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06년, 교황 율리우스 2세(Julius II)는 성 베드로 성당을 새로 짓는데 필요한 재정적인 충당을 위해 “면죄부” 발행을 공고하였습니다. 그 후 교황 레오 10세(Leo X)가 이 일을 계승하여 1515년 3월 31일, 독일 막데부르크(Magdeburg)와 마인츠(Mainz)에서 8년간 “면죄부” 판매를 허용함으로써 구체적인 시행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면죄부는 교황이 제시한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 모든 죄에 효력을 발휘했습니다. 수도사 서원을 제외한 거의 모든 서원은 이 면죄부를 사게 됨으로써 변경할 수 있었으며 정당하지 못한 상행위는 물론이고 간음과 같은 성적인 범죄에도 면죄는 유감없이 효력을 발휘했습니다. 강단에서는 이 면죄부의 정당성을 변호하기 위한 설교만 계속 되었고, 면죄부 판매를 방해하는 일은 그 어떤 경우에도 허용되지 않도록 법으로 규정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법을 어긴 자를 인간이 제정한 법으로 보호해주는 모순을 낳게 되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면죄부 판매 대금은 전액 성 베드로 성당 건축에 사용되도록 규정되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교황 레오 10세는 자신의 사치스런 삶을 유지하는데 거액을 유용함으로써 공금횡령죄까지 저질렀습니다. 막데부르그의 대주교였던 알브레흐트(Albrecht) 역시 면죄부 판매 수익금의 반만 로마로 보내고 나머지 반은 착복하여 집안의 빚을 갚는데 사용했습니다. 막대한 공금이 그렇게 사사로이 흘러가 버린 것입니다. 이런 불미스러운 일은 첫 단추가 잘못 끼어지면서부터 이미 예견된 귀결이었는지도 모릅니다.
마르틴 루터(M. Luther)는 이런 천인공노할 만행을 1517년 늦은 여름에야 알게 되었습니다. 이에 루터는 알브레흐트 대주교에게 면죄부 판매를 즉각 중단해 줄 것을 요구하는 장문의 편지를 썼습니다. 루터는 그 편지에서 그리스도는 면죄부 판매를 말씀하신 적이 없으시고, 오직 복음만을 전하라고 말씀하셨음을 분명히 밝혔습니다. 뿐만 아니라 면죄부를 구입하면 곧 바로 구원을 얻을 수 있는 것처럼 호도하는 행위가 불법이요, 비 성서적이라는 것임도 분명히 했습니다. 루터는 거기서 멈추지 않고 면죄부와 관련하여 95개 논제를 선정하여 비텐베르크 교회 출입문에 붙였습니다. 이 날이 바로 1517년 10월 31일이었습니다. 이런 루터의 행동은 면죄부에 대한 논쟁을 불러일으켰고, 적지 않은 사람들이 루터의 주장을 지지했습니다.
루터가 제시했던 95개 조항은 논제는 교회의 물줄기를 그 누구도 생각하지 못했던 방향으로 바꾸어 놓는 기폭제가 되었습니다. 503년 전, 루터가 어렵게 열었던 그 개혁의 물꼬를 이제는 이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들이 이어받아야 함을 절감합니다. 지난 1월 20일, 중국에서 입국한 35세 중국인 여성이 코로나19 감염 환자로 확인 된 이래 오늘(10월 28일)에 이르기까지 확진자가 26,146명에 이르렀고, 사망자도 461명이 되었습니다. 다행스럽게도 현재는 사회적 거리두기가 1단계 상태이지만 코로나19의 재확산 위험은 여전히 잠재되어 있고, 코로나 펜데믹 상황으로 인한 국가 간의 교류는 계속 봉쇄된 상태입니다. 학교는 학교대로 정상적인 수업이 오랫동안 이루어지 못했고, 교회들 역시 비대면 온라인 영상예배로 현장 예배를 대신하는 사상 초유의 사태를 경험해야만 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교회가 마치 코로나 확산의 온상인 것처럼 오도되어 질병관리 본부나 지자체에서는 교회를 향해 끊임없이 예배는 물론이고 모임 자체를 자제해달라고 요구했고, 성도들의 직장에서까지 공 예배 참석을 금하는 정말 어처구니없는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 게 현실입니다. 이런 현실에서 교회는 질병관리본부를 향해 역차별을 중단하라고 요구하며 사회나 지역민들을 향해서는 억울함을 호소하는 것으로 우리가 할 수 있는 대처는 다했다 말해서는 아니 될 것입니다.
