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학교 2학년 시절, 학생 민주화 운동을 주도한 혐의로 학교에서 제명, 강제 징집, 선교단체 수련회 에서 예수님 만나 
이희재 선교사 "사도바울이 투박하게 쓴 편지들이 성경이 된 것처럼, 우리 삶이 하나님께 쓰임 받을 수 있도록 준비되길"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26년간 디베랴교회, 미르한인교회, 미르고려교회, 미르신학교 설립 등 열정적인 사역 이뤄

정의감에 불타던 청년이 하나님의 은혜로 예수님을 영접하고, 러시아 복음화의 사명을 받아 1994년부터 26년간 러시아 복음화를 위해 헌신해왔다. 하나님의 놀라운 인도하심으로 하나님 나라의 선동자로 사역하고 있는 러시아 이희재 선교사를 만나본다.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사역하는 이희재 선교사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사역하는 이희재 선교사

I 삶의 시선 

Q. 하나님의 첫사랑을 경험한 순간은? 

1979년 10월 26일. 박정희 대통령의 시해 소식을 들었다. 함께했던 운동권 친구들은 만세를 불렀지만 나는 또 다른 죽음 앞에 침묵하게 되었다. 곧바로 아버님이 사고로 안타깝게 돌아가신 것이다. 그때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이 심각하게 다가왔다. 그리고 나는 예수를 구주로 믿게 되었다. 하지만 한동안 나의 삶의 주인은 나 자신이었다. 내 삶의 목표와 방향은 쉽게 바뀌지 않았다. 그러던 1980년 5월 14일, 영등포역 앞에서 데모를 주도하는 일이 일어나게 되고 도망 다니던 어느 날, 오래전부터 나를 전도하던 친구 김정환이 나에게 예수전도단(한국 YWAM) 5박 6일의 전도요원 훈련에 가도록 권유했다. 참가비를 대신 내어주어 나는 참여하게 되었다. 

며칠 동안 말씀과 강의, 저녁 특별집회가 진행됐다. 창조와 구원, 성령에 대한 강의를 여러 강사를 통해 들었다. 마지막 날 밤, 어느 인도자가 강력히 인도했다. 그러나 내겐 그 모습이 선동으로 밖에 느껴지지 않았고 어색해 보였다. 나는 그 강사보다 선동을 더 잘할 것 같았다. 그들의 율동은 아름다웠으나 민족이 어려운 이 시기에 무슨 찬양인가 싶은 생각이 들어서 그들의 어린아이 같은 모습을 관망하면서 그냥 앉아 있었다. 

그런데 그런 나에게 갑자기 주님의 빛이 비쳤다. 그들이 적어도 이 순간만큼은 나보다 저분들이 더 정직하고 순수하다는 생각이 스쳐갔다. 성령이 교만하고 완악한 나를 책망하자 내가 죄인인 것을 고백하게 되었고 회개하게 되었다. 이어서 다른 인도자가 앞으로 나오라 하였을 때 나에게 뜨거운 불이 내렸다. 고린도전서 12장 첫 번째에 나오는 지혜의 말씀의 은사를 구했다. 그런데 지혜를 받았는지 확실히 느낄 수가 없었다. 오히려 하나님으로부터 혹 버림받지나 않았나 하는 무서운 생각도 스쳐 갔다. 그리곤 두 번째 초청이 이어졌다. 그때는 겸손히 아무 은사라도 주시도록 구했다. ‘방언도 좋고요’라는 생각이었다. 그런데 그 즉시 알지도 못하는 방언이 막 튀어나왔다. 할렐루야! 마음 깊은 곳에서 생수가 터져 나온 것이다. 그날 하늘이 얼마나 맑아 보이던지 지금도 생각하면 그 기억이 생생하다. 그날 이후로 나는 새벽마다 가까운 교회나 집 근처 야산에서 새벽기도를 하게 되었다. 그 어렵던 성경이 귀한 달고 오묘한 말씀으로 다가오기 시작했다.

Q.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기 전과 후의 모습의 변화는?

