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년간 대전역 광장의 노숙자와 쪽방촌 사람들과 함께한 '벧엘의집' 원용철 목사
원용철 목사 "하나님의 관심이 있는 곳에 주인의 종으로 사용되고 싶어"
내가 만나고 섬겨왔던 지극히 낮은 사람들이 바로 나를 찾아오신 예수님

대전역 앞에 가면 22년 동안 매일 가장 연약하고 낮은 이들과 함께하는 젊은 왕초 원용철 목사가 있다.
사람들은 그 힘든 일을 어떻게 하냐고 하지만 원목사는 주인이 하라고 하신 것을 종이 하는 건 당연한 것이라고 말한다.
작은 예수가 생각나게 하는 미소 가득한 원용철 목사를 만나 봤다.

사회선교센터 '벧엘의집' 원용철 목사
사회선교센터 '벧엘의집' 원용철 목사

I 삶의 시선

Q.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난 순간은?

나는 중학교 3학년 때 사촌 누나가 교회를 가자고 해서 처음 교회에 갔다.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난 특별한 시점은 기억나지 않는데 교회를 재미있게 다니면서 서서히 자연스럽게 신앙이 자리 잡았던 것 같다. 고등학교 때 여름에 산에서 집회하고 소나무 뿌리 붙잡고 기도했던 기억이 있다. 깜깜한 교회에서 철야기도 하면서 하나님을 너무 보고 싶어서 눈을 뜨고 기도하기도 했다. 언제인지는 기억이 안 나지만 그러던 중 어느 날 목사가 되겠다고 결심하게 됐다. 그런데 그 후로 목회자의 마음을 품고 계속 갔던 게 아니라 생각이 왔다 갔다 했다. 역사를 좋아해서 역사 선생님이 되고 싶기도 했고, 법대를 가려고도 했다. 그런데 지나보면 한 길을 향해서 가고 있던 나를 깨닫는다. 

Q. 나에게 찾아왔던 인생의 전환점은?

나는 민주화의 열망이 컸던 1980년대에 대학에 입학했다. 학교에서 농촌목회연구회라고 하는 동아리 활동을 하면서 나중에 목회를 하면 농촌지역에 가서 농민들과 함께 살고 싶다는 생각을 가졌다. 그런데 신학대학교 재단의 문제를 보고 한국 교회에 대한 실망과 사회적 모순에 대한 아픔을 느꼈다. 그럴 땐 목회의 길을 가지 않아야겠다는 회의감이 들기도 했다. 

첫 목회지에서 목사 안수를 앞두고 있던 어느 날, 선배 목사님의 글을 보고 “하나님의 종이라고 하는 목회자는 주인이 하라고 말씀하시는 일을 하고 주인이 생각하라는 것을 생각하는 영광스러운 하나님의 종의 자리에 있는 것이다”라는 깨달음이 왔다. 이전에 나는 목회자로서 잘 할 수 있는 게 없다고 생각했지만, 주인은 필요에 따라 각각 다른 일을 다른 종에게 맡긴다는 것을 생각하면서 어떤 일이 나에게 주어지더라도 주인이 맡기시는 일을 최선을 다해 할 수 있겠다는 마음으로 결단하고 목사안수를 받았다.

울산에 있는 교회에 부임해 건강한 목회로 새로운 교회를 세워보겠다는 의욕을 갖고 시작했지만 만만치 않았다. 한 4년 정도 지나니 많이 지쳤다. 그때 IMF가 터졌다. 신학교 다닐 때 농촌이나 빈민 목회를 해보겠다고 어렴풋이 생각했던 것이 IMF가 터지면서 머리를 한 대 맞은 것처럼 기억나서 “맞아 성경에서 말씀하시는 고아와 과부와 나그네와 같은 사람들이 현대 사회에서 누구일까? 바로 삶의 밑바닥에 있는 사람들이구나” 그 당시 IMF 직후여서 거리에 있는 노숙인이 많았다. 하나님이 거기로 이끄시는구나 깨닫고 과감하게 울산에서 교회를 사임하고 대전으로 올라왔다.

울안공동체 생일잔치(2019년 10월)
울안공동체 생일잔치(2019년 10월)

Q. 당신의 삶에 개입하셨던 하나님의 일은 무엇인가?

대전으로 올라온 나는 1998년 12월 한 달 동안 대전역에서 노숙자들과 생활했다. 거기 있는 사람들과 똑같이 함께 지내면서 노숙을 체험했다. 내가 목사라고 하면 구분이 생기니까 나도 똑같이 노숙자라고 했다. 그들은 노숙이라는 말을 난장이라고 했다. ‘노숙한다’라는 말을 ‘난장친다’라고 불렀다. 대합실 히터가 꺼지는 새벽 2시 부터는 발바닥부터 냉기가 올라왔다. 몸이 마비되는 것 같았다. 노숙인들이 누웠다가 금방 못 일어나는 이유를 그때 깨달았다. 거기서 노숙자들과 함께 지내면서 라면도 나눠 먹고 이야기도 나누면서 그들의 사정도 알게 됐다. 다양한 이력들을 가지고 있었고 잘 살다가 나락에 떨어진 사람, 자신을 먼저 챙기기 못해 피해를 당하고 온 사람 등 이전에는 부정적으로 봤던 사람들이 이해되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들은 그 삶을 벗어나지 못하고 숙명처럼 그 자리에 사는데, 나는 선택해서 왔고 언제든 돌아갈 집이 있다는 사실이 나는 진짜 동료가 아니구나 하는 것을 깨닫고 한 달 만에 그 자리를 나왔다. 

