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광대학교 서예과 1회로 입학, 한국 서예계에서 중견 서예가로 인정과 존경받고 있어
윤학상 "나는 성경말씀에 옷을 입히는 디자이너, 서예를 통해 온 세계에 말씀을 전하는데 쓰이고 싶다"

서예학 박사, 대한민국 미술대전 초대작가, 한국기독서예협회장, 맞춤서예 대표 등 활발한 활동

우리나라에서 서예학과가 처음 생길 때 대학에 입학해 지금까지 수많은 서예상 수상과, 서예 협회들을 이끌며 후학을 가르치는 등 한국 서예의 발전에 앞장서 온 윤학상 장로. 기자가 인터뷰를 하기 위해 방문한 대전갤러리 전시회장은 성경 말씀으로 가득 차있어서 마치 햇살이 들어오는 창가에 앉아 따스한 볕을 쬐는 것 같이 따뜻하게 느껴졌다. 편안한 외모 속에 하나님을 향한 굳건하고 뜨거운 믿음을 가진 서예가 윤학상 장로를 만나봤다.

서예가 윤학상 장로 @출처=윤학상
서예가 윤학상 장로 @출처=윤학상

I 삶의 시선 

Q. 언제 어떻게 하나님을 만났나?

나는 모태신앙이었고 어릴 적 나에게 가장 즐거운 날은 일요일이었다. 초등학교 다닐 때부터 순수하게 교회를 열심히 다녔던 것 같다. 중학교 2학년 때 대전으로 전학을 왔다. 유학을 온 셈이다. 고등학교 1학년 때부터 인생이란 무엇인가, 종교란 무엇인가에 대한 고민을 하기 시작했다. 인생에 대한 근원적인 고민이 생겼다. 고등학교 때 자취를 하면서 새벽과 오후에 신문 배달 아르바이트를 했다. 가끔 신문이 한두 부씩 남으면 읽어보게 됐는데 당시 박정희 대통령 말기여서 민주화와 독재에 대한 기사가 많았다. 그런 걸 아침에 보고 학교 가서 사회 시간에 수업을 들으면 맞지가 않았다. 그래서 학교에서 정치에 대한 관심이 있는 학생들을 모아서 써클을 만들었다. 반독재 민주화를 슬로건으로 주동하고 삐라를 등사해서 뿌렸다. 그러던 어느 날 경찰의 수사망이 좁혀와 나는 급히 부산으로 도피했다.

하나님과 인격적인 만남은 결혼을 한 뒤였다. 어머니가 계신 부여에서 5남매를 낳고 새벽기도를 열심히 나갈 때였다. 성경통독도 하면서 새벽기도하는 중에 갑자기 눈물이 쏟아지면서 뜨거운 감사의 눈물이 계속  흘렀다. 일주일 넘게 기도만 하면 뜨거운 눈물이 흘렀다. 내가 지금까지 말씀대로 산 것도 아닌데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라는 마음이 들고 감동을 받아서 새사람으로 거듭나서 하나님의 말씀을 위해 살겠다고 결심하고 목회자가 돼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신학대학원에 입학했지만 새벽에는 교회에서 봉고차 운행도 하고, 낮에는 옷 가게를 하고 야간에는 공부를 하다 보니 졸음운전으로 몇 번이나 교통사고를 당할 뻔했다. 그래서 휴학을 했다가 다시 복학을 하지 못했다.

