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시 만난 가족 창45:16~47:31
그러므로 요셉이 애굽의 모든 토지를 다 사서 바로에게 바치니 애굽의 모든 사람들이 기근에 시달려 각기 토지를 팔았음이라 땅이 바로의 소유가 되니라(창47:20, 개역개정)
요셉은 이집트에 있는 밭을 모두 사서, 바로의 것이 되게 하였다. 이집트 사람들은, 기근이 너무 심하므로, 견딜 수 없어서, 하나같이 그들이 가지고 있는 밭을 요셉에게 팔았다. 그래서 그 땅은 바로의 것이 되었다.(창47:20, 새번역)
바로의 후원과 요셉의 노력으로 야곱 가족은 애굽 정착에 성공했습니다. 기근에서 벗어나 안정적인 삶을 살 수 있게 되었으니 요셉으로서는 중요한 삶의 과제 하나를 해결한 셈이었죠. 하지만 기근은 아직 끝나지 않았고 총리로서 해야 할 업무는 시작이나 마찬가지였습니다. 흉년의 책임이 자신에게 있지 않았어도 최선을 다해 자신이 예언한 흉년을 극복하려 노력했죠. 요셉을 찾아와 양식을 사가던 애굽 백성들이 돈이 떨어지자 아예 자기 삶을 맡기기 시작했습니다. 농경 터전인 토지를 바로에게 바치고 소작농 혹은 주인 소유 땅에서 농사짓는 노예가 되기를 선택하게 되었죠. 요셉은 일사천리로 이 모든 일을 실행했습니다. 자기 땅을 지키고 싶은 사람이 있다고 해도 기근이 언제까지 계속될지 모르니 조금이라도 값이 남아있을 때 바로에게 바치기 위해 요셉을 찾아올 수밖에요. 애굽의 모든 토지가 바로 소유가 되어 재산과 권력이 최고로 올라갔고 요셉도 그만큼 강한 권력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목표를 이룬 요셉은 행복했을까요? 꼭 그렇지만도 않았습니다. 요셉은 기근을 이용해 바로의 재산을 늘려주었죠. 보디발의 노예로 살 때 자신을 통해 보디발이 부자가 된 상황과 동일했습니다. 총리 요셉은 어떤 면에서는 바로의 충직한 노예와 다름없었습니다. 바로가 없으면 자신도 없었고, 아무리 좋은 성과를 내어도 바로가 자신을 자유롭게 놓아줄 리 없었으니까요. 요셉은 무엇을 꿈꾸며 살았을까요? 이미 바로의 왕좌를 뺀 모든 것을 가진 요셉으로서는 더 이룰 목표가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남은 과제는 후손의 미래를 열어주는 것이었고 그것만이 후손들이 미래에 겪을 오랜 노예생활을 끝나게 할 수 있었습니다. 이후 요셉의 행보는 후손들이 애굽생활을 끝내고 가나안으로 돌아가게 하는 준비에 집중됩니다. 그것이 노예 생활을 마치고 자유인이 되는 길이고, 출애굽을 통해 죄의 노예가 된 인간이 구원을 얻어 약속의 땅으로 들어가는 과정이었죠.

내가 조상들과 함께 눕거든 너는 나를 애굽에서 메어다가 조상의 묘지에 장사하라 요셉이 이르되 내가 아버지의 말씀대로 행하리이다(창47:30, 개역개정)
내가 눈을 감고, 조상들에게로 돌아가면, 나를 이집트에서 옮겨서, 조상들께서 누우신 그 곳에 나를 묻어다오.” 요셉이 대답하였다. “아버지 말씀대로 하겠습니다.”(창47:30, 새번역)
성공적으로 애굽에 정착해 안정을 되찾은 후에 야곱이 요셉을 따로 불러 자신의 미래에 관한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애굽에 오기 전 하나님께서 야곱에게 나타나 다시 가나안으로 돌아가게 하시리라는 말씀을 주셨지만, 야곱은 살아서 가나안에 돌아가지 못함을 알고 있었습니다. 자신이 아닌 미래 후손이 가나안에 가게 될 것을 정확하게 알게 되었죠. 애굽이 아닌 가나안 조상 묘지에 장사하라는 말은 후손에게 주는 메시지이기도 했습니다. “너희들이 살 곳은 애굽이 아니라 조상이 살았던 가나안이니 언젠가 돌아갈 준비를 해야 해.”라고요. 야곱은 후손이 애굽 사람과 동화되어 눌러앉게 될까봐 걱정했지만 실제로는 그보다 훨씬 나빴습니다. 애굽 노예가 되어 총리가 되기 전 요셉과 똑같은 신세가 되어 미래가 없는 삶을 살아야 했으니까요. 다행히 이들에겐 하나님 약속이 있었습니다. 밧단아람으로 가는 야곱을 벧엘로 인도하셨던 하나님이 이스라엘 민족을 가나안으로 이끌어 주실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