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어날 때부터 한쪽 눈꺼풀이 안떠지는 병.. ‘반쪽이’란 별명
냄비와 그릇 몇가지 보자기에 싸들고 무작정 서울로 상경
맨주먹으로 시작했지만 그 빈손에 많은 것을 채워주신 나의 하나님

서울시 동대문에 위치한 (주)진흥문화를 찾았다. 호탕한 웃음으로 악수를 건네는 박경진 장로. 어린 시절부터 장애를 갖고 살아온 사람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밝은 청년의 에너지가 넘쳤다. 하나님과 그는 과연 어떤 로맨스가 있었을까. 그가 건네는 따뜻한 녹차를 마시며, 그가 걸어온 길을 들어봤다.

인터뷰 중인 진흥문화(주) 박경진 장로
인터뷰 중인 진흥문화(주) 박경진 장로

I 삶의 시선

Q. 당신의 삶의 이야기는 어떤 장르인가요?

인생은 각본 없는 드라마라고 한다. 내 인생도 그랬다. 가난한 산간벽지에서 왼쪽 눈이 떠지지 않는 장애를 갖고 태어나 인생의 시작부터 고난이 많았다. 친구들은 그런 나를 ‘반쪽이’라 부르며 놀리곤 했다. 그런 나를 예수님께서 초등학교 2학년 때 만나주셨고, 굴곡진 인생의 순간 순간마다 놀라운 손길로 붙들어 주셨다. 주님의 손에 붙잡힐 수 있었다는 사실이 내게는 큰 복이었다. 지금 이렇게 인생을 다시 뒤돌아보니 내 인생은 역시나 해피엔딩인 것 같다. 주연배우가 부족해도 뛰어난 연출로 내 인생을 만들어주신 하나님 덕분이다. 

Q. 굴곡진 인생이라 하셨는데, 가장 행복했을 때와 가장 힘들었을 때를 꼽으신다면?

첫 번째는 1969년에 아내와 함께 맨주먹으로 무작정 서울로 상경했을 때. 보자기에 냄비와 그릇 몇가지를 싸들고 올라왔다. 돈을 가지고 있어도 살기 빠듯하다는 서울 생활인데, 아내와 나는 서울 맨바닥에서 적수공권으로 시작했으니 고생이 말도 못했다. 첫 서울살이 10여 년 동안에 단칸방 셋방 이사를 스물다섯번이나 다녔다. 

두 번째는 2004년 4월에 일어난 회사(진흥문화)의 화재. 하나님의 살피심으로 회사가 날로 번창해 새로운 사옥 리모델링 작업을 진행중이었다. 외부 철거가 한창 진행되는데 용접기가 잘못됐던 건지 그만 화재가 일어났다. 다행히 초기 진압이 잘돼 4층만 불에 타고 전 건물 전소는 피할 수 있었다. 회사가 한창 잘 운영되고 있었는데 암초를 만났다고 생각할 수 있었지만, 오히려 우리는 담임목사님을 모시고 감사예배를 드렸다.

코로나로 인해 가족이 함께 모여 예배할 수 있음에 감사하다는 박경진 장로, 명절에는 가족과 함께 양화진 묘역을 찾는다.
코로나로 인해 가족이 함께 모여 예배할 수 있음에 감사하다는 박경진 장로, 명절에는 가족과 함께 양화진 묘역을 찾는다.

Q. 화재 후 감사예배부터 드렸다고요? 

그랬다. 화재 후 감사예배부터 드렸다. 만일 화재가 11월이나 12월에 났다고 하자. 그랬다면, 우리는 그 해 주문량을 완전하게 제작하지 못했을 것이다. 이건 회사 수입 문제가 아니다. 고객들과의 신뢰 문제다. 이렇게 생각하고 기도하다보니 4월에 화재가 난 것이 감사해지더라. 소중한 고객들과의 약속을 지킬 수 있었으니 얼마나 다행인가. 담임목사님을 모시고 전 직원이 함께 감사예배를 드리는데 예배 장소가 울음바다가 됐다. 이 때, 고난 중에 드리는 감사를 하나님께서 얼마나 기뻐하시는지 비로소 알게 됐다. 

