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독립운동가이자 감리교 목사인 손정도 목사의 신앙 여정

선교사이자 독립운동가로 산 그가 만난 인물들은 한국 독립운동사와 근대사의 주역들로 교과서에서 읽었던 인물들

해석 손정도 (海石 孫貞道, 1882~1931) @자료제공= 밀알북스
해석 손정도 (海石 孫貞道, 1882~1931) @자료제공= 밀알북스

출판사 서평에서

해석 손정도 (海石 孫貞道, 1882~1931)
상해 대한민국 임시의정원 의장을 지낸 손정도는 그 활동 반경이 실로 광대하였다. 국내에서는 출생지 강서에서 출발해서 평양, 서울을 거쳐‘ 가츠라암살음모사건’으로 1년 유배 생활을 했던 전라도 진도까지 2천 리 길이었다. 그는 예수를 믿고 부모와 고향에서 쫓겨난 이후‘27년 공생애’의 반 이상(15년)을 해외에서 살았다. 중국남방 상해에서 북경과 산해관을 거쳐 북방 길림과 하얼빈까지 1만 리 길이었다.그는 그렇게 광활한 지역을 누비면서 목사로만 산 것이 아니라 선교사로, 독립운동가로 살았다. 그 과정에서 그가 만난 사람들은 도산 안창호와 우남 이승만을 비롯해서 전덕기, 양기탁, 이동휘, 이시영, 이동녕, 안태국, 김규식, 여운형, 김구, 노백린, 신규식, 현순, 하란사, 김마리아, 김활란, 유관순 등 그야말로 한국 독립운동사와 근대사의 주역들로 교과서에서 읽었던 인물들이었다. 손정도만 그런 것이 아니었다. 가족의 투쟁 또한 눈물겨웠다. 삼일운동 때 평양에 있던 부인과 자녀들도 모두 만세시위에 가담했고 어머니(오신도)와 맏딸(손진실)와 함께 평양 애국부인회를 조직해서 활동하다가 옥고를
치렀다. 손정도의 두 아들(손원일과 손원태) 역시 일제말기 일본 경찰에 체포되어 옥고를 치렀다. 그리고 손정도는 북만주 길림에서 목회할 때‘ 숭실동문’ 김형직의 아들 김성주(김일성)를 친자식처럼 돌봐준 일이 있었다. 그 일로 김일성은 손정도를 “생명의 은인”이라고 칭송하였다. 그렇게 해서 손정도는 ‘남과 북에서 공히 존경하는 인물’이 되었다. 이처럼 손정도는 그 인맥과 활동이 백두산에서 한라산까지 한반도를 관통하고 있는 백두대간처럼 웅대하였다.

이덕주 지음 | 밀알북스 | 624쪽 | 2020년 08월 15일 출간 @자료제공= 밀알북스
이덕주 지음 | 밀알북스 | 624쪽 | 2020년 08월 15일 출간 @자료제공= 밀알북스

밀린 숙제, 20년 만에 끝내다

이덕주(감리교신학대학교 은퇴교수)교수는 머리글에서 손정도 목사에 대해 이렇게 밝혔다. "1999년 여름으로 기억된다. 동국대에서 한국사를 강의하던 김승일 교수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올가을에 손정도 목사님에 대한 한^중 국제학술 세미나가 열리게 되었는데 논문 한 편 발표하실 수 있겠습니까?” 손정도 목사가 감리교 목사였으니 감리교 역사학자가 논문을 쓰는 것이 좋을 듯싶다며 원고를 부탁했다. 그 전화 한 통으로 나의 ‘손정도 역정(歷程)’은 시작되었다.처음엔 “논문 한 편 발표할 기회가 왔구나.” 하고 쉽게 생각했다. 당시 손정도에 대한 내 지식수준은 아주 일천했다. 내가 몸담고 있던 감리교신학대학교 ‘대선배’로서 한국 감리교회의 ‘모교회’인 정동제일교회를 담임하다가 삼일운동 직전 중국으로 망명하여 상해 대한민국임시정부 의정원 의장을 지낸 독립운동가 정도로만 알고 있었다. 이미 연구된 결과물들도 여러 편 있어 쉽게 논문을 쓸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손정도에 대한 자료를 찾고 읽어가는 과정에서 내가 크게 착각하였음을 깨달았다. 단시간에 쉽게 접근할 분이 아니었다.

