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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성경여행 ‘창세기’ 가인ㅣ 제주함께하는교회 유수영 목사

유수영 목사 제주함께하는교회 유수영 목사 제주함께하는교회
2020/11/08
오피니언, 포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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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시 한경면 – 환상숲 곶자왈공원

2장 Over The Rainbow

가인
창4:1~4:15

에덴을 나온 아담과 하와에게는 새로운 삶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우선 양식을 구해야만 했는데, 가시덤불과 엉겅퀴가 가득한 땅에서 먹을 수 있는 식물을 찾아내거나 황무지를 개간해 경작을 해야 했죠. 일 년 내내 풍족한 양식으로 가득했던 에덴동산을 생각하면 엄청난 변화임과 동시에 결코 쉽지 않은 일이었을 겁니다. 두 사람 모두 살아남기 위한 고된 노동을 하면서 하루하루를 버텨야 했겠죠. 또 다른 고통이 있다면 단연 외로움이었을 겁니다. 외로움은 에덴에서는 느낄 수 없었던 감정입니다. 생계의 고단함이 없던 때에는 아담과 하와가 서로에게 충분한 안정감을 주었고 무엇보다 하나님과 지속적으로 교제하며 살았기 때문에 외로움을 느낄 일이 없었겠죠. 하지만 하나님과 단절된 채 막막하기만 한 광야에서의 삶을 새로 시작한 이들로서는 세상에 오직 자기들뿐이라는 외로움을 떨쳐내기 힘들었을 겁니다. 다행스럽게도 새로운 생명의 탄생으로 희망을 찾을 수 있게 됩니다. 아이러니하게도 하나님으로부터 내려진 형벌이었던 출산의 고통을 통해 주어진 선물이었죠.

아담이 그의 아내 하와와 동침하매 하와가 임신하여 가인을 낳고 이르되 내가 여호와로 말미암아 득남하였다 하니라. 그가 또 가인의 아우 아벨을 낳았는데 아벨은 양 치는 자였고 가인은 농사하는 자였더라(창4:1~2, 개역개정)
아담이 자기 아내 하와와 동침하니, 아내가 임신하여, 가인을 낳았다. 하와가 말하였다. “주님의 도우심으로, 내가 남자 아이를 얻었다.” 하와는 또 가인의 아우 아벨을 낳았다. 아벨은 양을 치는 목자가 되고, 가인은 밭을 가는 농부가 되었다.(창4:1~2, 새번역)

본 적도 들은 적도 없던 열 달 동안의 모든 출산 과정이 하와에게는 신기함과 놀라움이었을 겁니다. 하나님께서 임신하는 고통이 클 것이라는 말씀을 주셨던 것을 기억했다면 조금씩 배가 불러오면서 막연한 두려움을 가졌을 수도 있겠죠. ‘배가 언제까지 부풀어 오르는 거지?’, ‘얼마나 아픈 과정이 기다리고 있는 걸까?’라는 생각을 아담과 하와 모두가 했을 겁니다. 사실 아담은 새로운 생명의 탄생을 경험한 적이 있었죠. 어느 날 자고 일어났더니 하나님께서 하와를 창조하셨다는 것을 알았을 때 말입니다. 어쩌면 아담은 당시의 경험을 토대로 출산은 곧 하와의 몸 밖으로 성인이 나오는 것으로 이해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출산 장면을 한 번도 보지 못했던 이들로서는 당연한 상상일 수도 있겠고요.

