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레12코스 평지동 마을 풍경.
올레12코스 평지동 마을 풍경.

샬롬!^^

주의 말씀이 내 발의 등불이 되고 내 길의 빛이 되기만을 구하며 또 하루 믿음으로 시작합니다. 하나님 나라의 의와 평강과 희락을 누리고 나누기를 원합니다. 오늘도 저와 주의 말씀을 사랑하는 주의 백성들과 함께 하여 주시고, 세상의 빛과 소금으로 살게 하옵소서! 삶을 낭비하지 않게 하여 주옵소서! 기도하며 시작합니다.

지난 묵상 말씀은 ‘제단에 붙은 불을 끄지 말라’는 말씀을 중심으로 묵상하였습니다. 또한 ‘거룩을 위협하는 누룩’을 주의할 것에 대한 교훈, ‘아침저녁으로 드리는 제사’에 대한 말씀을 묵상하고 내 마음과 삶에 적용하였습니다.

과거, 한국 교회에 붙은 놀라운 성령과 말씀의 ‘불’이 꺼지지 않고 다시 타오르기를 기도합니다. 우리 ‘다음 세대까지’ 이 성령과 말씀의 불이 붙고, 다시 교회가 깨어나고, 개인과 가정들이 회복되고, 이 나라에 거룩한 영향력을 끼치는 역사가 일어나기를 기도합니다. 먼저는 교회 목사인 나부터 ‘거룩을 위협하는 바리새인의 누룩’을 주의하며, 매일 아침과 저녁의 성경 묵상과 기도를 쉬지 않기를 구합니다. 주여, 은혜를 베푸소서!

오늘 묵상 말씀은 6장 8절부터 제사장에게 주는 번제와 소제의 추가 규례에 이은, ‘속죄제와 속건제에 대한 추가 규례’입니다. 24-30절은 속죄제에 대한 규례입니다. 여호와께서 모세를 통해 ‘아론과 그의 아들들’(성막에 봉사하는 제사장들)에게 말씀하시는 내용입니다(24-25절a). 특히, 나같은 교회의 목회자가 잘 들어야 할 말씀입니다.

‘속죄제물은 지극히 거룩하다’고 강조하시며, 그 속죄제물을 잡을 때의 주의사항입니다. 지극히 거룩하기 때문에, “여호와 앞 곧 번제물을 잡는 곳에서 잡으라” 하십니다(25절). 그 후, 죄를 위해 제사 드리는 제사장이 그것을 먹되 회막 뜰 거룩한 곳에서 먹으라 하십니다(26절).

올레12코스 길목에 있는 평지교회당.
올레12코스 길목에 있는 평지교회당.

그 고기에 접촉하는 모든 자는 거룩할 것이라 하십니다. 제물을 드릴 때 그 피가 어떤 옷에 묻었든지 묻는 그것은 거룩한 곳에서 빨 것이고, 그 고기를 토기에 삶았으면 그 그릇을 깨뜨릴 것이고 유기에 삶았으면 그 그릇을 닦고 물에 씻으라 하십니다. 또 제사장 남자는 모두 지극히 거룩한 그 고기를 먹으라 하시고, 그러나 피를 가지고 회막에 들어가 성소에서 속죄하게 한 속죄제 제물의 고기는 먹지 말고 불사르라고 하십니다(27-30절).

즉 어떤 속죄제물의 고기는 먹으라 하시고, 어떤 속죄제물의 고기는 먹지 말라 하십니다. 제단에 드려진 속죄제물의 고기는 먹되, 먹지 말아야 할 속죄제물의 고기는 ‘성소에서 속죄를 위해 그 피를 뿌린 속죄제물의 고기’입니다(30절). 이는 제사장이 유의할 부분입니다.

‘제사장은 제단에서 드린 속죄제물을 먹으라’는 말씀이 반복해서 나옵니다(26절,29절,7장 6절). 오늘 내게 이 말씀을 적용하면, 속죄제물은 내 죄를 위한 대속제물이 되신 그리스도의 ‘그림자’이므로, 내가 그리스도를 먹는 것을 의미할 것입니다. '내가 그리스도를 먹는다'는 의미는 무엇일까? 예수님은 요한복음에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인자의 살을 먹고 인자의 피를 마시지 아니하면 너희 속에 생명이 없느니라.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영생을 가졌고 마지막 날에 내가 그를 다시 살리리라. 내 살은 참된 양식이요 내 피는 참된 음료로다.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내 안에 거하고 나도 그의 안에 거하나니, 살아 계신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시매 내가 아버지로 말미암아 사는 것 같이 나를 먹는 그 사람도 나로 말미암아 살리라”(요6:53-57).

요한 계시록에서는 이렇게 말씀합니다. “내가 천사에게 나아가 작은 두루마리를 달라 한즉 천사가 이르되 ‘갖다 먹어 버리라 네 배에는 쓰나 네 입에는 달리라’ 하거늘, 내가 천사의 손에서 작은 두루마리를 갖다 먹어 버리니 내 입에는 꿀 같이 다나 먹은 후에 배에서는 쓰게 되더라”(계10:9-10).

그리스도를 먹는다는 뜻은 그와 연합하여 한 몸이 되는 삶이며, 의식적으로는 성찬식을 의미할 수도 있지만, 무엇보다 주의 말씀을 먹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 말씀이 먹을 때는 달지만, 먹고 난 후 순종하여 살 때에는 쉽지 않음을 ‘쓰다’고 말한 것입니다. 십자가의 길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말씀의 순종은 자기 부정이 따르기 때문입니다.

나는 목사로써 매일 주님의 말씀을 온전히 섭취하고 소화시키고 살아야 합니다. 주의 말씀이 내 발의 등불이 되고, 내 길의 빛이 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이를 위해 내 모든 육신의 생각을 사로잡아서 주의 말씀에 복종하는 간절한 기도가 필요합니다. 내 힘으로는 안됩니다.

7장 1절부터 10절까지의 속건제 규례에서는 속건제의 장소가 강조되며(2절), 그 속건제물의 기름과 꼬리와 내장과 두 콩팥과 간에 덮인 콩밭을 모두 떼어내어 제단 위에서 불살라 바치라 하십니다(3-5절). 그 제물은 역시 속죄하는 제사장에게로 돌아가고, 드린 번제물의 가죽과 화덕의 소제물도 도 제사장이 가지라 하십니다(7-9절). 소제물의 기름 섞인 것이나 마른 것은 모든 아론의 자손이 ‘균등하게’(equally) 분배하라고 명령합니다(10절).

교회당은 구약 시대의 성전이 아닙니다. 지금의 성전은 그리스도의 몸 즉 주의 백성입니다(고전3:16,고전6:19). 그렇다고 교회당이 무시되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교회당은 주의 백성들이 와서 기도하고 예배하고 교제하는 곳입니다. 또한 교회는 하나님이 주신 물질을 잘 사용해야 합니다. 부자 교회일수록 가난한 교회 목회자와 힘든 교회 목회자를 생각하고 헌금을 ‘균등하게’ 사용되도록 힘써야 합니다.

우리의 시선을 넓혀 지구촌의 교회도 보아야 합니다. 무너진 북한의 교회도, 전쟁 중의 우크라이나 교회도, 미얀마와 아프가니스탄의 교회도 생각해야 합니다. 주신 바를 '균등케 하기 위해' 우리 평지교회도 시골의 약하고 작은 교회이지만 힘써 나누려고 노력합니다. 주여, 이 땅의 무너진 교회가 견고하게 세워지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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