어릴 적 나는 대통령이 되는 것이 꿈이었다. 그리고 학창 시절 반장이나 대표 역할도 많이 했다. 서울대학교에 입학한 해에 1학년 교양과정부의 대의원회 의장을 하면서, 장래에 국회의원 등을 거쳐 야당의 대권후보가 되고 싶은 꿈이 커졌다. 민족의 지도자가 되고 싶은 낭만적인 야망이었다.

그런데 예수님을 만나고 나니까 당시에 추구하고 닮고 싶었던 정치 지도자들에 대한 존경이 사라졌다. 존경의 대상이 달라진 것이었다. 하나님의 사람들을 바라보게 되었다. 그리고 근본적으로 삶의 방향이 바뀌어서 주님을 전하며 주의 종으로 살고 싶어졌다.

미르수양관에서 열린 미르고려교회 수련회에서 성도들이 함께 식사를 하고 있다.
미르수양관에서 열린 미르고려교회 수련회에서 성도들이 함께 식사를 하고 있다.

Q. 당신의 삶을 공유하는 홈그라운드는?

나의 홈그라운드는 미르선교회이다. 나의 삶과 사역을 이야기할 때 미르선교회는 빼놓을 수 없다. ‘미르(МИР)란 영어 Mission Jesus in Russia의 러시아어 약자이고 평화라는 뜻이 있다. 1995년 5월에 함께 사역하던 한인 선교사들과 함께 설립한 초교파 선교단체이다.

매일 새벽에 미르선교센터에서 기도하고, 미르사무실에서 업무를 보고, 선교회를 중심으로 한인 선교사를 비롯한 현지 목회자들과의 사역도 이뤄진다. 감사하게도 지금까지 미르신학교를 통해 100명이 넘는 졸업생을 배출했다. 졸업생들은 러시아 전역으로 퍼져 목회자와 교사로 사역하고 있고, 러시아 개신교의 확장에 일익을 담당하고 있다. 

2020년 10월에 열린 영락교회 선교부흥회에서 이희재 선교사 부부가 협동선교사로 파송을 받았다.
2020년 10월에 열린 영락교회 선교부흥회에서 이희재 선교사 부부가 협동선교사로 파송을 받았다.

Q. 최근 삶에 변화를 이끄는 것은? 

코로나 바이러스가 전 세계적으로 극심한 가운데 러시아도 예외는 아니었다. 러시아는 1일 확진자가 25,000명을 넘었다. 이런 가운데 한국에 잠시 방문할 기회가 있었는데, 모교회인 영락교회에서 열린 선교부흥회에서 우리 부부가 영락교회 협동선교사로 파송을 받게 되었다. 파송식을 통해 내 마음속에 이 시대를 향한 사명감도 새롭게 불타오르게 됐다. 26년이 넘는 러시아 선교 사역에서 하나님께서 숱한 어려움 가운데에서도 주님을 의지할 때 새로운 소망을 주시고 놀라운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했다. 이번 국내에서의 시간을 통해 다시 한번 하나님 나라를 향한 뜨거운 열정과 사명감으로 충전할 수 있게 되었다.

감사하게도 국내에 체류하면서 거의 매주일 개척교회 등에서 말씀을 전하고, 영상으로도 설교를 보내고 TV 방송국 출연과 온라인 선교세미나 발제 등 쉼 없이 하나님 나라를 위해 사용돼서 감사하다. 

I 사역의 시선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 시내 전경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 시내 전경

Q. 현재 사역하고 있는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는 어떤 곳?

러시아 북서부에 위치하고 있으며 모스크바에 이은 제2시 도시. 동·서양이 만나는 곳인 상트페테르부르크시는 인구가 약 480만 명으로 레닌그라드로 잘 알려져 있는 제정 러시아 시절의 수도이다. 러시아혁명을 통해 공산정권이 탄생한 곳이기도 하다. 현재 개신교는 약 1% 정도 되며 러시아 전역에 선교사들이 세운 교회와 선교회들이 많이 있다. 

