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레길 12코스 차귀도가 보이는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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샬롬!^^

토요일, 제주도의 날씨는 맑습니다. 오늘도 주의 은혜아래 하나님 나라의 의와 평강과 희락을 누리고 나누기를 원합니다. 매일 주님의 말씀이 내 발의 등불이 되고 내 길의 빛이 되기만을 구하며, 또 하루 믿음으로 시작합니다. 주께서 함께 하여 주소서! 삶을 낭비하지 않게 하여 주소서!

어제까지 ‘5대 제사’를 묵상하였습니다. 그러나 아직 공식적으로 제사장이 세워지지 않은 상태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시내산 아래 ‘회막에서’ 모세를 부르셔서 제사의 규례를 말씀하셨지만, 제사장은 세워지지 않았습니다. 마치 교회는 있는데 목회자가 없는 것 같았습니다. 따라서 오늘과 내일 묵상 본문 8장은 ‘제사장 위임식’에 대한 말씀입니다.

먼저 1-9절에서 하나님은 모세에게 아론과 그 아들들을 불러서 온 회중 앞에서 하나님의 명령하신 것을 전하게 하십니다. “너는 아론과 그의 아들들과 함께 그 의복과 관유와 속죄제의 수송아지와 숫양 두 마리와 무교병 한 광주리를 가지고, 온 회중을 회막 문에 모으라”(2-3절).

제사장 위임식의 서론적 본문인 이 말씀에, '제사장의 의복'(6-9절), '관유'(the anointing oil, 10-13절), 속죄제의 수송아지(14-17절), 번제의 숫양 두 마리(18-21절), 무교병 광주리(26절)가 순차적으로 나옵니다. 오늘 묵상은 21절까지입니다.

4절은 계속해서 반복되는 모세의 순종을 기록합니다. “모세가 여호와께서 자기에게 명령하신대로 하매”(9절,13절,17절,21절,29절,36절). 모세는 미디안 광야 40년 동안 낮아질 대로 낮아지고, 애굽에서 하나님의 10가지 기적을 경험한 후, 다시 광야로 나와, 오직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는 것만이 지혜요 능력임을 깨닫고 터득하였을 것입니다. 그는 많은 댓가를 지불하고서, 자기의 지혜나 지식, 경험이나, 육신의 생각을 의지하지 않고 철저히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행하는 것만이 참 지혜와 능력이요,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것임을 배웠던 것입니다.

이는 오늘 나도 동일할 것입니다. ‘인생의 광야를 지나며’ 배워야 할 것은, 나의 지혜와 지식, 재능이나 경험이나 육신의 생각이 아닌, 오직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 하나님의 나를 향한 뜻을 이루는 것과 공동체(가정과 교회)를 향한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을 이루는 것임을 배워야 합니다. 이것을 배우지 못하면 배울 때까지 ‘연단’을 받을 것입니다. 특별히 사역자는 그러합니다.

모세는 하나님의 명령을 따라 ‘아론과 그의 아들들을 데려다가 물로 씻기고 속옷을 입히고 띠를 띠우고 겉옷을 입히고 에봇을 걸쳐 입히고 에봇의 장식 띠를 띠워서 에봇을 몸에 메고, 흉패를 붙이고, 흉패에 우림과 둠밈을 넣고, 그의 머리에 관을 씌우고 그 관 위 전면에 금패를 붙이고 거룩히 구별하였습니다’(6-9절).

‘에봇’(ephod)은 제사장이 직무를 수행하기 위해 세마포 겉옷 위에 걸치는 소매없는 조끼 모양의 윗옷입니다. 그 에봇 위에 ‘흉패’(breastpiece)를 두고 ‘우림과 둠밈’(제사장이 하나님의 뜻을 묻는 돌)을 넣고, 머리의 관에 금패를 붙이게 하였습니다.

이러한 제사장의 특별한 의복이 보여주는 것은 그의 정체성과 신분의 고귀함입니다.

오늘날 그리스도 안에 있는 신자는 ‘왕같은 제사장’으로써 이러한 고귀하고 거룩한 정체성을 갖습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어야 하며, 어디에 가든지, 무엇을 하든지 자신의 정체성을 기억하고, 고귀하고 거룩한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만일 내가 이러한 거룩한 정체성과 자신의 신분에 대해 망각하면, 빛과 소금의 삶을 살 수 없을 것입니다. 주여, 나 자신이 ‘왕같은 제사장’임을 늘 기억하게 하소서!

올레길 12코스 신창 바닷가 양식장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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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3절은 제사장을 거룩하게 구별하는 기름을 붓는 내용입니다. 먼저는 ‘관유’(the anointing oil)를 성막과 그 안에 있는 모든 것에 발라 거룩하게 하고, 또 제단에 일곱 번 뿌리고 제단과 그 모든 기구와 물두멍과 그 받침에 발라 거룩하게 하고, 또 관유를 아론의 머리에 붓고 그에게 발라 거룩하게 하였습니다. 또 아론의 아들들을 데려다가 속옷을 입히고 띠를 띠우고 관을 씌웠습니다.

‘기름을 붓는다’는 것은 하나님 앞에서 거룩히 구별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제사장은 하나님의 성소의 일을 위하여 거룩히 구별된 존재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이 세상에 살지만, 이 세상과 ‘다른 방식’ 곧 ‘믿음’으로 사는 거룩한 제사장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살며, 이 세상 정욕과 고집을 십자가에 못 박고 주를 따르는 거룩한 나라입니다.

14-17절은 속죄제의 수송아지에 안수하고 수송아지를 잡고 제사장을 거룩하게 하는 내용입니다. 앞에서 묵상한 것처럼, 속죄제는 성소의 오염된 허물과 죄를 깨끗게 하는 ‘정화제, 정결제’입니다. 아론과 그의 아들들이 제사장의 직무를 감당하기 위해서는 먼저 이러한 속죄제를 드려야 합니다.

이 때가 출애굽기 32장의 금송아지 사건이 일어난 후인지, 전인지 분명하지는 않습니다. 만약 금송아지 사건 후라면 아론과 그의 아들들은 이러한 속죄제를 더욱 감격적으로 드렸을 것 같습니다. 분명한 것은 제사장의 직무를 감당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선제적으로 속죄제를 드려서 하나님과의 관계를 온전히 해야 했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교회 사역자로써 나는 날마다 먼저 하나님 앞에 나아가 나의 허물과 죄를 씻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구해야 하고, 그의 은혜로 서서 사역을 감당해야 합니다.

18-21절은 번제의 숫양을 드리는 내용입니다. 수송아지를 드릴 때에도, 숫양을 드릴 때에도 ‘안수’(~lay their hands on the head)해야 했습니다. '안수‘는 제사자 본인이 두 손으로 온 힘을 다해 짐승의 머리에 대고 누르는 행위이며, ’동일시‘를 의미합니다. 이것이 보여주는 그림은 하나님의 어린 양인 그리스도께서 성육신하시는 것을 보여주며, 우리 죄인 중에 한 사람처럼 되셔서 십자가에 돌아가시는 것을 보여줍니다. 예배는 이러한 감격을 가슴에 품고 드리는 시간이며, 속죄와 헌신과 순종(번제)의 시간입니다.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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