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연동서부교회 이상성 목사(lee-sangsung@hanmail.net)의 작품
제주연동서부교회 이상성 목사(lee-sangsung@hanmail.net)의 작품

요즘 매일 묵상하는 큐티의 성경본문이 역대하이다. 말씀을 묵상하며 최근에 기도의 제목이 하나 생겼다. 그것은 “하나님, 제 인생의 끝이 아름답게 해 주세요.”라는 것이다. 이런 기도제목이 생긴 것은 요아스, 아마샤, 그리고 웃시야로 이어지는 왕에게 발견되는 공통점 때문이다.

이들 세 명의 왕의 공통점은 처음에는 하나님을 잘 섬긴 멋진 왕이었다. 그런데 그 끝은 엉망이었다. 나이 7살에 왕이 되어 40년을 통치하는 동안 39년을 잘 다스렸지만 마지막 1년을 견디지 못하고 무너진 요아스가 이런 모습을 보이더니, 그의 아들 아마샤도 처음에는 감정에 휘둘리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다스렸지만 그 끝은 우상을 섬기고 교만하여 비참하게 인생을 마감하였다.

웃시야도 그의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걸었던 길을 동일하게 걸었다. 웃시야는 16살이라는 어린 나이에 왕위에 올라 남유다에서 최고 악한 왕으로 불리는 므낫세의 55년 통치에 이어 두 번째로 오랜 52년을 통치하였다. 그의 인생 초반은 하나님 보시기에 너무 멋졌다.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하게 행했고(대하 26:4), 하나님을 찾았다(대하 26:5). 하나님은 이런 웃시아에게 형통을 주셨다.

그의 이런 형통을 가능하게 한 이름 하나를 보게 된다. 바로 스가랴이다. “하나님의 묵시를 밝히 아는 스가랴가 사는 날에 하나님을 찾았고 그가 여호와를 찾을 동안에는 하나님이 형통하게 하셨더라”(대하 26:5). “하나님의 묵시를 밝히 하는 스가랴”라고 하는데, 영어 NIV성경은 좀 더 명확하게 번역한다. “He sought God during the days of Zechariah, who instructed him in the fear of God”, 즉, 웃시아는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마음을 가진 스가랴의 가르침을 받았다는 것이다.

이러한 모습은 웃시야의 할아버지인 요아스 때의 여호야다를 생각하게 된다. 요아스 역시 그의 고모부인 여호야다가 살아 있는 동안에는 하나님 앞에서 정직하게 행하였다. 그러나 여호야다가 죽은 뒤 그는 1년을 버티지 못하고 타락하고 말았다. 웃시야도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스가랴를 가까이 두었을 때는 선한 왕이었다. 그러나 자신에게 힘이 생기자 웃시야는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게 되었고, 결국 할아버지, 아버지가 걸었던 것과 동일하게 비참한 인생의 끝을 맞았다.

여기서 우리 인생에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사람을 옆에 두어야 할 이유를 보게 된다. 하나님을 두려워하게 될 때, 나에게 형통함이 찾아와도 교만하지 않게 된다. 웃시야가 정직하게 행할 때 하나님은 그에게 형통을 주셨다. 블레셋, 아라비아, 마온, 암몬을 정복하고, 그 나라로부터 조공을 받고, 무너졌던 예루살렘 성을 견고하게 세우고 망대를 세우고, 물 웅덩이를 파고, 고원과 평지에 가축을 많이 기르고, 군대를 정비하고 무기를 개발하는 등의 가시적인 형통함이 찾아왔다. 이것이 하나님이 주시는 형통함이다.

그 유명한 시편 1편을 보면, “복 있는 사람은 악인들의 꾀를 따르지 아니하며 죄인들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도다 그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철을 따라 열매를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그가 하는 모든 일이 다 형통하리로다”(시 1:1-3)라고 한다.

형통의 길은 하나님의 말씀을 즐거워하고 그 말씀을 밤낮으로 묵상하는 것이다. 즉, 하나님을 가까이 하는 것이 형통함의 비결이다. 그래서 더욱 웃시아, 그의 아버지 아마샤, 그의 할아버지 요아스의 인생의 마지막이 너무 아쉽다. 차라리 오래 살고, 오랜 시간동안 나라를 통치하는 것보다 짧지만 하나님을 경외하며 사는 짧은 인생을 살았더라면 하는 진한 아쉬움 말이다.

최근에 교회나 사회 지도자 중 평생을 멋지게 살고 일도 했는데 그 끝이 추한 여러분들을 보게 된다. 인생과 사역을 멋지게 마감할 수 있었는데, 자신이 쥔 돈과 권력을 놓지 못해 무리수를 두다가 결국 평생 쌓아왔던 모든 것을 한 순간에 날려버리는 것을 보며 너무 안타까운 경우를 보게 된다. 정말 우리의 목숨이 다하는 그 순간까지 끝날 때까지 끝난 것이 아니다!

그래서 이런 소망을 가져 본다. “주님, 질질 끌면서 마지막이 추해지는 인생보다 짧지만 불꽃같이 말씀대로 살다 가는 인생이 되게 하소서. 이런 인생을 가능케 하는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사람을 가까이 하고, 사귀게 하소서. 이런 사람을 오늘도 나에게 붙여 주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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