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무지개 너머 1
창7:11~8:22
홍수는 두 경로로 시작되었습니다. 땅 속으로부터 물이 솟아올랐고, 하늘로부터 엄청난 비가 쏟아져 내렸습니다. 두 방향에서 쏟아지는 물이 하나로 합치며 커다란 홍수가 되어 땅을 덮었고 일 년에 가까운 시간동안 지구는 홍수라는 격변을 겪게 됩니다.
노아가 육백 세 되던 해 둘째 달 곧 그 달 열이렛날이라 그 날에 큰 깊음의 샘들이 터지며 하늘의 창문들이 열려 사십 주야를 비가 땅에 쏟아졌더라(창7:11~12, 개역개정)
노아가 육백 살 되는 해의 둘째 달, 그 달 열이렛날, 바로 그 날에 땅 속 깊은 곳에서 큰 샘들이 모두 터지고, 하늘에서는 홍수 문들이 열려서, 사십 일 동안 밤낮으로 비가 땅 위로 쏟아졌다.(창7:11~12, 새번역)
지금도 바다는 지구 표면의 70%를 덮고 있습니다. 넓기도 하지만 가장 깊은 곳은 10km가 넘을 정도니 지구를 둘러싸고 있는 바닷물 전체의 양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많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많은 물로도 지구 전체를 덮기엔 부족합니다. 30%에 해당하는 육지가 바다보다 높기 때문이죠. 따라서 육지를 포함해 지구 전체를 모두 덮을 정도의 홍수가 나기 위해서는 나머지 70%를 차지하는 바다 영역까지도 덮을 만큼 많은 물이 필요하니 어쩌면 지금 우리가 보는 바닷물의 양에 버금갈 정도로 많은 물이 추가로 필요할지도 모릅니다. 그렇다면 노아 시대에 홍수를 일으킨 물은 어디에서 왔고 지금은 어디로 가고 없을까요? 혹 홍수 이전에는 육지가 낮았다가 홍수 이후에 지각 변동으로 높아지면서 지금의 바다가 된 것일까요? 아니면 지하수가 터져 올라온 만큼 육지가 낮아지면서 홍수가 났을까요? 그도 아니면 창세기 1장에 기록된 궁창(창공) 위의 물이 지면으로 쏟아져 내려와 홍수가 되었다가 사라진 것일까요? 그럴듯한 추측을 여러 가지로 할 수 있지만 성경이 우리에게 보여주는 것만으로는 완전히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이 또한 과학의 영역으로 남겨두어야 할 것 같네요.
홍수 이야기는 다층적입니다. 죄와 심판이라는 측면의 도덕적인 이야기이기도 하고 지구 환경의 열쇠를 제공하는 흥미로운 과학 이슈이기도 하죠. 방주의 생김새와 가로, 세로, 높이의 비율을 따지면 인간이 만들 수 있는 가장 안정적인 선박의 구조라는 주장도 있고 세상의 모든 동물이 다 들어갔다면 공룡 또한 방주에 들어갔을 것이라 생각하는 이들도 있습니다. 워낙에 대형 사건인 만큼 이것 말고도 굉장히 많은 이야깃거리들이 있죠. 조금 다른 관점에서도 한 번 볼까요? 창조의 관점으로 생각한다면 이것은 수정 작업과 같습니다. 이제까지의 모든 지구 역사를 없던 것으로 돌리고 방주에 탄 사람과 동물들을 통해 새로운 세계를 시작하려는 것이니까요. 이 과정에서 육지 환경이 송두리째 바뀌게 됩니다. 생태와 기후는 물론, 이제껏 사람들이 만들어 온 모든 문명이 물속에 잠기며 사라지게 되었죠. 노아와 그 후손들이 가져왔거나 습득한 지식들만 빼고요.
하나님은 어째서 자신의 세계를 그토록 단호하게 심판하셨을까요? 이유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그렇게 하실 수 있는 분이라는 사실이 더 중요하니까요. 우리가 이제껏 살펴본 것처럼 하나님이 완벽한 창조자이심과 동시에 자기 세계를 움직이는 확고한 질서를 가지고 계신 것은 분명한 사실입니다. 그런데 이것이 다가 아닙니다. 설령 직접 개입하지 않는 때에도 그분은 자기 세계를 끊임없이 관찰하고 계시며 언제든 고칠 수 있는 분이기도 합니다. 대홍수로 온통 물에 덮인 지구는 창세기 1장 6절에서 창공(궁창) 위의 물과 아래의 물로 나뉘기 전의 상태로 돌아간 것입니다. 처음 천지가 창조되었을 때는 온 땅이 물에 덮여 있었고 둘째 날 창공 위아래의 물로 나뉜 후 셋째 날 창공 아래의 물이 육지와 바다로 나뉘게 되는데 대홍수로 온 땅이 물로 뒤덮이면서 둘째 날이 되기 전의 모습이 재현된 겁니다. 마치 기계장치에 달린 초기화 버튼을 누른 것처럼 모든 것이 최초의 상태로 돌아간 것이죠. 이후 하나님께서 만드신 새로운 세계가 오늘날 우리가 보는 세상이고요.