마침내 첫 아이가 태어났을 때, 이들은 얼마나 놀랐을까요? 고통의 시간을 보낸 결과가 이토록 놀라운 생명의 탄생이라는 것을 경험했을 때 아담과 하와는 모두 에덴을 나올 때 주셨던 하나님의 벌이 동시에 새로운 삶에 대한 축복이었음을 진심으로 깨달았을 겁니다. 4장 1절이 이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하와는 아이를 낳은 후 ‘여호와로 말미암아 득남하였다.’라고 말하죠. 이 말을 자세히 보면 하와는 태어난 아이가 자신 혹은 아담의 자식이기 이전에 하나님의 선물이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렇지 않았다면 두 사람은 서로를 향해 ‘이제 우리들의 아이가 태어났어!’라고 이야기 했겠죠. 또한 ‘하나님께서 주신 벌을 받고 있다.’라는 관점이 조금도 엿보이지 않는 것도 눈여겨보아야 합니다. ‘하나님께 벌을 받아 너무 아프고 힘들어.’라는 탄식이 전혀 느껴지지 않거든요. 출산이라는 모든 과정의 시작은 분명 자신들의 죄로 시작된 것이지만 그 결과는 생명의 탄생이라는 커다란 선물이었음을 분명하게 알고 고백하고 있는 것입니다. 다만 눈앞에 있는 어린 아이의 형상이 꽤나 이질적으로 느껴졌을 텐데, 에덴을 나온 후 농사를 배우며 작은 씨앗이 점점 자라서 꽃 피고 열매 맺는 것을 이미 경험한 만큼 적응이 어렵지만은 않았을 겁니다. 아이가 자라는 것을 보면서 행복도 많이 경험했겠죠. 이런 경험이 생겨서인지 가인에 이어 아벨이 태어났을 때에는 어떤 감정도 기록되지 않았습니다. 출산에 대한 별다른 묘사 없이 가인이 농사를 지었고 아벨이 양을 쳤다는 언급이 있을 뿐이죠.
창세기는 이들의 삶에 대해 더 이상의 자세한 언급을 하지 않습니다. 가인이 농사를 짓고 아벨이 양을 치는 동안 아담과 하와는 무엇을 했는지, 이들 외에 다른 자녀가 또 있었는지, 언제부터 하나님께 예배를 드려온 것인지(혹은 창4:3~5의 예배가 처음 드린 예배인지)에 대해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거의 없습니다. 아쉽지만 성경이 이야기해 주는 것만을 듣고 생각할 수밖에 없죠. 인류의 첫 번째 아이인 가인은 자연스럽게 아버지 아담이 해 오던 농사일을 거들게 되었을 겁니다. 식구가 늘면서 더 많은 식량이 필요해졌을 것이고, 그러려면 더 많은 수확이 있어야 하니 새 일꾼이 필요하게 된 것도 당연하고요. 반면 아벨은 양을 치는 일을 하게 되었습니다. 농사와 양 치는 일 모두 최초의 인류에게 요긴한 일이었을 것은 분명합니다만 중요성에 있어서 목축이 농사를 따라가긴 어려웠을 겁니다. 인류가 하나님의 계명을 준수했다면 노아의 홍수 이전에는 육식을 하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죠(창9:3). 물론 고기를 먹는 것 이외에도 양의 소용은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양털을 얻거나 젖을 짜기도 하고, 죽은 양의 가죽을 벗겨 옷을 만들 수도 있었겠죠. 하지만 생존에 필수적인 양식을 위한 노동을 하는 가인이 아벨보다 더 중요한 일을 하는 것으로 여겨졌을 개연성은 충분합니다. 게다가 아버지 아담과 훨씬 더 오랜 세월을 함께하며 가업을 이어받고 있는 셈이니 가인이 더 많은 권위를 가졌을 것이 분명합니다. 그런데 하나님께 예물을 드리는 과정에서 이것이 무너지고 맙니다. 가인에게는 굉장한 충격이었을 겁니다.