Q. 힘들었던 나에게 사랑의 한마디를 한다면?

고단한 세월을 감당할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께서 주신 근면성실(勤勉誠實)함 덕분이었다. 또 한가지 스스로 자랑스럽게 여기는 것은, 굶더라도 가게에서 단돈 천 원도 외상질 안 하고 살았다는 것. 돌아보면 정말 하나님의 은혜였다. 성실함과 정직함도 하나님께 배운 것이었다. 하나님 편에 서서 흔들리지 않은 부분은 스스로 격려하고 싶다.

Q. 하나님의 첫사랑을 경험한 순간은?

1959년 11월 1일 7시로 기억한다. 성연 냇가에서 침례(浸禮)를 받았다. 물에 잠기는 순간, 지금까지의 삶은 물 속에 장사 지내고 새사람이 되었다는 확신이 들었다. 아울러, 내 마음도 새롭게 변화되었다는 확신이 들었다. 

Q.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기 전과 후의 모습 변화는??

성연 냇가에서 침례(浸禮)를 받으며 물과 성령으로 거듭났다는 확신과 함께 넌크리스천의 생활을 단번에 끊어버렸다. 그리고나서 철두철미한 신앙생활을 시작했다. 겨울에도 반드시 얼음을 깨고 냉수마찰하고 4km 교회를 뛰어다니며 매일 새벽기도에 빠지지 않았다. 그 이후, 새벽기도를 40년 이상 빠지지 않고 꾸준히 참석하고 있고, 주일성수는 목숨같이 지켰다. 그리고, 금요일 저녁과 주일 아침은 반드시 금식하는 삶으로 변화됐고, 할 수 있는 대로 교회 사역과 봉사도 꾸준히 섬겨왔다.

Q. 당신의 삶에 개입하셨던 하나님의 일은 무엇인가요?

서울로 상경해 했던 일 중에 하나가 인쇄 업체에 취직해 샘플 달력을 들고 다니며 캘린더 외판원을 했었던 적이 있다. 당시 달력은 유명한 연예인들의 얼굴이나 수영복을 입은 모델의 사진을 많이 사용했다. 이렇다보니, 교회에서는 일반 달력을 걸어놓지 못하고 숫자 달력만 걸어놓는 경우가 많았다. 순간 생각했다. 예수님의 성화를 넣은 달력을 만들면 교회에서도 멋진 캘린더를 걸어놓을 수 있겠다고. 그 순간이 내게는 하나님께서 개입하신 중요한 순간이었던 것 같다. 하나님 덕분에 성화 캘린더를 최초로 제작할 수 있게 됐고, 그 결과 ‘성화 캘린더의 아버지’라 불리게됐다.

Q. 당신의 삶을 공유하는 홈그라운드는? 그 공동체에서 당신의 역할은 무엇인가요?

하나님께서 이 부족한 사람을 종으로 삼아주셨다. 평신도 사역에 쓰임을 받고 있는데, 장로회 전국연합회장을 비롯해 초교파장로회 전국연합회장, 사단법인 한국기독교성지 순례회장, 기독교 한센인선교회 이사장, 사단법인 한국미래포럼 대표회장, 진흥장학재단 이사장 등 여러 기관단체 회장직을 섬기고 있다. 하나님의 부르심에 부끄럽지 않은 종이 되도록 기도 부탁한다.

Q. 최근 삶의 변화를 이끄는 것은?

한 평생 사업을 이끌어오면서 다른 것에는 신경을 많이 못썼는데, 최근에 책 한권이 손에 잡혔다. 대우그룹 김우중 전 회장의 “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다” 라는 책이다. 이렇게 정독한 건 너무 오랜만인 거 같다. 그동안 이런 훌륭한 업적을 남긴 사람들의 책을 제대로 읽지 못하고 살아온 게 후회됐다. 앞으로 인생 선배들의 책들을 더 접하고 배우려한다.

I 사역의 시선

Q. 지금 맡은 일/ 사역을 소개하자면?

(주)진흥문화사를 창업하고 경영해왔다. 캘린더를 주로 제작하고 있고, 신앙도서 출판과 기독교 팬시 제조, 그리고 기독교백화점과 진흥갤러리 아트홀도 운영하고 있다. 또, 한국기독교성지순례선교회, 진흥장학재단 등도 운영해 전반적인 한국기독교 문화 사역에 보탬이 되고자 노력하고 있다. 

