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년째 사회복지사로 사역 중
꾸준함이 지금의 나를 만들어
틀린 것이 아닌 다름을 인정하는 세상 되길

꾸준함 속에 함께하신 하나님으로 지금의 내가 있었다고 고백하는 권송미 사회복지사. 인권강사로, 예배수화통역사로, 인권강사로, 사회복지사로 지내온 시간을 들어봤다.

권송미 사회복지사
권송미 사회복지사

하나님을 만나기전의 나는 뾰족했던 사람
어려울 때 마다 채움의 은혜를 맛보게 하신 하나님

| 삶의 시선

Q. 하나님의 첫사랑을 경험한 순간은?

교회에서 많이 예뻐해주셨었는데 교회가 애정의 욕구를 채워주는 곳이었다. 그리고 하나님이 때마다 작은 기도에 응답해주셨다. 소소하게 복숭아가 먹고 싶어요 부터 갖고 싶은 것 까지 하나님께서 내 기도를 듣고 계신다는 생각이 들었고 스며들 듯 하나님을 믿게 되었다. 10대 때 집안이 갑자기 어려워져서 힘든 시간을 보냈는데 하나님을 원망하게 되었다. 소소하게 내 기도를 들어주셔도 너무 야박하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6개월을 교회에 나가지 않았는데 6개월 후 다시 교회를 나가 드린 기도가 친구를 주세요 였다. 그 때 친구를 주셨고 그 친구와 신앙생활 하면서 장애인 사역을 하게 됐고 하나님께서 나의 소소한 기도제목에 응답해주시는 것이 너무 좋았다. 나한테 아무것도 없으니까 하나님이 더 잘보였다.

권송미 사회복지사의 친구
권송미 사회복지사의 친구

Q.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기 전과 후의 모습의 변화는?

하나님을 만나기 전에는 뾰족한 사람이었다. 10대의 난 멋진 사람이고 싶은데 가진 것이 없어서 뾰족한 사람이었다. 가진 것이 없는 사람들은 자존심이 가장 중요하다. 그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서 고슴도치가 되었다. 약한데 나를 세우기 시작했다. 하나님을 만나기 전에는 내 약함을 드러내기 싫었다. 그런데 고슴도치 같은 나를 하나님께서 보고 계셨고 안아주셨다. 뾰족한 나를 가만두지 않으시고 그 가시가 아무것도 아니게 만들어주셨다. 지금은 사람들을 만나서 아픈 것도 스스럼 없이 잘 얘기하게 되었다.

Q. 당신의 삶에 개입하셨던 하나님은 일은 무엇인가요?

장애인 공동체를 시작하고 많은 눈물의 시간을 보냈다. 작년 대전에 비가 많이 왔었는데 그 때 우리 사랑누리도 담장이 무너져 옆집을 덮쳤다. 어려운 상황에 낙심할 때 전도사님께 기도를 부탁드렸는데 그 전도사님께서 "어느 구름에 비가 올지 몰라요. 3년 가뭄 끝에 비가 내릴 때도 저 멀리 구름 한 조각에 역사하신 우리 주님을 믿고 기도합시다"하시며 기도해주시고 용기를 주셨다. 그 후 어렵게 모금을 시작하고 담장을 고치려 했는데 무너진 담장이 오래되었기도 했지만 집 지반이 무너지고 있었다며 지반보강공사를 해야한다고 했다. 공사비만 1300만원이 필요했다. 그 때 당시 1300만원이 없어 사랑누리가 당한 수해를 페이스북에 남겼더니 3일 만에 1000만원이 모였다. 하지만 300만원이 부족한 상황이었고 모금은 끝난 상황이었다. 그 때 하나님께서 채우는 손길을 보내셨는데 심지어 예수님을 믿지 않는 사람을 사용하셨다. 연예인 김제동씨가 정림동 수해 현장에 봉사 왔다가 다른 사람이 공유해 준 페이스북을 보고 가까우니 가보자 해서 일면식도 없는 우리 기관에 와서 모자라는 비용 300만원을 주고 갔다. 정말 딱 모자라는 그만큼을 주고 갔다.

