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중식 목사의 세상을 이기는 건강한 교회 <5>

포항중앙침례교회 유년부 어린이들이 지난해 12월 성탄절 발표회에서 손을 흔들며 찬양을 하고 있다. 포항중앙침례교회 제공
포항중앙침례교회 유년부 어린이들이 지난해 12월 성탄절 발표회에서 손을 흔들며 찬양을 하고 있다. 포항중앙침례교회 제공

견고한 건물을 세우는 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이 있다면 그것은 기초다. 건물을 아무리 멋지게 올려도 기초가 부실하면 한순간에 무너진다. 그러므로 건물이 좀 늦게 올라가고 비용이 들더라도 기초를 튼튼히 하는데 들어가는 비용과 시간은 결코 낭비가 아니다.

그런데 우리가 자주 하는 실수는 기초를 견고히 하는 데는 별로 투자하지 않고 겉으로 드러나는 건물을 올리는 데 치중한다는 것이다. 문제는 교회도 비슷한 실수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교회를 지탱하는 핵심 기초이지만 우리가 간과하고 그다지 투자도 하지 않는 부분에 대해 생각해 본다.

교회를 지탱하는 많은 기초 가운데 가장 중요한 토대는 두 가지다. 첫째 한 사람의 구원을 분명하게 하는 것이다. 둘째 모든 지체가 교회 공동체에 연결되게 하는 것이다. 이 두 가지 중요성은 더 설명할 필요가 없을 정도다. 이 부분을 소홀히 하고서는 결코 건강한 교회를 세워갈 수 없다. 안타까운 것은 많은 교회가 지금도 이 부분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있다는 것이다.

한 사람의 구원을 분명하게 하고 모든 지체가 교회 공동체에 연결되게 하는 일은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반드시 이뤄내야 하는 작업이다. 그런데 교회에 출석하는 모든 사람의 구원을 분명히 하는 일이 쉬운 일은 아니다.

이 일이 쉽지 않은 여러 이유가 있는데 먼저는 교회의 분위기 때문이다. 많은 교회의 분위기가 한 사람의 구원에 관해 묻지 않을 뿐 아니라 물을 수도 없는 분위기로 흐르고 있다. 구원에 관해 물으면 이상하게 여기고 색안경을 끼고서 ‘혹시 구원파 아닌가’라는 시선으로 쳐다보는 사람이 있다.

또 구원을 받았는지 받지 않았는지는 사람이 알 수 없다는 생각과 자신이 지금 교회에 나오기 때문에 당연히 구원을 받았다고 생각해 구원에 관해 묻는 것을 매우 불쾌하게 여기는 사람들이 많다. 그래서 구원받음에 대해서는 묻지 않는 것이 거의 불문율처럼 돼 있다.

그런데 한번 생각해 보라. 한 사람의 영생과 영벌을 결정 짓는 너무나 중요한 구원에 대해. 이 땅에서 물어주는 곳이 있는가. 생각해 보라. 그런 곳이 있는지. 그곳이 학교인가, 직장인가, 아니면 병원인가. 세상 어디에도 구원받았는지를 물어주는 곳은 없다. 그런데 이 땅 어딘가에는 그 중요한 구원을 받음에 관해 묻는 곳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 그곳이 어디여야 하겠는가.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한 사람의 구원 얻음에 관해 물어줄 곳은 교회밖에 없다. 교회는 이것을 물어야 한다. 만약 교회가 이것을 묻지 않으면 정말 세상 어디에도 하나님이 그렇게 소중하게 생각하는 영혼 구원에 대해 말해줄 곳이 없어진다.

이처럼 교회는 태생적으로 세상을 구원하는 곳이기에 한 사람의 구원 얻음에 관해 묻는 곳이 돼야 한다. 만약 교회가 이것을 묻지 않고 또 물을 수 없는 분위기가 된다면 이것은 뭔가 잘못 가고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교회는 신자들의 공동체이다. 엄밀히 말하면 신자가 아닌 사람은 교회에 다녀도 교회의 지체가 아니라 구도자이다. 그리고 구도자를 포함한 불신자는 아무리 노력을 해도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할 수 없다. 그래서 신자인지 불신자인지를 구분하지 않게 되면 교회에 심각한 문제가 발생한다.

왜냐하면 신자라고 하면 거듭났으니까 잘 자라도록 도와야 하고 불신자라고 하면 새롭게 거듭나도록 도와야 한다. 이를 구분하지 않으면 거듭나지도 않은 불신자에게 성장하라고 할 수 있고 반대로 예수 안에서 거듭난 사람에게는 또 태어나라고 할 수가 있다.

성경은 교회가 하나 돼야 한다고 했을 때 하나 됨의 대상을 이렇게 말한다. “몸이 하나요 성령도 한 분이시니 이와 같이 너희가 부르심의 한 소망 안에서 부르심을 받았느니라 주도 한 분이시요 믿음도 하나요 세례도 하나요 하나님도 한 분이시니 곧 만유의 아버지시라 만유 위에 계시고 만유를 통일하시고 만유 가운데 계시도다.”(엡 4:4~6)

이 말씀은 우선 교회가 반드시 하나가 돼야 하는 당위성의 측면으로 볼 수 있다. 교회가 하나 돼야 하는 당위성은 교회의 모든 지체가 한 몸이고 또 모시고 있는 성령이 한 분이시고 각 사람이 가지고 있는 부르심의 소망이 같고, 주님이 같고 믿음이 같으며 받은 침례가 같고 하나님이 한 분이시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말씀을 다른 측면에서 보면 하나 돼야 하는 대상은 이 일곱 가지가 같은 사람이라야 한다는 말이다. 이 일곱 가지가 같은 사람이 어떤 사람일까. 그 사람은 틀림없이 예수님을 믿는 사람, 곧 구원받은 사람이다. 그리고 성경은 이 사람들에게 하나가 되라고 말씀한다.

이처럼 구원받음을 분명히 하지 않으면 그 사람이 하나 돼야 할 대상인지 복음을 전해야 할 대상인지를 구분할 수 없게 된다. 그렇게 하면 사역의 초점이 흐려지게 되고 결국 건강한 교회를 세울 수 없게 된다.

김중식 목사
김중식 목사

정리=백상현 기자 100sh@kmib.co.kr
[출처] - 국민일보 
[원본링크] - http://news.kmib.co.kr/article/view.asp?arcid=0924127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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