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데이N에서는 지난 회차 연재에 이어 종교개혁자 루터가 지녔던 사상과 신학 시대 배경을 신학자인 안동성결교회 이규철 목사를 통해 조금 더 자세하게 들어보고자 한다.

I 루터 종교개혁 3대논문 통해 교황의 허위와 사제들의 특권 지적
I 하나님의 말씀이 교회의 본질, 크리스천의 자유는 믿음으로 율법에서 도달할 수 없는 자유를 얻는다

95개조 반박문을 붙인 마르틴 루터 (출처:네이버블로그)
95개조 반박문을 붙인 마르틴 루터 (출처:네이버블로그)

Q. 루터가 종교개혁을 진행하며 당시 사회에 던진 이슈와 화두는 무엇이었는지 소개해 달라

루터 종교개혁의 신앙적 또는 사상적 그리고 신학적 핵심 이슈와 화두는 1520년 루터가 발표한 그의 3편의 논문에 응집되어 있다고 볼 수 있다.

첫째, ​“독일 크리스천 귀족에게 보내는 글”이다.
이 논문은 다른 논문들과 비교했을 때 로마가톨릭에 대해 가장 공격적이고 로마 교황에 대해​ 가장 비판적인 글이다. 이 논문에서 루터는 로마가톨릭이 ‘세속적 계급 위에 있는 영적 계급(성속의 구분)의 담, 성서해석자인 교황과 교황무오설(성서해석 독점)의 담, 교황과 공의회(교황은 처벌받지 않음)의 담’을 쌓아 놓고 그 뒤에서 이제까지 자신들을 방어해가며 부패했다고 교황의 허위와 사제들의 특권을 신랄하게 비판했다. 더욱이 루터는 교황이나 사제들이 평신도보다 거룩하거나 뛰어난 존재가 결코 아니라고 역설했습니다. 루터에 의하면, 모든 크리스천은 참으로 ‘영적 계급’에 속하며 그들 가운데는 직무상의 차별 이외에 아무것도 없다. 이를테면 “구두 수선공, 대장장이, 농부는 각기 자기들의 일과 직무를 맡고 있으면서도 그들은 다 성별(聖別)받은 사제와 주교와 같다”고 주장했다. 루터의 이런 사상을 ‘만인 사제설’이라고 부른다.  

둘째, “교회의 바벨론 포로”이다.
15​20년 10월 발표된 루터의 “교회의 바벨론 포로”는 성례전에 관한 논문이다. 루터에 따르면, “설교가 들려지는 말씀이라면, 성례전은 보여 지는 말씀”이다. 로마가톨릭은 과거에도 그랬고 지금도 들려지는 말씀보다 보여 지는 말씀인 성례전을 매우 중요하게 생각한다. 허나 루터는 성례전보다 본질적으로 중요한 건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생각한다. 루터는 “하나님의 말씀이 있는 그곳에 교회가 있다”라고 주장하며, 하나님의 말씀이 교회의 본질임을 강조했다. 루터는 로마가톨릭의 7성례 중에 ‘성찬’과 ‘세례’는 예수님께서 제정하셨기에 남겨두고 나머지는 폐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특히 루터는 성찬식에서 잔을 주지 않고 떡만 주는 것(라테란 회의 결의사항)이 비성경적이라고 이야기하며 ‘얀 후스’를 언급한다. 체코의 종교개혁자 얀 후스는 성도들과 떡뿐만 아니라 잔을 나누며 성찬식을 하다가 화형을 당하였기 때문이다.  흔히 종교개혁이 루터에 의해서 시작되었기에 그 이전에는 종교개혁자가 없었던 것처럼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루터 이전에 ‘존 위클리프’와 ‘얀 후스’같은 선구적 종교개혁자들이 존재했다. 영국의 존 위클리프는 성경을 영어로 번역하였고, 얀 후스는 위클리프의 영향을 받아 성경을 자국어인 체코어로 번역하였고, 루터는 얀후스의 영향을 받아 성경을 자국어인 독일어로 번역하였다. 이런 맥락에서  루터는 자신이 ‘존 위클리프’와 ‘얀 후스’의 사상적 후예라고 자랑스럽게 이야기했다. 