그리고 본격적으로 사역을 시작했다. 매일 밤 10시가 되면 컵라면 4상자를 갖고 가서 뜨거운 물을 부어서 나눴다. 당시에는 정기적으로 후원해 주는 교회가 없어서 비정기적으로 여기 저기서 보내주신 돈으로 컵라면을 사서 이어갔다. 작은 컵라면이었지만 함께 나눌 때 그 순간만큼은 잔치 같았다. 오병이어의 기적이 일어났다. 지나가던 분들이 헌금을 하시기도 하고 매일 가던 가게에선 컵라면을 원가에 주셨다. 지금은 쉼터 공간이 생기고 라면에서 밥으로 바뀌어 22년간 나누고 있다. 수많은 우여곡절에도 그분들이 내 손에 쥐여준 천 원, 이천 원이 사역을 계속 이어갈 수 있게 하는 놀라운 손길이었다.

어느 날은 라면이 떨어졌는데 돈이 없었다. 나가야 되나 말아야 되나 고민하다가 그래도 그냥 나가봤다. 그런데 내 눈앞에 이상한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광장 저쪽에서 컵라면 박스가 둥둥 떠오고 있었다. 나는 뭘 잘 못 봤나 싶었는데 다시 보니 사람이 상자를 들고 오는 것이었다. 그것은 다름 아닌 라면 상자의 행렬이었다. 뭐냐고 물었더니 대전역 근처에 일면식도 없는 금강산약국에서 목사님 갔다 드리라고 했단다. 참 놀라운 일들을 많이 경험했다.

대전역 쪽방밀집지역(2017년)
대전역 쪽방밀집지역(2017년)

Q. 목사님이 생각하는 하나님은 어떤 분?

"나와 함께 걸어가시는 하나님"

하나님은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마치 내 옆에서 같이 걸어가시는 것 같다. 벧엘의집 사역을 하게 된 것도, 대전역 광장에 천막을 치게 된 것도 전혀 계획에 없었다. 원래는 포장마차를 하려고 했었는데, 준비를 다했지만 허가가 안돼서 못하게 되고 컵라면으로 전환했다. 특별한 계기들을 통해서 전혀 계획하지 못했던 일들이 일어나고 변화가 일어났다. 나는 원래 이성적이어서 기적도 잘 안 믿는 사람이었다. 기복적인 신앙에 대해서도 부정적이었던 내가 하나님께서 하시는 초자연적인 기적들을 경험하면서 나는 큰 깨달음을 얻게 됐다. 이성적인 내가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인정하게 됐다. 그래서 벧엘의집 사역은 하나님의 기적이다.

Q. 벧엘의집 사역 때문에 가족이 감내해야 하는 수고가 많았을 것 같다?

"늘 없는 남편, 늘 없는 아빠, 아내는 내 사역의 여정에 가장 든든한 우군"

아내와 자녀들이 감당했을 어려움이 많이 있었다. 경제적 어려움도 많았고, 남편으로서의 역할과 아버지로서의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 늘 없는 남편, 없는 아빠였다. 그런데 그런 어려움 가운데서도 아내는 내 사역의 여정에 가장 든든한 우군이었고 동지였고 때로는 죽비처럼 나를 깨우쳐주는 존재였다. 아내는 “하나님이 가라고 하시는 길이면 가야죠. 가정 때문에 목사님이 하시는 사역이 흔들려서는 안돼요. 그렇다면 가정을 버릴 수도 있어야 돼요.”라고까지 이야기했다. 아내가 그 자리에 있어줬기 때문에 내가 지금 여기까지 올 수가 있었다. 늘 아내에게 고맙다.

Q. 가정에서 나의 모습은?

"가장 존경하는 사람도 아빠, 가장 싫어하는 사람도 아빠"

가족이 기억하는 나는 ‘늘 집에 없는 사람’이다. 두 자녀가 지금은 다 성장했지만, 어릴 때부터 나는 집에는 없고 밖에만 있는 아빠였다. 사역을 하다 보니 때로는 버겁게 느껴지는 길이었지만 아내와 두 자녀는 나를 존중해 줬고 내가 약해질 때 다시 정신을 차리게 해준 존재였다. 그런 기억 때문에 딸은 나에게 “가장 존경하는 사람도 아빠고, 가장 싫어하는 사람도 아빠다”라고 이야기했다. 

