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의 원천은 보이는 세계에 있지 않다. 보이는 세계가 아무리 화려해도 보이지 않는 세계가 갈증으로 허덕이고 있다면 그가 과연 진정한 행복자일 수 없으리.

우리에게 익숙한 책‘내려놓음’으로 유명한 분이 계시다 난 그 분의 글을 통해 깊은 감명을 받았다. 그 후로 그 분을 사랑하고 존경하며, 그 분의 신앙 철학과 삶에 그대로 동의와 경의를 함께 표한다.

내려놓음이 존재하려면 선재해야 할 것이 있다. 내려놓을 만한 무엇인가가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하기야 내려놓기로 말하면 이 세상 모두에게 그 무엇인가 내려놓을 것이 없으랴. 무식하면 무식한대로, 가난하고 못났으면 그대로 내려놓을 그 무엇이 있을 수 있다. 모두 다 자신이 주인노릇을 하는 자들의 이야기지만…….

사실 언제 인간에게 내려놓을 것이 있었던가? 주인 되시는 그 분 안에서라면 동서고금, 빈부귀천 모두에게 내려놓을 것은 존재할 수 없다. 내 힘으로 소유하고 누릴 수 있는 것이 전무한 우리가 무엇을 내려놓는단 말인가?

이 책 어딘가에는 상대평가에 대해 거듭해서 지면을 할애하고 싶다. 사람들은 사단의 조종을 받는 세상이 쳐 놓은 소유란 그물에 걸려 허덕이고 있다. 사단이란 녀석이 파 놓은 더 많이, 더 높이의 함정에 빠져 허우적거린다. 무엇이든 남보다 더 소유했다 싶으면 여지없이 교만이란 함정에 빠진다. 교만과 탐욕의 올무에 걸린 자들치고 이미 소유하고 누리는 것들, 상대적으로 인정받는 것들을 내려놓음이 결코 쉽지 않다.

나도 이제 환갑의 나이가 되었다. 이리저리 부분적으로 인정을 받으면서 많은 생각들을 하게 된다. 생각할수록 난 내려놓을 것이 없다. 본래 비천했으니 그리하려니와 그나마 상대적으로 조금 높아 보이는 것이 있다 해도, 내 속 사람을 들여다보고 주님을 만나 본 이상 그 무엇도 내 것이라 주장할 것이 없기 때문이다.

혹자는 비움을 노래한다. 물론 비워야 하겠다. 하지만 묻고 싶다. 무엇을 비워야 하나? 인간에게는 비울 것이 없다. 애당초 내 것이 없었으니까. 우리의 소유 모두는 창조주의 선물이다. 우리는 청지기일 뿐이다. 주인이 오라하시면 손 놓고 가야한다. 해서 우리가 비울 것이 있을 수 없다.

단독목회를 해온지 어언 삼십년이다. 육십 오세에 은퇴를 할 것이니 몇 해 남아 있지 않다. 어떤 분들은 칠십 세까지 가란다. 은퇴를 하고나면 아무 것도 아니란다. 난 깊이 생각한다. 내 인생을 송두리째 드렸다는 표현을 쓸 만큼 사랑했고 아끼는 한밭제일교회를 떠난다 해도 전혀 미련 없다. 나 같은 사람이 이만큼 쓰임 받은 것만도 감지덕지니까.

무소유란 이름으로 살아서도 대단했고, 세상을 떠난 후에 더 유명한 분이 계셨다. 무소유, 그렇다. 우리 인간에게는 무소유가 정답이다. 난 종교를 떠나 인간적으로 그 분에게 경의를 표한다. 아무리 깊은 수련을 한다 해도 누구나 그렇게 살아갈 수 없음이 분명하기에. 하지만 난 무소유의 그 분이 곁에 오실 수 있다면 정말 묻고 싶다.

‘무소유로 사셨으니 진정 행복했느냐고 길다면 길었을 그 세월에 혼자만 씨름했을 그 무엇들, 내 동의도 없이 기회만 있으면 솟아나던 그것들은 어떻게 했느냐고.’