그리고 매일 15명의 빨래를 하기 위해 하루 3번 세탁기를 가동하니 세탁기가 고장이 났다. 손빨래를 시도한 하루 만에 몸살이 나 아픈 몸으로 하나님께 울며 기도했는데 우리 기관 자원봉사 오는 중학생의 아버지께서 아이가 방황하다가 봉사를 다니면서 몰라보게 변했다면서 울며 기도한 딱 그날에 세탁기를 구매해 주셨다. 또 장마철에 빨래가 마르지 않아 빨래건조대 5개로도 세탁물을 해결하지 못하고 있을 때 어느 전도사님 댁에서 중고가스 건조기를 선물받으셨는데 아파트에 설치할 수 없다며 우리 기관에 보내주셨다. 이처럼 채워주시는 은혜가 늘 있었다.

인터뷰 중인 권송미 사회복지사
인터뷰 중인 권송미 사회복지사

Q. 삶의 굴곡 중에 가장 행복했을 때와 가장 힘들었을 때는 어떤 순간이었는가?

힘들었을 때는 청년의 시기 대학생활 내내 등록금은 늘 힘들게 넘어가는 큰 산이었다. 그래도 하나님께서 기적같은 역사로 함께해 주셨는데 4학년 2학기에도 교수님께 어려운 형편을 말씀드리고 분할 납부를 신청했다. 월급을 탈 때마다 최소한의 생활비만 빼고 모아서 분할 납부를 한, 두 번 내고 있었다. 그런데 마지막 분할 납부금이 남은 그 때 갑자기 일하던 곳에서 퇴직금도 없이 해고를 했다. 앞이 캄캄하고 막막한 그 때 통장 잔고를 보며 마지막 등록금을 낼 것인가 월세를 낼 것인가 고민했다. 그리고 나는 월세를 냈다. 그동안의 학기를 하나님께서 채워주셨기 때문에 기대함을 가졌지만 그럼에도 초조한 시간을 보냈다. 하지만 마지막 학기 등록금을 납부하지 못해 대학을 제적당했다.

그리고 졸업 후 가기로 예정되어 있던 기관도 제적으로 인해 사회복지사 자격증이 발급되지 않아 못가게 되었고 계획했던 미래는 모두 사라져 버렸다. 엄마에겐 해고 당한 것도 제적당한 것도 이야기 할 수 없어 전처럼 새벽이면 집을 나와 차비도 없어 한시간 반 이상을 걸어 교회에 가서 하나님께 왜이렇게 나에게 야박하냐고 울며 기도하기도 했다. 그래도 살아가야 했기에 아르바이트를 갔던 그 때는 인생에서 가장 춥고 어두웠던 시기였다.

인터뷰 후 사진을 찍으며 과거 회상 중인 권송미 사회복지사
인터뷰 후 사진을 찍으며 과거 회상 중인 권송미 사회복지사

행복했을 때는 남편과 결혼했을 때와 개원예배를 드릴 때였다. 우리 부부가 숟가락 두개를 놓고 장애인과 같이 살기 시작했는데 공간이 작았다. 2층 집을 사서 여름 내내 고생하며 리모델링을 했다. 그리고 시각장애인 유도블럭을 놓으니 주민들이 반대하기 시작했다. 안좋은 말들이 들려왔는떼 우리 식구는 귀를 닫았었다. 우리를 둘러싼 이웃집이 32가정이었는데 설득하고 개원예배를 드릴 때까지의 상황이 너무 힘들었기에 개원예배를 드릴 때 너무 감사했다. 힘듦의 과정 속에서 포기하지 않게 잡아주신 하나님께 너무 감사했고 앞으로의 할 일에 대해 기대감이 생기는 날이었다.

사랑누리공동체 동역자들
사랑누리공동체 동역자들

Q. 힘들었던 나에게 사랑의 한 마디를 한다면?

20대로 돌아가고 싶다는 말을 많이 하는데 나는 돌아가고 싶지 않다. 그 때의 나처럼 열심히 살 자신이 없다. 10대 때 20살이 되고 싶었고 20대 때는 치열하고 가난했기에 30이 되는 것이 기대감이 있었다. 최근에 40이 넘었는데 30에서 40이 되는데 아쉽기 시작했다. 일을 성취해가는 것과 행복한 결혼생활과 사랑을 많이 받았던 나에게 그간의 시간을 돌아보며 해주고 싶은 것은 수고했다고 토닥토닥 안아주는 것이다.

