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라는 믿음
창13:1~14:24
애굽에서 돌아온 아브람 일행은 이전과는 몰라보게 달라진 모습이었습니다. 13장 2절에서 가축과 은, 금이 풍부했다고 표현되어 있는데, 두말할 것도 없이 기존의 재산에 애굽 땅에서 얻어 온 재물이 합쳐진 것입니다. 그들은 벧엘 동쪽의 전에 제단을 쌓았던 지역으로 돌아왔고 다시 한 번 예배를 드렸습니다. 이 예배 또한 한 단계 성장한 아브람의 신앙을 확인하는 자리였죠. 그런데 여기서 예상치 못한 문제에 부딪히게 됩니다. 조카 롯과의 재산 분쟁이 벌어진 것입니다. 잘 나가는가 싶으면 또 다시 위기가 찾아오는 것이 정말이지 첩첩산중이네요.
그러므로 아브람의 가축의 목자와 롯의 가축의 목자가 서로 다투고 또 가나안 사람과 브리스 사람도 그 땅에 거주하였는지라(창13:7, 개역개정)
아브람의 집짐승을 치는 목자들과 롯의 집짐승을 치는 목자들 사이에, 다툼이 일어나곤 하였다. 그 때에 그 땅에는, 가나안 사람들과 브리스 사람들도 살고 있었다.(창13:7, 새번역)
사실 많아진 재산이 모두 아브라함의 소유만은 아니었습니다. 재산 증식의 기회가 있을 때마다 조카인 롯의 지분 또한 점점 늘어났고 애굽에서 가나안으로 돌아올 무렵에는 둘의 재산이 너무 많아져 정리가 필요하게 된 것이었죠. 재산이 적을 때는 모두 어려우니 네 것 내 것이 따로 없겠지만 넉넉해지면 문제가 생기기 마련이죠. 그 뿐만이 아니었습니다. 애굽에 가기 전에는 규모가 작았기에 가나안 여기저기를 다니며 비어 있는 땅에 머물 수 있었습니다. 땅은 넓고 부족들도 널리 흩어져 있었으므로 큰 문제를 일으키지 않았고 설령 문제가 생긴다고 해도 비어있는 다른 땅으로 이주하면 그만이었죠. 그런데 이제는 세력이 커져서 재산과 가축 떼는 물론, 일하는 사람들까지 많아지다 보니 한 번 이동하려면 큰 행렬이 이어지게 되었고 자연히 인근 부족들로부터 경계를 받게 되었습니다. 문제를 일으키지 않으려면 규모를 줄여야 하는데, 요즘처럼 금융이 발전하지 않은 사회에서 인위적으로 재산을 줄일 수는 없는 노릇이었습니다. 가축을 팔아 금과 같은 귀중품으로 바꿔 가지면 되겠지만 당시로서는 하기 힘든 발상이었고 그렇게 하려고 해도 하기 어려웠죠. 결국 답은 하나밖에 없었는데, 아브람과 롯이 갈라서는 것이었습니다. 그렇게 되면 둘 사이 분쟁도 해결되고 규모가 줄어드니 주변 지역과의 마찰도 줄일 수 있었습니다. 문제는 어떻게 갈라서느냐 입니다.
네 앞에 온 땅이 있지 아니하냐 나를 떠나가라 네가 좌하면 나는 우하고 네가 우하면 나는 좌하리라(창13:9, 개역개정)
네가 보는 앞에 땅이 얼마든지 있으니, 따로 떨어져 살자. 네가 왼쪽으로 가면 나는 오른쪽으로 가고, 네가 오른쪽으로 가면 나는 왼쪽으로 가겠다.”(창13:9, 새번역)
아브람은 롯에게 선택권을 양보합니다. 이게 보통 일이 아닌 것이, 정착 생활을 하지 않고 끊임없이 이동하며 살았던 이들에게 어떤 땅을 택하느냐는 매우 중요한 문제였습니다. 풀이 많이 나는 땅을 찾지 못하면 애써 키운 가축들을 굶겨야 하는 상황이 되니 가축이 많아질수록 좋은 땅에 대한 집착은 더욱 커질 수밖에 없죠. 그런데도 아브람은 롯이 먼저 좋은 땅을 선택할 수 있도록 해 주었습니다. 그럴 수 있었던 계기는 애굽에서의 경험이 제공해 주었죠. 모든 것을 잃을 뻔 한 위기에서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오히려 풍족해지는 체험은 롯과의 분쟁에 임해서도 여유를 가지게 해 주었습니다. 어차피 갈라서야 한다면 롯에게 좋은 것을 베풀어 주고, 이로 인해 생길 수 있는 나의 손해는 하나님께서 해결해 주시리라는 생각을 한 것이죠. 아브람은 확실히 성장하고 있습니다.

