샬롬!^^ 제주도의 날씨는 맑습니다. 오늘도 주의 은혜아래 의와 평강과 희락을 누리고 나누기를 원합니다. 매일 주님의 말씀이 내 발의 등불이 되고 내 길의 빛이 되기를 구하며, 또 하루 믿음으로 시작합니다. 주께서 함께 하여 주소서. 삶을 낭비하지 않게 하여 주소서!

공지사항입니다. 오늘 저녁 8시에 <삶을 변화시키는 온라인 성경공부 : 레위기(2)>가 있습니다. 6년 동안 성경 전권을 디테일하게 공부하는 과정입니다. 누구나 참여할 수 있습니다. 참여비는 없고, 원하시는 분들을 줌으로 초대합니다. 문정욱 목사(010.4246.9003).

올레길 10코스. 송악산 둘레길의 산방산이 보이는 바다 풍경
올레길 10코스. 송악산 둘레길의 산방산이 보이는 바다 풍경

어제 묵상 말씀은 나병 환자가 정결하게 되었을 때의 규례였습니다. 요약하면, 제사장이 진영 밖으로 나가 그 환자를 진찰하고 살아있는 새 두 마리와 백향목, 홍색실, 우슬초를 가져오게 하고, 새 한 마리는 흐르는 물 위에서 잡고 그 피를 정결함을 받을 자에게 일곱 번 뿌리고 다른 새는 피를 발라 들에 놓아줍니다. 그리고 나병 환자는 정결함을 얻는 일련의 과정들을 거쳐 '네 제사'(속건제-속죄제-번제-소제)를 드려 정결하게 됩니다. 이러한 다소 복잡한 과정을 거치면서 나병 환자는 하나님과의 관계가 온전히 회복되었음을 경험하며 '확신'가운데 진영에 들어와 감격적인 구원을 누리게 됩니다.

살아있는 새에 죽은 새의 피를 발라서 들판 창공에 놓아줄 때 나병환자는 형언할 수 없는 ‘구원의 감격’을 누렸을 것입니다. 새가 자유롭게 날듯 하나님과의 관계의 회복과 가족과 이웃과의 관계의 회복을 맛보면서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의 기쁨과 평강을 누렸을 것입니다. 구원은 하나님과의 관계와 이웃과의 관계의 회복입니다.

“우리의 영혼이 사냥꾼의 올무에서 벗어난 새같이 되었나니 올무가 끊어지므로 우리가 벗어났도다”(시124:7).

오늘 묵상 본문은 나음 받은 나병 환자가 이러한 정결 규례를 행하는 과정가운데, 혹 그가 가난하여 정한 제사를 드릴 힘이 미치지 못할 경우의 규례입니다.

“만일 그가 가난하여 그의 힘이 미치지 못하면 그는 흔들어 자기를 속죄할 속건제를 위하여 어린 숫양 한 마리와 소제를 위하여 고운 가루 십분의 일 에바에 기름 섞은 것과 기름 한 ‘록’(log)을 취하고, 그의 힘이 미치는 대로 산비둘기 둘이나 집비둘기 새끼 둘을 가져다가 하나는 속건제물로, 하나는 번제물로 삼아”(21-22절).

오늘 나는 가난한 자를 배려하시는 하나님을 만납니다. 이는 앞 문맥에서도 이미 나온 바 있습니다. “만일 그의 손이 산비둘기 두 마리나 집비둘기 두 마리에도 미치지 못하면 그의 범죄로 말미암아 고운 가루 십분의 일 에바를 예물로 가져다가 속죄제물로 드리되”(5:11).

하나님은 어떠한 분이신가? 없어서 드리지 못하도록 하지 않으시고, 가진 것이 없는 상태에서도 드릴 수 있도록 사랑으로 배려하시는 분입니다. 내가 힘써 드릴 때 내게 축복이 되고 기쁨과 은혜가 되기 때문입니다.

“또 어떤 가난한 과부의 두 렙돈 넣는 것을 보시고”(눅21:2).

‘두 렙돈’은 오늘날 약 천 원 정도의 금액으로 봅니다. 그러나 주님은 그녀가 누구보다 많이 헌금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는 그가 '가진 전부'를 넣었기 때문입니다. ‘내가 힘이 미치지 못할 때’ 드리는 헌신과 헌금을 주님은 더 기뻐하십니다.