사회복지사로, 인권강사로, 예배수화통역사로
오래하는 것, 지속, 꾸준함이 나의 달란트

| 사역의 시선

Q. 지금 맡고있는 일/사역을 소개한다면?

직업은 사회복지사다. 발달장애인 분야. 그 중에서도 소규모시설에서 발달장애인과 먹고 자고 함께 생활하는 일에 19년 째 종사하고 있다. 그리고 국가인권위원회 인권강사양성과정을 수료하고 인권강사로 위촉받아 활동하고 전국의 발달장애인과 발달장애인을 지원하고 계신 사회복지사 선생님들께 인권을 이야기하는 강사로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 그리고 교회에서 22년간 예배수화통역으로 쓰임받고 있다.

교회에서 예배 때 수화통역으로 섬기고 있는 권송미 사회복지사
교회에서 예배 때 수화통역으로 섬기고 있는 권송미 사회복지사

내가 이끌고 있는 사랑누리라는 공동체는 남편과 같이 두곳에서 총 19명의 발달장애인과 같이 사는 일을 한다. 기관의 모토는 경청과 기다림으로 존중받는 두번째 우리집 사랑누리다. 발달장애인은 지체장애인보다 어렵다. 부모랑 떨어져 지내는 것이 어려운데 부모랑 살던 집 말고 두번째 집이 우리 사랑누리가 되었으면 좋겠다. 앞의 수식어는 발달장애인은 무엇인가 물어보면 15초를 기다려야 하는데 그렇기에 들어주고 기다려주는 것을 제일 중요한 가치로 두는 곳이다.

운영은 우선 인건비는 국가에서 100% 지원된다. 운영비는 기관을 운영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하게 지원해주지만 하나님께서 먹이고 계시다. 우리는 살아오면서 한번도 쌀을 사본적이 없다. 한번은 코로나 때문에 우리가 다니던 자원봉사하던 아이의 어머님이 손님이 하나도 없어서 힘든데 사랑누리는 얼마나 힘들까 싶어서 쌀을 주셨던 적이 있다.

Q. 일/사역 가운데 감동, 기억에 남은 에피소드는?

모든 순간들이 소중했던 것 같아서 꼽기가 어렵지만 식구들이 중증 장애를 갖고 있는데도 핸드폰을 가지고 있다. 친구들이 자기표현을 잘 못하니 그 친구들에게 미디어를 가르쳐야겠다고 생각했는데 주변에서 말도 안된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그런데도 시도를 했는데 어느날 발달장애 친구가 사진을 찍어서 보여줬는데 파란 하늘에 태극기가 휘날리는 사진을 보여주면서 '재밌어' 라고 말했다. 독립기념관을 다녀온지 얼마 안된 날이었데 그 사진을 찍어서 또 가고 싶다고 표현한 것이 기억에 남는다.

그리고 카페를 갈 때 외부에 있는 비밀번호를 누르는 화장실은 혼자 가기가 힘들었는데 비밀번호를 사진찍은 후 직접 번호를 누르게 되었고 최근에 팥죽이라는 단어가 어려웠는데 음성을 통해 메세지를 보내고 안될 것 같았던 일들이 이루어지니까 좋았다.

사랑누리 식구들과 프로그램 중이다.
사랑누리 식구들과 프로그램 중이다.

Q. 당신의 달란트를 소개한다면?

오래하는 것, 지속, 꾸준함인 것 같다. 무엇인가를 하게 되면 오래한다. 코로나가 시작되고 뜨개질이라는 새로운 취미를 시작했는데 남들보다는 속도가 느리지만 아직도 꾸준히 뜨개질을 하고 있다. 장애인 복지 분야에서도 지금 인정을 받는 것도 19년 동안 꾸준히 일했더니 내 커리어가 되었다. 무엇인가를 잘해서가 아니라 꾸준히 열심히 한 결과다.