이에 롯이 눈을 들어 요단 지역을 바라본즉 소알까지 온 땅에 물이 넉넉하니 여호와께서 소돔과 고모라를 멸하시기 전이었으므로 여호와의 동산 같고 애굽 땅과 같았더라(창13:10, 개역개정)
롯이 멀리 바라보니, 요단 온 들판이, 소알에 이르기까지, 물이 넉넉한 것이 마치 주님의 동산과도 같고, 이집트 땅과도 같았다. 아직 주님께서 소돔과 고모라를 멸망시키시기 전이었다.(창13:10, 새번역)
반면 롯의 행동은 우리에게 훌륭한 반면교사가 됩니다. 아브람이 재산을 늘릴 기회를 보기보다 하나님을 바라보았다면 롯은 지금 눈앞에 놓인 기회를 최대한 활용하는 것에 집중했습니다. 아브람이 선택권을 양보했을 때 그에게 보인 최선의 선택지는 요단 들판이었습니다. 물이 넉넉했으니 풀도 많이 자랐을 것이고, 물과 풀이 풍부하다면 가축을 기르는 데는 더 없이 좋은 조건이었죠. 재밌는 것은 창세기가 당시 롯의 마음을 표현하면서 에덴동산과 애굽 땅에 비유했다는 점입니다. 롯에게 있어서 에덴동산은 전설의 낙원이고 애굽은 바로 얼마 전에 직접 경험한 낙원이었으니 요단 땅을 대하는 그의 자세가 어떠했는지를 정확하게 알 수 있죠. 안타깝게도 애굽 땅에서 롯이 배운 것은 그 땅의 풍족함을 사모하는 것뿐이었던 모양입니다. 가나안에서 롯이 겪었을 기근의 고달픔을 생각하면 애굽의 풍요가 삶의 기준이 되는 것이 이해가 가기는 하지만 고통스러운 경험을 통해 성장하지 못한다면 돌아오는 결과는 하나뿐입니다. 배울 수 있을 때까지 고통을 반복하는 것이죠. 롯이 에덴동산과 애굽 같다고 여겼던 그 땅의 실체는 죄의 땅 소돔과 고모라였습니다. 그리고 얼마 후 롯은 소돔과 고모라와 함께 파멸 직전까지 가게 되죠. 성장으로 연결될 수만 있다면 고통은 축복입니다.
롯이 아브람을 떠난 후에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눈을 들어 너 있는 곳에서 북쪽과 남쪽 그리고 동쪽과 서쪽을 바라보라. 보이는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 영원히 이르리라(창13:14~15, 개역개정)
롯이 아브람을 떠나간 뒤에, 주님께서 아브람에게 말씀하셨다. “너 있는 곳에서 눈을 크게 뜨고, 북쪽과 남쪽, 동쪽과 서쪽을 보아라. 네 눈에 보이는 이 모든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아주 주겠다.(창13:14~15, 새번역)
롯이 떠난 후 아브람은 혼자 남게 되었습니다. 12장 1절에서 그는 고향과 친척, 가족을 떠나라는 명령을 받았고 말씀대로 떠나긴 했지만 자신의 지난 삶과 작별할 준비는 아직 되어 있지 않았습니다. 자기 소유를 의지했고 가장 가까운 친척 롯도 포기할 수 없었으며 행선지 또한 아버지의 유지와도 같았던 가나안으로 잡았죠. 그랬던 그가 이제는 자신의 지난 모습을 떨쳐내고 있습니다. 애굽 땅을 거치며 재산에 대한 집착을 버릴 수 있었고 조카 롯과도 아름답게 이별했을 뿐 아니라 더 이상 가나안 땅이라는 특정 목적지도 고집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이제는 오로지 하나님만 있을 뿐이었죠. 그런 그에게 나타나신 하나님은 그의 소유가 될 땅과 그의 피를 이어받을 후손을 약속해 주셨습니다. 바로 이것이 하나님께서 아브람에게 고향과 친척, 가족을 떠나라고 말씀하신 이유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를 위해 준비하신 진짜 선물을 받기 위해서는 이전에 가지고 있던 것을 떠나야만 했던 것이죠.
롯과 아브람은 전혀 다른 선택을 했습니다. 롯이 눈에 보이는 현실적인 이익을 쫓았다면 아브람은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약속을 택했죠. 신앙으로만 판단하면 아브람의 선택이 당연할지 몰라도 현실에서는 결코 쉽지 않은 선택입니다. 결국 아브람이 지금 얻은 것은 아무것도 없으니까요. 하나님이 주시겠다고 약속하신 땅은 결코 구체적이지 않았습니다. 언제 가지게 될지, 정확하게 어디까지가 그의 땅이 되는 것인지, 어떤 방법으로 성취될지에 대한 아무런 언급도 없었거든요. 게다가 현재 생길 가능성이 거의 없어 보이는 후손에게 주시겠다는 것은 아브람 생전에는 주지 않겠다는 말과 크게 달라 보이지 않습니다. 제삼자가 보기에 이것은 축복이라기보다는 기만에 가깝다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결국 아브람의 손에는 아무것도 쥐어지지 않았으니까요. 하지만 아브람의 신앙은 강해져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것을 믿음으로 받아낼 수 있었죠.