밤 늦도록 캘린더 작업이 한창인 진흥문화 파주 공장
밤 늦도록 캘린더 작업이 한창인 진흥문화 파주 공장

Q. 일/사역 가운데 감동, 기억에 남은 에피소드는?

1983년 3월에 기독교 문화의 발상지인 유럽을 견학한 일이다. 예수님의 성화가 담긴 캘린더를 제작하는 일을 주업으로 삼고 있는데, 기독교 문화의 중심인 유럽을 보지 않고는 좋은 캘린더를 만들 수 없겠단 생각이 들었다. 그 당시 서울에서 셋방 살이를 할 때였는데 무작정 빚을 내 유럽으로 떠났다. 3주 동안 유럽을 견학하면서 기독교 문화사업 아이템에 참고가 될만한 자료들은 모두 끌어모았다. 그 이후, 유럽 연구 자료를 토대로 캘린더를 제작했는데 소위 대박이 났다. 

Q. 대박이라.. 어느 정도였는지?

당시 캘린더 업체가 한 종류의 달력을 만 오천부 정도 판매하면 경영실적이 괜찮다고 평가받던 때다. 그 때 진흥문화는 기독교 캘린더만 53만부를 주문받았다. 이 소식으로 업계가 떠들썩했다. 이건 사람의 힘이 아니었다. 하나님께서 부어주신 지혜였고 능력이었다.

Q. 하나님께서 부어주신 당신의 달란트를 좀 더 자세하게 말해준다면?

괜히 내 자랑이 되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웃음). 한 가지만 말하자면 근면과 성실이 나의 달란트가 아닌가 싶다. 아버지께서는 늘 근검 절약을 강조하셨고, 또 그렇게 당신의 삶을 살아내셨다. 나 또한 자연스레 아버지의 근검 절약을 보고 배웠다. 

Q. 근검 절약해 쓰고 싶으신 곳이 있으시다면?

아직도 세상에는 할 일이 많고, 도울 사람도 많다. 내 삶의 시작도 넉넉지 못했다. 그렇다보니 어려운 사람들을 보면 마음이 쓰인다. 예수님께서 가난한 이웃과 함께 하셨듯이 나 또한 그러고 싶다. 

Q. 안그래도 최근 한 성화 미술가를 오랫동안 후원해오신 선행이 알려졌는데?

이요한 성화 작가는 실력에도 불구하고 많이 알려지지 않았던 분이다. 산속에 천막을 짓고 홀로 성화를 그리던 분이었는데 처음 뵙는 날 도와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한번 후원하면 끝까지 함께 가려고 노력을 한다. 다행히 이 작가님도 흔쾌히 승낙해주셔서 최근 진흥문화사와 성화집을 발간하기도했다. 이런 작은 협력과 연합이 하나님의 복음을 전하는데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면 여한이 없겠다.

동역자로 함께해온 박경진 장로(좌)와 성화작가 이요한(우) @출처 이요셉 사진작가
동역자로 함께해온 박경진 장로(좌)와 성화작가 이요한(우) @출처 이요셉 사진작가

Q. 장로님의 사역에 대한 다른 기도제목이 있으시다면?

하나님께 보답 드리고 싶은 마음에, 부족하지만 여러 사역을 섬기고 있다. 그 중에 한가지를 소개하자면, 매해 해외 한인 입양자들을 초청해 한국을 소개하고 있다. 수십년 전, 미국을 방문했을 때 한인입양단체 모임을 방문한 적이 있다. 당시 입양인 간에 토론회를 지켜봤는데 한국에 대한 상처가 많은 아이들도 있더라. 그 아이들이 마음에 남았다. 그래서 진흥문화 창사 20주년이 되던 해에 한국인 입양자들을 초청해 그들과 시간을 보냈다. 대한민국을 알리고, 그들의 정체성을 찾아주는데 도움이 됐으면 하는 바람이었다.

