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연동서부교회 이상성 목사(lee-sangsung@hanmail.net)의 작품-
-제주연동서부교회 이상성 목사(lee-sangsung@hanmail.net)의 작품-

사도행전 20장에 나오는 유두고는 나에게 아주 특별한 인물이다. 나는 어머니 뱃속부터 교회를 다닌 소위 ‘모태신앙인’으로 주일학교 때부터 목사님, 전도사님이 설교 시간에 졸면 유두고처럼 죽을 수 있다는 무서운 위협을 받으며 자랐다. 어린 나에게 유두고는 ‘문제 신앙인’이었다.

그렇지만 신학을 전공하고, 성경을 차근차근 공부하면서 그때 목사님, 전도사님들이 유두고를 많이 오해했다고 확신한다. 아직 그때의 목사님, 전도사님들이 천국에 가실 나이는 아니니 천국에 가서 유두고로부터 “너희들 나를 오해했다”는 책망을 듣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해 본다.

내가 이렇게 생각하는 이유는 성경에서 유두고를 ‘청년’이라고 하는데, 여기에 사용된 헬라어 ‘파이스’(παίς, 행 20:12)는 당시 주인 밑에서 일하는 노예를 말할 때 사용된 단어이다. 그렇게 본다면 유두고는 노예로 하루 종일 주인이 시킨 일을 하다가 내일이면 사도 바울이 드로아를 떠난다는 이야기를 듣고는 말씀을 듣기 위해 피곤한 몸을 이끌고 왔던 사람임이 분명하다. 유두고가 얼마나 피곤했겠는가? 인권이 발달된 시대도 아니고, 노예의 신분으로 주인이 시키는 온갖 잡다한 일을 하고 쉬어도 될 시간에 왔으니 말이다.

게다가 이때 사람들이 모인 곳이 윗다락이라고 하는데, 그곳에 등불이 켜져 있었다(행 20:8). 등불에서 발산되는 이산화탄소는 노예로 하루 종일 힘든 일을 한 유두고를 더욱 졸리게 했을 것이다. 아마도 그는 다리도 꼬집고, 뺨도 때리며 졸음을 쫓아보다가, 결국 시원한 바람이 들어오는 창쪽으로 갔는데, 그 곳에서도 피곤을 이기지 못하고 졸다가 떨어져 죽었던 것으로 짐작된다.

한 노예가 죽었다! 그런데 여기서 한 생명, 그것도 당시에는 사람이 아닌 재산 목록으로 취급받던 노예도 존귀하게 여기는 사도의 마음을 보게 된다. 사도 바울은 이 상황에서 집회를 계속하지 않았다. 사람의 생명의 문제가 발생하자, 오늘날로 말하면 그 중요한 예배 중단하고, ‘내려갔다’는 것이다. 사도행전의 저자가 의사인 누가이므로, 유두고가 ‘죽었다’고 기록한 것은 정확한 사실이다.

그렇다면 유두고는 어떻게 해서 죽었을까? 팔 다리 깨어졌다고 사람이 죽지 않는다. 그렇다면 머리가 땅에 있는 돌에 부딪혀 죽었을 것이다. 깨진 머리와 그 머리에서 흘러내리는 피를 생각하면 참 비참하다. 이런 비참한 현실 앞에서 하나님의 사람 바울은 ‘집회 중단하고’, ‘내려가서’, ‘유두고의 몸 위에 몸을 엎드려’, 그의 ‘몸을 안았던’ 것이다.

“정통 유대인인 그가 죽은 시체를 안는다?” 더구나 피를 몸에 묻혀 가면서 말이다. 보통 일이 아니다. 유대교의 정결예식에 의하면 바울은 부정한 사람이 되는 것이었다(민 19:11-16). 더구나 죽은 사람인 것을 이미 알고도 그렇게 했다면 더욱 크게 책망을 받고, 바울이 지금까지 쌓아왔던 명성이 한 순간에 무너질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이때 바울은 당시 인간 대접 받지 못하는 노예 한 명 살리고자 그 모든 사람들의 시선과 당시의 규정에 매이지 않았다. 그는 내려갔고, 죽은 사람의 몸을 안았다. 이렇게 3층에서 내려오는 모습은 하늘 보좌의 영광을 버리고, 이 땅에 내려오신 우리 주님의 모습을 보는 듯하다. 피로 범벅이 된 유두고를 안는 모습은 죄로 비참하게 죽은 우리를 감싸 안은 우리 주님의 모습을 보는 듯하다.

이런 점에서 유두고의 명예는 반드시 회복되어야 한다. 그는 결코 말씀 듣는 것을 소홀히 한 사람이 아니다. 말씀 잘 듣지 않고 졸다가 비참하게 죽은 문제 그리스도인도 아니다. 그의 명예를 더럽히지 말아야 한다.

그와 함께 하나님의 사람은 인간 취급받지 못하는 ‘한 사람’도 포기하지 않아야 한다. 그리스도인은 사람을 살리기 위해서라면 그 귀한 말씀사경회도 중단하며, 율법의 규례가 엄히 금하는 피를 묻혀 가면서까지 생명을 살리는 일에 힘써야 한다. 이것이 하나님의 사람이 걸어가야 할 길이고, 하나님의 교회가 오늘 이 시대에 감당해야 할 일이다.

오늘 이 땅의 많은 그리스도인들의 입에서 죽음의 말들이 난무한다. 그러나 성도와 교회는 죽음을 노래하지 않는다. 긍휼로 가득차야 하고, 생명을 노래해야 한다. 이것이 바로 하늘이 땅으로 내려온 복음이다! 예수 그리스도 십자가의 비밀이다! 이 십자가가 혼란한 이 땅의 모든 복잡한 문제를 푸는 유일한 열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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