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에 대한 깊은 묵상이 담긴 김병종 작가의 '바보예수' 시리즈

1980년대의 아픔 속에서 탄생한 작품이 코로나 시대의 위로하는 그림으로

코로나로 어느 해보다 특별한 성탄절을 앞두고 있습니다. 마리아의 품에 안긴 아기 예수님의 그림이 아닌 김병종 작가의 그림이 떠오릅니다. '바보예수'란 작품명으로 인해 신성모독이라는 비난까지 받았던 그림 안에는 특별한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1980년대, 김병종 작가가 살던 당시도 예측할 수 없는 혼란의 시대였습니다.

서울대의 젊은 교수였던 그는 석양으로 붉게 물든 교문을 향해 내려오면서 최루탄 연기와 그 안에서 길을 잃은 청년들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혼잣말 같은 기도를 내뱉었습니다.

"어떻게 해야 할까요..." 

그는 답 대신, 또 다른 질문이 떠올랐다고 합니다. '예수님께서 이곳에 오신다면 어떤 해법을 내리실까? 동년배 청년들이 한쪽에서는 돌멩이를 다른 한쪽은 최루탄을 가지고 대치하는 이 상황에 어떤 답을 내놓으실까?'

김병종 작가는 2천 년 전, 유대 땅에서 로마 병정과 유대 청년들 사이에 서 있던 예수님을 떠올렸습니다. '희생과 사랑이란 메시지를 남기고 골고다의 길을 가신 분. 이곳에 오신다고 하더라도 승산이 없고, 해결책이 아닌 듯 보이지만 결국 사랑이라는 희생의 메시지를 던지고 가시지 않으셨을까?'

승리, 혁명, 개혁, 성공 이런 말들이 아닌 사랑, 희생, 헌신, 순종이라는 메시지를 전하고 가신 그분을 김병종 작가는 마음에 담고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습니다. 

<닭이울다> 한지에 먹과 채색, 1991
<닭이울다> 한지에 먹과 채색, 1991

캔버스 앞에서 그가 떠올린 예수님은  잘 생긴 백인 남자의 얼굴이 아니었습니다. 인간의 고통과 고뇌를 안고 다가가기 어려운 그런 모습이 아니었습니다. 힘들 때 손을 잡아줄 만큼 가깝고 편안한 얼굴을 한, 고생을 많이 한 친척 아저씨 같기도 하고 이웃집 형님 같기도 한 '바보예수'가 그렇게 완성되었습니다.

안타깝게도 당시 '바보예수'는 작품명으로 인해 1980년대 기독교계에서 '신성모독'이라는 핍박을 받았고, 동양화 화단에서는 먹으로 예수를 그렸다는 비난을 받았습니다. 다행히 유럽 전시를 통해 타국에서 먼저 인정받은 김병종 작가는 한국에서도 '바보예수 시리즈'를 이어갈 힘을 얻게 됩니다.

<바보예수-눈물> 골판지에 먹과 채색, 1986
<바보예수-눈물> 골판지에 먹과 채색, 1986

2020년, 성도가 함께 얼굴을 맞대고 예배드릴 수 없는 성탄절에 '바보예수'의 그림이 떠오릅니다. 낙심과 고민 가득한 우리의 마음을 넉넉히 위로해주시는 예수님의 얼굴이 그리운 시대입니다. 코로나로부터, 코로나보다 더 무서운 낙심과 절망으로부터,  코로나 이후의 향방을 알 수 없는 변화와 두려움으로부터 우리를 구원해 주실 한 분을 간절히 기다리는 마음으로 예수님의 얼굴을 떠올려봅니다.

크리스마스이브, 김병종 작가의 '바보예수' 그림을 펼쳐봅니다. 그림 속에 담긴 희생이 담긴 사랑만이 구원한다는 의미를 되새기며, 예수님의 얼굴을 기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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