제주 환상숲 곶자왈공원

가인과 그의 제물은 받지 아니하신지라 가인이 몹시 분하여 안색이 변하니(창4:5, 개역개정)
가인과 그가 바친 제물은 반기지 않으셨다. 그래서 가인은 몹시 화가 나서, 얼굴빛이 달라졌다.(창4:5, 새번역)

두 사람이 모두 하나님께 예물을 드렸지만 아벨의 예물만이 받아들여졌습니다. 예물만의 문제가 아니었죠. 예물이 받아들여지지 않은 것은 곧 예물을 드린 사람이 받아들여지지 않은 것과 마찬가지라고 창세기 저자와 가인은 공통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여러 가지 면에서 가인에게 심각한 상황이었습니다. 첫째로 하나님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는 것의 충격입니다. 가인은 아담으로부터 하나님께 거절당하는 것의 결과가 무엇인지 수없이 들었을 겁니다. 그러니 낙원으로부터 추방당해 고통스러운 삶을 살아야했던 아담의 전철을 똑같이 밟아야 할지 모른다는 두려움이 있을 수밖에 없었을 겁니다. 둘째로 서로 다른 제물을 드렸다는 점이 복잡한 상황을 만들었습니다. 두 아이가 있는데, 한 명은 노래를 잘 하고 다른 한 명은 그림을 잘 그린다면 둘 중 누가 낫다고 해야 할까요? 우열을 따질 수 없는 문제니 각자에 대해 따로 칭찬하는 것이 당연합니다. 그런데 누군가가 노래 잘 하는 아이만 훌륭하다고 추켜세운다면 어떻게 될까요? 두 가지 면에서 그림 그리는 아이는 상처를 받을 수 있습니다. 자신이 이제껏 그려 온 그림이 노래만큼 가치가 없다는 열등감에 빠지거나 그림과 노래의 문제를 떠나 자기 자신이 사랑받지 못하고 있다는 절망이죠. 가인의 감정이 꼭 그랬을 겁니다. 오랜 시간 아담과 함께 땀을 흘리고 노력하며 쌓아 온 자기 인생이 단숨에 무너지는 기분이었겠죠. 그 자리에서 얼굴빛이 확 변할 만큼 가인은 분노하게 됩니다.
사람은 여러 가지 이유로 분노합니다. 무언가를 빼앗겨서, 혹은 이루고자 하는 것에 실패해서, 때론 다른 사람의 언행이 못마땅해서 화가 납니다. 그 수를 다 헤아려 본다면 아마도 전 세계 인류의 숫자만큼 많은 분노가 있겠죠. 크고 작은 그 분노들을 하나로 뭉뚱그려 표현한다면 아마도 ‘내가 무시당해서’일 겁니다. 곰곰이 생각해 보면 화를 낼 때의 상황은 저마다 달라도 그 동기는 거의 하나로 모입니다. 내 소유, 내 생각, 내 목표, 내 감정, 내 상황이 남에게 인정받지 못하면 누구랄 것 없이 화가 납니다. 지금 가인이 딱 그렇습니다. 그리고 그 분노는 정확하게 나를 인정해 주지 않은 존재에게로 향하게 됩니다. 따라서 가인의 분노는 아벨이 아니라 하나님을 향한 것입니다.

제주 환상숲 곶자왈공원

네가 선을 행하면 어찌 낯을 들지 못하겠느냐 선을 행하지 아니하면 죄가 문에 엎드려 있느니라 죄가 너를 원하나 너는 죄를 다스릴지니라(창4:7, 개역개정)
네가 올바른 일을 하였다면, 어찌하여 얼굴빛이 달라지느냐? 네가 올바르지 못한 일을 하였으니, 죄가 너의 문에 도사리고 앉아서, 너를 지배하려고 한다. 너는 그 죄를 잘 다스려야 한다.”(창4:7, 새번역)