Q.  19년 째 이 사역을 지속할 수  있었던 이유?

재밌기 때문이다. 어떤 직업을 갖고 있으면 사람이 그것으로 돈을 벌고 보람을 느낀다. 보람을 얻고 돈도 벌고 자기성장까지 이루는 직업은 드물다고 생각한다. 장애인 분야에서도 발달장애가 조금 더 재밌었던 것은 예수님은 어린아이같은 사람이 천국간다고 말씀하셨는데 그 말을 믿고 장애인들이 하는 것들을 순수한 마음으로 하는 것이기 때문에 재밌는 것 같다. 그래서 더 성취감도 있는 것 같다.

Q. 인공지능 시대 앞으로 사역의 모습은 어떻게 변화할 것 같은지?

자율주행, 인공지능 TV 등 장애인에게 도움이 되는 인공지능이 많이 늘어나는 것 같아서 기대가 된다. 오랫동안 시간을 두고 했던 것들이 성과로 나타나는 것 같다. 지체장애인들에게는 많이 유익할 것 같다. 하지만 발달장애 분야는 어려움이 있다. 과학의 힘이 시각, 청각 등 장애인에게 도움이 되지만 발달장애인은 로봇이 마음을 이해할 수 없을 것이고 키오스크 같은 것들은 사용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래서 인공지능 시대가 장점과 단점이 동시에 존재하는 것 같다.

사랑누리 식구들
사랑누리 식구들

나의 가치관은 교회와 성경말씀
예수님 앞에 섰을 때 부끄럽지 않은 사람이 되자

| 생각의 시선

Q. 내가 갖고 있는 가치관에 가장 영향을 끼친 것은?

교회, 성경 말씀이다. 나는 천국을 믿는다. 이건 굉장히 중요한 내 삶의 가치다. 삶을 살아가면 어떤 일을 함에 있어서 쉽고 빠르고 악한 방법이 있는데 나는 천국가야 하니까 내가 예수님 앞에 섰을 때 부끄러운 사람이 되지 말아야지 하는 생각이 있다. 천국가서 예수님을 만날 것이니 부끄럽게 살지 말아야지 하는 생각을 한다.

Q. 어떠한 일을 결정하거나 선택할 때 가장 기준으로 삼는 것은?

위 질문의 대답과 같다. 천국가서 예수님 앞에 섰을 때 부끄럽지 않은 사람이 되어야지다. 그것이 내 기준점이고 내 고정관념이다.

인터뷰 후 사진을 찍고 있다.
인터뷰 후 사진을 찍고 있다.

틀린것이 아닌 다름을 인정하는 시선 필요
열심히 사는 사회복지사 권송미가 되길

| 세상의 시선

Q. 당신의 눈에 비친 세상의 모습은?

걱정된다. 사람들이 자꾸 내가 옳지 않으면 틀렸다고 얘기한다. 나는 인권강사로도 활동하고 있는데 거기서 중요한 요소가 인정이다. 다른 것을 틀렸다고 표현하는 세상이다. 그러다보니 나하고 똑같지 않은 것을 보고 차별하게 되는 것 같다. 다른 것을 다르다라고 생각하는 것이 중요한 것 같다. 장애도 마찬가지다. 장애는 다른건데 틀렸다고 한다. 틀렸다가 아닌 다르다라는 시선을 가졌으면 좋겠다.

Q. 세상의 눈으로 보았을때 나의 모습은?

매일 바뀌는 것 같지만 어떤 때는 열심히 사는 사회복지사의 모습으로 보여졌으면 좋겠고 숨어있고 싶을 때도 있지만 자기 일을 열심히 하는 사람으로 보여지고 싶다.

Q.  독자에게 권면의 말씀

절대로 포기하지 말라고 이야기 하고 싶다. 삶의 굴곡 속에서 그만하고 싶을 때가 정말 많았는데 주신 사명, 꿈 바라보면서 힘들어서 뛰지 못하고 걸을지라도 꾸준히 갔더니 그 길 가운데서 열매가 있었고 어느순간 뒤돌아 봤더니 꽤 많은 길을 걸어왔다. 내 인생 좌우명이 빠른길보다 바른 길을 걷자다. 열심히 뛰다보니 방향이 중요한 것을 깨달았다. 지속가능하게 계속 가다보면 주님께서 주신 사명 빨리 이루지는 못하더라도 그 가운데 은혜받는 삶이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인터뷰 후 사진찍는 중이다.
인터뷰 후 사진찍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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