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연동서부교회 이상성 목사(lee-sangsung@hanmail.net)의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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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칼럼의 제목을 상당히 도발적으로 잡아봤다. “당신은 하나님께로부터 난 사람입니까?” 필자인 나 자신도 뜨끔하다. 그럼, 하나님께로 난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 이 사람의 특징은 무엇일까? 여러 가지를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주일마다 예배를 드리고, 식사를 할 때 기도를 하고, 나의 소중한 것을 구별하여 헌금하고, 성경을 읽고 큐티를 하고, 소그룹 모임을 소중히 여기고 참여하는 사람이 하나님께로부터 난 사람일 가능성이 많다.

그러나 이런 외적인 것보다 좀 더 본질적인 특징이 있다. 사도 요한은 이 문제에 있어 두루뭉술하게 말하지 않는다. 요한일서를 통해 아주 직접적으로 말씀한다.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마다 죄를 짓지 아니하나니 이는 하나님의 씨가 그의 속에 거함이요 그도 범죄하지 못하는 것은 하나님께로부터 났음이라”(요일 3:9). 조금은 충격적인 말일 수도 있는데,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는 죄를 짓지 않는다고 한다.

물론 이 말을 오해해서는 안 된다.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는 어떤 죄도 짓지 않는다는 ‘도덕적 완벽주의’를 말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구속의 은혜로 하나님의 자녀가 된 순간부터 죄를 멀리하고 거룩한 인생을 사는 ‘성화의 삶’을 살아간다. 그러나 주님이 우리를 부르셔서 ‘영화의 삶’의 단계에 이를 때까지 죄의 영향력에서 완전히 벗어나지는 못한다. 구속의 은혜 속에 살면서도 육신을 가진 우리에게 남아 있는 죄의 영향력으로 무너질 때도 있다.

그렇지만 이것을 오해해서는 안 된다. 이 땅에서 완벽하지 않기에 죄에 대해 가볍게 생각하고, 습관적으로 죄를 짓는 것이 허용된다는 것이 아니다. 만약 어떤 사람이 죄를 끊임없이 반복적으로 짓고, 그 후 특별한 양심의 가책도 없이 습관적으로 죄를 회개한다면 그 사람이 구원 받았다고 하는 것에 대해 심각한 의심을 할 수 밖에 없다.

주님으로부터 특별한 사람을 받았던 사도 요한은 분명히 말한다. 죄를 짓는 자는 마귀에게 속하였다고 말이다. 그래서 ‘죄를 짓는 자’와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를 비교하며, 이 두 사람은 완전히 다른 부류의 사람임을 말한다(요일 3:8~9). 결코 함께 할 수 없는 사람이란 것이다.

그럼 이런 질문이 생긴다.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는 왜 죄를 짓지 않게 되는가?” 사도 요한은 ‘하나님의 씨’가 그의 속에 거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요일 3:9). 다시 질문이 생긴다. “그럼 이 하나님의 씨는 무엇인가?” 베드로전서는 이 하나님의 씨가 무엇인지를 정확하게 말한다. “너희가 거듭난 것은 썩어질 씨로 된 것이 아니요 썩지 아니할 씨로 된 것이니 살아 있고 항상 있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되었느니라”(벧전 1:23). 즉, 이 하나님의 씨는 하나님의 말씀이다. 거룩한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 안에 있기에 육신의 연약함으로 죄를 짓게 되면 즉시 철저한 회개가 뒤따르게 된다.

또한 이 하나님의 씨는 ‘거룩한 성령님’이시다. 예수를 주로 믿는 모든 사람에게는 거룩한 성령님이 내주하신다(롬 8:9). 성령님은 우리 안에 거하심으로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해 간구하시며, 우리를 도우신다.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는 마땅히 기도할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롬 8:26).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는 죄의 반대편에 있는 의를 행하고, 형제를 사랑하게 된다(요일 3:10). 의로우신 빛의 자녀이기에 죄의 가장 큰 형태인 불의를 미워하고, 주님이 피값으로 주고 사신 형제를 사랑한다. 이것은 절대 변함이 없는 완전한 공식이다.

그렇기에 소위 오늘날 ‘값싼 구원’을 주장하는 자들의 주장이 얼마나 잘못되었는지를 알게 된다. 이런 주장을 하는 사람은 그냥 한 번이라도 입으로 예수를 주로 믿는다고 고백하기만 하면 그냥 구원을 얻게 된다고 한다. 이런 잘못된 구원론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이루신 구원을 값싸게 취급한다. 우리의 구원은 분명 하나님의 은혜로 주어졌다. 우리가 한 것이 전혀 없이 하나님의 선물이다(엡 2:8).

그러나 명심해야 한다. 그 놀라운 구원을 이루기 위해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는 엄청난 대가가 지불되었음을 말이다. 그 엄청난 대가를 생각한다면 베드로전서의 말씀처럼 죄에 대하여는 죽고 의에 대하여는 살아야 한다(벧전 2:24). 그리고 주님이 당신의 죽음을 통해서까지 사랑하신 형제자매를 뜨겁게 사랑해야 한다.

우리는 독일의 신학자로 나치에 대항했던 본회퍼(Dietrich Bonhoeffer)가 그의 저서 <제자도>에서 한 말을 명심할 필요가 있다. 본회퍼는 말씀의 실천 없이 받는 구원은 사탄의 속임수이자 ‘값싼 은혜’(cheap grace)라고 했다. 그리고 값싼 은혜와 값비싼 은혜를 비교하며 다음과 같은 말을 했다. “값싼 은혜는 회개를 요구하지 않는 죄사함입니다. 값싼 은혜는 말씀을 따르지 않고 세례를 받으며, 예수님에 대한 사랑 없이 성찬에 참여하는 것입니다. 값싼 은혜는 주님이 항상 용서를 베푼다고 생각하며 거리낌 없이 죄를 짓는 삶의 태도입니다.” 결론적으로 본회퍼는 값싼 은혜는 교회의 치명적인 적으로서 그리스도께로 가는 길을 닫아버리고 방해하는 것이라고 했다.

여러분은 하나님께로부터 난 사람인가? 그렇다면 죄를 멀리하고 의와 사랑을 택하고 행해야 한다. 죄와 싸우되 피 흘리기까지 싸워야 한다. 죄와 적당히 타협해서는 안 된다. 하나님의 아들이신 우리 예수님이 우리의 죄를 없애기 위해 십자가에서 당신의 귀한 몸을 찢고 한 방울 남은 피와 물까지 다 흘려주셨음을 잊지 말라. 그리고 주님의 마음으로 나의 형제자매를 사랑하라. 바로 이런 사람이 하나님께로부터 난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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