Q. 어떤 일이 일어났나?

입양인 중에 캐롤라이나 라는 아이가 있었다. 그 친구가 마지막 시간에 눈물을 흘리며 간증을 하는데 A4용지에 십자가를 그리더라. 그러더니 첫 번째 면에는 직장, 두 번째 면에는 결혼, 세 번째 면에는 자녀를 쓰는게 아니겠나. 자신의 꿈은 이 세가지 였는데 마지막 네 번째 면에는 쓰고 싶어도 쓸 수 있는 꿈이 없었다고 한다. 그 날 행사에서 드디어 마지막 면에 들어갈 단어를 찾았다고 했다. 바로, 나의 ‘정체성’이었다. 그 때, 결심했다. 이 사역은 할 수 있는데까지 끝까지 하자고. 그렇게 시작된 행사가 벌써 25주년이 됐다. 

입양자 초청뿐 아니라 장학사업에도 힘써온 박경진 장로, 협성대에 발전기금은 물론 기독교역사자료실을 기증했다. 박명래 총장과 함께(세번째 사진)
입양자 초청뿐 아니라 장학사업에도 힘써온 박경진 장로, 협성대에 발전기금은 물론 기독교역사자료실을 기증했다. 박명래 총장과 함께(세번째 사진)

I 생각의 시선

Q. 잠들기 전 요즘 가장 많이 하는 생각은? 

아마, 나뿐만이 아니라 모든 사람의 고민일 것이다. 코로나19 상황. 이미 오래전부터 인쇄업에는 불황을 찾아왔다. 힘든 시기를 지나고 있는데 코로나19 사태 이후 인쇄업에 대해 어떻게 대처하고 회사를 경영할 것인가?에 대한 생각이 깊어지는 것 같다. 

Q. 나에 대해 책을 쓴다면 머리말에 남길 말은?

“예수님을 믿을 수 있다는 사실이 얼마나 큰 축복이며 감사한 것인지, 시간이 흐를수록 더욱 깊이 깨닫게 된다.” 라는 교훈을 남기고 싶다. 

Q. 이유는?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한 축복은 경험해보지 않고는 말로 표현할 수 없다. 가난한 집에서 장애를 갖고 태어난 내가 지금은 나름대로의 인생 일기를 써가며 행복하게 살아가고 있다는 자체가 하나님께서 살아계시다는 증거다. 나에게 주신 역사를 모든 사람이 함께 알았으면 좋겠다. 예수님을 꼭 믿어보시라. 손해가 없다.  

캘린더 작업 현장을 돌아보고 있는 박경진 장로
캘린더 작업 현장을 돌아보고 있는 박경진 장로

I 세상의 시선

Q. 장로님의 눈에 비친 세상의 모습은? 

옛날과 비교했을 때 젊은이들의 열정과 끈기가 부족해 보이는 것은 아쉬운 부분이다. 많은 삶의 풍요와 혜택을 누리고 있기 때문에 되레 도전 정신과 끈기가 부족하지 않은가 생각을 해본다.  

Q. 변화했으면 하는 세상의 방향은?

이 땅에서의 부정부패가 사라지고, 누구든지 양심 껏 정직하게 노력하면 성공할 수 있는 세상이 됐으면 한다. 세상이 나에게 그랬던 것처럼.

Q. 한가지 원하는 대로 세상을 바꿀 수 있다면?

인생은 보통 ‘새옹지마’라고들 한다. 한치 앞도 볼 수 없는 것이 우리네 인생살이다. 길흉화복은 항상 바뀐다. 특히 현대 시대엔 세상의 편법과 이기심으로 인해 노력만으로는 성공하기 힘든 현실이 너무 안타깝다. 이런 불평등의 부정부패를 뿌리 뽑아야한다. 노력하고 근면하는 자에게는 반드시 보상이 주어지는 그런 정의롭고 공평한 세상을 꿈꿔본다.

Q. 독자에게 권면과 도전의 한마디를 한다면?

나는 한 쪽 눈이 감긴 ‘반쪽이’로 태어났다. 집안 살림도 여의치 않았다. 하지만, 내 인생에 하나님을 모시고 난 후, 내 삶은 절망에서 기쁨으로, 빈곤에서 풍요로 바뀌었다. 코로나19로 인해 여러 상황이 어렵더라도 신앙을 굳건히 지키고, 긍정적인 의지를 갖고 부지런하게 움직이면 어떤 어려움도 극복할 수 있다. 하나님께서 반드시 좋은 기회를 주실 것이고, 당신의 삶도 역전될 수 있다.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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