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년 전 잘 다니던 직장을 내려놓고 하나님의 소명을 따라 지금까지 노은침례교회를 섬기고 있는 김용혁 목사
해외선교와 지역 복지목회를 위해 비전센터를 건립해 지역 주민을 위한 사역 펼쳐
하나님 앞에 녹슬지 않고 닳아 없어지는 목회를 꿈꾸는 진정한 청년 목회자

노은침례교회 김용혁 목사
노은침례교회 김용혁 목사

| 삶의 시선

Q. 신앙은 어떻게 갖게 됐는가?

3대째 신앙의 가정에서 모태신앙으로 태어났다. 어머니가 권사님이셨고 외할아버지가 독립운동을 하셨다. 군자금을 만주에 대시다가 투옥도 당하셨다. 한국교회 초기에 기독교 접하셔서  학교와 교회를 설립하시기도 하셨다. 지금은 나의 아들과 손자까지 5대 신앙의 가정이다.

Q. 하나님과 처음 만난 시간?

어릴 적 시골에서 부유하게 살았는데 고위 공무원이셨던 아버지께서 명퇴하시면서 가세가 기울어졌다. 그리고 대전으로 이사를 와서 초등학교를 다녔는데 따돌림을 당하고 자존감이 무너졌다. 공부도 관심이 없어서 대학을 세 번이나 떨어졌다. 비슷한 처지에 있는 친구와 함께 무주군에 있는 백년사라는 절에 들어가 세 달 동안 지냈다. 삼수생으로서 느끼는 자존감이 바닥을 쳤다. 그때 군 입대 영장이 나왔는데 나에게 도피처가 마련된 것 같아서 뛸 듯이 기뻐했다. 군에 가서 내 몸을 자학하려고 시작한 운동이 오히려 몸을 근육질로 바꿔놓았다

제대를 앞둔 어느 날 부대 앞 방파제에서 성경을 읽는데, 모세가 호렙산에서 떨기 가운데에서 하나님을 만난 부분이었다. 바로의 궁에서 백성의 환호성 듣던 모세가 인생의 꿈이 꺾이고 모든 것이 좌절된 나이 팔십 때의 일이었다.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네 손에 든 것이 무엇이냐’라고 질문하셨다. 모세의 손에 들려진 것은 양을 쫓는 작은 지팡이가 다였다. 나는 생각했다. 나의 손에든 것이 무엇인가? 삼수생의 비참함뿐이었다. 예쁜 아가씨와 데이트도 하고 싶고 양반스러운 인생도 살고 싶었다. 그런데 공부도 못해서 세 번이나 대학에 떨어진 나는 하나님께 “하나님 제 손에 든 건 없습니다”라고 말했다. 한참을 부서지는 파도를 보고 있었다. 그 순간 생각이 났다. 나에게도 있는 것이 있어. 건강한 몸이 있고, 난 말을 재미있게 해. 그리고 고아가 아니야. 내가 가지고 있는 것이 8가지나 생각났다. 지금까지 나는 부지깽이 같은 것들을 붙들고 살았다. 그런데 하나님이 내어던지라고 하셨다. 그리고 나는 “하나님 앞에 있는 그대로 내 삶을 드리겠습니다.”라고 고백했다. 그때 주님을 깊이 만났다.

그리고 미국의 흑인 인권운동가 말콤 엑스의 모토가 된 ‘검은 것이 아름답다(Black is beatiful)’는 흑인들이 백인들에게 가진 열등감을 극복하게 했다. 김용혁은 열등하고 무능한 실패한 사람이라는 생각하고 살았는데, 아름다운 사람이고 멋진 사람이라는 생각의 변화가 일어났다. 내 모습 이대로 받아주시니 주님 감사합니다. 그 순간부터 내 인생이 급반전하기 시작했다. 제대 후 소중한 존재라는 생각과 함께 취업을 위한 시험을 준비하기 시작했고 공무원 시험에 합격해 한국통신공사(KT)에 다니게 됐다. 만약 내가 주님을 만나지 않았다면 어떻게 됐을까. 아마 내 인생은 술과 담배, 인생 비관으로 자살했거나 형편없는 인생을 살았을 수도 있을 것이다.