Q. 서예를 전공으로 하는 대학을 가게 된 특별한 계기가 있었나?

군대를 제대하고 부산대학교 앞에서 대학생들을 상대로 커피 전문점을 열었다. 장사가 잘 됐고 나는 커피 박사로 불렸다. 그런데 5~6년 정도 지나서 나도 대학을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가게를 정리하고 매형이 전도사로 사역하고 있던 교회의 사택에 들어가서 대학 입시 공부를 시작했다. 철학과를 가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어느 날 한 친구로부터 연락이 와서 신문에 원광대학교 서예과가 생긴다며 내가 어려서부터 글씨를 잘 쓰니까 넣어보라고 했다. 실기도 보고 데생도 봐야 하는데, 나는 아는 게 없었고 시간은 한 달밖에 남지 않아서 붙으면 운명이고 안 붙으면 내년에 1년 공부해서 철학과를 가야지 생각했다. 그런데 바로 붙었다. 학원에서 배워서 입학한 학생들과 함께 공부하는 것이 처음엔 적응하기가 어려웠다. 그렇지만 들어가서 이내 적응해서 과대표도 하고 1회 학회장도 하고 서예과 총동문회장까지 했다.

Q. 신앙에 영향을 준 존재는?

지금은 86세이신 나의 어머니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았다. 어머니는 아주 철저한 신앙을 가지고 계신다. 오직 하나님 중심이시다. 매일 새벽기도에 빠지지 않으시고, 아침과 밤에 기도하시는데, 주무시기 전에도 기도를 빠뜨린 적이 없다. 내가 젊은 시절에 방황을 할 때도 어머니를 생각하면 나쁜 짓을 하지 않게 될 정도였다. 

2019년 대한민국기독교서예대전시상식에서 한국기독교서예협회회장 윤학상 장로(가운데 검은 양복 입은)가 수상자들과 단상에 서있다. @출처=윤학상
2019년 대한민국기독교서예대전시상식에서 한국기독교서예협회회장 윤학상 장로(가운데 검은 양복 입은)가 수상자들과 단상에 서있다. @출처=윤학상

I 사역의 시선 

Q. 하는 일 또는 사역을 소개한다면?

원광대 서예과와 대학원 강사를 했었고 한국기독교서예협회 회장과 대한민국 미술대전 서예부문 심사위원, 충청서단에서 부이사장 등 서예의 발전을 위해 지금까지 많은 일들을 해오고 있다. 특별히 2006년에 ‘맞춤서예’라고 하는 회사를 만들어 누구든지 글씨를 요청하면 서예로 써서 드리는 일을 하고 있다. 특별히 성경 말씀을 많이 쓰고 있다. 성도님들이 원하는 성경 구절을 써서 드리면 참 좋아하신다. 말씀은 살아있는 생명이라고 생각하는데, 나는 그 말씀에 옷을 입히는 디자이너라고 생각한다. 삶에 지친 영혼들이 서예의 옷을 입은 성경 말씀을 통해 하나님을 경험하길 바라고, 나는 서예를 통해 하나님의 말씀을 온 세상에 전하는 데 쓰이고 싶다. 

Q. '첫번째 이야기 윤학상-성경에서 길을 묻다' 전시회를 여셨는데, 전시회 소개?

2005년부터 쓰기 시작한 한글 서예 작품을 모아서 이번 전시회'첫번째 이야기 윤학상-성경에서 길을 묻다'를 열었다. 주로 성경을 한글로 쓴 작품들이다. 원래 한문 서예를 주로 썼었는데 자녀를 다섯을 낳고 모두 건강하게 자라는 것을 보면서 내가 잘한 것도 없는데 완전히 하나님의 은혜구나 하는 감사한 마음이 들어서 하나님께서 주신 달란트를 하나님 말씀을 보급하는데 써야겠다 생각을 하고 지금까지 써온 성경 말씀들을 전시했다. 

서예가 윤학상 장로의 첫 한글 서예 전시회 '성경에서 길을 묻다'가 12월 17일 부터 23일 까지 대전갤러리에서 열리고 있다.
서예가 윤학상 장로의 첫 한글 서예 전시회 '성경에서 길을 묻다'가 12월 17일 부터 23일 까지 대전갤러리에서 열리고 있다.