하나님이 노아와 그와 함께 방주에 있는 모든 들짐승과 가축을 기억하사 하나님이 바람을 땅 위에 불게 하시매 물이 줄어들었고(창8:1, 개역개정)
그 때에 하나님이, 노아와 방주에 함께 있는 모든 들짐승과 집짐승을 돌아보실 생각을 하시고, 땅 위에 바람을 일으키시니, 물이 빠지기 시작하였다.(창8:1, 새번역)
하나님은 굳이 노아를 선택하지 않으실 수도 있었습니다. 아예 세상의 모든 인간을 다 없애고 새로운 사람을 창조하면 되니까요. 하지만 그것은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방법이 아니었습니다. 창조하시고 좋았다고 하신 세상과 인간을 모두 포기하실 마음은 없었으니까요. 하나님은 홍수로 세상을 심판하시는 가운데에서도 노아의 가족과 방주에 함께 탄 동물들을 생각하셨습니다. 어떤 생각을 하셨을까요? 아마도 그들의 지금 모습과 본성에 대해 생각하셨을 것 같습니다. 앞으로도 달라지지 않을 인간의 어리석음과 나약함, 하지만 또 다른 면에서 무한한 가능성을 가지고 있고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 만큼 아름다운 그들의 영혼을 동시에 생각하셨을 겁니다.
…내가 다시는 사람으로 말미암아 땅을 저주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사람의 마음이 계획하는 바가 어려서부터 악함이라 내가 전에 행한 것 같이 모든 생물을 다시 멸하지 아니하리니(창8:21, 개역개정)
…”다시는 사람이 악하다고 하여서, 땅을 저주하지는 않겠다. 사람은 어릴 때부터 그 마음의 생각이 악하기 마련이다. 다시는 이번에 한 것 같이, 모든 생물을 없애지는 않겠다.(창8:21, 새번역)
사람의 악함을 보시고 세상을 심판하셨지만 사람과 악을 완전히 떼어놓을 수 없음이 분명했습니다. 하나님께 은혜를 얻었던 노아라 할지라도 마음에 악이 없는 것은 아니었으니까요. 8장 21절이 이것을 정확하게 드러냅니다. 하나님은 사람의 악함 때문에 땅을 저주하지 않겠다고 하십니다. 홍수 심판에도 불구하고 사람에게서 악이 사라지지 않을 테니 악이 발견될 때마다 심판을 한다면 애꿎은 땅만 계속 고통을 받을 테니 차라리 이런 심판을 내리지 않으시겠다는 것이죠. 하나님은 인간의 본성을 바꾸는 대신 하나님의 방식을 바꾸기로 하셨습니다. 인간과 세상, 인간과 하나님의 관계를 새로 정립하는 것이죠. 이것이 이어지는 8장 22절부터 9장 17절까지의 내용입니다.

땅이 있을 동안에는 심음과 거둠과 추위와 더위와 여름과 겨울과 낮과 밤이 쉬지 아니하리라(창8:22, 개역개정)
땅이 있는 한, 뿌리는 때와 거두는 때, 추위와 더위, 여름과 겨울, 낮과 밤이 그치지 아니할 것이다.(창8:22, 새번역)
변화의 시작은 자연입니다. 심음과 거둠, 기후 변화, 계절 변화, 낮밤 변화가 있을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여기서 언급된 것들을 하나로 묶는 단어가 있다면 ‘순환’입니다. 왜 이런 말씀을 주셨을까요? 홍수 이전에는 여름과 겨울이 없었을까요? 이 말씀으로 미루어 볼 때, 홍수 이전에는 기상 변화가 거의 없었던 것 같습니다. 여름과 겨울이 없다면 사시사철 봄, 가을과 같은 따뜻하고 살기 좋은 기후였다는 것인데 이런 상황에서는 식물이 잘 자라기 때문에 일 년 열두 달 과일과 곡식이 풍성하게 열렸을 겁니다. 당연히 정해진 파종과 추수 시기가 있는 것이 아니라 아무 때나 심고 거둘 수 있었을 것이고요. 아담이 죄를 범하고 에덴을 쫓겨나오며 땀 흘리며 수고해야 소산을 얻게 되는 벌을 받았다고는 하지만 기후로만 보면 수고에 대한 대가, 즉 노동에 대한 생산성은 홍수 이후보다 훨씬 좋았던 것이죠. 그러다 보니 홍수 이전에는 먹고 사는 문제가 그렇게 심각하지 않았습니다. 가인의 후손들이 여러 기술을 발전시킬 수 있었던 것도, 하나님의 아들들과 사람의 딸들이 죄를 범하게 되는 것도 모두 좋은 기후와 풍족한 먹거리가 뒷받침해 주었기에 가능했을 겁니다. 그런데 홍수 이후 기후변화가 생기면서 이 모든 조건이 송두리째 바뀌게 됩니다. 식물이 잘 자라는 계절과 그렇지 못하는 계절이 있다 보니 열매를 맺는 것도 일 년에 한 번 뿐이고, 작물을 수확하는 빈도도 확 줄어들게 되었죠. 당연히 사람에게는 불리한 조건일 수밖에 없고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더 많은 땅을 농지가 필요해 자연이 살아 숨 쉬던 땅을 인위적으로 갈아엎어야 하니 결국 사람과 자연 모두가 힘들어지는 셈입니다. 하나님은 순환이 쉬지 않을 것이라고 하셨는데요, 이것이야 말로 홍수 이후 하나님이 정하신 새로운 질서의 또 다른 표현이기도 합니다.
하나님의 전능하심과 사랑에 대해 다시금 묵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