그렇게 교수 생활을 마치고 2017년 2월 정년 은퇴하였다. 학교 연구실을 비워주고 소중하다 생각되는 자료만 한 보따리 챙겨 들고 집으로 돌아오는 내 마음속에는 손정도라는 ‘밀린 숙제’도 함께 들어 있었다. 그러나 은퇴 후 곧바로 집필에 착수하지 못했다. 내 마음속 요구에 따라 은퇴 후 1년간은 의도적으로 ‘침묵과 은둔’의 시간을 가졌다. 가급적 바깥출입이나 사람 만나는 것을 피하고 나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을 가졌다. 그리고 ‘삼일운동 백 주년’을 맞은 2019년을 정말 바쁘게 지냈다. ‘삼일운동과 기독교’를 주제로 한 글도 많이 썼고 강연도 많이 했다. 그러면서도 “기독교에서 삼일운동 하면 손정도 목사님인데.” 하는 생각을 떨쳐버릴 수 없었다. 그렇게 ‘대목 만난’ 장사꾼처럼 분주했던 2019년이 끝날 즈음에야 비로소 여유가 생겼다.때에 맞추어 손정도의 독립운동에 관한 소중한 원문 자료들이 국사편찬위원회와 국가기록원, 독립기념관 인터넷 자료실을 통해 ‘쏟아져’ 나왔다. 내가 자료를 찾아다니는 것이 아니라 자료가 나를 찾아오는 격이었다. 더 이상 집필을 미룰 이유가 없었다. 그렇게 해서 2020년 1월부터 집필을 시작했다.나는 3개월만에 탈고한 원고를 제일 먼저 ‘손정도 목사의 장손’인 손명원 장로님(손원일 제독의 장남)께 보여드렸다.이 책을 읽는 사람들 가슴속에도 그런 꿈과 이상이 피어나 실현되었으면 좋겠다."

손정도 목사의 삶의 자리 @자료제공= 밀알북스
손정도 목사의 삶의 자리 @자료제공= 밀알북스

역사는 미래의 거울

추천사에서 손정도 목사의 장손이자 전 쌍용자동차 손명원 회장은 "손정도 목사님의 삶을 재조명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한 인간이 얼마간 살아 있었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고 그가 어떤 삶의 철학, 삶의 원칙을 마음에 간직하고 살았느냐가 중요하기 때문이다. 손정도 그 사람의 삶의 철학은 무엇이었나? 마음에 간직한 한 사람의 삶의 원칙을 어떻게 행동으로 옮겼는지가 중요하다. 이 책에서 밝혀지듯이 그의 첫째 삶의 철학은 하나님 사랑이 나라 사랑이고, 나라 사랑이 민족 사랑이었다. 둘째는 걸레 정신이다. 가족 대대로 지켜오던 유교 가정에서 기독교를 받아들이며 이 새로운 삶의 선택은 그의 삶의 철학을 바꾸어 놓았다. 이 ‘바뀜’이 오늘 이 글을 쓰게 된 이유가 아닐까 생각한다. 산다는 것은 배우는 것이다. 산다는 것은 사랑하는 것이다. 산다는 것은 일하는 것이라고 한다. 인생의 삶은 끊임없는 선택으로 배우고, 사랑하고, 숨지는 날까지 일하다 가는 것이 아닌가? 하나님을 배우고 가족과 민족을 사랑하였고 있는 것 모두 바쳐 하나님 이상촌을 짓다가 떠난 손정도 목사님, 나의 할아버지를 만나 눈물로 감사하고 싶다. 대한민국 국민으로 내일의 대한민국을 걱정하는 우리는 오늘의 대한민국이라는 국호가 어떻게 만들어 졌고 또 대한민국 정신의 뿌리, 대한민국 나라의 마음이 무엇으로 만들어졌는지 상해임시정부 창립 시 열띤 토의 끝에 우리의 뿌리가 어떻게 만들어졌는지를 볼 수 있게 이 책은 안내자 역할을 하고 있다."고 밝혔다.

