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류의 뿌리를 묻는 이이남 작가의 <각 사람에게 비추는 빛> 전시
  • 제2의 백남준으로 불리는 미디어아티스트의 거룩한 고백
  • 광주미디어아트플랫폼에서 4월 30일까지
<뿌리들의 일어섬> , 2022
<뿌리들의 일어섬> , 2022

“나는 누구인가? 나는 죽으면 어디로 가는가?” 인간의 오래된 질문에 대해 미디어 아티스트는 어떤 작품으로 답했을까요? 광주미디어아트플랫폼에서 열리는 이이남 작가의 <각 사람에게 비추는 빛>전시는 인류의 뿌리를 찾아 떠나는 여정에 관객을 초대합니다.

전시장의 문을 열면 관객은 조명 아래 놓인 <책읽는 소녀상>을 만납니다. 80년대의 국민학교(초등학교)에서 발견할 법한 소녀상의 그림자 속에서 꿈틀거리는 글자 이미지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이이남 작가는 자신의 5학년의 기억으로부터 인류의 뿌리를 찾아갑니다.

<80년 5월 18일 날씨 맑음>, 2022
<80년 5월 18일 날씨 맑음>, 2022

작가의 어린 시절이 담긴 드로잉 영상 옆에는 고개를 숙여야 들어갈 수 있는 작은 입구의 전시 공간이 마련되어 있습니다. 일렁이는 물결 위를 걸어 촛불 영상의 고요함을 감상한 후에 만나는 작품 <80년 5월 18일 날씨맑음>입니다.

화려한 조명 아래 횃불을 든 소년상과 오와 열을 맞춘 40개의 선풍기들이 대치하듯 마주 서 있습니다. 이이남 작가의 5학년 운동회의 추억은 시각적인 은유를 입고 80년 광주의 기억으로 확장됩니다.

<볏단에 숨은 아이> , 2022 (사진 출처: 광주미디어아트플랫폼)
<볏단에 숨은 아이> , 2022 (사진 출처: 광주미디어아트플랫폼)

2층 <볏단에 숨은 소년 시절> 전시실에 들어서면, 관객과 이야기로 소통하는 이이남 작가의 작품들을 만날 수 있습니다. 어머니의 자장가와 도시락, 들의 볏단에 숨어있던 추억, 아버지의 호주머니에서 동전을 훔쳤던 경험 등 작품에 담긴 작가의 소소한 어린 시절의 기억은 관객에게 그 시절의 정감어린 감성을 일으킵니다. 이러한 작품들은 차가운 모니터를 훌쩍 넘어 작가의 따뜻한 이야기 속으로 빠져들게 합니다.

<달력의 그림자>, 2022
<달력의 그림자>, 2022

“알듯 모를듯한 미술이 아니라

관객이 보고 생각해 볼 수 있는 작품을 하고 싶습니다.”

이이남 작가

관객과 다양하게 소통하기를 바라는 그의 바람은 매체의 확장으로 이어졌습니다. 이번 전시는 미디어아트와 입체적 조각의 연결로 꿈과 현실, 환상과 실제, 미디어 안과 밖을 넘나들며 관객의 상상력을 풍성하게 자극합니다.

<책 읽어주는 소녀> 에서 이이남 작가의 시그니처와 같은 과거, 현재, 미래가 담긴 미디어아트 작품을 대형 사이즈로 감상할 수 있습니다. 세 개의 대형 모니터와 책읽는 소녀상을 바라보며, 관객은 작은 나무 의자에 앉아 소녀의 낭독회에 참여합니다.

<책 읽어주는 소녀>, 2022
<책 읽어주는 소녀>, 2022

“꿈에서 본 것은 우리 마을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고...

뻐꾹뻐국 새소리가 들리고 시원한 물소리가 점점 들려왔어요.”

<책 읽어주는 소녀> 중에서

책읽는 소녀는 꿈에서 보았던 장면을 동화책처럼 낭독합니다. 태초의 인간부터 욕망의 바벨탑, 불의 심판까지 이어지는 이야기 안에는 성경의 사건들이 녹아있습니다. 하늘에서 폭탄이 떨어지며 산과 마을이 불타는 이미지와 더해진 커다란 폭격 소리는 인류의 멸망을 체험하는 듯한 몰입감을 안겨줍니다.

이번 전시의 클라이막스라고 할 수 있는 3층의 전시 <산수, 뿌리들의 일어섬> 은 인류의 뿌리에 대한 작가의 깊은 고민을 담고 있습니다. 거대한 파도와 쏟아지는 별의 압도적인 이미지와 귓가를 웅장하게 채우는 ‘가브리엘의 오버에’ 음악이 울려퍼지면 장엄함은 절정에 이릅니다.

<뿌리들의 일어섬>의 조각상,  2022
<뿌리들의 일어섬>의 조각상, 2022

압도적인 빛의 이미지와 사운드가 선사하는 감동은 무대 중앙의 조각상과 연결되어 종교적인 숭고함으로 관객을 이끌어 갑니다. 십자가에서 내려진 예수를 안고 있는 한 남자, 그리고 이들을 둘러싼 두 사람을 조각한 미켈란젤로의 <반디니 피에타> 은 이이남 작가의 시선으로 재해석됩니다.

전시장 안의 두 조각은 같은 작품입니다. 한 가지 다른 점은 앞에 놓인 조각상의 예수는 그를 안고 있던 남자의 품을 벗어나 공중으로 들어올려져 있다는 것입니다. 십자가에서 내려져 슬퍼하는 인간의 품에 안겨 있는 예수. 죽음의 품을 떠나 하늘로 올려진 예수. 이러한 연출로 이이남 작가는 관객에게 묵상의 공간을 열어두었습니다.

파도와 별의 웅장함, 역동적인 빛의 환호 그리고 음악의 아름다움이 예수의 조각상을 둘러싸며 거룩한 아우라를 만들어냅니다. 인류의 시작과 끝을 물으며 시작되었던 전시는 빛을 만든 창조주를 향한 이이남 작가의 거룩한 고백이 되었습니다.

미디어아트와 입체적인 조각으로 인간과 창조주의 이야기를 담은 <각 사람에게 비추는 빛> 전시는 광주미디어아트플랫폼에서 4월 20일까지 진행됩니다.

<각 사람에게 비추는 빛> 전시 소개글 *
<각 사람에게 비추는 빛> 전시 소개글 *

*피에타란 이탈리아어로 연민 혹은 자비, 동정심을 뜻하는 용어로 십자가에서 내려진 그리스도를 성모 마리아가 안고 있는 모습을 표현한 그림이나 조각상을 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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