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7월말, 좋은 아빠가 되고싶은 아름다운 꿈을 이루려고 조국을 떠나 캐나다로 이주한 둘째네 집에 도착했습니다. 지난 한 해동안 아들, 며느리 둘 다 이곳 대학에 등록해서, 현지 교사자격증으로 바꾸기 위해, 딸 아이 셋을 키우며,  공부한다고 참 고생이 많았을 것입니다. 로마는 하루만에 이뤄지지 않은 것처럼 큰 계획은 하루만에  성취되지 않습니다! 하루만에 이루려고 설치면 "백일몽"이라는 빈정거림을 듣겠지요~~ 정작 좋은 아빠 되기 프로젝트를  선언하고, 캐나다로 이주한 것은 둘째 아들이지만, 살펴보니 정씨 집안의 흐름과 아주 무관하지는 않습니다.

아들의 할아버지이자 저의 아버지는, 물론 저희 두 아들로서는 본 적도 없습니다! 아니 제 아내도 마찬가지입니다. 제가 16실 때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세상을 떠났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제가 알고 들은 그분은 참 자상한 분이셨습니다. 1949년 3월 3일 제가 태어났을 때 첫 목욕도 그분이 시켰고, 매일밤 잠자리를 챙기고 돌본 이도 그분이셨다고 어머니가 증언했기 때문입니다. 칠 공주네 아들이라고 특별히 우대한 것은 아닙니다. 바로 위의 누님도 엄청 큰사랑을 받았습니다. 누나가 아직 초등학교에 입학도 하기 전에, 진주공항에서 비행기에 태워서 서울나들이를 시키기도 했다니까 알만합니다! 아들인 저는 20대 후반에 유학을 가면서 비행기를 처음 탔는데 말입니다. 그 누나가 나이 들어 첫 생리를 할 때, 어머니는 "가시나가 되라지게 어린나이에 ㅉㅉㅉ" 하고 야단을 치셨지만, 아버지는 딸에게 자상하게 이제 성숙한 여자됨을 일러 주시고, 생리대를 접는 법까지 가르쳐 주셨다니, 그  60년 대에 흔치 않은 아빠임에 틀림없습니다. 

이제 두 아들의 아빠인 제 이야기도 말해야 이 프로젝트의 깊이를 가늠할 수 있을 것입니다. 아들들이 자라서 대학생이 되었을 때, 주변의 많은 친구들이 아버지들로 인한 상처들을 밤새워 들으면서, 모든 가정이 우리 가정과 같지 않다는 것을 알고, 좋은 환경에서 자란 것을 깨닫게 되었답니다. 뒤에 첫째 아들은 결혼을 해서 어느날 무슨 일이 있었던 모양입니다. "좋은 부모 밑에 자란 당신이 어떻게 내 마음을 알아"라고 아내가 소리치니, 아들 왈 "그러면 좋은 부모 둔 것도 죄냐"고 얼버무렸다는 전설같은 일화도 있습니다. 아들들이 우리를 좋은 부모라고 말해줘서 한 편 고맙고 한 편 부끄럽습니다. 일찍 결혼해서 딸을 키우는 큰아들을 보면서 제가 아내에게 "저렇게 좋은 아빠는 처음본다"라고 말한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형보다 10년이나 늦게 결혼한 오늘의 주인공 둘째 아들이 딸을 낳아 키우는 것을 보면서 그냥 숨 넘어갈 뻔 했습니다! 서너살 된 딸이 얼마나 까칠한지 말릴 수가 없습니다. (그 딸이 까칠한 것은 아빠 닮았고, 아빠 까칠한 것은 제 엄마 닮았다는 말도 있습니다^^) 하여간 어릴 때 한 번 미국에 갔을 때에, 그 동네 교통법규 상 베이비시트에 앉히고 안전벨트를 해야 하는데 막무가내입니다. 그 상황을 말로 설명해서 수습하려는 딸아이의 아빠를 보는 순간, 자기 형도, 아빠인 나도 손들었습니다. 강제로 밸트를 매든, 말을 듣지 않으면 매라도 들고 싶은데, 일단은 양육의 권한은 자기 아빠 몫이니 바라볼 수 밖에 없었습니다. ㅠㅠ 그 아들이 좋은 아빠가 되겠다고 10년이나 다니던 직장에 사표를 내고, 태평양을 건너 이주를 했으니 누가 말릴 수 있겠습니까? 하늘의 크고 선한 손이 도우셔서 <좋은 아빠 프로젝트>가 이뤄지길 빌뿐입니다^^ 캐나다의 복이 되며, 나아가 열방의 복이 되는 아브라함의 믿음의 후손되길 기도할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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