셋째, “크리스천의 자유”(The Freedom of a Christian)이다.
“크리스천은 본질적으로 자유인 이면서 또한 봉사자다. 크리스천은 더할 수 없이 자유로운 만물의 주이며 아무에게도 예속하지 않는다. 크리스천은 더할 수 없이 충의(忠義)로운 만물의 종이며 모든 사람에게 예속한다.” 1520년 11월 발표된 루터의 “크리스천의 자유”는 자유에 대한 교범이다. 크리스천은 ‘매우 자유로운 존재이지만 매우 부자유한 존재’라는 루터의 명제는 크리스천 뿐 아니라 세상 사람들의 영혼까지 일깨웠다. 언뜻 보면 모순 같은 이야기이지만 성서적 진리이다. 크리스천은 예수님을 믿음으로써 율법에서 도달할 수 없는 자유를 얻는다. 그런데 그 자유로 이웃을 적극적으로 사랑하기 때문에 종이 된다. 성도는 신앙으로 그리스도 안에서 살며 사랑으로 그의 이웃 안에서 산다. 신앙에 의하여 성도는 그 자신 이상(以上)으로 하나님께 올려진다. 사랑에 의하여 성도는 그 자신 이하(以下)로 이웃에게 내려간다.  이는 성경이 말씀하는 바 그대로이다. “형제들아 너희가 자유를 위하여 부르심을 입었으나 그러나 그 자유로 육체의 기회를 삼지 말고 오직 사랑으로 서로 종노릇하라”(갈 5: 13) 결국 루터는 “크리스천은 믿음 때문에 주인이고, 사랑 때문에 종이 된다”고 선언한다. 루터는 “크리스천은 죄에서 해방되어 이웃을 적극적으로 사랑하는 삶을 살게 될 때 참으로 해방 된다”고 역설했다. 오늘날 자유를 논하는 자들은 자유에 대한 루터의 외침을 외면하지 말아야 한다. 

루터박물관에 전시중인 루터의 3대논문 중 하나인
루터박물관에 전시중인 루터의 3대논문 중 하나인 "그리스도인의 자유에 대하여" (출처:네이버블로그)

I 루터 시편 46편 묵상 중 찬송 작사 작곡해
I 십자가의 신학자 루터 , 왼편 강도의 신학에서 오른편 강도의 고백으로 초점 옮겨

Q. 루터가 종교개혁을 진행함에 있어 찬송가를 부르면서 많은 힘을 얻었다고 하는 이야기가 있다. 루터와 찬송가에 대한 견해가 있다면

  로마가톨릭에서는 성가대만 찬송가를 불렀는데, 루터는 모든 그리스도인이 찬송가를 불러야 한다고 역설했다. 실로 루터는 일평생 38편의 찬송가를 써서 불렀던 찬송의 사람이다. 일례로 1529년 루터는 초연한 마음으로 시편 46편을 묵상하던 중 영감을 받아 “내 주는 강한 성이요”를 작사 작곡했다.  ‘토마스 카라일’(Thomas Carlyle)은 독일어로 된 이 찬송을 번역하면서 “이 찬송은 알프스 산의 눈사태 치는 소리가 가까워오는 소리와 같다”고 격찬했습니다. 바하(J. S. Bach)도 “내 주는 강한 성이요” 평생 이 찬송을 좋아하여 애창했고, 이 곡을 기초로 하여 ‘칸타타’도 만들었다. 루터와 함께 한 기독교인들 모두 종교개혁에 동참하면서 받는 극심한 핍박과 스트레스 속에서도 이 찬송을 부르면서 위로와 용기를 얻었다. 루터는 외쳤다. “인간의 궁극적 목적은 구원을 받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찬송하는 것이다.”라고 말이다.

루터가 작사,작곡한
루터가 작사,작곡한 "내 주는 강한 성이요" (출처:위키백과)

Q. 루터의 신학사상이 중세신학과 구별되는 큰 특징은 무엇이라 할 수 있나

루터 신학은 중세 로마가톨릭이 표방한 ‘영광의 신학’과 철저히 구별되는 ‘십자가의 신학’이다.  영광의 신학이란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달리셨을 때 종교지도자들, 군병들 그리고 왼편 강도들의 사상이라고 할 수 있다. 인간의 공로로 구원을 받을 수 있다고 주장하는 중세의 신앙 세계관이 투영된 신학적 입장이다. 반면에 십자가 신학은 오른편 강도가 십자가에서 힘없이 죽어가는 예수를 바라보며 주의 나라 임하실 때 나를 기억해 달라고 고백했던 마음이다. 세상의 모든 희망이 사라져 버린 그 십자가에서 오직 예수 그리스도 만으로 영원한 소망을 발견하는 것이 바로 십자가 신학이라고 할 수 있다. 루터는 고린도전서 1: 18을 참 사랑했다. “십자가의 도가 멸망 받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받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정녕 루터는 철저히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은혜를 갈망하며 십자가의 은총을 사랑하고 흠모한 십자가의 신학자였다.

- [줌인] " 종교개혁 503주년에 만난 어거스틴 신학" - 안동성결교회 이규철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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