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사람은 성경 인물 중 요셉을 좋아한다. 요셉이 형통한 자이었기 때문이지 않을까 생각한다. 요셉과 관련해서 '형통'이라는 단어가 3번씩이나 등장한다. 창세기 39장은 형통을 시작해서 형통으로 마무리된다. 요셉의 형통은 하나님이 요셉을 범사에 형통케 하셨을 뿐만 아니라 사람들도 요셉이 범사에 형통한 것을 보았다는 것이다. 

하지만 요셉의 이야기를 보면 형통한 사람이라고 말하기 어렵다. 세상 적인 눈으로 볼 때는 상처 많은 사람이었고 형통과는 거리가 먼 사람이었다. 요셉이 태어나 보니 아버지는 거짓말과 아버지와 형을 속인 사람이었고 욕심이 많은 야곱이었다. 어머니는 레아, 라헬, 실바, 빌하  4명이나 되었고 친어머니인 라헬은 동생이 태어날 때 일찍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요셉은 어릴 때부터 배다른 어머니 틈 속에서 찬밥신세로 성장했다.

요셉은 배다른 형들이 10명이었고 우애 있는 관계가 아니었고 친절하고 사랑스러운 모습과 거리가 멀었다. 요셉을 미워했으며 죽이려고 했다. 결국 형들은 동생을 돈을 받고 다른 날에 노예로 팔아넘기는 일을 범하고 말았다.

이런 가정에서 자란 요셉은 얼마나 상처가 컸을까. 정상적으로 건강하게 자라가기란 쉽지  않는 모습이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요셉은 형통한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그때 요셉의 나이가 17세로서 청소년 시기이기에 방황하고 인생을 포기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요셉은 10년 이상을 노예로 살아 인정받는 듯했으나 여주인의 유혹으로 오해받아 죄수의  신분으로 다른 나라 감옥에 갇히게 된다. 얼마나 억울하고 속상할까. 믿음과 신앙을 지키고 순결을 지키고 옷까지 벗고 도망갔으면 하나님께서 은혜 주셔서 보상을 주셔야 하는데 돌아오는 것은 감옥이었다. 

이 정도 되면 정신 이상해지거나 하나님께 원망과 불평을 털어놓으며 밤새도록 욕하고 하소연하며 하나님을 배신하고 극단적인 선택을 할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요셉은  어디를 봐도 그늘진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도리어 어디서 무엇을 해도 크고 작은 일과는 관계없이 남이 알아주든 안 알아주든 상관없이 맡겨진 일에는 최선을 다한다. 무슨 일을 해도 게으르거나 대충하지 않는다.

요셉에게 따라붙는 수식어가 있는데 그것은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것이다. 형통은 내 마음과 꿈대로 이루어지고 아무런 문제나 고통이 없는 삶이 아니다. 어디서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이 함께하면 형통한 삶이다. 하나님과 교재하고 동행하는 삶, 하나님을 떠나지 않고 붙잡고   사는 삶이다. 요셉이 고난과 유혹 가운데서도 이길 수 있는 힘은 하나님이 함께 하셨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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