Q. 서예 관련 일을 하면서 기억에 남는 일은?

서예학 박사학위 논문을 쓸 때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 내가 중학교 2학년 때 대전여상 강당에서 서예 전시회가 열렸는데, 나의 눈을 사로잡는 글씨를 보았다. ‘원곡체’로 당시 유행했었던 원곡 김기승 선생의 글씨였는데 보고 있는 내 가슴이 흥분될 정도로 너무너무 좋았다. 그리곤 잊고 살았는데, 서예과에 입학해서 한국 서예사를 배우다가 그때 그 글씨가 이 분의 글씨였다는 걸 깨달았다. 이후로 소논문도 연구해서 발표한 적이 있었는데, 박사 논문으로 원곡 선생에 대해 쓰기로 결정했다. 그런데 논문을 준비하면서 자료를 보는 중에 푹 빠져서 논문을 썼다. 서예뿐만 아니라 그가 쓴 수필과, 신문 기고, 서예교육을 주장한 것들을 통해 느껴진 그의 사람됨. 내가 너무 좋아하는 분을 논문으로 쓰게 되어서 기뻤고, 깊이 매료되어서 일사천리로 써 내려갔다. 논문이 완성됐는데 벅찬 감격이 있었고, 마치 내가 새로 태어난 것 같은 느낌이었었다. 그가 서예를 문서 전도라고 생각하고 소명감으로 살았던 모습에 도전받아서 나도 그런 삶을 살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지금도 그때의 감동을 잊을 수가 없다.

서예가 윤학상 장로의 첫 한글 서예 전시회 '성경에서 길을 묻다'에서 전시되고 있는 한글 서예 작품들 @출처=최인선
서예가 윤학상 장로의 첫 한글 서예 전시회 '성경에서 길을 묻다'에서 전시되고 있는 한글 서예 작품들 @출처=최인선
평안(2006년 작품) @출처=최인선
평안(2006년 작품) @출처=최인선

Q. 자신의 달란트는?

어떤 서체든 한 번만 보면 그 글씨를 똑같이 따라 쓸 수 있다. 많은 서체를 바로 따라 쓸 수 있다. 그리고 여러 사람들이 의견이 달라서 갈등이 있을 때 나는 각각의 이야기들을 잘 들어주고 해결 방안을 낼 수 있다. 통합 능력이 있는 것 같다. 그리고 사람들이 나에게 편안한 사람이라고 한다. 나의 외모가 부드럽게 생기고 말과 행동도 부드러운 면이 있어서 대부분의 사람들이 나를 편안하게 느끼고 인상이 좋다고 한다.

I 생각의 시선 

Q. 요즘 가장 많이 하는 생각은?

성경 말씀을 쓴 나의 작품들을 유튜브를 통해서 많은 사람들한테 알리고 싶은데 어떻게 하면 잘 할 수 있을까 그 생각을 많이 한다. 평생을 글씨만 쓰다 보니 컴퓨터를 잘 못 다룬다. 그리고 유튜브도 잘 모른다. 많은 사람들이 알게 돼야 서예 작품을 통해 도움을 줄 수 있을 텐데, 요즘 유튜브를 배워보려고 신경을 쓰고 있다. 그리고 한국기독교서예협회를 어떻게 키울 수 있을까 고민한다. 회원으로 목사님과 권사님, 장로님들로 구성되어 있고 약 100여 명 정도가 되는데, 협회가 회원을 늘려나가기를 바라고 있어서 그 방법을 다각도로 모색하고 있다.

