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에서 차례를 기다리는데 갑자기 목사님~하는 소리가 들립니다. 다가와 제 앞에 마주 앉은 교인의 눈에 눈물이 핑 돕니다. 무슨 어려움일까 제 머리는 초고속으로 돌아갑니다. 사람들이 많아 집중해야 말이 들립니다. 남편이 심하게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합니다. 줄 돈 못 주고 받을 돈 못 받아서 부도가 났습니다. 자신은 채권자들에게 용서를 빌며 다니고 있습니다. 유학까지 다녀온 분이 저렇게까지 되었나 싶어서 저는 속으로 놀랍니다. 남편이 자살 시도까지 했답니다. 절망적인 상황에 마음이 아픕니다. 이야기를 하다가 얼굴이 갑자기 환해집니다. 남편이 하나님을 만났답니다. 부부가 함께 철저히 회개했답니다. 믿음으로 하나님을 바라보게 되었답니다. 현실은 안타깝지만 하나님의 손길은 놀랍습니다. 

요셉이 생각납니다. 우리는 요셉을 좋아합니다. 요셉은 어디서나 형통했습니다. 애굽의 친위대장 보디발의 집에서도 형통했습니다. 보디발은 요셉에게 집안 관리의 전권을 맡겼습니다. 요셉은 감옥에서도 형통했습니다. 간수장은 옥중죄수관리와 제반 사무를 그에게 다 맡겼습니다. 요셉은 바로의 꿈을 해석하고 애굽의 총리가 되었습니다. 형통함의 절정입니다. 

그래도 요셉은 노예의 형통보다 자유인의 불통을 바랐을 겁니다. 요셉은 성추행범으로서의 형통보다 고향집에서의 불통을 바랐을 겁니다. 그는 억울한 13년을 보냈습니다. 그 기간동안 그는 형통했습니다. 그러나 요셉은 그런 형통보다 형들의 질투 속에 사는 편을 원했을 겁니다. 그러니 성경의 형통은 고난과 억울함이 있습니다. 성경의 형통은 차라리 불통이 낫겠다고 할 정도의 어려움이 있습니다. 요셉의 형통이 그런 것이었습니다. 

우리는 384장 찬송을 즐겨 부릅니다. “무슨 일을 만나든지 만사형통하리라.” 그런데 어느 유명한 목사님이 이렇게 말했습니다. “만사형통한 인생은 없다. 그 가사는 틀렸다.” 그렇습니다. 인생에는 반드시 고난이 있습니다. 문자 그대로의 만사형통은 없습니다. 하지만 그 목사님은 가사를 너무 성급하게 읽었습니다. 그 앞에 “무슨 일을 만나든지”가 있습니다. “무슨 일”에는 좋은 일도 나쁜 일도 괴로운 일도 억울한 일도 들어 있습니다. 어떤 종류의 일을 만나도 모든 일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게 됩니다. 그것이 성도가 노래하는 만사형통입니다. 

하나님은 퍼즐 맞추시듯 복합플롯으로 우리의 인생을 섭리하십니다. 하나님은 그 퍼즐 속에 만사형통을 보물처럼 감추어 놓으셨습니다. 그 보물이 반짝 튀어나오면서 우리 인생의 형통함을 밝혀줍니다. 요셉의 억울함도 나중에 보니 자기 가족 구원을 위한 것이었습니다. 결국 그 가족이 민족이 되었습니다. 요셉 개인의 형통이 민족의 역사를 열었습니다. 요셉도 만사형통의 인생을 살았습니다. 하나님은 요셉에게 최고의 멋진 형통을 선물하셨던 겁니다.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힘겹게 걸어가는 이들이 많이 있습니다. 난치병에 걸린 자녀로 인해, 알콜중독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는 남편으로 인해, 이단에 빠진 아내로 인해, 장기투병중인 부모로 인해, 직장이나 사업에 희망이 보이지 않아서, 남에게 말할 수 없는 고통 가운데서 괴로워하는 이들이 많이 있습니다. 이들에게 만사형통은 먼 나라 이야기처럼 들립니다. 그래도 성도의 인생에는 모든 퍼즐이 맞춰질 때가 옵니다. 최고의 인생이었다고 고백할 때가 옵니다. 은행에서 만난 자매 부부도 그런 때가 빨리 다가오기를 기도합니다. “만사형통하리라.” 믿음으로 이 찬송을 부르면서 살아가야겠습니다. 

저작권자 © 투데이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