난 진리와의 진한 만남을 체험했다 해서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의 속을 들여다 볼 수 있다. 농도의 차이야 인정하지만 모든 사람들의 마음 곳간이 대동소이하다. 나 자신을 포함해서 모두 다 더러운 오물 곳간일 뿐이다.

이 세상 그 누구라도 그 속에서 생수의 샘이 솟아나지 않는 한 참 만족은 없다. 아무리 깊은 도를 닦는다 해도 무소유의 철학만으로는 진정한 행복은 있을 수 없다.

아무 것도 소유한 것이 없이 빈손으로 살다가 빈손으로 갔다고 무소유랄 수는 없다. 그 마음 곳간에서 쏟아질 온갖 쓰레기들을 스스로 해결할 수 없음이 분명하니까.

솟아나야 한다. 더럽고 추한 것들을 사를 불이 솟아나야 한다. 사악하고 지저분한 모든 것들을 씻어 낼 생수가 솟아나야 한다.

진정한 행복은 채움에 있지 않고 솟아남에 있다. 우리의 마음 곳간은 이 세상 것을 아무리 쓸어 담아도 채울 수가 없다. 대신 그 속에서 솟아남이 있어야 한다. 사랑의 생명수가 솟아 흘러 넘쳐야 한다. 그 길만이 광활하고 끝이 없는 곳간을 채울 수 있는 유일한 답이다.

이 세상 최고의 미인을 안고 있어도 참 만족은 없다. 무한권세를 휘둘러도 마찬가지다. 우리 시대 최고의 부를 소유해도 거기에서 만족을 노래할 수 없다. 뭇사람들의 인기를 한 몸에 독차지해도 그것으로 채울 수 없는 공간이 있다.

우리는 지난 해에 자살이란 횡포자에게 우리 시대 대단한 사람들을 빼앗긴 참 슬프고 아픈 기억이 있다. 우리 보기에 생을 그렇게 마감할 수 밖에 없을 만큼 부족했던 사람들은 전혀 아닌 것 같았는데……. 우리 중에 많은 이들이 그들을 부러워했을 수 있다. 그런데 막상 그들 안엔 세상 것으로는 채울 수 없는 무엇이 존재했기에 극단적인 행동을 취했을 것이다. 세상 모두가 안과 밖이 똑같이 행복하다면 얼마나 좋을까?

솟아나야 한다.

내 안에서 사랑의 시내가 터져야 한다.

솟구친 ‘사랑의 시냇물’이 강이 되어 흘러넘쳐야 한다

바다를 이루며 헤엄칠 수 있어야 한다.

솟아난 생수의 강이 이 세상 모든 욕망을 침몰시켜야 한다.

내 마음 곳간에 살아 있는 정욕의 창고를 휘감아 정복해야 한다.

뱀의 머리를 밟고 일어설 수 있어야 한다.

내 마음 곳간의 문을‘위하여’의세계로열어야한다

‘나를위하여’에서‘님을위하여’의세계로열어젖혀야한다

‘나를위하여’의세계에서‘도움이필요한이웃을위하여’로활짝 열어 놓아야 한다.

그럴 때만이 마르지 않는 행복을 노래할 수 있다.

내 안에는 끊임없이 흐르는 소리가 있다.

언제부터인지 정확하지는 않다.

다만 내가 그 소리를 분별한 그 순간은 잊을 수 없다.

그 소리를 깨달은 이후부터 난 진정한 행복을 수놓을 수 있었으니까.

그 소리와 함께 부질없는 욕망에서 헤어날 수 있었고,

그 소리와 함께 날마다 행복소나타를 연주할 수 있었으니까.

그 행복의 소리가 들려지고 깨달아지던 그 때는

내가 상대적으로 행복한 때가 아니었다.

무언가 일이 잘되어 가는 때는 더더욱 아니었다.

무엇하나 제대로 되어지는 것이 없는 포기직전의 곤고한 때였었다.

내 인생에서 가장 어둡고 긴 절망의 터널을 숨 가쁘게 헐떡이며 통과하고 있을 때였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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