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6세 영국화가, 로즈 와일리 전시 젊은층에게 인기
코로나블루를 잊게 하는 공감과 유쾌함을 담은 그림의 언어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 3월 28일까지

전시장에서 그녀의 작품을 처음 만났다면, 당황한 눈빛으로 잠시 발걸음을 멈출 수 있다. 언뜻 보면 일러스트 같기도 하고, 만화 같기도 하며, 낙서 같은 그림 앞에서 물을지도 모른다.
‘뭐야? 이게 그림이야?’
점잖고 말끔하게 정리된 그림을 본 게 마지막 미술관 경험이라면 이런 어색함과 당혹스러움을 씻어내는데 좀 더 시간이 걸릴 수도 있다. 하지만, 로즈 와일리의 전시를 본 후 왠지모를 자유로움과 유쾌함이 마음에 조금씩 담긴다면, 당신은 발견한 것이다. 로즈 와일리의 매력을.

현대미술은 말한다.
“그것이 무엇이든 간에 작가가 주장하면 그것은 작품이다.”
그래서 현대미술을 접하는 관객은 무엇을 보고 어떻게 느껴야 할지 난감한 기분만 남긴 채 전시장 문을 나서기도 한다. 하지만 전시장의 첫 작품에서 느낀 당혹스럽고 어색했던 감정이, “괜찮네. 재미있는데!”로 바뀌는 마술을 일으키는 현대미술 작가들이 있다.
몇 분만에 사람의 마음을 바꾸다니 얼마나 대단한가! 그래서 훌륭한 작가의 작품은, 슬쩍 밀고 당기며 우리의 마음을 유연하게 만드는 재능을 가지고 있다. 로즈 와일리 또한 이런 재능을 보여준다.

그녀는 1934년생으로 영국이 2차 세계대전에 휩쓸리던 시대에 어린 시절을 보냈다. 이렇게 다른 시대를 살았던 그녀의 그림을 보기 위해 많은 20,30대 젊은층이 전시장을 찾는다. 그녀의 작품은 어떻게 세대 차이를 훌쩍 넘어 젊은 관객의 마음에 닿을 수 있었을까?
유쾌하나 가볍지 않은 핑크와 민트. 파스텔 컬러에 둘러쌓인 자유분방한 붓의 움직임과 캔버스 곳곳에 등장하는 매력적인 텍스트. 그녀를 그저 86세 할머니 작가로만 지칭한다면, 큰 실례다. 그녀가 보여주는 작품은 어느 젊은 작가의 작품보다 젊고 발랄하다.
하지만, 단지 자유롭고 개성 넘치는 화풍만 캔퍼스에 가득했다면 관람객의 시선을 끄는 힘이 그리 대단하지는 않았을 듯했을 것이다. 그런 면에서 로즈 와일리는 현명했다.

작품 안에 현대인에게 익숙한 모티브를 담아 그녀의 그림은 관람객들에게 친숙하게 다가 온다. 유명 감독의 영화 내용을 그림으로 담은 작품과 함께 영국 축구와 축구선수 손흥민을 그린 작품도 전시되어 있다. 정원의 식물, 반려동물 등 우리 일상에 담긴 이야기를 로즈 와일리만의 자유롭게 유쾌한 그림 언어로 그려냈다.
그녀의 그림 속에서 신나게, 자유롭게 뛰노는 일상에 동참하다 보면 코로나로 답답하고 지루했던 우리의 일상을 조금 더 가볍고 즐거운 마음으로 돌아보게 된다.

직관적이며 위트가 넘치는 그림. 관객에게 무엇을 해석하고 깨닫기를 바라지 않는 그림. 그래서 그녀의 전시는 관람객에게 무언가를 강요하지 않는다. 모든 작품이 얼굴에 인상쓰며 인간실존에 대한 고민에 빠지게 만들어야 하는 건 아니지 않은가. 전시실에 재현해 놓은 그녀의 작업실을 보면 작가로서, 한 사람으로서 그녀의 철학이 좀 더 선명하게 전달된다.
“뭘 눈치를 봐. 그냥 해봐. 자유롭게. 틀려도 괜찮아. 여기저기 묻혀도 괜찮아.”
76세가 되어서야 신진작가로 선정된 그녀가 긴 시간 동안 작품을 그리며 자신에게 속삭이던 격려와 응원의 소리가 관람자에게도 들리는 듯 하다. 그래서 관람객은 그녀의 그림을 보고 있으면 편안하고, 즐겁고 행복하다.

지치고 우울한 사람에게 어설픈 위로나 부담스러운 동기 부여는 금물이다. 코로나로 힘든 이들에게 마음만 앞선 어색한 조언 대신 따뜻한 일상의 이야기를 나누는 건 어떨까? 로즈 와일리의 작품과 삶이 보여주지 않았던가. 소소한 일상의 즐거움을 나누는 것만으로도 서로의 마음에 에너지가 나눠지기 시작한다는 것을.
로즈 와일리의 전시를 떠올리며 소통하는 방법을 다시 느껴본다. (좋은 그림은 무엇을 가르치지 않는다. 그저 느끼게 한다) 요즘 코로나 보다 더 무서운 게 ‘불통’이 아닐까. 생각이 다르고 말이 안 통한다고 귀를 막고 소통하려는 노력을 포기한다면 코로나가 끝나도 여전히 자가격리된 마음으로 살아가야 한다. 그런 곳에서는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