Q. 어떻게 목회의 길을 가게 됐나?

나는  3대 째 감리교 신앙 배경을 갖고 자랐는데 대전에서 직장 생활을 하면서 대흥침례교회를 다니기 시작했다. 성경 중심의 설교를 통해 나의 신앙이 체계적으로 잘 성장하고 있던 즈음, 시골에서 목회하는 큰 누님이 꿈에 강대상 위에 있는 내 모습을 보았다고 하면서 하나님이 목회자로 부르시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런데 당시 직장을 잘 다니고 있었고 목회자에 대한 꿈이 전혀 없었기 때문에 듣고도 잊어버렸다.

그 후 몇 년 이 지난 어느 날 주일 아침, 하얀 소복을 입은 젊은 미망인이 마치 물에 젖은 솜처럼 축 늘어져 누군가의 손에 부축받아 예배당으로 들어왔다. 그날 설교 내용은 기억나지 않지만 그날 설교는 매우 은혜스러운 위로의 설교였다. 설교 마지막에 예화를 드셨는데, 사람들이 저마다 짐을 짊어지고 길을 가면서 여기저기에 물건을 떨어뜨렸다. 사람들이 지나가고 난 뒤로 검은 옷을 입은 한 사람이 가면서 그 짐들을  자기 머리 위로 올려서 짐이 점점 많아지다 마침내 푹하고 쓰러지게 됐다. 그런데 사람들이 그 사람을 보고도 그냥 지나가버렸다. 마귀가 여기저기 뿌려놓은 짐을 왜 우리가 다 끌어안고 사느냐는 내용의  메시지였다. 예배를 마치고 나가는 미망인의 얼굴을 보게 됐는데 예배당을 들어올 때와는 전혀 다른 아주 평온하고 안정감 있는 얼굴이었다. 하나님께서 “네가 그렇게 사람을 평화롭게 위로해 줄 수 있다면, 네 삶을 이런 일에 드리면 어떻겠냐”라고 질문하시는 것 같았다. 그래서 “제가 물론 직장 다니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일에 헌신하겠습니다!”라고 결단하고 신학교를 가게 되었다.

Q. 목사안수를 받기 전에 교회를 개척했는데, 어떻게 시작하게 됐나?

나는 직장 생활을 하다가 결혼도 하고 아기도 있는 상태에서 늦게 신학교에 들어갔기 때문에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바로 신학교에 입학한 다른 학생들과는 10살가량 차이가 났다. 그렇지만 열정은 넘쳐서 신학교 기간 내내 한 시간도 결강하지 않고 모든 과정을 다 해냈다. 신학공부가 아주 재미있었다. 그래서 더욱 열심히 공부했다. 그런데 졸업 후에 갈 수 있는 교회가 마땅치 않았다. 그래서 신학교 졸업하자마자 망설임 없이 회사 퇴직금으로 받은 돈으로 지하 40평 공간을 얻어서 교회를 개척했다.

대전시 노은동에 위치한 노은침례교회 전경
대전시 노은동에 위치한 노은침례교회 전경

| 사역의 시선

Q. 목회하면서경험한에피소드?

하나님께서 나에게 말을 잘하는 은사를 주셨다. 고등학교 다닐 때 웅변 부장도 하고 군대에서 웅변대회 1등도 했다. 그래서 내가 개척만 하면 교회를 금방 크게 부흥시킬 줄 알았다. 개척예배 때 대흥침례교회 안종만 목사님께서 “힘으로 능으로 되지 않으나 여호와 신으로 말미앎는다.”라고 설교하셨는데, 내가 속으로 “여호와의 능력까지 갈 거 없습니다. 내 힘으로 얼마든지 할 수 있습니다”라고 아주 교만한 생각을 했다. 그런데 목회가 내 생각대로 안됐다. 될 만하면 깨지고 될 만하면 깨지고. 후배 목사님을 만나서 목회 성공 이야기도 앉아 듣고 있기 힘들었다.

