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장 What A Wonderful World

태초에

창1:1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창1:1, 개역개정)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셨다.(창1:1, 새번역)

참으로 대담하면서도 확고하고, 정확하면서도 위대한 창세기 1장의 첫 구절은 신앙이 있고 없고를 떠나서 누구나 쉽게 받아들일 수 있는 구절은 아닙니다. 조금 더 친절한 방식으로 쓰였다면 좋았을 수도 있겠지만 이 구절을 읽을 때면 성경이 이것을 논리적으로 입증하거나 감성적으로 설득할 마음이 조금도 없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성경은 그저 성경으로 존재할 뿐, 우리가 요구하는 대로 맞춰 쓰이지 않았기 때문이죠. 성경은 보통 하고자 하는 말을 먼저 하고 나서 우리가 받아들이기를 요구합니다. 이렇다 보니 이렇게 단호한 구절을 처음 읽는 사람으로서는 난처하기 이를 데 없습니다. 처음 교회에 나온 사람에게 ‘무조건 먼저 믿고 시작하자’라고 하면 새신자 본인이나 인도한 사람 모두 당혹스럽겠죠. 지금 창세기의 첫 구절이 딱 이런 태도입니다.

성경이 이렇게 말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두말할 것도 없이 이것이 사실이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사실에 대해 의문을 제기할 여지를 전혀 두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창조한 것은 말 그대로 창조한 것입니다. ‘어떤 방법으로, 왜, 언제, 어디까지를’과 같은 질문을 허용하지도 않고 대답할 마음도 없습니다. 때문에 독자의 입장에서는 두 가지 선택만 할 수 있습니다. 그냥 받아들이던지, 아니면 거부하는 것이죠. 사람에 따라서는 ‘좀 더 읽어보고 결정하겠어.’라는 유보적인 태도를 취할 수도 있겠지만 이것 역시 받아들이지 않은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흥미로운 점은 받아들이지 않은 사람을 설득하려는 의도로 쓰인 구절들이 이후에 나오지 않을 뿐 아니라 이 구절을 재확인해 주는 시도조차 보이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그러니 성경을 계속 읽으려면 싫든 좋든 1장 1절을 그저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것이죠.

만일 이 구절을 마음으로 받아들이고 인정할 수 있다면 성경 전체를 이해하는 것에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반대로 이 구절을 쉽게 받아들이지 못하면 성경을 이해하는 것이 꽤나 어려워질 것이라고 할 수도 있겠네요. 성경은 수많은 사건들과 인물들의 다양한 이야기로 가득 차 있습니다. 그것을 읽어 나가는 독자는 참으로 많은 생각들을 하게 되죠. 어떤 장면에선 감동을 받지만 바로 다음 장에 가서는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는 일들도 얼마든지 있습니다. 이런 모든 이야기들의 공통점이 하나 있다면 그것은 아마도 ‘모든 것이 하나님으로부터 나온 것’이라는 점일 겁니다. 이걸 인정하고 나면 이해되지 않던 것도 차츰 이해할 수 있게 되죠. ‘하나님이 하신 일이라면 여기에도 분명 하나님의 섭리가 있을 거야.’라고 생각하게 되면 어렵던 성경이 조금씩 풀리는 경험을 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성경을 이해하는 첫 걸음은 성경 속에 펼쳐지는 모든 이야기가 하나님의 주권 아래 있다는 것을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그러니 온 세계가 하나님의 피조물임을 선언하는 창세기 1장 1절이야말로 성경을 이해하는 만능열쇠가 아닐 수 없습니다.

제주/카멜리아힐
제주/카멜리아힐

많은 분들이 성경을 이해하기 위한 열쇠를 찾기 원하지만 이 열쇠가 사실 맨 처음 문장에서 이미 주어졌다는 사실은 쉽게 잊습니다. 사실 받아들이기 꽤나 어려운 구절이기도 하니까요. 태어나서 한 번도 만난 적이 없는, 심지어 2,000년 전에 태어난 한 사람이 나를 구원하기 위해 죽었다는 사실만큼이나 세상이 하나님으로부터 창조되었다는 것은 믿기 힘든 일입니다. 하지만 이것을 넘어갈 수만 있다면 신앙이라는 세계, 그리고 하나님의 주권과 통치라고 하는 크고 넓은 세계에 한 발을 내딛을 수 있게 됩니다. 미세먼지만큼의 작은 의심도 허용하지 않는 1장 1절의 단호한 선언 안에는 세상을 창조하신 분이 하나님이라는 단순 정보를 넘어서서 조물주와 피조물간의 확고한 선도 엿보입니다. 인간의 세계가 아무리 발전하고 사람의 지식과 지혜가 아무리 늘어난다고 해도 이 한 구절에 담긴 조물주와의 격차는 넘어갈 수 없다는 것이죠. 물론 이것이 하나님의 권위에 인간이 절대 복종하라는 위협을 하기 위해 주어진 구절은 절대 아닐 것입니다. 그보다는 인간이 하나님 앞에 겸손해야 할 것과, 하나님이 만드신 세상을 누리는 만큼의 책임을 느끼도록 하시려는 의도라고 생각합니다. 세상을 창조하신 하나님의 비밀을 깨닫는 것은 동시에 그 세계의 일부로서 주어지는 사람의 역할에 대해서도 책임을 가지는 것이니까요.

