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세기 초현실주의 화가 안토니오 사우라의 <십자가책형>
  • 구원과 부활 없는 십자가, 예수 없는 인간의 고통을 상징
안토니오 사우라, <십자가책형>, 1979
안토니오 사우라, <십자가책형>, 1979

러시아군이 후퇴하며 지나간 자리. 우크라이나 거리에 버려진 죽은 자들에 대한 기사는 경악을 일으킵니다. 왜 그렇게 고통스럽게 죽여야만 했는지.  부모들에게 어린 생명의 죽음을 보도록 거리에 방치해두는 잔인함까지. 20세기 초현실주의 화가 안토니오 사우라. 그는 이미 인간의 잔혹함을 보았습니다. 9살의 눈으로 보았던 2차 세계대전. 전쟁 이후, 유럽의 거리를 배회하던 팔과 다리가 없는 남자들과 남편과 아빠를 잃은 여성과 아이들의 얼굴을 그는 보았습니다.

독학으로 그림을 시작한 사우라는인간의 잔혹함과 고통에 대해자신만의 방법으로 외치기로 합니다. 어린 시절, 아빠의 손을 잡고 갔던 미술관.그곳에서 봤던 디에고 벨라스케스의 <십자가에 못 박힘>을 떠올리며 사우라는 20세기의 십자가를 그려냅니다. 거친 붓자국으로 그린 십자가 위에 매달린 존재. 고통으로 뒤틀린 몸의 경련은 마치 "전기에 감전된 듯한 발작의 상태처럼" 그려져 있습니다. 십자가에 달린 이의 얼굴과 몸은 해체되고 재구성되어 고통으로 뒤틀린 상태를 드러냅니다. 그래서 작품을 보는 이는 십자가에 달린 이의 정체를 확신할 수 없습니다. 십자가 위에서 절규하는 그는 예수님일까요? 아니면 인간일까요?

디에고 벨라스케스, <십자가에 못 박힘>, 1632
디에고 벨라스케스, <십자가에 못 박힘>, 1632

사우라의 십자가는 보는 이에게 만약이란 질문을 건냅니다. 만약 십자가 그 위에 예수님이 없다면만약 십자가 위에 예수님이 아닌 인간이 매달려 있다면 십자가는 그저 고통과 잔혹함의 상징일 뿐입니다. 스스로를 구원할 수 없는 인간에게 십자가의 고통은 끝나지 않는 절규입니다. 사우라의 십자가는 예수님 없는 삶의 고통을 직시하게 합니다. 구원과 부활이 없는 십자가에는 인간의 잔혹함과 고통만이 남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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