견디다 못해 개척 6년째 되던 해 등 떠밀리다시피 21일 금식기도를 시작했다. “하나님 저를 정말 부르셨나요? 목회가 왜 이렇게 안됩니까? 나는 열정을 다하고 최선을 다해 설교하고 목회했는데 왜 안 되는 거죠?” 그런데 18일째 되는 깜깜한 밤. 넓은 주차장을 나 혼자 있게 걷고 있는데 “너 왜 금식하냐?”라고 하나님께서 물으셨다. “하나님 내가 능력이 없지 않습니까? 뭐 능력을 주셔야지 내가 목회를 하지.” 그런데 그 순간 하나님께서 “네가 내 힘을 필요로 할 때 내가 너와 함께하겠다.”라는 음성이 들렸다. 순간 뜨거운 눈물이 뺨에 주르륵 흘렀 내렸다. 아주 뜨거운 눈물이었다. “주님 그렇군요 감사합니다. 방언도 못하는 저인데 무능력하기 짝이 없는 저를 하나님께서 함께해 주신다니 감사합니다.” 그날 이후로 하나님께서 땅속에 있던 두더지 같은 목회를 변화시키셨다. 건물을 짓고 힘 있게 목회를 이어가게 되었다. 하나님은 그전부터 다 지켜보고 계셨다. 내가 어떤 마음을 갖고 어떻게 목회하는가를 보고 계신 것이었다. 내가 완전 죽어지고 낮아졌을 때 하나님께서 역사를 시작하셨다. 

Q. 노은침례교회는선교와복지사역에많은노력을하고있는데특별한계기가있었나?

교회의 존재 목적이 우리 주님의 지상명령을 수행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선교에 대한 사명을 개척교회 때부터 갖게 됐고, 그래서 개척할 때부터 피지에 있는 선교사를 후원하기 시작했다. 해외 선교뿐만 아니라 국내선교를 위해 2008년도에 비전센터를 지었다. 1층은 지역 아동 센터, 2층 노인 요양원,  3층 카페를 통한 문화사역, 4층에 체육관을 통해서 지역을 섬기고 좋은 공간을 제공하고 있다.

복지목회에 눈을 뜨게 된 계기는 2007년 분당샘물교회 단기선교팀이 아프가니스탄에서 납치된 사건이었다. 그 당시 여론은 가지 말라는 곳에 가서 사고를 당한 것이라고 비난하는 분위기였다. 그런데 그분들이 단지 복음만 전한 것이 아니라 의료사역과 유치원 사역 등 사회봉사도 함께 했는데 왜 우리 사회가 교회에 대해서 비난만 할까 생각하다가, 교회가 지역사회를 섬기지 않으면 결국 지역사회로부터 외면당할 수 있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됐다. 노은침례교회가 지역을 품어내고 지역을 위해 섬기는 교회가 되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지금은 우리 교회의 노인 요양시설을 통해서 치매에 걸린 부모님을 자녀들보다 잘 돌봐드리고 있다. 또 가난한 아이들을 데려다가 지역아동센터를 하고 있다. 좋은 프로그램과 혜택이 있는데 일반 가정보다 더 많은 혜택을 제공하고 있다. 카페에서는 좋은 커피와 음료를 아주 저렴한 가격에 제공하고 있고, 그 위에는 체육관이 있는데 천정 높이가 9m 50cm이다. 천정을 높이 만들어서 지역 주민들이 배드민턴, 탁구 등 마음껏 이용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분당샘물교회 사건을 계기로 시작하게 된 지역을 섬기는 목회, 복지목회를 이어오고 있는데, 대전에서는 좀 일찍 시작한 편이었다.

Q. 목회하는 동안 경험한 특별한 순간?

목회하면서 아무도 나를 도와주는 사람이 없었다. 그리고 도와 달라고도 안 했다. 중 3 때 아버님이 돌아가시고 난 이후론 내가 무너지면 바로 난 절벽이다 낭떠러지다 이런 생각을 했기 때문에 남에게 손 벌리지도 않고 몸부림치면서 살아왔다. 그런데 하나님의 은혜로 IMF를 겪던 시절에 지금의 노은교회를 짓게 됐다. 남들은 지금이 어느 때인데 건축을 하냐고 했는데, “내가 믿는 하나님은 IMF보다 크시다”라고 생각했다. 하나님이 마음에 뜨거운 소망을 주셔서 IMF가 한창 절정일 때 이 교회 건축을 시작했다. 이전하기 전 교회 이름이 만년교회였는데 교회를 파니까 2억 9천만 원을 받았다. 지금 노은침례교회의 땅값이 그때 당시 5억이었다. 우리가 가진 것은 땅값의 절반도 안 되는 것이었다.  그런데 마음속에 어려우면 내 눈 알이라도 팔겠다 하는 심정으로 하나님 앞에 매달렸다. 예배당을 짓는 동안 정말 많은 간증들이 있었다. 수많은 우여곡절 끝에 새 예배당이 완공됐을 때 정말 감사했다. “하나님 저 같은 부족한 사람한테 이런 교회를 주셔서 감사합니다. 지하실에서부터 하나님이 나를 사용하셔서 이렇게 교회를 세우게 하신 것 감사합니다” 그때 참 감격스러웠다.