짧은 구절이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제법 많은 정보가 담겨있기도 합니다. ‘태초’라는 시간과 ‘천지’라는 공간적 대상, 그리고 ‘하나님’이라는 행위 주체와 ‘창조’라고 하는 구체적 행동이 보이거든요. 창세기에 등장하는 모든 구절을 이렇게 구체적이고도 세세하게 살필 수는 없겠지만 이 구절은 워낙에 중요하니 좀 더 자세히 볼 필요도 있을 것 같네요. 먼저 ‘태초’라는 단어부터 시작해 보죠. 누가 무엇을 했다고 하는 것에 ‘언제?’라는 물음표가 붙으면 대개 지금을 기준으로 과거 언제인가를 생각합니다. 하루 전, 일 년 전, 백 년 전, 일억 년 전 등으로 표현되는 시간 개념을 의미하게 되는 거죠. 다시 말해 인간의 시간은 언제나 오늘을 기준으로 이해됩니다. 과거는 오늘 이전의 시간이고 미래는 오늘 이후의 시간이니 항상 현재가 기준이 되죠. 그런데 창세기 1장 1절은 창조의 시점에 대해 지금부터 몇 년 전이라는 식으로 표현하지 않습니다. 태초, 그러니까 가장 과거의 시간을 기준으로 삼아 인간의 모든 역사와 지식은 태초 이후의 것들이며 모든 것이 하나님이 세상을 창조한 이후의 것이라고 선언합니다. 즉, 성경은 시간의 기준을 과거에 두고 오늘을 보고 있습니다. 어쩌면 이것이야말로 창세기 1장 1절이 드러내는 가장 중요한 하나님의 섭리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인간은 현재에서 과거를 보지만 하나님은 과거와 현재, 미래 모두에서 오늘을 본다는 것 말이죠.

우리는 모든 것을 우리 기준으로만 이해하려 합니다. 성경을 볼 때도 그래요. 지금의 지식과 지금의 생각으로 과거를 분석하고 이해하려들기 쉽습니다. 하지만 수천 년 전 혹은 언제인지도 알 수 없는 과거의 사건들을 오늘의 지식으로 이해하는 것이 정말 타당할까요? 하나님은 다른 방법을 우리에게 알려주고 계십니다. 과거 시점, 하나님께서 세상을 창조하시고 자신의 섭리를 드러내신 바로 그 시점에서 시작해 오늘을 통찰하자는 것이죠. 나를 지우고 하나님을 받아들인 후 그분의 말씀을 통해 다시 우리 자신을 성찰해야만 세상을 이해하고 진리를 깨달을 수 있다는 것을 창세기 1장 1절은 우리에게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이 구절을 받아들여야만 성경 전체를 이해할 수 있는 이유가 또 하나 늘었네요.

1장 1절에서 하나님이 가장 먼저 창조하신 것은 ‘천지’ 즉, 하늘과 땅입니다. 이 단어의 의미에 대해 좀 다르게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구체적인 하늘과 땅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세상 전체를 가리키는 상징적 표현이라는 것이죠. 하늘과 땅을 특정해서 말한 것인지 온 세상을 뭉뚱그려 설명한 것인지는 모르겠습니다만 굳이 하늘과 땅에만 한정지을 필요는 없을 겁니다. 그보다는 ‘태초’라는 시간과 함께 ‘천지’라는 공간도 만들어졌음을 의미한다고 보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이보다 궁금한 것은 천지가 창조되기 이전에는 도대체 무엇이 있었느냐는 질문입니다. 사실 창조 이전에 무엇이 있었는지에 대해서는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이 없습니다. 성경에 나오지 않기 때문이죠. 성경에 쓰여 있더라도 우리가 이해할 수 없었을 것 같기도 하네요. 인간이 천지창조 이후 만들어진 시공간에 갇혀 살고 있는 유한한 존재인 만큼 그것을 떠난 개념을 이해하는 것이 불가능할 테니까요. 성경에서 굳이 언급하지 않는 이유도 알려줘 봐야 우리가 이해할 수 없기 때문일 겁니다. 그렇다면 질문을 조금 바꿔 보죠. 하나님은 세상을 ‘왜’ 창조하셨을까요?

하나님은 실수가 없으십니다. 따라서 하나님이 창조하신 세계 또한 실패작일 수 없죠. 세상이 창조된 이유는 세상이 있어야만 했기 때문이라는 대답 외에는 달리 표현할 방법이 없습니다. 그럼 왜 세상이 있어야만 했을까요? 한두 가지로 정리하기 힘든 답입니다. 조금 크게 생각해본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생각과 계획에 세상이라는 존재가 포함되어 있기 때문일 것이며, 구체적으로는 성경의 나머지 구절들에서 보이는 모든 일들이 일어나는 무대로 하나님이 세상의 존재를 계획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성경의 나머지 전체를 위해 1장 1절의 창조가 있었던 것이라고 할 수 있겠죠.

창세기 1장 1절에 대해 생각하면 할수록 하나님의 영역과 인간의 지혜 사이의 간극을 더 크게 느끼게 됩니다. 아무리 깊이 생각해 보아도 알 수 없는 것들은 여전히 미궁 속이고 알 것 같은 것들도 희미해졌다 뚜렷해졌다가를 반복하니까요. 저 역시 그렇습니다. 하지만 그럴수록 우리는 분명한 사실, 확고부동한 증거에 근거해서 생각해야만 합니다. 이 모든 것은 이 세상이 존재하기도 전에 하나님께서 생각하고 계획하셨던 것입니다. 우리는 오로지 그분의 그림자 일부와 그분이 우리 눈높이에 맞춰 말씀해 주신 성경만이 있을 뿐입니다. 그러니 더욱 더 그 성경에만 의지해야 합니다. 성경이 찍은 마침표를 물음표로 바꾸지 말고 그대로 받아들여야만 하죠. 하나님이 하신 일을 그대로 인정하고 받아들일 때 하나님은 더 큰 비밀을 우리에게 알려주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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