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의 모든 끝이 여호와를 기억하고 돌아오며 모든 나라의 모든 족속이 주의 앞에 예배하리니 나라는 여호와의 것이요 여호와는 모든 나라의 주재심이로다” (시편 22:27)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백성들로부터 예배 받으시기를 원하시는 분입니다. 특별히 팬데믹이라는 시대적 상황을 볼 때 예배의 방법론이 다양해질 수밖에 없는 상황에 처했습니다. 그러나 오늘 이 예배에 집중해 본다면 방법론의 문제가 아니라 그것을 넘어서 예배의 본질, 예배의 중요성, 예배의 목적 이 부분을 다시금 우리가 짚어볼 수밖에 없습니다. 지금 많은 교회가 예배 방법론의 다양성을 추구하고 그런 부분들을 적용해 보려고 애를 쓰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중에서도 우리가 놓치지 말아야 할 부분은 이 예배는 우리 믿는 자들에게 있어서 양보하거나 타협할 대상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만큼 예배의 중요성이 오늘 말씀 가운데도 들어가 있습니다. 저는 선교의 일을 많이 하면서 이런 나라 저런 나라 다녀본 경험이 있습니다. 그런 가운데 제가 깨달은 바를 여러분들하고 나누고 싶습니다.
다른 나라로 이동을 하면 시차라는 게 있습니다. 그래서 때로는 잠자는데 힘이 들고 적응하는 데 어려운 부분들이 있습니다. 그러는 가운데 저도 잠을 설쳐서 뒤척이다가 크게 깨달은 바가 있습니다. 하나님이 왜 시차를 두셨는가? 물론 물리적으로 지구가 자전하니까 시차가 있지만, 영적인 해석을 해보려고 나름대로 애를 써봤습니다. 아 하나님은 지구상에 있는 하나님의 모든 백성으로부터 항상 예배 받으시길 원하시는 분이라는 걸 깨닫게 됐습니다.
예를 들어볼까요? 우리가 주일날 11시 예배를 드린다고 하면 1시간 후면 베이징에서 예배가 드려지고 2시간 후면 태국에서 예배가 드려지고 6시간 후면 유럽에서 예배가 드려지고 우리가 쿨쿨 자는 시간에 정반대에 있는 남미, 아르헨티나, 칠레, 브라질에서 예배가 드려지고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어느 시간 어느 장소를 불문하고 하나님께서는 지구상에 있는 모든 하나님의 백성들로부터 늘 예배 받으시기를 원하시는 분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바로 그 부분을 시편 기자가 지적을 하고 있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예배 방법론의 문제가 아닙니다. 본질적으로 우리가 경배의 대상이신 하나님을 향하여 우리의 마음이 온전히 드려지고 있는지 그것은 이미 예수님도 요한복음 4장에서 사마리아 여인을 만났을 때 말씀을 주시지 않았습니까? 사마리아 여인이 “당신네는 예루살렘에서 예배를 드리고 우리는 그리심산에서 예배를 드리고 도대체 하나님은 어디서 예배를 받으시는 분이신가요?” 라는 질문을 던졌을 때 주님이 주신 말씀을 우리가 기억하지 않습니까?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지니라.예배는 다시금 우리가 언급하지만 양보하거나 타협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마음이 방법론의 문제가 아니라 하나님을 향한 마음이 있을 때 우리를 통해서 온 세계 속에 하나님을 예배하는 자들이 퍼지게 할 것이고 또 세계 어느 곳곳에 있든지 그들로부터 하나님을 경배 받으시기를 원하시는 분이라는 사실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예배는 다시금 우리가 언급하지만 양보하거나 타협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마음이 방법론의 문제가 아니라 하나님을 향한 마음이 있을 때 우리를 통해서 온 세계 속에 하나님을 예배하는 자들이 퍼지게 할 것이고 또 세계 어느 곳곳에 있든지 그들로부터 하나님을 경배 받으시기를 원하시는 분이라는 사실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글 | 정흥호 총장(아세아연합신학대학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