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사태는 우리 민족의 설과 더불어 큰 명절인 추석 명절까지 움츠려들게 만들어 버렸습니다. 여느 해 같았으면 귀성 인파로 도로마다 몸살을 앓게 되겠지만 올해는 그런 현상이 현저하게 줄어들 것 같습니다.

고향을 찾을 수 없기에 그리움은 더한 것 같습니다. 무엇이 우리로 하여금 이토록 고향을 그리워하게 하는 것일까요? [유럽사상사]를 쓴 [볼케나우]의 글에서 우리는 그 답의 실마리를 찾아볼 수 있습니다. [볼케나우]는 죽음에 대한 문화를 크게 셋으로 구분했습니다. 첫째는 ‘죽음을 부정(death denial)’하는 문화입니다. 이집트의 문화가 그 대표적인 예인데 그들은 죽은 사람을 미라로 만들어 피라미드 속에 보관함으로 영생을 도모하려 했습니다. 죽음에 대한 기독교의 이해도 크게 보면 죽음을 부정하는 이 첫 번째 범주에 든다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두 번째는 ‘죽음을 수용(death acceptance)’하는 문화로서 죽음과 함께 모든 것이 끝나기에 주어진 생을 더 진지하게 살자는 것입니다. 고대 희랍 문명이 그 대표적인 예입니다. 세 번째는 ‘죽음을 이승과 저승을 연결(death relation)’하는 하나의 고리로 보는 문화입니다. 한국의 제사 문화가 바로 대표적인 예입니다. 제사를 지내는 집안의 경우, 후손들이 제사를 드릴 때 조상의 혼백이 찾아와서 제사상을 받는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제수용품을 마련하는 일부터 시작해서 제사 음식을 준비하고 상을 차리는 일까지 온갖 정성을 기울입니다. 전통적으로 내려오는 제사 예법에 어긋남이 없도록 각별히 신경을 쓰기도 합니다.

포항장성교회 박석진 담임목사
포항장성교회 박석진 담임목사

그러나 엄밀한 의미에서 제사는 죽은 자를 위한 것이 아니라 산 자를 위한 것입니다. 이미 고인이 되어버린 분을 생전에 제대로 모시지 못한 것에 대한 회한의 표현이기도 하려니와 내가 제사를 통해 고인을 기억하듯 나의 자녀들 또한 제사를 통해 나를 기억해 줄 것이라는 기대를 은연중에 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런 사실은 문화 인류학자, 마가렛 미드 여사를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녀가 한국의 제사 문화와 관련해 이런 말을 했습니다. “이 세상에서 한국 사람들처럼 죽어서도 오래 사는 사람은 없다. 한국인의 제사는 의례적(儀禮的) 생명보험이며, 죽어서까지 이렇게 삶을 보장받는다는 것은 죽음의 공포를 극소화시키는 현명한 방법이다. 그래서 한국인은 상대적으로 죽음을 덜 무서워하는 것 같다.” 미드 여사는 한국인들은 삶에 대한 애착 내지는 죽음이 가져다주는 단절과 잊혀짐에 대한 공포를 제사 문화를 통해 극복하고 승화시켜 내었다고 본 것입니다.

하지만 요즈음 제사에 대한 이런 인식들이 많이 바뀌고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하루 전부터 준비하던 제사상은 전문 맞춤집에 주문을 하는가 하면 차리는 음식도 현대 감각에 맞게 바뀌고 있는 추세입니다. 심지어 추석 연휴에 해외로 나들이를 가서 거기서 대충 제사를 드리는 사람들도 늘어나고 있습니다. 명절을 맞아 고향으로 내려가 일가 친족들과 마을을 지키고 있는 친구들을 만나보고, 조상들의 묘소를 찾아보고 혹 상한 부분이 있으면 다시 손을 보던 정겨운 풍습은 점점 퇴색되고 있음을 확연히 느낄 수 있습니다. 언제부턴가 고향에 계시는 부모님들이 서울에 살고 있는 자녀 손들을 만나러 상경하는 역귀성 현상도 점점 늘어나고 실정입니다.

결국 우리 민족이 목숨처럼 지켜왔던 제사 문화가 바뀌고 있음을 반증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차제에 이제는 우리 마음속 깊은 곳에 자리하고 있는 죽음에 대한 이해를 끄집어내어 다시 진지하게 정리해 볼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이와 더불어 예나 지금이나 복음 전파에 큰 장애로 자리하고 있는 제사 문제에 대해서도 진지한 고민을 곁들일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포항장성교회 전경
포항장성교회 전경

제사를 중시하는 유교는 모든 것의 바탕으로 예(禮)를 말합니다. 그렇다면 제사 역시 이 기본에서 벗어나서는 아니 될 것입니다. 부모님이 살아계시든 돌아가셨든 자녀들에게 가장 기대하는 것은 우애와 화목일 것입니다. 그렇다면 제사 또한 이를 해칠 우려가 있다면 무리하게 행해져도 아니 될 것입니다. 자녀 손들이 명절을 맞아 한 자리에 모여 부모님에 대한 좋은 기억들을 서로 나누고, 그 부모님의 바람대로 우애를 다지고자 서로가 해온 음식들을 한상에 둘러 앉아 나눌 수 있다면 이것이 진정한 의미의 예(禮)일 것입니다.

코로나19로 인해 비록 온 가족들이 한자리에 모이지 못했다 할지라도 부모님께 예를 다하고자 지혜를 모으는 자녀들이 되고, 부모들 역시 자녀들을 위해 마음에 묻어두었던 덕담을 들려주는 이번 추석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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