샬롬!^^ 4월 첫 주일은 잘 보내셨나요? 월요일, 오늘도 제주도 날씨는 맑고 깨끗합니다. 우리 마을에도 곳곳에 예쁜 벚꽃이 만개하였습니다(사진 참고). 오늘도 주의 은혜아래 의와 평강과 희락을 누리고 나누기를 원합니다. 매일 주님의 말씀이 내 발의 등불이 되고 내 길의 빛이 되기만을 구하며 또 하루 믿음으로 시작합니다. 주여, 함께 하여 주소서. 삶을 낭비하지 않게 붙드소서.

어제와 그제 묵상에서 주님은 성령에 대하여 반복해서 말씀해 주셨습니다.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리니, 그는 진리의 영이라 세상은 능히 그를 받지 못하나니 이는 그를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함이라. 그러나 너희는 그를 아나니 그는 너희와 함께 거하심이요 또 너희 속에 계시겠음이라”(14:16-17).

평지 교회가 있는 무릉 2리 좌기동 마을의 돌담과 벛꽃
평지 교회가 있는 무릉 2리 좌기동 마을의 돌담과 벛꽃

성령은 진리의 영입니다. 믿는 자들과 함께 하시고 그 안에 내주하시는 분입니다. 영원토록 떠나지 않으시고 함께 하십니다. 그러나 죄를 범하면 근심하시고 슬퍼하십니다. “하나님의 성령을 근심하게 하지 말라 그 안에서 너희가 구원의 날까지 인치심을 받았느니라”(엡4:30).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시리라.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 같지 아니하니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26-27절).

성령을 보혜사라고 번역합니다. 그 뜻은 헬라어 ‘파라클레토스’ 즉 '성도의 곁에 와서 돕도록 부르심 받은 분'(The Helper)입니다. 그래서 성령을 받은 신자는 든든하고 평안을 누립니다. 이 주님이 주시는 평안은 세상이 주는 평안과 다릅니다. 세상이 주는 평안은 원천적으로 “힘과 소유”가 주는 평안입니다. 그러나 주님이 주시는 평안은 “하나님과의 사랑의 관계”에서 오는 평안입니다. 성령께서 내주하시고 함께 하심으로 주어진 '영원한 견고함에서 오는 평안'입니다. 다윗은 그 평안을 알고 누린 사람입니다.

“실로 내가 내 영혼으로 고요하고 평온하게 하기를 젖 뗀 아이가 그의 어머니 품에 있음 같게 하였나니 내 영혼이 젖 뗀 아이와 같도다”(시131:2). 대부분의 삶을 전쟁터에서 보내었던 사람인 다윗이 이러한 평안을 알고 누렸다는데 아이러니가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의 전쟁터와 같은 삶의 상황에서도 주님이 주시는 평안을 누릴 수 있습니다. 문제는 믿음입니다. 하나님과의 친밀한 관계입니다. 매일 주님 안에 거하는 것입니다.

주님은 오늘 본문에서 “내 안에 거하라”고 말씀하십니다. 포도나무와 가지의 비유를 들어서 반복해서 명령하십니다. “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아니하면 절로 열매를 맺을 수 없음 같이 너희가 내 안에 거하지 아니하면 그러하리라”(4절).

1-2절에서 예수님은 자신을 참 ‘포도나무’(vine)로, 아버지를 ‘농부’(vinedresser)로 비유하시면서 “무릇 내게 붙어 있어서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가지는 아버지께서 그것을 제거해 버리시고 무릇 열매를 맺는 가지는 더 열매를 맺게 하려 하여 그것을 깨끗하게 하신다”고 말씀하십니다.

열매란 무엇을 말할까? 깨끗하게 한다는 의미는 무엇일까? 열매는 포도나무의 열매이므로 포도나무되신 그리스도의 뜻을 이루는 삶일 것입니다. 즉 그리스도를 닮고 ‘가지에게 주어진’ 그의 뜻을 이루는 삶일 것입니다. ‘깨끗하게 한다’(prune)는 의미는 ‘전지한다, 손질한다, 가지치기 한다’는 뜻입니다. 즉 열매를 맺지 못하게 하는 가지에 붙어 있는 벌레나 더러운 것들을 제거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고난이 있습니다. 생각지 못하던 어려움이 있습니다. 주님께서 지금 나를 깨끗하게 하고 계신 것입니다.

올레길 10코스의 산방산이 보이는 사계 바닷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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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 그가 내 안에, 내가 그 안에 거하면 사람이 열매를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 사람이 내 안에 거하지 아니하면 가지처럼 밖에 버려져 마르나니 사람들이 그것을 모아다가 불에 던져 사르느니라.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 너희가 열매를 많이 맺으면 내 아버지께서 영광을 받으실 것이요 너희는 내 제자가 되리라”(5-8절).

나는 주님을 떠나서는 '아무 것도 아닙니다'(Nothing). 하는 모든 일들이 별 다른 의미가 없습니다. 그저 자기의 배 밖에 채우는 것 외에 아무 것도 아닙니다. 주님만이 인생의 의미이고 전부입니다. 이는 ‘영원의 관점에서’ 깊이 생각할 때 분명합니다. 주님께 영광을 돌리는 삶의 방식은 주님 안에 거하는 것입니다. 다른 길은 없습니다.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사랑하였으니 나의 사랑 안에 거하라 내가 아버지의 계명을 지켜 그의 사랑 안에 거하는 것 같이 너희도 내 계명을 지키면 내 사랑 안에 거하리라”(9-10절).

주님 안에 거하는 삶! 주님의 사랑 안에 거하는 삶은 주님의 계명을 지키는 삶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아버지의 계명(명령)을 지키며 사셨고 마지막 명령인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내가 예수님을 사랑한다면 그의 말씀을 지킵니다(14:23). 주님의 계명은 “곧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는 말씀입니다(12절).

사람이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면 이보다 더 큰 사랑이 없는데, 주님은 나같은 죄인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셨습니다. 나를 종이라 부르지 않고 ‘친구’라 부르시며 나를 위해 십자가에 자신을 대속 제물로 내어 주셨습니다. 십자가의 사랑입니다. 나는 이 사랑을 배워야 합니다. 먼저 섬기는 교회에서부터 실천해야 합니다.

가족들에게, 형제들에게, 이웃에게 실천해야 합니다. 쉽지 않을 때도 있습니다. 이는 오랫동안 내 중심으로 살아왔기 때문일 것입니다. 사랑은 결코 쉽지 않은 일입니다. 주 안에 거해야 가능합니다.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이 계명을 붙들고 기도하며 남은 생애를 살기를 기도합니다. ‘교회’(언약 공동체의 지체들)를 위해 내 마음과 시간, 삶을 드리고, 불신 가족과 형제를 섬기며, 이웃을 섬겨야 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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