미르수양관 헌당감사예배를 마치고 참석한 선교사들과 성도들이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미르수양관 헌당감사예배를 마치고 참석한 선교사들과 성도들이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Q. 지금 맡고 있는 사역을 소개한다면?

나는 1994년 11월 예장통합 교단 파송을 받고 러시아로 왔다. 상트페테르부르크의 한인 선교사들과 함께 중보기도 모임과 당시 야간으로 운영되어 온 연합 신학교 사역을 시작으로 선교사의 첫발을 내디뎠다. 그로부터 5년이 지난 후 러시아연합신학교는 주간으로 변경되고, 제자학교 등 사역을 하던 중 러시아 복음화와 제자 양육, 단기 선교사 파송을 위한 International Missionary Fellowship을 형성하기 위해 MIR선교회·신학교를 공동 설립해 디베랴 현지인 교회 개척, 미르고려교회, 미르한인교회 등에서 현재까지 동역하고 있다.

미르신학교는 복음주의 신앙을 견지하는 초교파 신학교로 20회에 걸쳐 약 100여 명의 졸업생을 배출하고, 이들 졸업생들은 현재 러시아 교회에서 목회자 혹은 교사로서 섬기고 있으며, 러시아 내의 개신교 확장에 일익을 감당하고 있다. 3년 전 근교에 미르 수양관이 세워지고 아직 수리가 덜되기는 하였으나 청소년 캠프들이 여름에는 열리기도 한다.

디베랴교회 주일 예배를 마치고 성도들과 함께 기념사진
디베랴교회 주일 예배를 마치고 성도들과 함께 기념사진

Q. 선교사로 사역하면서 경험한 특별한 하나님의 은혜는?

우리가 함께 사역하고 있는 미르한인교회가 5년 전쯤 거의 문 닫을 정도의 어려움을 경험했다. 선교사들이 함께 사역하다 보니 각자의 처지와 입장이 다르고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사명과 역할이 달라서 경험하게 되는 것 같다. 또 목회나 선교는 하나님의 일이지만 인간이 하는 것이기에 때론 모순과 불완전함이 있다. 인간의 무지와 탐욕으로 어려운 일을 당하게 되는 일들도 있다. 하지만 그때마다 주님을 바라보게 된다. 어려움을 겪는 선교사님들에게 같은 처지에 있는 선교사가 힘이 돼줘야 하는 데 한계가 있는 것을 경험한다. 그리고 영적인 문제와 경제적인 문제, 선교사들 간의 관계의 문제, 가족문제 등의 궁극적 해결은 역시 성령님의 인도하심과 관여하심에 맡겨야 한다. 물론 그 과정에 많은 아픔과 시간의 경과가 필요할지라도 잠잠히 기다려야 한다.

몇 해 전에 디베랴교회 입당예배가 감격적으로 있었다. 그 후 환율이 두 배로 올라가는 바람에 나머지 2층, 3층 구입 및 수리가 거의 불가능해졌다. 어떻게 해야 하나 걱정하고 있는데 함께 사역하는 선교사님들이 미르수양관으로 같이 세워나가자고 했다. 엄청난 재정을 혼자 감당하기 어려워 선교사님들에게 건축에 대한 부담을 나누려고 해도 잘되지 않았다. 원망과 답답함이 가득한 시간을 보내던 어느 날, 주님의 말씀이 다가왔다.

“내의 소유는 이것이니 곧 주의 법도들을 지킨 것이니이다”(시 119:56)

이후 선교사님들이 저마다 도움의 편지들을 써서 보내게 됐다. 그리고 감사하게도 후원금이 채워져서 이제는 대부분 수리가 마쳤다. 서로를 이해하고 협력하면서 주님께 의뢰해야 한다는 깨달음을 다시 경험하는 시간이었다.

I 생각의 시선 

이희재 선교사 가족(아내 김성은선교사, 두 아들 종은, 종한)
이희재 선교사 가족(아내 김성은선교사, 두 아들 종은, 종한)

Q, 내가 갖고 있는 가치관에 가장 영향을 끼친 사람은?