가인의 분노에 대한 하나님의 말씀은 매우 냉정하게 느껴집니다. 우선 ‘선을 행하면 어찌 낯을 들지 못하겠느냐’라는 말씀에서 하나님은 제물이 받아들여지지 않은 이유가 가인에게 있다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사실 가인은 지금 정 반대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아벨의 제물에 비해 조금도 못하지 않은 자신의 제물이 받아들여지지 않은 것은 부당하며, 하나님에게 문제의 원인이 있다고 생각해 화를 낸 것이었으니까요. 하지만 하나님은 가인의 제물이 아벨의 제물보다 못했기 때문이라고 말씀하지 않으십니다. ‘아벨이 너보다 더 훌륭하기 때문’이라고 말씀하지도 않으시죠. 오히려 가인에게 문제가 있다고 매우 직설적으로 말씀하십니다. 이것이 가인이 드린 예배와 어떤 관련이 있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오만한 마음에 예물 준비를 소홀히 했는지, 예물은 잘 드렸지만 그 외에 다른 행실에 문제가 있었던 것인지 판단할 아무런 정보가 없으니까요. 아벨은 첫 소산을 드렸고 가인은 그렇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주장도 있지만 적절하지 않습니다. 가인의 농사는 아담으로부터 시작된 것이었을 테니 첫 소산이 언제의 것인지 정의하기도 어렵고 하나님이 말 그대로 첫 소산을 바치라고 사전에 명령하신 것 같지도 않으니까요. 오히려 소중하기로 따지만 농경의 소산이 더 소중하면 했지 못하지 않은 상황이라고 봅니다. 따라서 우리가 내릴 수 있는 결론은 하나뿐입니다. 하나님을 향한 가인의 마음가짐 어딘가에 문제가 있었음이 분명합니다.
분노의 가장 큰 문제는 그것이 마음속, 혹은 표정에만 머물러 있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많은 경우 행동으로 이어지게 되죠. 하나님은 이것을 경계하셔서 ‘죄가 문 앞에 있다’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분노를 통제하지 못하면 곧 행동으로 죄를 짓게 될 것이라는 강력한 경고입니다. 그리고 ‘죄를 다스려야 한다.’라는 말씀을 주십니다. 물론 하나님은 죄를 없애실 수 있는 분입니다. 살인하기 직전에 순간이동으로 가인을 지구 반대편에 데려다 놓으시면 아벨을 죽이는 죄를 범하지 않았겠죠. 하지만 하나님은 그런 식으로 사람의 삶에 개입하지 않으십니다. 에덴동산의 두 사람에게 하셨던 것처럼 하나님의 마음을 정확하게 알려주시고 사람 스스로 죄를 피하는 선택을 하기 원하시죠. 안타깝게도 가인은 아담처럼 마음을 통제하지 못하고 맙니다. 기어이 문 앞에서 기다리고 있던 죄에 손을 내밀고 만 것이죠.

가인이 그의 아우 아벨에게 말하고 그들이 들에 있을 때에 가인이 그의 아우 아벨을 쳐죽이니라(창4:8, 개역개정)
가인이 아우 아벨에게 말하였다. “우리, 들로 나가자.” 그들이 들에 있을 때에, 가인이 그의 아우 아벨을 쳐죽였다.(창4:8, 새번역)

가인은 명확한 계획범죄를 저지릅니다. 우리나라 법체계를 보아도 충동적인 살인과 계획적인 살인은 그 처벌이 크게 다릅니다. 가인이 예배가 끝난 직후 순간적인 자기 분을 못 이겨 아벨을 죽인 것과 아무도 보지 않을 들판으로 나가자고 속여 데리고 간 후 죽인 것은 매우 큰 차이가 있습니다. 가인의 분노가 감정을 넘어 행동이 되면서 사고가 아닌 범죄로 발전한 것이죠. 7절에서 하나님이 경고하셨던 그 일이 실제로 벌어지고 만 것입니다. 가인은 아담과 하와의 첫 후손임과 동시에 출산을 통해 세상에 나타난 첫 번째 생명이었지만 그의 손으로 첫 번째 무고한 죽음이 벌어지고 말았습니다. 어쩌면 가인은 자기 행동의 결과가 어떤 것일지 잘 몰랐을 수도 있습니다. 동물의 죽음은 익히 보았겠지만 사람의 죽음은 한 번도 보지 못했을 것이고, 일이 이렇게 된 데에는 하나님께 책임이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으니 설령 자기가 아벨을 죽여도 하나님이 책임지실 것이라 생각했을 수도 있죠. 하지만 하나님의 판단은 명확하게 가인의 책임으로 벌어진 가인의 범죄였습니다.

