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연약한 믿음 2
창12:8-19
거기서 벧엘 동쪽 산으로 옮겨 장막을 치니 서쪽은 벧엘이요 동쪽은 아이라 그가 그 곳에서 여호와께 제단을 쌓고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더니 점점 남방으로 옮겨갔더라(창12:8~9, 개역개정)
아브람은 또 거기에서 떠나, 베델의 동쪽에 있는 산간지방으로 옮겨 가서 장막을 쳤다. 서쪽은 베델이고 동쪽은 아이이다. 아브람은 거기에서도 제단을 쌓아서, 주님께 바치고, 주님의 이름을 부르며 예배를 드렸다. 아브람은 또 길을 떠나, 줄곧 남쪽으로 가서, 네겝에 이르렀다.(창12:8~9, 새번역)
가나안에 도착한 아브람은 벧엘 동쪽에 장막을 쳤습니다. 장막을 쳤다는 것은 언제든 다시 이동할 준비가 되어 있다는 뜻으로 집을 짓고 사는 정착생활과 전혀 다른 삶을 살았다는 것이죠. 이후 아브람의 행적을 보면 끊임없이 이동하면서 장막을 치는데, 이것으로 보아 아브람은 주로 목축을 했던 것으로 생각됩니다. 양이나 염소 등을 키우는 일을 주업으로 삼았던 이들은 가축에게 신선한 풀을 계속 공급하기 위해 계속 이동해야 했고 가축들을 지키기 위해 들판에 장막을 짓고 살았죠.
이곳에서 아브람은 하나님께 제단을 쌓고 예배를 드렸습니다. 아브람의 예배를 상상해 보면 오늘날과 같이 형식과 내용이 모두 갖춰진 예배는 절대 아니었을 겁니다. 그에게는 우리가 가진 성경도, 오랜 교회의 전통도 없었으니 그저 하나님에 대한 막연한 공경심만 있었을 것으로 생각되지만 그런 상황에서의 예배는 한편으론 매우 순수한 신앙의 표현이기도 했을 겁니다. 12장 1절에서 받았던 부르심에 대한 응답으로 떠난 여정이 가나안에 이르렀을 때 아브람은 하나님께서 주신 명령을 완수했다는 안도감이 있었을 것이고 이것이 예배를 드리고자 하는 동기가 되었을 겁니다. 앞으로 아브람의 행적을 따라가면서 그가 예배드리는 모습을 계속 보게 될 텐데요, 아브람의 믿음이 성장할 때마다 예배를 드림으로써 이를 입증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제단을 쌓고 예배를 드리는 행동은 그야말로 아브람 믿음의 표지석인 셈이죠.
이처럼 좋은 믿음의 출발을 보인 아브람이었지만 삶에는 신앙만으로는 해결되지 않는 것이 많았습니다. 9절에서 남쪽으로 내려간 것이 이를 잘 보여줍니다. 목축을 하는 아브람 입장에서 생각해 볼 때 생존을 위해서는 신선한 풀이 자라는 땅이 무엇보다 필요했습니다. 하지만 그가 살고 있는 가나안 땅이 풀로 가득한 초원만 있는 곳이 아니었으므로 언제나 새 풀이 자라는 땅을 찾아다녀야만 했죠. 한 곳에 자리 잡아 가축 떼에게 풀을 먹인 뒤에는 또 다른 땅을 찾아 이동하는 생활을 반복하다 보니 자기도 모르는 새에 점점 남쪽으로 갔던 겁니다. 남쪽을 택한 이유에는 두 가지 가능성이 있습니다. 하나는 옛날부터 가나안 땅에 살아왔던 이들로부터 배척을 받아 남쪽으로 밀려났다는 추측이고 다른 하나는 가나안 땅의 기근이 점차 심해지면서 피해가 비교적 적은 남쪽을 향해 내려갔다는 것입니다. 어쩌면 둘 모두 정답일 수도 있겠네요. 믿음을 가지게 되었지만 삶의 고단함은 이전과 다르지 않았고 이를 벗어나기 위한 노력이 그를 점점 남쪽으로 내몰았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가 바라보았던 남쪽에는 기회와 위기가 공존하는 땅, 애굽이 있었죠.

