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만난 가족 창45:16~47:31

요셉이 그의 수레를 갖추고 고센으로 올라가서 그의 아버지 이스라엘을 맞으며 그에게 보이고 그의 목을 어긋맞춰 안고 얼마 동안 울매(창46:29, 개역개정)
요셉이 자기 아버지 이스라엘을 맞으려고, 병거를 갖추어서 고센으로 갔다. 요셉이 아버지 이스라엘을 보고서, 목을 껴안고 한참 울다가는, 다시 꼭 껴안았다.(창46:29, 새번역)
드디어 요셉과 야곱이 감격스러운 상봉을 했습니다. 온 가족이 보는 앞에서 서로의 목을 안고서 목 놓아 울며 다시 만난 기쁨을 누렸습니다. 지켜보는 형들의 감정은 복잡했겠지만 야곱과 요셉에게는 이보다 더 감격스러운 일이 있을 수 없었죠. 요셉은 바로가 직업을 묻거든 애굽 사람이 주로 하는 농경이라 하지 말고 그들이 싫어하는 목축으로 대답하라고 알려주었죠. 애굽 사람들 틈에서 이방인으로 살아가는 고충을 잘 아는 요셉이었기에 최대한 그들의 경계심을 유발하지 않기 위한 사전 조치였습니다. 다행스럽게도 바로가 고센 지방에 터를 잡고 살도록 허락했고 자신의 가축을 돌보는 일도 맡겨준다고 약속했습니다. 토지 소유와 함께 관리가 되는 길까지 열어주었으니 사실상 애굽 백성으로 받아들인다는 의미로 보아도 좋을 겁니다.

바로가 야곱에게 묻되 네 나이가 얼마냐(창47:8, 개역개정)
바로가 야곱에게 말하였다. “어른께서는 연세가 어떻게 되시오?”(창47:8, 새번역)
이 구절을 보면서 가장 먼저 떠오른 장면은 얍복강에서 하나님이 야곱에게 “네 이름이 무엇이냐?”라고 물으신 때의 일이었습니다. 누군가에게 이름을 물었다면 그가 어떤 사람인지에 대한 질문이 포함되어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런 질문을 받으면 ‘나는 누구인가?’에 대해 고민하는 시간을 가질 수 있겠죠. 나이를 묻는 바로의 질문은 “너는 어떻게 살았지?”라는 질문으로 보아야 합니다. 그토록 사랑하는 아들을 다시 만나 애굽에서 새 삶을 시작하는 순간에 지나온 삶을 돌아보게 하는 질문을 받은 셈이죠. 야곱은 자신이 누구인지에 대해서 너무나 잘 알고 있었습니다. 다른 사람의 발목을 잡는 사람, 잔꾀와 속임수로 다른 이들의 앞길을 막으며 자기 길을 만들어가는 사람이었습니다. 자신에게 없는 것은 남을 속여 빼앗았고, 위기가 닥치면 도망가거나 선물 공세를 펼쳐 넘어가곤 했죠. 하나님이 이스라엘이라는 새로운 이름을 주시며 다른 삶을 살도록 권하셨음에도 야곱은 여전히 고단한 삶을 살았습니다. 바로에게 지나온 삶을 돌아보게 하는 질문을 받자 이렇게 대답했죠.

야곱이 바로에게 아뢰되 내 나그네 길의 세월이 백삼십 년이니이다 내 나이가 얼마 못 되니 우리 조상의 나그네 길의 연조에 미치지 못하나 험악한 세월을 보내었나이다 하고(창47:9, 개역개정)
야곱이 바로에게 대답하였다. “이 세상을 떠돌아다닌 햇수가 백 년 하고도 삼십 년입니다. 저의 조상들이 세상을 떠돌던 햇수에 비하면, 제가 누린 햇수는 얼마 되지 않지만, 험악한 세월을 보냈습니다.”(창47:9, 새번역)
야곱에게 삶은 참으로 험악했습니다. 누구보다 안정되고 행복한 삶을 원했지만 힘겨운 떠돌이 생활이 그에게 남은 전부였죠. 어째서 이토록 고단한 삶을 살아야 했던 걸까요? 야곱은 늘 욕망에 따라 살았습니다. 장자권을 차지하기 위해, 마음에 드는 여인과 결혼하기 위해, 재산을 늘려 독립하기 위해 발버둥 쳤고 이것이 가축을 몰고 다니며 계속 이동해야 하는 목축업과 맞물려 떠돌이 생활을 면치 못하게 했죠. 돌아보면 언제나 내 것이 아닌 것을 내 것으로 만들기 위해 분투한 삶이었습니다. 야곱은 이렇게 항변할지도 모릅니다. “내게 없는 것을 채우기 위해 열심히 노력했을 뿐인데, 왜 이렇게 힘든 삶을 살아야 하는 거야?”라고요. 야곱에게 다른 선택지는 정말 없었을까요?
요셉이 다른 선택지를 보여줍니다. 소유하기 위해 좌충우돌했던 야곱과 달리 포기하고 내려놓는 삶을 살았죠. 그는 언제나 빼앗기기만 했습니다. 어머니는 동생을 낳다가 세상을 떠났고 아버지 사랑은 시기심 많은 형들에게 빼앗겼습니다. 마땅히 물려받았어야 할아버지 재산과 가업은 노예생활로 바뀌었고, 성실하고 유능하게 일했음에도 성추행범 딱지와 함께 감옥에 갇혔죠. 없는 것을 채우기는커녕 있는 것마저 빼앗기는 삶이 요셉이었습니다. 이렇듯 야곱과 요셉은 다른 삶을 살았는데요, 바로와 함께 있는 야곱과 요셉을 보면 각자가 살아온 삶이 전혀 다른 결과를 가져왔음을 알 수 있습니다. 요셉은 모든 것을 가진 사람이 되었고 야곱은 험악한 삶의 끝자락에 도달해 있었죠.
두 인생의 차이는 하나님 섭리에 따른 것이었습니다. 하나님 보시기에 소유에 집착하기 좋아하는 야곱은 소유를 잃어야만 하나님 길을 걸을 수 있었습니다. 가족과 이별하고, 자유를 빼앗긴 채 묶인 삶을 살고, 아내를 잃고, 자식을 잃고, 조상들이 물려준 터전을 잃어야 하나님이 계획하신 자리에 설 수 있었죠. 반면 늘 잃기만 하던 요셉은 가짐으로써 하나님의 퍼즐을 완성할 수 있었습니다. 현재와 미래의 권력을 모두 소유했기 때문에 가족을 기근으로부터 지켜낼 수 있었고, 이를 바탕으로 미래 이스라엘 민족이 하나님의 구원 사역을 이루게 되었죠. 이렇듯 야곱과 요셉이 다른 삶과 다른 결과를 받아들었지만, 하나님 섭리에 따른 삶을 살았다는 점에서는 같았습니다. 하나님 섭리가 사람의 생각을 한참 뛰어넘음을 여기서도 확인할 수 있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