일이 복잡해지다 못해 난관에 부딪혀 한 발자국도 나갈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을 때, 우리가 곧잘 듣게 되는 말이 바로 “귀어초심(歸於初心)”, “초심으로 돌아가라.”는 말입니다. 지금 한국교회에 필요한 말도 이 말이 아닐까 여겨집니다. 1884년 언더우드(H. G. Underwood) 선교사가 내한한 이래 전파되기 시작한 복음은 일제 강점기의 극한 상황에서도 2%의 복음화 율을 이루었고, 그 2%는 암울하기 그지없는 조선 땅에 빛과 소금의 역할을 감당해 내었습니다. 선교사들이 어눌한 한국어로 전하는 복음에 대해서도 민감하게 반응했고, 국가적으로는 정말 무엇 하나 보이지 않는 칠흑 같은 시기였던 1903년에 원산에서 시작된 부흥 운동은 1907년 평양에 이르러 그 절정을 이루며 조선 땅이 성령의 불가마가 되어 들끓게 만들었습니다. 대 부흥운동의 특징은 성경을 공부하는 사경회 운동으로 전개되었다는 것과 성령님의 역사로 인한 철저한 회개 운동이 뒤따랐다는 것입니다. 그야말로 영적 갱신뿐만이 아니라 도덕적 갱신까지 이루어짐으로 진정한 의미의 중생(born again)이 이루어지게 된 것입니다. 그 단적인 증거가 부흥 운동의 주역들이 이어 1919년에 있었던 삼일 만세 운동의 주역이 되었던 것을 들 수 있을 것입니다.
이랬던 한국교회가 언제부턴가 ‘우리들만의 리그’로 세상과 유리된 모습이 되고 말았습니다. 이에 실망한 교인들 중에, 특히 3040 세대들 중에는 스스로 ‘가나안 교인’이 되기를 선택함으로 거대한 공룡 교회를 향해 소심한 반항을 시작하고 있습니다.
이제 한국교회는 ‘모이는 교회’의 환상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세계 10대 교회 중에 몇 개가 한국에 있다는 식의 숫자놀음, 외형 과시를 중단하고 ‘흩어지는 교회’, ‘세상 안에서 살아 움직이는 교회’를 꿈꿔야 할 것입니다. 인류가 흩어짐을 면하고자 바벨탑을 쌓으려 했을 때 그들의 마음속에는 필연적으로 하나님의 영광이 아닌 자신의 이름을 내고자 하는 욕심이 꿈틀대기 시작했던 것을 기억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런 인간들까지도 사랑하셔서 흩어버리심으로 스스로 멸망을 자초하지 않게 섭리해 주셨습니다. 이렇게 본다면 작금의 코로나 사태는 이 시대 교회를 향하신 하나님의 또 다른 사랑 표현임을 깨닫게 됩니다.
주일은 성일(聖日)이었지만 평일은 죄일(罪日)일 수밖에 없었던 우리들에게 이제는 주일마저 성일로 지킬 수 없는 상황이 도래하도록 허용하신 하나님의 뜻이 어디에 있을까 조용히 묵상하노라면 오히려 평일을 성일로 만들어 내라는 강력한 메시지가 들려옴을 깨닫게 됩니다. 일주일 168시간 가운데 한 시간을 하나님께 드리는 것으로 내 소임을 다했던 생각했던 우리들에게 하나님께서는 오히려 나머지 167시간을 원한다고 말씀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이 하나님의 요구 앞에 이제 한국교회가, 또 성도들이 대답을 해야 할 때가 온 것 같습니다.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열심 때문에 더 이상 대답을 지연시킬 수도 없을 것 같다는 긴장감마저 느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