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로 친절하게 하며 불쌍히 여기며 서로 용서하기를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용서하심과 같이 하라
그러므로 사랑을 받는 자녀 같이 너희는 하나님을 본받는 자가 되고 그리스도께서 너희를 사랑하신 것 같이 너희도 사랑 가운데서 행하라 그는 우리를 위하여 자신을 버리사 향기로운 제물과 희생제물로 하나님께 드리셨느니라” (엡 4:32~5:2)

어떤 목사님이 부임설교를 하기 위해 강단에 올라갔는데 강대상에 아주 이쁘게 만든 엽서가 올라와 있었습니다. 엽서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습니다. “우리 성도들은 목사님을 통하여 주님을 보기를 원합니다.” 이 엽서를 설교시간에 소개하면서 목사님도 이야기 했다고 합니다. “저도 여러분들을 통하여 하나님을 보기를 원합니다.”
교인들은 목사를 통해서 주님을 보기를 원하고 목사도 성도들을 통하여 하나님을 보기를 원합니다. 목사를 통해서 주님을 보는 성도가 복이 있고 성도들 통해서 주님을 보는 목사가 복이 있습니다.
오늘의 시대는 성도도 없고 목사도 없고 가족도 없고 이웃도 없고 그저 진보와 보수만 있는 것 같습니다. 남북이 나뉘어져 있는 상황에서 지역간에 대립하고 이념간에 대립하고 세대간에 대립하고 서로 편이 나뉘어져서 내편이 아니면 다 적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때에 저분을 보면 주님이 보인다! 저분 속에 하나님이 보인다! 이런 지도자가 그리워집니다. 한경직 목사님이 계셨더라면, 김수환 추기경이 계셨더라면 뭐라고 하셨을까? 요즈음 많은 사람들이 한경직 목사님을 그리워하고 김수환 추기경을 그리워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이라면 어떻게 하실까? 하면서 기도하고 있습니다. 오늘 이 시대 주님이 우리 곁에 계셨더라면 무엇이라고 하실까요? 아니 주님은 오늘도 말씀을 통하여 우리 곁에 계십니다.
우리 곁에 계신 주님 말씀하시는 주님의 음성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다른 사람을 통하여 주님을 보기를 원하기 전에 먼저 나를 통하여 주님을 보여주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첫째로 죄를 미워하시는 주님의 모습을 사람들에게 보여주어야 합니다. 오늘의 세상은 모두 죄인들이 쏟아내는 악한 말들 때문에 시끄럽습니다. 악한 말들 비방하는 말들 온갖 쓰레기 같은 말들을 제어해야 하겠습니다.
둘째로 용서하시고 불쌍히 여기시는 사랑의 주님을 보여주어야 합니다. 사랑할 때 불쌍하게 보이고 사랑할 때 용서하게 됩니다. 주님은 우리들을 사랑하셨기에 불쌍히 여기셨고 우리를 사랑하셨기에 우리를 용서하시고 십자가에서 대신 죽으셨습니다. 그 사랑을 받은 우리들도 사람을 사랑하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사랑하는 마음으로 보면 모두가 불쌍하고 모두가 안되었고 모두의 허물을 덮을 수 있습니다.
셋째로 주님을 본받음으로 주님을 보여주어야 합니다. 내가 주님을 본받으면 내 속에 계신 주님이 드러나게 됩니다. 시작은 사랑을 받은 자녀들부터 나부터 우리부터 오늘부터 주님의 마음을 본받고 주님의 사랑의 성품을 본받을 때 나를 통해서 주님이 드러나게 됩니다.
요즈음 아침부터 저녁까지 들리는 소리들과 사건들을 보면 사람을 피로하게 하고 우울하게 하고 우리들의 영성을 흐려지게 하는 것들로 가득합니다. 이러한 시대에 우리 믿는 성도들부터 입술로 시간으로 물질로 삶으로 주님을 보여드릴 때가 아닐까요? 주님처럼 더 사랑하고 더 용서하고 더 섬기고 깨어질 때 우리를 통하여 그리스도의 향기가 진동하게 될 것입니다. 주님의 모습을 보기 원하는 이 세상에 저와 여러분들이 있기를 소원합니다.
글ㅣ임보순 목사(안동광성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