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준호 감독 영화 '괴물(2005년)' 포스터
봉준호 감독 영화 '괴물(2005년)' 포스터

아주 오래된 영화 하나를 언급하는 것으로 여러분과의 대화를 시작해보려 합니다. 지난해 세계를 깜짝 놀라게 한 봉준호 감독의 오래전 작품 하나입니다. <괴물>. 이 영화는 2006년도에 제작이 되어 한국의 스릴러물을 한 차원 높인 영화로, 천만 이상이 관람한 대중성과 작품성을 함께 잡은 유명한 영화입니다. 

기독교 세계관으로 영화를 본다는 말을 들으면 많은 이들이 의아함을 먼저 표현합니다. “영화는 보고 즐기면 되는 거지, 왜 분석하고 평가함으로 인해 골치 아파해야 하죠? 영화란 일상에 쌓인 스트레스를 한껏 날려 버리기 위해 보는 것인데 말이죠.” 이러한 말속에는 아마 이런 전제가 깔려있을 겁니다. 영화는 분석하면 재미가 반감된다는 생각 말입니다. 그러나 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영화를 더 깊이 보면 볼수록 영화를 깊이 보게 되고, 그 재미에 더 깊이 영화와의 대화가 가능해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처음에 말씀을 드린 것처럼, 오늘은 영화 <괴물>을 간략하게 설명해 보려 합니다. 영화 속에는 어떤 이야기가 숨겨있는지, 숨겨진 이야기가 우리들에게 어떻게 말을 걸어오는지, 걸어온 영화의 말에 우리는 어떻게 응답하는지를 말입니다. 

봉준호의 <괴물>을 보면 가장 먼저 놀라운 점 하나가 보입니다. 괴물이 나타나는 영화, 그렇다면 괴물이 사람을 먹어 치우는 장면이 가장 도드라질 것이라고 생각을 하지만, 그런데 영화에서는 그보다 더 강조하는 점이 보이는데, 이는 다름 아닌 사람이 사람을 “먹이는 장면”입니다. 괴물에게 먹히는 것이 주가 아닌, 서로를 생각하며 먹이는 것! 이것이 더 많이 강조되고 있더라는 것입니다. 이상하지 않나요? 괴물을 타이틀로 한 영화에 괴물이 사람을 먹어치우는 것 보다, 사람이 사람을 먹이는 장면이 더 주를 이룬다는 것 말입니다. 그래서 영화 <괴물>을 장르적으로 엄격히 평가하면 스릴러물이 되겠지만, 사실은 스릴러를 차용한 가족 영화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미군이 한강에 무단 방류한 폐기물들이 매개가 되어 괴물은 생겨납니다. 이에 온 세상은 발칵 뒤집히고 혼돈의 연속이 일어납니다. 이러한 과정 속에서 영화는 세상을 향하여 비판의 날카로운 말들을 관객들에게 제시합니다. 총체적인 국난이 일어날 때 정부는 무엇을 하고 있었는가에 대하여 말을 걸어옵니다. 그리고 영화 내내 방역당국을 위시한 이 땅의 공권력이 아무런 역할을 못하고, 도리어 애꿎은 시민들만 곤혹스럽게 만드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방역당국이 합동분향소에서 한 일이 그 단적인 예를 보여줍니다. 또 하나는 할아버지 희봉이 손녀 현서를 찾아 나설 때 검문소를 통과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그때 할아버지는 기지를 발휘해서 돈으로 검문소의 위기를 벗어납니다. 이는 공무원의 부패와 더불어 이 세상이 “돈이면 다 돼!”라는 생각에도 문제의식을 제기하는 영화의 장치입니다. 경찰에게 돈을 찔러 주다가 낭패를 당하는 장면을 영화 속에서는 또 하나의 장치로 보여주며, “돈으로 모든 것이 다 되던가요?”라며 영화는 말을 걸어옵니다. 그러니 영화에서는 정부의 무능과 공무원의 부패를 보여주며 이들이 전혀 해결책을 주지 못했음을, 또한 미국을 중심으로 한 세계보건기구의 활동조차도 해결책이 아닌 혼돈만 부추김을 보여 줍니다. 거기에 더해 “맘몬”으로도 해결하지 못하는 것을 보여줍니다. 

스릴러물을 과장한 가족영화에 더 가깝다고 말씀을 드린 이유가 있습니다. 여기에는 괴물에 끌려간 딸 현서를 구하기 위한 아버지 “강두”의 모습에서, 온 가족이 힘을 합쳐 괴물을 물리치는 장면에서 가족의 사랑이 얼마나 놀라운지를 보여줍니다. 한강 매점을 운영하는 일 속에서 강두는 아버지 몰래 동전을 모읍니다. 손님에게 온전히 내어 놓아야 할 오징어에서 다리 하나를 슬쩍 떼먹기도 합니다. 강두란 사람을 솔직히 말하자면, 무언가 부족한 사람의 전형적인 인물로 영화는 그려냅니다. 그런데 그가 방역당국에서 행하는 마취에도 불구하고 딸을 구해야 한다는 마음으로 정신을 또렷이 유지하고, 이러한 부성애로 딸을 구하는 일에 나서 결국에는 괴물을 물리치는 역할을 감당합니다. 그래서 <괴물>은 부성애, 가족의 사랑을 강조합니다. 이러한 영화의 내용은 미국의 전형적인 할리우드식의 전개와 많이 다릅니다. 영웅이 나타나 언제나 나라를 구하는 것과 달리 <괴물>은 모자라는 아빠 “강두”, 결정적인 순간 주저주저하는 고모 “남주”, 운동권으로 이미 사회에서 밀려난 삼촌 “남일”을 통해서 구원이 모색되고 이루어짐을 드러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괴물>은 안티 히어로 무비의 형태를 지닙니다. 정부가 하지 못한 일을 가족이 나서고, 그 가족의 사랑이 구원을 가져다주는 것입니다. 

영화 <괴물>을 한 번 더 볼 수 있다면 보셨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위에서 간략하게 언급한 내용을 생각하며 정말 그런가 하고 볼 수도 있겠습니다. 사실 2019년 세계에 보여준 봉준호 감독의 역량은 어쩌면 이 <괴물> 속에서 꽃 피웠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참, 기독교 세계관의 관점에서 이 영화의 메시지에 어떻게 응답하면 좋을까요? 우린 여기에서 희생적 사랑을 눈여겨 볼 수 있을 겁니다. 아빠 “강두”와 가족의 “헌신과 사랑” 말입니다. 사랑은 모든 두려움을 내어 쫓는다는 것을 기억하는 것입니다.

오늘은 많은 것을 시도하진 않았지만, 기독교 세계관으로 어떻게 영화를 읽을 것인가에 대한 출발점으로 영화를 분석하는 것에 대하여 간략히 살펴보았습니다. 이제 다음 글로부터 세계관으로 영화를 읽는 것에 대하여 차근히 함께 알아가 보려 합니다. 

영화는 이야기를 담습니다. 이야기 속에는 늘 우리의 삶이 담겨있습니다. 그러하기에 영화를 보며 우리는 각자의 인생을 돌아보고, 이에 대하여 기독교 세계관 속에 담긴 하나님의 우리를 향해 말을 거시는 음성을 듣게 될 것입니다. 

코로나 정국 속에서 모두가 건강하셨으면 좋겠습니다. 다음 글에서 뵙겠습니다. 샬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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