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에서 신학교를 다닐 때 가끔씩, 계절에 한 번 정도, 어머니가 계신 곳 고향 노량으로 내려가기도 했습니다. 혼자서 밭농사를 짓고 계신 어머니가, 마침 남자의 손이 필요할 때에 나타난 아들을 반기시며, 일을 맡겼습니다. 밭에 올라가서 뒤쪽 편에 물꼬를 정리하는 일을 하라고 했습니다. 오랫동안 옆에서 흘러들어온 흙이니 자갈이니 돌이 비가 오면 물이 빠지는 길을 메우고 있어서 그 근방 몇 두둑의 곡물이 잘 자라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이런 저런 농기구를 챙겨서 현장에 도착했을 때, 그 일을 최선을 다해서 잘 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습니다. 하나님이 보실 때에 인정하실 만큼 잘하고 싶었습니다.

비록 그런 일에는 아마추어이지만 정성껏 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와서 일을 끝냈다고 보고를 했는데, “그래~”하고 지나가는 대답만 들었습니다. 그런데 밭을 다녀와서는 어머니의 입이 귀에 걸렸습니다. 새참과 품삯을 주고, 인부들에게 일을 시켜도 나올 수 없는 수준으로 일을 마무리한 현장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만족해 하시는 어머니를 보면서 무슨 일이든 최선을 다하리라는 교훈을 얻었습니다. 옛날 이야기를 하는 것은 최근에 든 생각 때문입니다. 그 때 최선을 다해서 일을 하고 싶은 마음을 주신 분을 요즈음 새삼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내가 생각을 해 낸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그런 착한 생각을 주셨구나 하는 것을 비로소 알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일상적인 상황뿐 아니라, 위기의 상황에서도 때에 적절한 생각을 주시기도 합니다. 울산 시내에서 시골집으로 들어오는 국도 14번의 시골길은 추월할 데가 잘 없는 도로입니다. 도로가 2차선인데다 경사도 꽤 있고 급커브도 많기 때문입니다.  아내가 차를 몰고 그 길로 오다가, 갑자기 그 근방에서 파는 손두부를 사고 싶은 생각이 들어서, 속도를 줄이면서 오른쪽 가게 앞으로 차를 옮기는데, 굽어진 맞은 편 길에서 남의 차선을 침범해서 추월하려고 달려 내려오는 큰 트럭과 맞닥뜨리게 되었습니다. 마침 그 순간 두부를 사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았더라면 승용차는 박살이 났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미 속도를 줄이고 옆에 있는 공터로 차를 옮기는 중이었으니 얼마나 감사합니까? 분명히 하나님이 갑자기 주신 생각 덕분에, 비록 가게 문은 잠겨 있었고 두부는 사지 못했지만 목숨을 건진 것을 두고두고 감사합니다. 에벤에셀, “여기까지 하나님이 도우셨다!”는 고백 대신에 그 장소를 지날 때는 “여기에서 하나님이 도우셨다!”고 고백하는 우리의 성지(聖地)가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좋은 생각을 우리의 마음에 주시는 성령 하나님을 인해서 찬양합니다. 하지만 사람의 마음에 나쁜 생각을 불어넣는 마귀도 있습니다. 유월절 직전(요 13:1) , 예수께서는 이제 자신이 이 세상을 떠나 아버지께로 돌아가야 할 때가 왔다는 것을 알고 계셨기에 세상에 있는 자기의 사람들을 사랑하시되, 다함없는 사랑을 끝까지 보여 주시는 그 아름다운 상황에서, 다른 한 편 마귀는 시몬의 아들 가룟 유다를 꾀어, 예수를 배반하여 팔아넘길 생각을 그의 마음속에 불어넣었다고(요 13:2) 성경은 기록하고 있습니다. 다행히 우리의 마음은 거룩한 영과 악한 영의 각축장이 아니라 주께서 다스리시는 영역입니다.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리라”(요 14:26) 성령께서는 주님의 가르침을 기억나게 할뿐 아니라 일상적인 삶에도 지혜를, 비상 상황에도 피할 지혜를 주시는 분이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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