한경직 목사님을 통해 영향을 많이 받았다. 한경직 목사님은 나의 모교회인 영락교회의 원로 목사님이시자, 우리 부부의 결혼식 주례를 맡아주신 분이시다. 목사님의 삶과 목회를 가까이서 보면서 도전을 받았고 나의 인생과 사역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 

‘예수원’을 만들었던 대천덕 신부님의 균형 있는 영성을 통해서도 영향을 받았다. 개인과 공동체에 대한 시각, 사회를 바라보는 관점, 은사, 중보기도와 삶은 나에게 깊은 감명을 주었다.

바실레아 슐링커의 하나님만 의지하며 성령의 공동체를 이루면서 사는 삶을 보면서 큰 깨달음을 가졌다. 또한 독일 통일의 결정적 역할을 한 중보기도는 나의 신앙의 통찰력에 큰 영향을 주었다.

이희재 선교사의 두번째 저서인 '영성미션'
이희재 선교사의 두번째 저서인 '영성미션'

Q. 이번에 출간한 ‘영성미션’은 어떤 책인가? 이 책을 통해 기대하시는 것은?

실로 혀를 두를 만한 번쩍이는 영성의 거장들을 만났지만 우리의 삶을 변화시키거나 적용하기에는 번역과 문화의 차이 때문인지 설명하기 어려운 2%의 부족함도 느꼈다. 그런 이유로 한국 크리스천이고 목회자이며 선교사로서 치우치지 않으며 스스로의 한계를 인정하면서 나의 두 번째 저서를 통해 성령의 인격적인 역사하심과 깨닫게 하심 그리고 기름 부으심의 경험들을 나누고 싶었다. 

젊은 종에게는 헛된 꿈에 세월을 허송하지 않고 깨달음을 마음에 새기는 것이 더욱 귀하다. 

귀한 책과 강연이 얼마나 많은가? 그러나 나 자신에게 적용할 수 없는 것들은 무의미하다. 무엇보다도 우리에게는 영적 분별력이 필요하다. 우리의 삶에 주님께로부터 오는 깨달음은 너무 귀하다. 탁월한 주님의 종들도 이 깨달음이 부족하여 인생 막바지에 후회와 회한에 빠져든다. 아무쪼록 주의 영과 말씀으로 자유를 누리면서 새 창조의 사명과 회복의 역사에 함께 쓰임 받기를 기원한다. 

Q. 책 ‘영성미션’에서, ‘영성’이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그리고 영성과 우리 삶은 어떤 관계로 살아가야 하는지?

영성이란 존재론적 의미이다. 즉 ‘더 큰 가치가 무엇이고 왜 사는 것일까’를 생각하게 하는 영혼과 영혼의 소통, 존재를 생성하는 능력, 삶의 본질을 꿰뚫는 지능을 말한다. 

‘영성미션’에서 영성은 한마디로 살아계신 예수 생명과 예수 사랑을 날마다 믿고 자라며 누리며 전하는 삶이다. 

“사실 예수를 처음으로 진실히 믿는 순간에 우리의 가치관은 이미 세상 가치관과는 다른 길을 택한 것입니다. 그럼에도 그동안 몸에 밴 가치관이 우리를 알게 모르게 힘들게 합니다. 인생에는 예측하지 못한 작은 일이 커다란 슬픔과 아픔을 초래하기도 하고, 때로는 예비된 사명의 은총으로 연결되기도 합니다. 이따금 나 자신의 깊은 죄성을 보면서 탄식하지만 ‘하나님의 사람’으로서 정체성을 잃고 싶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궁극적인 계획과 원대한 방향을 바라보면서 말입니다.”(영성미션 중에서) 

Q. 독자에게 권면과 도전의 한마디?

예수 생명과 예수 사랑을 풍성히 맛보며 누리며 전하며 영성미션의 삶을 살길 바란다. 무엇보다 영성의 다양한 흐름과 상상할 수 없도록 자라가는 영성의 풍성함을 사모하면서 다가오는 영성의 시대에 오직 예수 생명과 예수 사랑을 말씀과 성령으로 전하며 나누는 놀라운 회복과 새 창조를 그려본다. 이 글을 읽는 모든 분들이 자신에게 역사하신 주의 오묘하고 깊은 손길을 다시금 깨닫기를 기대한다.

