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지 장애 가졌지만 웃음 매력 지닌 개척교회 목회자

경북 안동시 평화동에 위치한 평화로교회에는 독특한 장애를 지닌 목회자가 있다. 국내에서 단 8명 밖에 없다는 4지 장애를 가진 안동 평화로교회 오종범 목사가 그 주인공. 타인의 시선 속에 누구보다 힘들었을 오 목사지만 그의 얼굴에는 어둠이 없다. 늘 밝은 웃음이 매력인 오 목사는 흔쾌히 사랑의 흔적이라고 고백하는 자신의 아픔 많은 인생 가운데 찾아오신 예수님을 전하는 일이 세상에서 가장 기쁘다고 고백한다.

환하게 웃으며 자신의 손을 펼쳐 보이는 평화로교회 오종범 목사
환하게 웃으며 자신의 손을 펼쳐 보이는 평화로교회 오종범 목사

힘들었던 순간에서 가장 행복한 순간으로

Q. ‘장애와 아픔'으로부터 어떻게 회복하게 되었나?

나는 선천적으로 손가락 4지 장애를 가지고 태어났다. 손가락으로 숫자를 세면 다른 친구들과 달리 8까지 셀 수 밖에 없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내 손이 장애라는 것을 알았다. 그렇게 상처 받기 쉬운 어린아이였지만 가정에서 조차도 세심한 보살핌을 받진 못했다. 유년시절 어머니와 아버지가 연이어 돌아가시고, 살고 있던 마을까지 수몰되면서 홀로 살아가야 했다. 내가 예수님과 교회를 알게 된 것은 청소년기에 정말 우연한 계기에서였다. 고3 가을 무렵 토요일 오후 소낙비를 피하기 위에 교회 현관 앞을 서성이고 있는데, 마침 학생회 예배가 진행되고 있었다. 그 곳에 발을 디뎠고, 그 날 이후 교회를 다니게 되었다. 그런데 교회를 다니는 내가 눈에 거슬렸던지 또래 집단 친구들로부터 집단폭행을 당했다. 피투성이가 되어 교회를 갔는데 당시 교회 선생님께서 나를 안아 주시면서 기도하고 위로를 해줬다. 나에게는 평생 잊지 못하는 경험인데 처음 이것이 하나님의 사랑이구나 생각될 정도로 행복한 순간이었다.

또 젊은 시절의 나는 분노 조절 장애가 있나 생각될 정도로 심한 다혈질 성격의 소유자이기도 했다. 그래서 신혼 초에는 아내가 긴장도 많이 했다. 전도사임에도 불구하고 밖에서자주 다투고 집으로 돌아오는 날이 많았고 때로는 운전 중에 그런 성격이 더 심하게 표출되서 아내가 마음을 많이 조렸다. 그 와중에 우리 부부는 첫 아이를 하늘나라로 먼저 보내는 아픔도 겪었다. 미숙아로 태어난 첫 아이는 울어보지도 못하고 하늘나라로 보내야 했고 아내는 아이 없는 상태로 산후조리를 해야 했다. 아내가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면서 남편으로서 힘이 되어 주지 못하고 옆에서 지켜만 봐야하는 것이 정말 힘들었다. 그런 나를 예수님께서 말씀으로 위로해 주셔서 견딜 수 있었다. 당시 내게 주신 말씀이 시편 23편 말씀인데,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였다. 주위를 돌아보면 현실은 부족한 것 많았고 힘들었다. 첫 아들을 하늘나라로 보내고 웃을 수는 없는 거 아닌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나와 함께 하시고 내게 부족함이 없도록 채워주시는 분이라는 사실을 알려주셨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아내가 건강을 되찾게 하셨고, 이후에는 두 아이(딸)를 선물로 주셨다.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고 나니 장애인인 나를 놀리던 주변 사람들을 위해 기도하게 되더라. 그리고 나의 장애가 하나님께서 특별히 선물로 주신 사랑의 흔적이라는 확신이 내 마음에 깊이 자리잡게 되어 그 시기를 기점으로 자존감이 높아졌다.

두 딸과 아내와 함께 캐나다에서 목회하던 시절의 모습
두 딸과 아내와 함께 캐나다에서 목회하던 시절의 모습

한 영혼에 혼신을 다하는 목회

Q. 목회이력이 독특하다. 현재 하고 있는 목회 방향 소개해 달라

목사안수를 받은 후 농촌목회 7년, 이민목회(캐나다 벤쿠버) 7년, 지금은 개척교회 4년 째 섬기고 있다. 농촌목회, 이민목회, 개척교회의 공통점이 있다면 한 영혼을 위해서 혼신의 힘을 다해야 한다는 것이다. 한 영혼이 새롭게 전도되어 천국 백성의 삶을 살고 천국 소망을 갖게 되는 것이 얼마나 보람있겠는가? 나의 목회는 ‘하나님의 사랑을 이웃에게 실천하는 교회’를 지향한다. 지역 교회라면 그 지역과 함께 해야 한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진정한 교회는 이웃의 아픔과 기쁨을 같이 나눌 수 있어야 한다. 그래서 우리 평화로 교회는 자칫 관심의 대상에서 소외 되기 쉬운 평화동의 어르신들을 대상으로 노인대학을 진행하고 있다. 노인대학 이름은 정반대로 ‘청년대학’이다. 언제나 청춘이라는 뜻에서 지었다. 앞으로는 임산부들을 섬기는 일도 하고 싶다.

