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hoto by Harris Vo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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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잎 클로버를 발견하거나 가져본 적이 있습니까? 사람들은 네 잎 클로버를 행운의 상징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학창 시절 소풍을 갈 때면 펼쳐진 들판에서 행운의 상징인 네 잎 클로버를 찾기 위해 무던히도 애썼던 기억이 납니다.

그러나 되돌아보니 네 잎 클로버의 행운을 찾기 위해 들판의 무수한 세 잎 클로버와 이름 모를 잡초가 무참히도 짓밟혔던 것을 깨닫게 됩니다. 드넓은 들판에 숨겨진 네 잎 클로버가 희귀한 것일 수는 있으나, 소중한 것은 아닌데 말입니다. 행운이라는 희귀함을 찾는 대가로서 희생이 너무나 컸던 것을 깨닫게 됩니다.

오늘 이 땅의 수많은 사람들이 소수의 사람만이 가지게 되는 행운을 손에 움켜쥐기 위해 미친 듯이 앞을 향해 달려갑니다. 옆과 뒤를 돌아볼 여유가 없습니다. 혹시라도 다른 사람이 행운을 먼저 찾을까봐 출발 신호가 울리지 않았는데도 뛰어나가기도 하고, 옆의 사람을 밀치기도 하고, 그러다가 사람들이 뒤로 나자빠지기라도 한다면 경쟁자가 사라진 것으로 속으로 쾌재를 부릅니다.

그렇게 해서라도 사람들은 네 잎 클로버를 손에 쥐려 합니다. 살벌한 경쟁을 통해 행운의 네 잎 클로버를 손에 쥔다 한들 기뻐할 수 없는 이유가 있습니다. 그것은 수많은 사람들이 이로 인해 상처를 입고, 무수한 세 잎 클로버가 짓밟힘을 당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바보스럽지만 이런 생각을 해 봅니다.

“네 잎 클로버의 행운을 얻기 위해 앞만 보고 달려갈 것이 아니라, 바로 나의 옆에, 나의 뒤에 서 있는 세 잎 클로버와 같은 평범한 사람을 사랑하고, 세워 주면 안 될까?”

예수님께서 바로 이런 길을 걸어가셨습니다. 예수님은 2,000여 년 전 팔레스틴 땅을 움직이는 최고의 슈퍼스타였습니다. 수많은 군중이 주님을 따랐지만 주님은 그 인기의 달콤함에 취해 세 잎 클로버와 같은 지극히 작은 한 사람의 소중함을 잊지 않으셨습니다. 그래서 소자 한 사람을 실족케 하면 “차라리 연자 맷돌이 그 목에 달려서 깊은 바다에 빠뜨려지는 것이 나으니라”(마 18:6)고까지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네 잎 클로버의 꽃말인 ‘행운’보다 세 잎 클로버의 꽃말인 ‘행복’입니다. 세 잎 클로버와 같이 바로 내 옆에 있는 평범한 한 사람을 소중히 여기는 삶 속에 참된 행복이 있습니다. 주님은 로또의 신화가 가득한 이 살벌한 세상에 한 생명의 소중함을 위해 자신의 몸을 아낌없이 주셨음을 잊지 마십시오.

코로나 19가 덮친 온 세상에 신음하는 소리가 가득합니다. 작은 예수로 살아가는 성도인 우리는 주님처럼 이 치열한 경쟁사회 속에서 지치고, 경쟁에서 뒤처진 사람까지도 품을 수 있어야 합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짓밟고 가버린 들판의 세 잎 클로버와 같은 사람을 세워주고, 그들의 눈물을 닦아주고, 참 행복이신 예수님을 전해줘야 합니다. 바로 이것이 하나님 나라 백성이 영원토록 추구해야 할 삶인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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