윤학상 장로(첫 줄 오른쪽)와 아내 이정민 권사(첫 줄 오른쪽 두 번째)와 2남 3녀의 가족사진 @출처=윤학상
윤학상 장로(첫 줄 오른쪽)와 아내 이정민 권사(첫 줄 오른쪽 두 번째)와 2남 3녀의 가족사진 @출처=윤학상

Q. 나의 가치관에 가장 영향을 많이 끼친 존재는?

크리슈나무르티라는 인도 철학자의 얽매이지 않는 생각과 자유로운 삶이 나에게 많은 생각을 하게 했다. 그리고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요한복음 8:32)는 성경 말씀이 젊은 시절부터 나의 생각에 강하게 영향을 주었고 지금까지 삶의 지표가 되었다. 그래서 우리 가정의 가훈은 ‘배워서 남 주자, 벌어서 남 주자, 살아있을 때 남 주자’이다. 성경 전체에서 예수님은 사랑이시라고 말씀하고 있다. 신구약을 통틀어서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라는 말씀이 성경의 핵심이다. 그리고 사랑을 표현하는 방법은 남에게 주는 것이다. 우리 가정이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길 바라는 마음에서 첫아이가 태어나자마자 정해서 지금까지 가훈으로 지켜오고 있다.

한국창조미술협회전출품작과 함께 찍은 기념 사진 @출처=윤학상
한국창조미술협회전출품작과 함께 찍은 기념 사진 @출처=윤학상

Q. 나의 고정관념을 깼던 사건이나 문구는?

나는 좋은 고등학교로 진학하고 싶어서 중학교 2학년 때 시골에서 대전으로 전학을 왔다. 당시에는 정규 수업이 끝나면 오후 자습 시간에 반장들이 같은 반 학생들을 가르치는 과목반장이라는 것이 있었는데, 나는 국어반장과 과학반장을 할 정도로 공부를 잘했다. 그런데 정작 고등학교 시험에서 그 두 과목을 가장 많이 틀려서 입시에서 떨어졌다. 어떻게 이런 일이 생길 수 있나 이해가 되지 않았고, 한 해를 쉰 후 이듬해 입시가 연합고사로 바뀌게 돼서 원하지 않는 다른 고등학교에 수석으로 입학하게 됐다. 그때까지 나는 성공지향적인 생각을 가지고 살았다. 그 후 서예과 대학 진학을 앞두고 있을 때, 서예가 조선시대 때는 사회의 주체세력의 것이었지만 현대사회에서는 일반인이 크게 관심 갖지 않는 것이라 생각해서 “인생의 성공에 대한 생각을 내려놓고 풍류를 즐기며 살아야겠다”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막상 대학을 가니까 거기도 경쟁 사회였다. 열심히 하지 않으면 글씨를 쓸 수가 없는 것이었다. 서예 이론도 생각했던 것보다 양도 많고 체계적이어서 공부를 하지 않고는 따라갈 수가 없었다. 결국 서예는 느슨하게 살려고 했던 나의 생각을 다잡고 나를 조금 더 긍정적인 사람으로 바뀌게 했다. 

2019년 대한민국미술대전에 캘리그래피 부문 심사위원장으로 참여해 심사위원들과 함께(사진 왼쪽에서 두번째가 서예가 윤학상 장로) @출처=윤학상
2019년 대한민국미술대전에 캘리그래피 부문 심사위원장으로 참여해 심사위원들과 함께(사진 왼쪽에서 두번째가 서예가 윤학상 장로) @출처=윤학상

Q. 서예의 장점은 무엇인가?

서예는 집중력과 인격형성, 호흡, 건강 4가지의 장점이 있다. 서예는 30분만 쓰고 있어도 머리가 맑아지는 효과가 있다. 뾰족한 붓 끝을 잡고 움직여야 하니까 집중력이 좋아진다. 그리고 좋은 글귀를 쓰기 때문에 인격 함양에 좋은 영향을 끼친다. 단전호흡 등은 의도적인 호흡인데 반해서, 붓글씨는 자연스러운 호흡이다. 깊고 고르고 가늘게 호흡이 들어간다. 그래서 서예를 하는 사람들이 대부분 장수하는 결과가 알려져 있다. 다섯 손가락으로 움직이는 활동을 통해 뇌와 장 건강에 좋고 노인들의 치매 예방에도 큰 도움이 된다. 서예는 전반적으로 건강에 탁월한 효과가 있다.

