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11.7(월) 다니엘 3장 1-18절 묵상과 적용^^ "내가 타협하고 있는 것은?"

  샬롬!^^ 주일은 잘 보내셨나요? 제주도의 가을 날씨는 맑고 억새가 만발합니다. 오늘도 주의 은혜아래 의와 평강과 희락을 누리고 나누기를 원합니다. 매일 주님의 말씀이 내 발의 등불이 되고 내 길의 빛이 되기만을 구하며 또 하루 믿음으로 시작합니다. 주께서 함께 하여 주소서! 매일 주님과 동행하며, 삶을 낭비하지 않고, 타협하지 않기를 기도합니다.

어제 묵상 본문을 강해한 설교를 <교회 홈피>에 올렸습니다. 어제 본문에서 느부갓네살의 꿈과 해석에서 "손대지 않은 돌"은, 신약에서 '건축자들의 모퉁이의 버린 돌로써 집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신' 그리스도를 의미합니다. 즉 그리스도의 나라(왕권)가 태산을 이루어 온 세계를 정복할 것을 보여주었습니다.

비록 바벨론(느부갓네살)과 메데-바사(고레스)와 그리스(알렉산더)와 로마(시이저 아우구스투스)가 차례대로 제국으로 세상을 지배하는 것 같지만, 결국 세상을 지배하고 다스리실 분은 영원하신 왕이신 그리스도와 하나님의 나라인 것을 보여주었습니다.

따라서 이번 주간도 나는 영원하신 왕이신 그리스도만을 섬기고 그 나라와 그 의만을 힘써 구하는 삶을 살겠습니다. 하나님은 그 때나 지금이나 동일하게 살아계시며 역사하시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새별 오름
새별 오름

새별 오름 정상에서 
  오늘 묵상 본문은 느부갓네살 왕이 자기의 황금 신상을 높이가 약 27미터, 너비가 약2.7미터로 만들고, 바벨론의 두라 평지에 세우고, 낙성식을 행하고, 각종 악기를 불어서, 모든 신하와 장관들과 관원들과 백성들을 그 앞에 절하게 하였습니다. 누구든지 그 앞에 절하고 엎드리지 않는 자는 맹렬히 타는 풀무불에 던져 넣는 무시 무시한 법을 선포하였습니다(1-7절). 느부갓네살은 앞선 2장에서 다니엘의 꿈의 해석을 이런식으로 적용한 것으로 보입니다(2:38).

'하나님을 대적하는' 이 세상 권력과 이 세상은 항상 '하나님의 나라와 그 의'를 거스릅니다. 과거에도 '코로나를 이유로' 교회의 예배를 제한하였고, 지금도 '차별금지법'을 만들어서 교회를 파괴하려는 기회를 엿보고 있습니다. 

느부갓네살 동상처럼 이미 북한에는 금수산궁전이란 곳에 큰 김일성 부자 동상을 만들어서 모든 백성들을 절하게 만들었습니다. 독재자들은 언제나 자기 우상을 만들어서 자기를 숭배하게 하는 일을 합니다. 그렇다면 오늘날 민주주의와 자본주의 우상은 무엇일까? 요한계시록을 참고하면 <인본주의 우상>과 <물질 우상>이 거의 분명해 보입니다(계`13:18 지혜가 여기 있으니 총명한 자는 그 짐승의 수를 세어보라 그것은 '사람의 수'니 그의 수는 육백 육십 육이니라).  그 때 어떤 갈대아의 사람들(바벨론 제국 신민들)이 그 황금 우상 앞에 절하고 엎드리지 않은 유다 사람들을 왕 앞에 참소하였습니다. 그들은 바로 다니엘의 세 친구인 사드락(하나냐), 메삭(미사엘), 아벳느고(아사랴)였습니다. 이에 왕은 그들에게 분노합니다.

그는 왜 분노할까? '자기 우상'을 섬기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무시 당하였다고 느꼈을 것입니다. 그러면서 '이 황금 신상을 섬기지 않으면 풀무불에 던져 넣는다'고 협박하며 "너희를 내 손에서 건져낼 신이 누구이겠느냐?"(15절)고 말합니다.

오늘 내가 누군가로 인해 화가 날 때 그 이유는 무엇인가? 그가 하나님을 섬기지 않았기 때문인가? 나를 무시해서 인가? 나는 아직도 내가 무시당할 때 화가 나는가? 
 

올레길 7코스에서 바라본 푸른 바다
올레길 7코스에서 바라본 푸른 바다

  느부갓네살은 얼마 전에 한 꿈을 꾸고 번민하며 잠을 이루지 못하였습니다. 아이러니하게도 '꿈 하나로 인해 번민하고 잠못 이루는 연약한 인생'이 자기를 황금 우상신으로 만들어 놓고 모든 사람들로 절하게 한 것입니다. 하지만 다니엘의 꿈과 해석을 통해 그 문제가 해결되었을 때 그는 다니엘과 다니엘의 신에게 엎드려 절하였었습니다(2:46).

그러나 세월이 지나자, 그 일을 까맣게 잊고, 이제 또 다시 옛날의 모습으로 돌아간 것입니다. 이것이 연약한 인생입니다. 은혜를 받고, 그리스도께 놀라운 고백을 했다가도 곧 마귀의 시험에 들고 넘어지는 것이 연약한 우리입니다(마16장 베드로).

그러나 다니엘의 세 친구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는 타협하지 않았습니다. 그 믿음과 고백에서 한치도 물러서지 않았습니다. "왕이여, 우리가 섬기는 하나님이 맹렬히 타는 풀무불에서 건져내실 것입니다. 그러나 그리하지 아니하실지라도 우리는 왕의 신들을 섬기지도 절하지도 않을 것입니다!"(17-18절).

참된 신앙은 타협하지 않습니다. 이는 그가 살아계신 하나님을 '알기' 때문이며, '신뢰'하기 때문입니다. 오늘 내가 서 있는 삶의 자리에서 타협하고 뒤로 물러난다면 나는 과연 참 신앙을 가지고 있는지 점검해 보아야 합니다. 나는 뒤로 물러가지 않겠습니다. 진리의 말씀에서 타협하지 않겠습니다. 주여, 우리를 지켜 주소서! 

"우리는 뒤로 물러가 멸망할 자가 아니요 오직 영혼을 구원함에 이르는 믿음을 가진 자니라"(히10:39). 아멘, 아멘.

www.제주평지교회.com 삶을 변화시키는 성경 묵상 

토요일 J.C 캠프 아이들과 함께 오른 새별 오름
토요일 J.C 캠프 아이들과 함께 오른 새별 오름

지난 토요일 J.C 토요 캠프 아이들과 새별 오름을 올랐다. 끝나고 어묵과 붕어빵을 83개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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