제주 환상숲 곶자왈공원

여호와께서 가인에게 이르시되 네 아우 아벨이 어디 있느냐 그가 이르되 내가 알지 못하나이다 내가 내 아우를 지키는 자니이까(창4:9, 개역개정)
주님께서 가인에게 물으셨다. “너의 아우 아벨이 어디에 있느냐?” 그가 대답하였다. “모릅니다. 제가 아우를 지키는 사람입니까?”(창4:9, 새번역)

아벨의 죽음 이후 하나님과 가인 사이의 대화를 보면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먹은 직후 하나님과 아담 사이의 대화가 자연스럽게 떠오릅니다. 하나님께서 아담에게 ‘내가 네게 먹지 말라 명한 그 나무 열매를 네가 먹었느냐?’라고 하셨을 때 아담은 ‘하나님이 주셔서 나와 함께 있게 하신 여자 그가 그 나무 열매를 내게 주므로 내가 먹었나이다.’라고 대답했습니다(창3:11~12). 자신의 잘못을 인정해도 시원치 않을 판에 하나님 때문에 이렇게 되었다는 원망을 앞세웠죠. ‘네 아우 아벨이 어디 있느냐?’라는 하나님의 질문에 가인은 모른다는 거짓말을 먼저 합니다. 그리고 ‘내가 내 아우를 지키는 자니이까?’라고 반문하죠. 이것은 명확하게 아벨 죽음의 책임이 하나님께 있다는 표현입니다. ‘모른다’라는 말을 뒤집어 보면 ‘몰라서 물으세요?’라는 말로, ‘내 아우를 지키는 자니이까?’라는 말은 ‘아벨을 지켰어야 하는 이는 내가 아니라 하나님’이라는 의미로 들립니다. 죄는 저지르긴 했지만 그 원인은 내게 있지 않다는 변명인데, 아담의 태도와 하나도 다르지 않습니다. 그토록 사랑하는 인간이 한 세대 만에 또 다시 과오를 저지르는 것을 보시게 된 하나님의 마음이 얼마나 아팠을까요.
아담과 하와가 동산 중앙의 나무 열매를 따 먹었을 때, 하나님은 그 사건의 시발점이었던 뱀에게 책임을 모두 돌리지 않으셨습니다. 아담과 하와는 서로 자기 잘못이 아니라며 떠넘기기 바빴지만 하나님은 죄를 저지른 이들의 잘못을 정확하게 지적하고 각자에게 벌을 내리셨죠. 하지만 인간을 사랑하셨기에 벌 뒤에 또 다른 축복을 감추어 두셨던 것을 이미 보았습니다. 에덴동산 밖에서의 삶은 그렇게 시작되었고 그 결과물로 가인과 아벨이라는 자녀들의 시대가 되었죠. 지금 가인의 범죄 앞에서 하나님은 가인의 변명과 원망에도 불구하고 아벨의 죽음이 그의 책임이라는 것을 분명하게 밝히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에 따른 벌을 주시죠.

제주 환상숲 곶자왈공원

네가 밭을 갈아도 땅이 다시는 그 효력을 네게 주지 아니할 것이요 너는 땅에서 피하며 유리하는 자가 되리라. 가인이 여호와께 아뢰되 내 죄벌이 지기가 너무 무거우니이다(창4:12~13, 개역개정)
네가 밭을 갈아도, 땅이 이제는 너에게 효력을 더 나타내지 않을 것이다. 너는 이 땅 위에서 쉬지도 못하고, 떠돌아다니게 될 것이다.” 가인이 주님께 말씀드렸다. “이 형벌은, 제가 짊어지기에 너무 무겁습니다.”(창4:12~13, 새번역)

