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프랑스의 철학자인 장 폴 사르트르(Jean-Paul Sartre)는 인생에 있어 선택의 중요성을 말하며 이런 말을 했습니다. “인생은 B와 D 사이의 C다.” 이게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냐고 말하는 분이 있을 겁니다. 영어 알파벳의 순서는 A 다음이 당연히 B이고, 차례대로 C와 D가 나오니 말입니다. 사르트르의 이 말은 영어 탄생(Birth)과 죽음(Death) 사이에 C, 즉 선택(Choice)이 있다는 겁니다.
사실 우리의 인생은 어머니 뱃속에서 나오는 순간부터 죽는 순간까지 끊임없는 선택을 합니다. 내가 스스로 선택할 때도 있고, 강요에 의하여 선택을 당할 때도 있습니다. 가령 예를 들어 영아 때 젖을 먹을 것인가 먹지 않을 것인가를 선택합니다. 그리고 학교를 선택하는 것, 직업을 선택하는 것, 결혼 대상자를 선택하는 것, 자녀를 어떻게 교육할 지를 선택하는 것, 그리고 마지막 순간 어떻게 인생을 마감할 지를 선택합니다.
그렇다면 이 선택의 기로에서 성도의 기준은 무엇이 되어야 할까요? 여러분에게 한 직장에서는 연봉을 1억원을 준다고 하고, 또 다른 직장에서는 연봉을 3000만원을 준다고 하면 어떤 직장을 선택하겠습니까? “아니, 그것을 말이라고 하세요? 생각해볼 것도 없이 무조건 1억원을 주는 직장을 선택해야지요.” 만약 여러분이 아무런 고민 없이 이렇게 말한다면 여러분은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가 아닐 가능성이 많습니다. 왜냐하면 1억원을 약속한 그 직장이 아무런 이유 없이 그런 거액을 여러분에게 줄 리가 없지 않습니까? 여러분에게 탈법적이고, 불법적인 일을 시킬 수도 있지 않습니까?
성도의 선택의 기준은 결코 돈이 아닙니다. 성공도 아닙니다. 성도의 선택은 하나님이고, 하나님 나라입니다. 더 나아가 우리 주님이 직접 보여주시고 걸어가신 ‘십자가의 길’(The way of the cross)이 되어야 합니다. 그것이 우리의 선택의 기준이 되어야 합니다. 내가 하는 말이, 내가 하는 일이, 내가 돈을 쓰는 것이, 심지어 내가 여가 시간에 노는 것에서까지 하나님이 기뻐하시느냐가 되어야 합니다. 성도는 정말 작은 일 하나에서부터 큰 것까지 이런 절대적 기준으로 선택해야 합니다.
창세기에 보면 갈대아 우르에서부터 함께 했던 아브라함과 그의 조카 롯이 헤어질 때 롯의 선택을 보게 됩니다. 삼촌 아브라함과 조카 롯의 가축과 목자 사이에 다툼이 일어나게 되었습니다. 이때 아브라함은 말합니다. “우리는 한 친족이라. 나나 너나 내 목자나 네 목자나 서로 다투게 하지 말자. 네 앞에 온 땅이 있지 아니하냐? 나를 떠나가라. 네가 좌하면 나는 우하고, 네가 우하면 나는 좌하리라.”(창 13:8-9).
여기서 롯은 ‘눈을 들어’ 온 땅에 물이 넉넉한 곳을 선택했습니다(창 13:10). 유목민에게 있어 물은 돈이고 성공의 보장수표입니다. 여기서 그는 선택의 기로에서 하나님께 묻는 과정을 취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하나님보다 현실의 성공과 돈을 선택했습니다. 우리는 롯의 이 선택이 가져온 훗날의 실패의 비참함을 잘 압니다.
오늘 내 생각과 입과 손과 발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선택이 되게 하십시오. 선택의 기로에서 하나님이 내 선택의 우선순위가 되게 하십시오. 때로는 사람들이 보기에 바보같이 보여도 그것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겁니다. 이렇게 하나님 나라와 그의 의를 추구하는 선택을 할 때 하나님이 다른 모든 것을 책임져 주실 겁니다(마 6:3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