 하나님 안에서 찾아야 할 것입니다.
본문에 등장하는 시편 기자는 지금 견디기 힘든 고난에 처해있습니다. 그래서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심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해하는가?”라고 탄식하고 있습니다. 심지어, “내 눈물이 주야로 내 음식이 되었다”고 고백할 정도였습니다. 낙심, 불안, 슬픔, 눈물, 등, 어쩌면 이것이 지난 2년 동안 지나온 우리들의 삶을 정의하는 단어들은 아닐까요?
그렇다면 지금 시편 기자는 무엇 때문에 그렇게 낙심하고 있는 것일까요? 그가 가지고 있는 슬픔과 탄식의 근본적인 원인이 무엇이었을까요? 그는 물질이 없어서 탄식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건강을 잃어버렸기 때문도 아니었습니다. 바로 예배의 은혜를 누리지 못했기 때문에 침체에 빠졌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이전에는 성일에 공동체로 모여 교제하며 하나님께 기쁨으로 예배를 드렸는데, 이제는 그 어떠한 피치 못할 상황 때문에 성일에 모일 수 없게 되었고, 예배할 수 없는 처지에 놓여 있다는 것입니다. 더욱이 원수들은 시편 기자를 향하여 “네 하나님이 어디 있느냐?” 하면서 조롱하고 핍박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영적으로 침체 되었고, 낙심하고 불안해 한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오늘날 세상의 타락한 문화, 무신론적인 세대, 유물론적인 이념들, 그리고 이런 것들에 편승된 세속언론들, 등등 반 기독교적, 반 성경적 가치들이 성도들의 신앙을 위협하고 있습니다. 예배를 포기하도록 도전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은, 아무리 풍족한 삶을 누리고 있더라도, 예배가 없는 인생은 진정한 기쁨을 얻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없이는 영혼의 만족함을 누리지 못하는 것이 바로 인간의 실존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지난 2년 동안 참으로 어려운 시기를 보냈습니다. 그 가운데 정말 힘들었던 것은 마음껏 모여 예배하고 교제할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아무리 인터넷 비대면 예배를 드려도 아쉬움이 남습니다. 마치 외국에 멀리 떨어져 있는 자녀들과 매일같이 영상으로 통화하더라도, 얼굴과 얼굴을 대면하여 만나지 못하는 그리움과 아쉬움이 여전히 남는 것처럼, 공동체로 모여 예배하는 것이 얼마나 귀하고 소중한 것인가를 깊이 느끼게 되었습니다.
예배란 그 본질적으로 만남입니다. 두 세 사람이라도 예수님의 이름으로 모일 때, 교제할 때, 떡을 떼며 함께 나눌 때, 그 가운데 주님께서 임재하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러나 저는 지난 2년 동안 교우들 가운데 한 번도 뵙지 못한 분들도 계십니다. 어려운 시국이라고 이해는 되지만, 그래도 아쉬움과 섭섭한 마음은 숨길 수가 없습니다.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을 어떨까요? “너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라, 나는 그나 나타나 도우심으로 말미암아 내 하나님을 여전히 찬송하리로다.” 시편 기자의 고백대로 그 어떠한 경우에도, 내 인생의 소망을 하나님께 두고, 우리들 각자의 진정한 예배를 회복하시길 축원합니다.
글ㅣ곽호경 목사(나사렛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