I 삶의 시선 

Q. 당신이 보는 세상은 어떤 세상인가?

요사이 한국 정치 사회에 등장하는 인물들이 전혀 모르는 이들이 아니기에 관심은 피할 수 없다. 한국 사회는 좌우가 극명하게 나누어져서 특히 믿는 이들 간에도 자신의 소신을 펼치려다 서로 마음 상하기 십상이다. 

마치 동족을 타이르다가 “네가 누구관대 우리 보고 이래라저래라 하느냐”라는 소위 권위 충돌 문제가 생겨서 미디안 땅에서 오랜 광야 생활을 맛봐야 했던 모세처럼 말이다.”

세상은 결국 종말로 향하여 가기에 참된 소망은 예수그리스도 안에 있다. 그러나 이 땅에서의 하나님 나라 구현도 우리의 사명이기 때문에 우리가 있는 그 자리에서 우리의 역할이 참으로 소중하다. 하나님은 우리가 성령으로 탄식할 때 우리를 통하여, 우리와 함께 궁극적으로 선을 이루신다.

미르선교회 성탄축하 연합예배에서 성도들이 특송을 하고 있다.
미르선교회 성탄축하 연합예배에서 성도들이 특송을 하고 있다.

Q. 한 가지 원하는 대로 세상을 바꿀 수 있다면 무엇을 바꿀 것인가?    

주님은 살아계시고 지금도 하나님의 사람들을 통해 일하신다. 나의 주도로 다른 이들을 통제하려 하지 말고 주께서 내게 붙여주신 이들을 사랑하면 좋겠다. 이를 위해서 성령의 도우심과 기도와 예수의 말씀을 통해 날마다 새롭게 되어야 할 것이다.

내가 준비되면 주님은 더욱 놀랍게 일하신다. 사도바울이 투박하게 쓴 편지들이 성경이 된 것처럼 선교 현장에서 있었던 영성 스토리와 메시지, 에세이, 편지들 속에서 예수 생명, 예수 사랑이 나타나길 기대한다. 아무쪼록 주의 영과 말씀으로 자유를 누리면서 새 창조의 사명과 회복의 역사에 우리 모두가 함께 쓰임 받기를 소망한다.

Q. 앞으로의 소망 또는 비전은?

언젠가 주의 긍휼과 손길로 통일이 될 터인데 에스겔 37장의 두 막대기가 에스겔의 손안에서 하나가 되는 비전처럼 ‘민족 화해와 세계 선교의 한 부분’을 담당하는 선교와 목양을 그려본다. 막내 종한이가 회심하여 숱한 청년들을 주께로 돌아오게 하고 북한에서 복음 전하는 날이 오기를 염원한다.

"여호와께서 시온의 포로를 돌려 보내실 때에 우리가 꿈꾸는 것 같았도다
그 때에 우리 입에는 웃음이 가득하고 우리 혀에는 찬양이 찼었도다
그때에 뭇 나라 가운데에서 말하기를 여호와께서 그들을 위하여 큰 일을 행하셨다 하였도다”

(시 126:1-2)

<이희재 선교사>
서울대학교 2학년 시절, 학생 민주화 운동을 주도한 혐의로 학교에서 제명된 후 강제로 징집되었다. 군에서는 유격대 조교로 복무했다. 반공 포로 출신 아버지의 소천으로 삶의 고뇌를 하던 중 1979년 예수를 영접했다. 1991년 목사 안수를 받았고(예장통합), 선교사로 부름받아 1994년 11월에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로 파송되었다. 그곳에서 디베랴교회를 개척하였으며, 1996년 5월에는 여러 선교사와 함께 러시아의 영적 각성과 회복을 위한 미르선교회를 창립했다. 저서 <영성시대>(쿰란출판사, 2016)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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