청년대학(노인대학 명칭) 학생들과 함께  환하게 웃고있는 평화로교회 오종범 목사
청년대학(노인대학 명칭) 학생들과 함께 환하게 웃고있는 평화로교회 오종범 목사

Q. 특별히 기억에 남는 성도가 있나?

할머니 한분이 기억난다. 오른쪽 손, 발을 잘 사용하지 못하시는 할머니이다. 일주일에 두 번씩 보건소 물리치료 봉사를 하던 중에 만났는데, 간호사 선생님의 권유로 이렇게 잘 섬겨주시는 목사님이신데 교회 나가라고 해서 교회 나오겠다고 하셨단다. 한번은 주일 아침에 가장 좋은 옷을 입고 기다리시라고 하고 말했더니, 절에 갈 때 입는 옷을 입고 있더라. (웃음) 어느 주일 아침에 모시러 찾아가니 할머니가 난처한 인상으로 기다리시는데 방에 들어가 보니 온 방이 대변으로 칠이 되어 있었다. 물걸레로 깨끗이 닦고 새 옷을 입혀드리니 기분 좋아하셨다. 앞좌석에 앉혀 교회로 향하는데 할머니가 한 손으로 주머니를 한참을 뒤지더니 ‘임자 이것 먹어’라며 사탕하나를 건네는데 받아먹으려는 순간 손톱에 묻어있는 노란색 흔적이 보여서 그냥 받아 놓으려니까 할머니가 친히 입으러 까서 저의 입에 쑥 밀어 넣더라. 그런 사탕도 사랑으로 먹으니 그 어떤 사탕 보다 맛이 있더라.

Q. 사역이 힘들 때는 어떻게 극복하나?

나는 힘들고 지칠 때 동역자들을 만나서 나의 사역을 이야기하고 동역자들의 사역이야기를 들어주면 모든 힘들고 어려운 부분들이 회복되더라. 뒤집어보면 혼자가 아니기에 행복하고 함께 하기에 더 힘이 난다고 생각한다.

예배당에서 미소로 기자를 맞이하는 오종범 목사
예배당에서 미소로 기자를 맞이하는 오종범 목사

하나님의 사랑을 누구보다 먼저 실천하는 '소확행' 목회

Q. 남들과 달리 가지고 있는 장점이 있다면 소개해 달라

첫째는 건강한 체력과 부지런함, 그리고 남이 아파하면 같이 아파할 줄 아는 온유하고 유순한 성품 그리고 한 영혼에 대한 남다른 열정이다. 너무 추상적인가? 구체적으로 잘 쓰임 받고 싶어 사회가 요구하는 여러 자격증도 취득했다. 사회복지사, 웃음치료사, 병원목회 상담사, 코칭지도자 등 준비한 게 많다. 나는 9남매 중에 막내라 형제들의 영향 속에 눈치가 빨라 덕분에 대인관계가 좋은 편이다. 그래서 그 달란트를 온전히 이웃에게로 흘러 보내는데도 적극 사용한다. 요즘 같이 어려울 때일수록 내가 먼저 [미.인.대.칭] 해야한다. ‘미소로 인사하고 대화로 칭찬하자’는 뜻이다.

Q. 목회하는 안동이 어떤 고장이 되길 원하나?

‘정’으로 살아야 살 맛 나는 세상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요즘은 온 세상이 ‘정’ 떨어지는 세상이 되는 것 같아 마음이 아프다. 사랑은 식어지고 개인주의는 판을 친다. 남들은 어떻게 되더라도 나만 편하면 그만인 세상이 되고 있다. 종교를 떠나서 서로 배려하고 돕고 나누는 문화가 살아있는 고장이 됐으면 한다. 답은 하나다. 예수님의 사랑이 회복되면 된다.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예수 믿는 우리가 먼저 하나님의 사랑을 실천해야 한다. 목사는 목사다워야 하고 성도는 성도다워야 한다. 사랑이 세상을 이끌어 갈 때 서로 용서도 할 줄 아는 멋진 세상이 되지 않을까? 예수님의 사랑의 흔적이 나에게 남아 있으면 세상은 변하지 못해도 이웃에게는 감동을 줄 수 있다.

경북 안동시 평화동에 위치한 평화로교회 전경
경북 안동시 평화동에 위치한 평화로교회 전경

마지막으로 오 목사는 성경 구절로 모든 인터뷰를 갈음했다.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살전5:16-18)

대부분 개척교회라고 하면 어렵고 힘들다는 편견이 많다. 하지만 오종범 목사는 목회의 기쁨은 교회 사이즈와 상관이 없다고 말한다. 과거의 아픔과 고난을 자양분 삼아 정을 주고 받는 목회 현장. 그 속에서 '소확행' 목회를 이뤄가는 그의 사역을 응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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