아담에게 주셨던 벌이 수고하며 땅을 일구어야 양식을 얻는 것이었다면 가인에게 주신 벌은 땅을 일구어도 양식을 얻지 못하는 것이었습니다. 이렇게 되면 생계를 위해 다른 일을 해야만 하는데, 농사 이외의 어떤 일이 될지라도 정착생활과는 거리가 멀 것이니 결과적으로는 유랑생활이 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평생 농사만 짓고 살던 가인에게 내린 형벌로는 매우 가혹한 것이죠. 가인은 이를 받아들이기 힘들었을 겁니다. 하나님과 아벨에 대한 분노가 아무리 컸다고 하더라도 농사꾼으로서 살아온 자기 인생 모두를 포기할 만큼은 아니었을 테니까요. 또한 이 형벌을 아버지 아담이 받은 형벌과 연계시켜 생각해 본다면 유랑 생활이란 부모, 가정, 나아가 하나님과의 분리를 의미했습니다. 아담은 죄로 인해 에덴동산을 떠나며 하나님과의 연합을 잃고 외로운 광야 생활을 시작했죠. 가인이 생각하기에 동생을 죽였으니 부모로부터 버림받게 될 것이고 하나님을 원망했으니 하나님으로부터도 버림받은 채 유랑생활을 하게 될 것이었습니다. 그러니 혼자 감당하기에는 너무나 무거울 뿐 아니라(아담은 그래도 에덴을 나올 때 하와가 곁에 있었죠) 하나님께 버림받은 사람이 되면 어딜 가나 자기 생명을 지키기 어려울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을 향해 ‘하나님이 아벨을 지키셨어야죠.’라고 따졌던 그였지만 정작 자기를 지켜주실 분은 하나님뿐이라는 사실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으니까요.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그렇지 아니하다 가인을 죽이는 자는 벌을 칠 배나 받으리라 하시고 가인에게 표를 주사 그를 만나는 모든 사람에게서 죽임을 면하게 하시니라(창4:15, 개역개정)
주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그렇지 않다. 가인을 죽이는 자는 일곱 갑절로 벌을 받을 것이다.” 주님께서는 가인에게 표를 찍어 주셔서, 어느 누가 그를 만나더라도, 그를 죽이지 못하게 하셨다.(창4:15, 새번역)

하나님은 가인을 용서하시되, 그의 죄를 없애주시지는 않으셨습니다. 상상력을 조금 보탠다면, 하나님이 아벨을 다시 살려주시고 가인에게 다시는 이런 일을 하지 말라고 따끔하게 혼내는 선에서 일을 정리하실 수도 있었습니다. 그랬다면 사랑하는 아벨도 살리고 가인도 하나님께 돌아올 수 있었겠지만, 그렇게 하지 않으셨죠. 아벨은 죽었고 가인은 죄에 대한 대가를 치루면서 죽음만을 면한 채로 살게 하십니다. 이것이 성경 전체에서 보이는 하나님의 방식이고요. 표를 받아 죽음을 면하게 된 가인을 보면 이것이 우리 인류의 현주소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스스로 의롭게 되길 원하지만 우리는 늘 문 앞에 엎드린 채 우리를 노리는 죄의 곁을 떠나지 못하죠. 결국 죄의 사슬을 끊지 못한 우리는 하나님과 더욱 멀어진 삶을 살게 됩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이것을 그냥 지켜보지 않으시고 우리를 구원하기 위한 특별 프로그램을 진행해 주십니다. 그로인해 우리는 하나님의 표(구원받은 자녀로서의 인정)를 얻게 되고 죄와 죽음으로부터 생명으로 옮겨가게 되죠. 이런 면에서 이 땅에 내려준 생명의 첫 선물 가인은 살인과 죽음, 범죄의 상징이 아니라 용서와 구원, 새 생명의 상징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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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1

  1. 장혜지 says:
    2년 전

    오늘도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

    응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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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웹 사역 – 에스라성경대학원대학교 정근두 총장

2023/0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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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이 한해도 또 기다리며 계획한 대로 믿고 노력하며 나아가자 I 신용대 목사

2023/0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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