이에 아브람이 장막을 옮겨 헤브론에 있는 마므레 상수리 수풀에 이르러 거주하며 거기서 여호와를 위하여 제단을 쌓았더라 (창13:18, 개역개정)
아브람은 장막을 거두어서, 헤브론의 마므레, 곧 상수리나무들이 있는 곳으로 가서, 거기에서 살았다. 거기에서도 그는 주님께 제단을 쌓아서 바쳤다.(창13:18, 새번역)
아브람은 구체적이지도, 현실적이지도 않았던 하나님의 축복을 기꺼이 받아들였습니다. 그래서 상수리나무들이 있는 헤브론의 마므레로 이주했고, 이곳에서 제단을 쌓고 예배를 드렸습니다. 이 예배 또한 이전의 예배와 같이 아브람의 신앙을 확인시켜주는 이정표입니다. 애굽에서 자신을 지켜주셨던 하나님께서 남은 생은 물론, 약속해주신 축복을 반드시 주시리라 믿겠다는 믿음의 대답인 것이죠. 보이지 않는 미래를 오늘의 믿음으로 받아들이는 것은 이후 아브람의 삶을 규정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가 되는 것을 우리는 계속해서 확인하게 될 겁니다.
네 왕이 소돔과 고모라의 모든 재물과 양식을 빼앗아 가고 소돔에 거주하는 아브람의 조카 롯도 사로잡고 그 재물까지 노략하여 갔더라(창14:11~12, 개역개정)
그래서 쳐들어온 네 왕은 소돔과 고모라에 있는 모든 재물과 먹거리를 빼앗았다. 아브람의 조카 롯도 소돔에 살고 있었는데, 그들은 롯까지 사로잡아 가고, 그의 재산까지 빼앗았다.(창14:11~12, 새번역)
참 안타깝게도 신앙적인 결단이 있자마자 위급한 일이 생기는 패턴이 또다시 반복됩니다. 아브람의 삶은 정말 고달프네요. 14장은 네 왕과 다섯 왕 사이에 벌어진 전쟁 이야기입니다. 그돌라오멜을 중심으로 하는 네 왕 동맹이 소돔과 고모라 왕이 포함된 다섯 왕 동맹과 전쟁을 한 결과 승리를 거두고 많은 전리품과 포로를 잡아갔는데, 아브람의 조카 롯이 이 전쟁에 휘말린 끝에 포로가 되어 끌려간 겁니다. 전쟁터에서 도망친 사람으로부터 이 소식을 들은 아브람은 망설이지 않았습니다. 자기 집에서 훈련시킨 318명의 사병과 동맹 관계에 있던 아넬, 에스골, 마므레 집안사람들을 긴급하게 동원해 추격한 끝에 승리할 수 있었고 포로로 잡혀간 사람들과 재물들을 되찾을 수 있었습니다. 다섯 왕의 동맹조차 이기지 못할 만큼 강력했던 네 왕의 군대를 아브람이 어떻게 물리쳤는지는 정말 미스터리입니다. 어쩌면 네 왕 군대가 승리하긴 했어도 내부적으로는 피해가 큰 상태였을 수도 있고 승리에 도취한 나머지 방심했을 가능성도 있죠. 비록 소수지만 아브람의 사병과 동맹들의 힘이 그만큼 강했다고 볼 수도 있고요. 어찌되었건 아브람으로선 굉장히 힘든 전쟁에서 승리를 거둔 셈입니다.
아브람은 무엇 때문에 무모해 보이는 전쟁에 참여했을까요? 친척으로서의 의무감으로 해석할 수도 있겠지만 롯이 아브람의 가장 가까운 핏줄인 이유가 더 컸을 겁니다. 자녀가 없는 아브람으로선 이대로 자신이 세상을 떠나면 남은 재산과 가솔들을 거둘 사람은 롯 밖에 없었거든요. 비록 롯과는 다른 길을 걷게 되었지만 자신에게 미래가 없었기 때문에 롯이야말로 자신이 반드시 지켜야 할 유일한 희망이었던 것이죠. 후사가 없어 미래도 없는 아브람의 절박한 마음이 만들어낸 드라마였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한편 롯의 입장은 어땠을까요? 아브람과 결별한 뒤 큰 기대를 가지고 소돔 땅으로 이주해 와서 바라던 부를 누릴 수는 있었으나 그로 인해 감수해야 하는 위험 또한 상당하다는 것을 느끼는 계기가 되었을 겁니다. 하지만 19장에서 겪게 될 소돔 멸망 사건에 비하면 이건 시작에 불과했죠. 위기는 아브람도 피해갈 수 없었습니다. 미래의 불확실성에 대한 그의 조급함이 15장 이후 더욱 심각한 문제로 드러나기 시작합니다.
아브라함처럼
선택의 길목이 있을 때
하늘을 보겠습니다
목사님
고맙습니다
감사하내요
그맘 가득안고
하늘을 보시기를 기도합니다~♡
늘 보는 것이지만 사진과 내용이 참 어울립니다 ㅎ
감사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