그 땅에 기근이 들었으므로 아브람이 애굽에 거류하려고 그리로 내려갔으니 이는 그 땅에 기근이 심하였음이라(창12:10, 개역개정)
그 땅에 기근이 들었다. 그 기근이 너무 심해서, 아브람은 이집트에서 얼마 동안 몸붙여서 살려고, 그리로 내려갔다.(창12:10, 새번역)
애굽에 아주 정착하고 싶은 마음은 처음부터 없었을 겁니다. 그도 그럴 것이 애굽은 나일강의 범람 덕택에 비옥한 땅을 가지고 있어서 풍요로운 사회이긴 했지만 오래전부터 절대적인 권력을 가진 왕이 통치해 온 국가였기 때문에 스스로를 지켜낼 힘이 없다면 이방인이 자리 잡기엔 어려운 나라였습니다. 반면 가나안 땅은 특정 왕국의 통치가 아니라 각 지역에 자리 잡은 부족들을 중심으로 살아가는 느슨한 사회였기 때문에 아브람 같은 이민자들도 비집고 들어갈 틈이 얼마든지 있었죠. 그로서는 지금의 위기를 벗어날 마지막 방편으로 선택한 여정에 불과했으니 기근만 벗어나면 한시바삐 가나안으로 돌아오고 싶었을 겁니다. 하지만 상황은 아브람이 생각한대로 되지 않았죠.
아브람이 애굽에 이르렀을 때에 애굽 사람들이 그 여인이 심히 아리따움을 보았고 바로의 고관들도 그를 보고 바로 앞에서 칭찬하므로 그 여인을 바로의 궁으로 이끌어들인지라(창12:14~15, 개역개정)
아브람이 이집트에 이르렀을 때에, 이집트 사람들은 아브람의 아내를 보고, 매우 아리따운 여인임을 알았다. 바로의 대신들이 그 여인을 보고 나서, 바로 앞에서 그 여인을 칭찬하였다. 드디어 그 여인은 바로의 궁전으로 불려 들어갔다.(창12:14~15, 새번역)
아브람의 가장 큰 걱정은 나이가 들어도 여전히 아름다운 외모를 간직하고 있는 아내 사래였습니다. 애굽의 힘 있는 자들이 사래를 마음에 들어 하면 소유하려 할 것이고, 그 과정에서 자칫 아내를 빼앗길 뿐 아니라 자신의 생명까지도 잃어버릴 위험이 있었습니다. 그가 고안해 낸 방법은 사래를 아내가 아니라 여동생으로 소개하는 것이었습니다. 이렇게 되면 사래를 차지하고 싶은 이들이 오빠의 환심을 사려들 것이고 이를 적당히 밀고 당기면 충분히 버틸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 것이죠. 제법 나쁘지 않은 계획이었지만 일이 아브람 생각대로만은 되지 않았습니다. 사래의 외모가 너무 아름다운 나머지 애굽 왕 바로의 귀에까지 소문이 들어가고 말았던 것이죠. 상대가 귀족 정도면 모를까 왕이라면 협상이고 뭐고 없습니다. 사래는 빼앗길 것이고 이를 거부하면 가차 없는 죽음이 뒤따라오겠죠. 생존을 위해 들어간 애굽은 아브람에게 파멸의 땅이 되고 말았습니다.

네가 어찌 그를 누이라 하여 내가 그를 데려다가 아내를 삼게 하였느냐 네 아내가 여기 있으니 이제 데려가라 하고(창12:19, 개역개정)
어찌하여 너는 저 여인이 네 누이라고 해서 나를 속이고, 내가 저 여인을 아내로 데려오게 하였느냐? 자, 네 아내가 여기 있다. 데리고 나가거라.”(창12:19, 새번역)
하나님이 개입하지 않았다면 우리가 아는 아브라함은 없었을 겁니다. 하나님이 바로와 그 집안에 재앙을 내리시자 바로는 이것이 사래를 아내로 삼은 것에 대한 심판이라는 것을 알아차렸고 조사한 끝에 사래가 아브람의 아내였음을 밝혀냅니다. 그리고 사래를 아브람에게 돌려보냄은 물론 두 사람과 그 일행을 아예 애굽 밖으로 나가게 했습니다. 추방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사래를 아내로 삼을 때 아브람에게 내렸던 많은 재산을 회수하지 않고 가지고 갈 수 있도록 했으니 추방이라기 보다 더 이상 애굽에 재앙이 임하지 않도록 나라 밖으로 나가 달라고 부탁한 것이나 다름없죠.