앞으로도 계속 될 감동과 도전

손정도기념사업회 대표회장이자 감리회 27대 감독회장인 전용재 감독은 추천의 글에서 "내가 최근에 새롭게 만난 분이 손정도 목사님이다. 감리교회의 대표 자격으로 손정도 목사님의 추모일 등에 설교하러 가곤 하면서 손정도 목사님을 점점 더 알아가게 되었다. 막연히 감리교회의 선진으로서 동대문, 정동교회를 담임하셨고, 독립운동을 하셨으며, 아들이신 손원일 제독이 해군의 아버지이며, 군 선교를 시작하게 하신 분이란 정도로 알고 있었던 내게 그분에 대하여 알아갈수록 너무 많은 도전과 감동이 생기게 됐다. 결국 이런 일들이 쌓이면서, 손정도 기념 사업회의 대표회장까지 맡게 되었다. 유관순은 잘 알고 있지만, 그 유관순을 있게 해 준 신앙적, 정신적 스승으로서 손정도 목사님을 아는 이는 많지 않다. 임시 정부는 알고 있고, 김구 선생은 알고 있지만, 임시 정부의 실질적 시작의 지도자가 손정도 목사님이시고, 이승만 박사나 김구 선생 같은 분을 임시 정부에 모셔 온 분이 손정도 목사이심을 아는 이가 많지 않다. 대한 적십자사는 잘 알고 있는 것 같은데 그 운동을 시작하고 초대 총재를지낸 분이 손정도 목사님이신 줄 아는 이는 별로 없다.


그분의 손자이신 손명원 장로의 증언처럼, ‘걸레 정신’ 더럽혀지고 어지러울 때, 나타나 깨끗하게 치워주고, 소임을 다하면 한 모퉁이, 사람들이 잘 보지 못하는 곳에 가 있는 걸레 같은 정신을 갖고 살아오신 탓일 수도 있다. 그런데 사실은 우리의 무관심 탓이다. 역사를 통해서 교훈을 받고, 선진들의 위대한 희생정신, 나보다 나라를 더 위하고 공동체를 살리려고 하는 놀라운 헌신에 감사해 할 줄 모르는 우리의 이기적 자세 탓이다. 이런 분이야말로 오늘의 우리 정치 현실에, 우리의 종교 현장에 꼭 필요한 분일 것이다. 손정도 목사님을 아주 적절한 시기에 소환해 주신 이덕주 교수께 감사를 드린다. 책에서도 나오지만, 손정도 목사님은 김일성 주석과의 얽힌 지난날의 인연들로 인하여 북한에서는 민족의 위대한 독립운동가로 추앙받고 있다. 이런 이유가 오히려 우리에게는 불편하게 여겨져 이분을 추모하고 알아 가는 일을 등한히 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손정도 목사님을 알아 갈수록 그리스도의 사랑에 붙잡혀 나라를 살리고, 백성들이 평화롭고 평안하게 살게 하려는 그분의 사명감, 이를 이루기 위해서 당신 자신과 가정까지 희생하시면서 올 인하셨던 손 목사님으로부터 우리는 너무나 많은 도전과 교훈을 받게 된다."라고 밝혔다.

손정도 목사 @자료제공= 밀알북스
손정도 목사 @자료제공= 밀알북스

전 국사편찬위원장인 이만열 위원장은 "이 책은 학계는 물론 앞으로 남북관계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한다. 그런 의미에서 저자는 이 저술을 통해서 우리 민족이 짊어지고 있는 무거운 멍에도 의식하고 집필했을 것으로 안다. 손정도 목사님에 대한 특별한 사명감을 갖고 작업을 해 오셨구나 하는 점을 다시 확인할 수 있었다. 감사한 일이다. 학계에서 크게 경하해야 할업적이라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남북이 함께 기억하며 되새김질할만한 인물

한성대학교 윤경로 전 총장은 "작금 코로나19 광풍과 어두운 터널 안에 멈춘 남북관계를 바라보려니 숨이 막히고 답답하다. 이러한 때 남북이 함께 기억하며 되새김질할만한 인물, 손정도 목사 평전이 발간되니 여간 반가운 것이 아니다. 갈등과 반목과 대립의 어두운 형극의 시대를 겸손과 사랑과 헌신으로 밝힌 손목사의 생애는 어두운 터널 안의 남북인 모두에게 큰 울림으로 다가올 것이다."고 평했다.

나는 걸레의 삶을 살겠다

정동제일교회 담임목사인 송기성 목사는"정동교회 제 4대 담임목사로 부임하신 손정도 목사님께서는 복음에 대한 확신과 영혼구원에 대한 열정을 가지고 민족구원을 강조하며 교우들에게 독립정신을 심어주셨다. 당시 정동교회의 배재학당과 이화학당 교사들과 학생들은 훗날 3.1운동의 주역이되어 활약하였다. 그중의 대표적인 인물이 바로 유관순 열사이다. 손 목사님은“ 비단옷은 있으면 좋지만 없어도 그만이다. 그러나 걸레는 하루만 없어도 집안이 엉망이 된다. 나는 걸레의 삶을 살겠다.”며 기꺼이 자신의 모든 것을 하나님의 나라와 민족의 독립을 위해 헌신하셨다. 교회와 민족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신 손 목사님이 그립다."고 소감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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