2018년 대전기독교연합회 대표회장으로 부활절연합예배 개회사를 전하고 있다.
2018년 대전기독교연합회 대표회장으로 부활절연합예배 개회사를 전하고 있다.

| 생각의 시선

Q. 하나님께서 주신 특별한 달란트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지?

나는 어떤 것이 좋은 것이구나라든지 가치 있는 일이라고 판단되면 그럴 때는 망설이지 않는다. 어떤 분은 좋은 것을 보고도 생각하느라고 실천하려면 오래 걸리던데, 나는 이게 좋다 이게 하나님이 기뻐하는 일이다 그러면 그냥 즉각 순종한다. 망설일게 뭐 있나? 바로 하는 거다. 좋은 건데 왜 망설이나. 나는 옳다 생각하는 일 이것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이다 그럴 때는 그냥 바로 실천합니다 바로. 

Q. 목회철학으로 어떤 것이 있는가?

목회뿐만 아니라 내 인생을 살아가는데 두 가지 철학이 있다. 첫 번째는 나보다 약한 사람을 나는 공격하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교단 신학교인 한국침례신학대학교가 바로 근처에 있다 보니 우리 교회에 신학교 학생들이 많이 온다. 우리 교회의 교세에 비해서 교역자들이 많다. 후배들을 내가 키운다는 의미로 하다 보니 그렇게 됐다. 그런데 그중에는 정말 신실한 사람도 있지만 속 썩이는 사람도 있었다. 그런데 35년 동안 단 한 명도 내가 나가라고 한 교역자가 없었다. 왜냐면 호렙산으로 모세도 부르신 하나님인데, 나도 부족한 사람이라 엄격한 기준으로 하면 나도 쫓겨나야 될지 모른다. 그런 생각을 하면서 내가 정말 품기 어려운 사람이라 할지라도 한 명도 나가라고 하지 않았다. 난 그 하나님 앞에 감사할 뿐이다.

두 번째로 남을 죽이는 일에는 절대로 내가 동참하지 않는다. 나는 경찰청 경목, 총무도 오래 했고, 또 한국침례신학대학교 이사도 했고, 현재는 침례교 해외선교회 이사장도 하고, 대전 생명의 전화도 내가 창설했다. 여러 가지 책임지는 위치에도 있었는데, 나는 왜 이 사회가 남을 세우고 격려하고 더불어 살 생각을 하지 않고, 상대방을 괴롭히고 짓밟고 가는 사회가 되는지 이해할 수 없다. 나도 잘 살고 너도 잘 사는 사회는 왜 못 만드나. 우리 교회도 부흥하고 저 교회도 부흥하면 안 되는가. 왜 남을 꼭 짓밟아야만 내가 잘 되는 건가. 더불어 잘 사는 그런 공동체를 얼마든지 만들 수 있을 텐데. 왜 이렇게 꼭 경쟁해야만 되는가. 자신을 통해 이웃과 사회가 도움받는 사회. 그런 사회를 지향하고 함께 만들어갔으면 좋겠다.

Q. 목회의 패러다임이 바뀌고 있다. 미래시대 앞으로의 목회는 어떻게 가야 한다고 생각하나?

그동안 한국교회는 성공지향과 물량주의로 가는 모습이 있었다. 그래서 때로는 사회의 지탄을 받기도 했다. 그런데 구약에서 전쟁과 기근과 전염병은 하나님의 심판의 도구였다. 예레미야서나 에스겔서를 보면 전염병이 이야기가 자주 언급된다. 그러니까 오늘날의 전염병(코로나19)도 결코 우연한 것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우리가 건강할 땐 모르고 지내다가 암이나 중한 병에 걸려서 병상에 누우면 본질적인 신앙을 찾게 되듯이, 오히려 코로나19를 통해서 기독교의 본질적 가치를 더 추구하게 되지 않았나 생각한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너희는 가서 제자를 삼으라고 말씀하셨다. 내가 정말 주님의 제자인가를 돌아봐야 하고 우리 교회에서 주님의 제자가 배출되고 있는가를 돌아봐야 한다. 초대교회의 핍박과 한국 교회 130년 전의 어려움에 비하면 지금 우리가 겪는 어려움은 아무것도 아니다. 이런 일이 있을수록 본질적 가치에 집중해야 한다. 골프의 황제라고 불리는 타이거 우즈가 슬럼프에 빠지면 기본기로 돌아간다고 한다. 그래서 처음에 배웠던 기본기를 다시 연습을 한다고 한다. 우리도 기본으로 다시 돌아가서 정말 예수님이 내 인생의 주인이신가. 내 인생의 왕으로 주님이 계신 것인가. 예수 그리스도가 정말 내 삶의 제사장이 되셨는가. 정말 예수님의 말씀이 선지자의 말씀으로 내 인생을 움직이고 있는가. 보다 본질적인 가치에 우리의 신앙을 되돌아보는 계기가 되어야 할 것이다.