아브람은 애굽에서 많은 것을 얻게 되었습니다. 우선 잃은 줄로만 알았던 아내 사래를 되찾았고 이후 그의 여생뿐만 아니라 자녀들의 삶까지도 풍족하게 해줄 많은 재산까지도 확보하게 되었죠. 가장 중요한 소득은 신앙의 경험이었습니다. 이전까지 하나님에 대한 그의 경험은 하란에서 들었던 부르심뿐이었습니다. 그 말씀에 순종해 길을 떠났고 가나안에 이르러서 제단을 쌓고 예배를 드리기도 했지만 이때까지만 해도 하나님은 아주 멀리에 계신 분이었습니다. 그의 삶은 오로지 스스로의 힘으로 만들어가야만 했죠. 그렇게 아등바등 살다가 애굽 땅까지 가게 되어 이제는 다 끝났다고 생각했을 때 뜻밖에도 하나님이라는 분의 존재를 직접 체험하게 된 것입니다. 그것도 애굽 왕 바로의 의지를 꺾을 만큼 극적인 방법으로요. 설령 지금 내 눈에 보이지 않는다 하더라도 하나님께서 내 삶을 들여다보고 계시면서 필요할 때마다 개입하시는 것을 확인하는 것은 대단한 경험입니다. 새롭게 얻은 종들과 불어난 가축들, 그리고 부를 상징하는 많은 물품들을 가득 실은 나귀와 낙타 떼들을 몰고 애굽 땅을 나오는 아브람은 누가 보아도 금의환향하는 모습으로 보였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의 마음에는 눈에 보이는 부유함보다 훨씬 가치 있는 신앙의 성장이 담겨있었을 것이고요.
애굽에서 겪은 아브람의 일은 400년 후 벌어질 이스라엘 백성의 출애굽과 놀랍도록 일치합니다. 아브람이 가나안의 기근을 피해 애굽에 간 것처럼 야곱과 열 한 명의 아들은 기근을 피해 요셉이 있는 애굽 땅으로 피했죠. 애굽의 권력 때문에 사래의 지위가 아내에서 동생으로 바뀐 것처럼 이스라엘 백성의 지위도 총리의 가족에서 노예로 바뀌게 됩니다. 이를 해결한 것은 하나님의 초자연적인 힘이었습니다. 아브람의 경우에는 바로와 그의 집에 재앙을 내리셨고 이스라엘 백성이 탈출할 때는 열 가지 재앙을 바로와 그의 집은 물론, 애굽 온 땅에도 내리셨죠. 탈출할 때 많은 재물을 가지고 나온 것도 일치합니다. 아브람은 바로로부터 받은 재물을, 이스라엘 백성들은 애굽 백성들로부터 많은 재물을 받아 나왔죠. 마지막 유사점은 행선지입니다. 아브람과 이스라엘 백성 모두 똑같이 애굽을 나와 가나안 땅을 향했거든요. 이처럼 아브람의 애굽 여정은 이스라엘 백성의 출애굽을 완벽하게 예시하고 있습니다. 위대한 구원 드라마의 완벽한 예고편이었던 셈이죠.
하지만 그가 눈치 채지 못하는 사이에 불행의 씨앗도 싹트고 있었습니다. 바로 그와 가장 가까운 옆 자리에서 말이죠. 사래를 주목해 보죠. 사래 역시 애굽 땅에서 엄청난 경험을 했습니다. 데라를 따라 우르를 떠난 이래 오랜 시간을 떠돌이처럼 돌아다녀야 했고 기근을 피하려 남쪽 중에서도 남쪽 땅 애굽까지 오게 되었는데 바로의 아내가 될 뻔한 기막힌 일을 당해야 했죠. 다행히 하나님의 개입으로 상황은 바뀌었고 자신의 운명도 하루아침에 원래의 자리로 돌아왔습니다. 하지만 아브람과의 관계는 위기를 맞고 있었습니다. 결국 아브람은 사래를 희생시켜 자신의 생명을 지키려했던 셈이니까요. 애굽 왕 바로의 아내가 될 뻔했던 과정 속에서 그녀는 얼마나 많이 아브람을 원망했을까요? 그리고 다시 돌아온 아브람의 옆자리에서 그를 볼 때 어떤 마음이 들었을까요? 아브람과 사래의 소원해진 관계는 이후 펼쳐질 아브람의 후사 문제와 겹치며 새로운 문제로 발전하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