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 그렇듯이 사고는 우연히 일어나기도 합니다. 결심하고 사고를 치는 경우는 드물 겁니다. 거실에서 뛰어놀던 아이가 아끼던 물건을 깨뜨립니다. 당장 호통을 칩니다. “너 왜 그릇을 깨뜨렸어?” 이유가 있어서 그랬을리 만무합니다. 제게도 관대하게 대해 주십시오. 지난 금요일 저녁입니다. “한 주간이 지나갔습니다. 칼럼 보냅니다.”라며  <기쁨의 잔치를 준비하며>라는 칼럼을 써서 담당PD분께 보냈더니 바로 뒷 날 토요일 아침에 “네 목사님~~ 오늘 오후에 올리겠습니다.” “매주  수고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오후 4시 정각입니다. "목사님 방금 올렸습니다.^..^" 여기까지는 일상적인 순항이였습니다.

- 신관 앞의 산수유

정신 없이 주말을 보내고 주일 오후에 여유가 생기자 성도의 교제 차원에서 칼럼  <기쁨의 잔치를 준비하며>를 데스크탑에서 보내기 시작했습니다. 사실 매주 한 편의 글을 썼지만 보낸다는 것은 생각도 못하고 어쩌다 시간이 나면 즐겨찾기로 분류된 사람들에게 보내기 시작하다가 새로운 일이 밀려들면 중단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그날은 그렇게 한다고 생각하고 시작했는데 상당한 시간이 흐르면서 이상기류를 감지했습니다. 10명씩 보내다가 이름이 생소한 분들이 등장하기 시작하면서 ‘뭐지 이게?’ 하는 자문을 할 때는, 이미 엄청난 사람들에게 보낸 후였습니다. 요즈음 아이들 표현을 쓰면  <빼박캔트>에 빠진 것입니다. 그 때 스쳐가는 생각이, ‘나의 실수조차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데 사용되었으면’이었습니다.

- 대자산의 생강나무 꽃

하여 어떻게 연결되었는지 기억도 나지 않는 수 천명의 카톡친구(?)들에게 작심하고 칼럼을 보냈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입질도 눈팅도 하지 않는 많은 사람들 가운데서 새순이 돋아나듯 답문을 보내오는 분들이 있었고, 또 그 가운데는 칼럼을 읽고 후원금을 학교법인 구좌로 보내기도 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몇 년씩 소식이 없던 분들 가운데는 제가 에스라성경대학원대학교에서 사역한다는 것을 비로소 알고, 기쁨의 문안을 해오기도 했고, 학교법인이 부담금을 해결하기 위해 모금을 한다는 사실을 비로소 알았으니 이제부터는 기도하겠다는 분들이 대부분이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런 칼럼을 보내면 오해하실 수도 있는 분들에게도 무차별하게 보냈으니, 그동안 교제를 밑천으로  외상값 청구서를 보낸 것처럼 되어서 엄청 미안했습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후원자들은 기회를 주어서 고맙다고 고백했습니다.

- 작년에 활짝 핀 산수유

그 가운데, 성도의 교제를 봄비 같이 촉촉히 적시는 글들도 있었습니다. “목사님, 문자 주셔서 감사합니다. 요한계시록은 틈틈히 잘 읽고 있습니다. 친필싸인 책을 받아볼 수 있다면 영광입니다^^  <땅위에는영원한 도성은 없습니다>는 히브리서 설교집은 세상에 안주하고싶을 때 마음을 잡아주는 제게 귀한 책입니다. 그리고 예전 에스라대학원대학교를 거친 울산교회 목사님들의 더 깊어진 말씀을 들을 수 있는 시간들이 있어서 에스라에 빚이 있는 자입니다. 사역을 위해 멀리서 기도합니다. 건강하십시요♡” 그런가 하면 마음이 아픈 사연도 있습니다. “사고 치셨네요~~ ” “네 사고요? 저는 목사님 은퇴하시고 난 후, 조용히 착하게 살고 있습니다. ㅎㅎ” 그러면서 실토를 했습니다.  “아내가 제 생일에 (아이)패드를 바꿔주려고 몰래 돈을 모았습니다^^ 근데 저도 목사님 글을 읽으며 마음이 움직였고 아내도 동일하게 목사님 글을 읽으며 그런 마음이 들었습니다. 비록 전부를 드리지 못해 미안하지만 작은 힘이 나마 보태고 싶었습니다^^” 이번 며칠 동안 최고액을 보낸 분은 답합니다. “엄청 큰 사고 치셨네요^^”라고 했더니 “큰 도움을 못드려서 마음이 가볍지  않습니다.” 그렇지요? 사랑은 다 드려도 아쉬운 마음이지요? 

저작권자 © 투데이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