Q. 요즘 특별히 생각하는 것이있나?

비행기가 이륙할 때 보다 착륙할 때가 더 위험하다. 내가 착륙할 때가 다 되어가고 있다. 등산할 때도 산에 오를 때보다 하산할 때 사고의 위험이 더 크다. 정점에 이르렀을 때 섰다 할 때 넘어질까 조심해야 한다. 이제는 더 올라가기보다는 내려가는 시점인데 하나님의 영광 가리지 않고 아름답게 바통 터치가 이뤄지도록 아름다운 은퇴를 하고 싶다. 물론 노은교회 담임은 은퇴하지만 나의 사역은 은퇴하지 않을 것이다. 더 좋은 사역을 준비하고 있다. 그래서 아름다운 은퇴. 건강한 사역의 바통터치. 이런 것들을 요즘은 많이 생각한다.

Q. 나 자신에게 가장 큰 영향을 끼진 말?

‘녹슬지 말고 닳아 없어지자’는 목회하면서 내 생활의 기준이라고 할 수 있는 생각이다. 어느 집에 갔더니 두꺼웠던 칼이 아주 얇게 남은 것을 보게 됐다. 평생을 그 칼을 가지고 요리를 한 것이라는 생각을 하니 닳아 없어진 칼이 너무 멋있게 느껴졌다. 나의 목회의 역량이 사용되지 않고 녹슬어버리면 얼마나 아쉬울까. 그래서 내 목회의 역량도 닳아 없어질 때까지 주님 앞에 서는 그날까지 온전히 쓰이고 싶다. 사도바울이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라고 고백한 것처럼 내 생명이 다하는 날까지 최선을 다해서 사용되고, 그 이후로는 주님이 내게 주실 상급을 바라볼 수 있길 바란다.

| 세상의 시선

Q. 세상을 어떤 시선으로 바라보는가?

세상은 왜 남을 짓밟고 괴롭혀야만 사는가? 왜 남의 것을 빼앗고 남을 짓밟아야만 올라가는가? 같이 공존하고 더불어 행복하고 왜 그런 사회는 못 만들까. 함께 공유하면서 얼마든지 잘 살 수 있을 텐데. 우리 주님이 원하시는 사회는 더불어 행복한 사회이다. 기술 분야든, 가르치는 분야든, 사업가도, 목회도 마찬가지이다. 그래서 나는 교회 연합회 활동도 아주 중요하게 생각한다. 함께 교회가 부흥되고 함께 가야 한다. 좋은 것이 있으면 함께 공유하고 가면 좋겠다. 그래서 우리 교회는 나의 설교 원고 그대로를 몇 년치씩 다 공유한다. 좋은 프로그램도 있으면 함께 나누고 베풀려고 노력하고 있다.

Q. 독자들에게하고싶은말?

꿈이 없는 백성은 망한다는 말이 있다. 쌀을 갖다주면 한 달만 행복할 뿐이다. 꿈을 심어주어야 한다. 꿈과 희망, 비전이 최고의 가치이다. 그래서 절망하는 사람들, 병든 사람들, 가난한 사람들, 흙수저 인생들에게 하나님의 비전을 심어주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공부도 꿈이 없으니까 안 하는 것이다. 왜 게으른가? 꿈이 없으니까 그런 것이다. 하나님이 주신 불타는 열정의 비전을 가진 사람이 어떻게 한가롭게 살 수 있겠는가. 인생을 낭비할 수 없게 된다. 그러니까 나는 하나님이 주신 비전을 가슴 가슴마다 심어주고 싶다. 그런 꿈꾸는 사람들이 될 수 있도록 우리 교회 성도들에게 꿈을 심어주는 목회를 하고 있다. 그것이 나의 목회의 방향이고 나 자신에 대한 소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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