I 세상의 시선 

Q. 당신의 눈에 비친 세상의 모습은?

교회가 천국과 지옥에 대해 전해야 하지만 교회를 다니지 않는 세상 사람들이 느끼기에는 ‘교회는 천국, 교회를 다니지 않는 세상 사람들은 지옥’이라는 이미지의 강조가 하나님을 모르는 세상 사람들의 입장에서는 차별되는 느낌을 받게 되는 것 같다. 교회가 복음을 전해야 하지만 천국 지옥론 같은 것을 강조할 때 일반 사람들에게는 혐오감을 느끼게 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세상 사람들에게 구분 지어지는 이미지로 다가가기보다는 소통하려는 그런 시각과 노력을 많이 가지면 좋겠다. 극단적으로 강조하지 않고 시대 사람들의 마음을 읽고 소통할 수 있는 그런 시각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창세기 중에서(2018년 작품) @출처=최인선
창세기 중에서(2018년 작품) @출처=최인선

Q. 한 가지 원하는 대로 세상을 바꿀 수 있다면 무엇을 바꿀 것인가?

내가 제일 원하는 건 남북통일이다. 빨리 통일이 돼서 북한에서도 자유롭게 예수를 믿을 수 있으면 좋겠다. 복음이 우리나라에 들어올 때 처음 북한을 통해 들어왔고 평양의 대부흥도 북한에서 생겼다. 해방 전의 지도자들 중에 김구 선생이나 안창호 선생 이런 분들은 다 크리스천이었는데 모두 북한 사람이었다. 그리고 우리나라는 뛰어난 민족인데 앞으로 세계 부흥을 위해서 많은 역할을 하려면 인구가 1억 명은 돼야 된다고 생각한다. 내가 자녀를 5명을 낳은 이유도 대한민국이 인구가 1억은 돼야 일본을 누르고 세계에서 3등 안에 드는 나라가 될 것이라고 생각하고 내가 먼저 시범을 보이는 차원에서 5명을 낳았다.

윤학상 장로가 섬기고 있는 대전 사랑샘교회의 담임목사와 시무장로들과 함께(사진 왼쪽 두 번째가 윤학상 장로, 오른쪽에서 세 번째가 신용만 담임목사) @출처=윤학상
윤학상 장로가 섬기고 있는 대전 사랑샘교회의 담임목사와 시무장로들과 함께(사진 왼쪽 두 번째가 윤학상 장로, 오른쪽에서 세 번째가 신용만 담임목사) @출처=윤학상

Q. 앞으로의 계획이나 소망이 있다면?

우리나라 개신교에는 기독교 문화 예술이 거의 없는 것 같다. 교회 안에서 기독교 문화라는 게 특별히 없는데 생활에서도 기독교 문화로 일상적으로 누릴 수 있는 게 없고 교회에서는 기독교 문화로 볼 수 있는 것이 음악 말고는 거의 없다. 미술이나 서예 등의 문화는 더더욱 찾기 힘들다. 기독교인들도 기독교 문화 예술을 향유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그게 늘 소원이다. 그리고 2년 후에 다시 개인전을 열 계획을 갖고 있다. 한문서예를 중심으로 한글서예와 문인화를 겸해서 전시하려고 한다. 잘 준비되기 바란다. 

서예가 윤학상 장로의 첫 한글 서예 전시회 '성경에서 길을 묻다'
서예가 윤학상 장로의 첫 한글 서예 전시회 '성경에서 길을 묻다'

윤학상
-아호 : 필로(붓길), 경천, 복천
-당호 : 관아재
-서예학박사
-원광대학교 서예과 및 대학원 강사 역임
-대한민국 미술대전 서예부분 초대작가
-각종 미술대전 심사위원 역임
-한국기독교서예협회 회장
-맞춤서예 대표
-필로 서예연구소
-사랑샘교회(성결) 장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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