올레길 10코스 송악산 둘레길에서 바라본 바다 풍경
올레길 10코스 송악산 둘레길에서 바라본 바다 풍경

이렇게 비둘기를 가지고, 여덟째 날에는 정결례를 위해 그것들을 회막 문 여호와 앞 제사장에게로 가져가야 합니다(23절). 제사장은 속건제의 어린 양과 기름 한 록을 가져다가 여호와 앞에 흔들어 요제로 삼고(24절), 속건제의 어린 양을 잡아서 제사장은 그 속건제물의 피를 가져가다 정결함을 받을 자의 오른쪽 귓부리와 오른쪽 엄지손가락과 오른쪽 엄지발가락에 바릅니다(25절).

또 제사장은 그의 왼쪽 손바닥에 기름을 따르고(26절), 오른쪽 손가락으로 왼쪽 손의 기름을 조금 찍어서 여호와 앞에 일곱 번 뿌립니다(27절). 그 후 제사장은 정결함을 받을 자의 오른쪽 귓부리와 오른쪽 엄지손가락과 오른쪽 엄지발가락 곧 속건제물의 피를 바른 곳에 바릅니다(28절). 또 제사장의 손에 남은 기름은 정결함을 받을 자의 머리에 발라 속죄합니다(29절).

이러한 과정은 8장의 제사장 위임식 때, 제사장에게 한 과정과 동일합니다. 그를 '거룩하게 구별하는 것'입니다. 이제 저주받은 나병으로부터 풀려나 완전한 자유를 누리고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되었고, 가족과 이웃을 볼 수 있게 된 것을 보여줍니다.

즉 ‘속죄함’은 내 과거의 허물과 죄가 깨끗해지는 선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관계의 온전한 회복”을 가져오는 사건입니다. 따라서 내가 주의 은혜로 ‘죄사함’을 받았다는 사실은, 이제부터 '새로운 관계에 들어갔다'는 뜻이며, 새로운 관계 속에 살아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나는 새로운 관계가운데 살아가고 있는가? 돌아봅니다.

이 그림을 잘 보여주는 내용이 바로 누가복음 15장의 소위 ‘탕자의 비유’일 것입니다. 아버지를 멀리 떠난 둘째 아들은 세상에서 아버지의 재산을 다 낭비하고 빈털터리로 아버지께 돌아옵니다. 그러나 아버지는 아들을 나무라지 않고 아무런 조건없이 받아줍니다. 잔치를 베풀어 손에 반지를 끼워주고, 옷을 입히고, 신을 신기고 살찐 송아지를 잡습니다. 이 그림글이 보여주는 것은 죄 사함이 바로 “관계의 회복”이라는 사실입니다. 그 후 돌아온 탕자는 아버지와의 관계와 이웃과의 관계를 마음껏 누렸을 것입니다.

반면, 집에 있었던 첫째 아들은 아버지와의 관계를 회복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오늘날 교회 안에 첫째 아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되고 깨끗해진 나병 환자는 힘을 다하여 "그가 힘이 미치는 대로"(whichever he can afford) 산비둘기 한 마리와 집비둘기 새끼를 드립니다(30절). 한 마리는 속죄제로, 또 한 마리는 소제와 번제로 드리고 제사장은 그를 위해 여호와 앞에 속죄합니다(31절). 할렐루야.

하나님은 죄 사함 받고 구원받은 나를 자녀로 받아 주셨습니다(입양). 내가 가난한 것도, 부족한 것도, 연약한 것도 다 아시는 분입니다. 나의 머리털까지 다 세신 분이 우리 아버지 하나님입니다. 따라서 나는 "나의 힘이 미치는 대로" 주님을 섬기면 됩니다. 내게 바울 사도와 같은 일을 원치 않으시며, 베드로와 같은 헌신을 원하지 않으십니다. 다만 그분들에게 배우기를 원하시며, 부르심 받은 내 삶의 자리에서 “할 수 있는 대로” 사랑하고 섬기고 순종의 길을 걷기를 원하시는 것을 나는 믿습니다. 아멘, 아멘.

올레길 10코스 송악산 둘레길에 있는 말 두마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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