원용철 목사 국가인권위원회 인권상 수상(2014년 12월)
원용철 목사 국가인권위원회 인권상 수상(2014년 12월)

I 사역의 시선

Q. 벧엘의집 사역을 소개한다면?

1998년 12월 대전역 노숙자들과 추운 바닥에서 실제 노숙 생활을 1달 동안 한 후, 노숙자들과 대전역 쪽방촌 주민을 위해 지금까지 22년째 매일 사역을 이어오고 있다. 지금은 노숙인 자활시설인 ‘울안공동체’와 쪽방 거주자를 위한 ‘쪽방상담소’, 의료 사각지대에 있는 소외계층을 위한 ‘희망진료센터’, 제3세계 국가를 지원하는 ‘세계의 심장’, 거리 노숙인과 쪽방생활인 등의 빈곤계층을 위한 ‘희망지원센터’, 노숙인의 경제적 자활을 위한 사회적 기업 ‘야베스공동체’ 등 노숙자와 쪽방촌 주민을 돕기 위한 전반적인 사역을 감당하고 있다.

Q. 벧엘의집 사역을 하면서 기억에 남는 일이 있다면?

22년 동안 사역하면서 수많은 일을 경험했다. 술 먹지 마라는데 매일 밥 대신 술 마시는 분에게 속상해서 이러다가 죽는다고 소리도 치기도 하고 안타까운 일, 불쌍한 일, 마음 아픈 일 등 다양하다. 그 가운데는 자신을 극복하고 새롭게 삶의 터전으로 나간 분, 가족과 다시 회복하고 같이 살게 된 분, 안타깝게 돌아가신 분도 있었다. 

벧엘의집 후원의 밤(2014년)
벧엘의집 후원의 밤(2014년)

"벧엘의집 사역의 틀을 만들게 된 계기, 김청원 할아버지"

대전역에서 컵라면 사역을 할 때 만났던 김청원 할아버지를 아직도 잊을 수 없다. 공공근로 일자리를 만들어 드리고 싶었는데 노숙자는 주소가 없다고 안 된다고 해서 대전역 광장 주소인 정동 1번지를 등록해서 일을 할 수 있도록 해드리기도 했다. 할아버지가 아프실 땐 직접 약국과 병원에 모시고 가서 도와달라고 하기도 하고 필요한 것이 있으시면 여기저기 직접 찾아가서 도움을 요청하기도 했다. 그랬던 것이 지금의 사역의 틀을 만들었다. 자활을 돕는 울안공동체가 생기고, 희망진료센터, 사회적기업인 야베스공동체 등 다양한 사역 분야가 생기게 됐다.

처음에 만났을 때 혈변을 누신다고 말했다. 병원에 모시고 갔더니 직장암 말기였다. 더 이상 손을 쓸 수 없는 상황이었다. 빨리 퇴원해서 공공근로 하고싶다던 할아버지는 안타깝게도 한 달이 채 못돼 돌아가셨다. 내 마음이 도저히 견디질 못했다. 아픈 마음에 하나님께 대들었다. “하나님 왜 그분을 만나게 하셨어요? 저는 아직 이별할 준비가 되지 않았는데 하나님께서 이렇게 데려가시는 것은 잘못된 거 아니에요? 차라리 안 만나게 하시든지 만나게 하셨으면 좋은 결과가 일어나게 하시든지 너무 하신 거 아니에요?” 가족이 없는 할아버지의 장례식을 치르면서 내내 하나님께 울면서 하소연했다.

"내가 만나는 모든 이들이 예수님이구나!"

그리고 한 분은 알코올성 간경화였는데 오랫동안 황달과 흑달이 겪고 끝내는 식도 출혈로 돌아가셨다. 돌아가시기 전에 동생을 보고 싶다고 간절히 원하셔서 전화를 대신해드렸는데 동생이 만나기를 원치 않았다. 전화로 한참을 설득했지만 결국 아저씨는 동생에게 미안하다는 말 한마디 못하고 돌아가셨다. 장례를 진행해야 하는데 혈육이 오지 않았기 때문에 한 달 이상을 기다린 후에야 복지담당 공무원과 장례를 치렀다. 하루 종일 비가 주룩주룩 오는 가운데 장례를 다 마치고 국밥집에서 밥을 먹는데, 무슨 소리가 들렸다. “그 사람이 나였다. 바로 나였어.” 하나님의 소리였다. 그때 깨달았다. 아 예수님이 그런 모습으로 내게 오시는구나. 참 화도 나고 못마땅하고 정말 외면하고 싶었는데 하나님께서 저런 모습으로 내게 오고 계셨구나. 내가 만나는 모든 이들이 바로 예수님이구나!

"젊은 목사가 연세 많으신 대전역 책임자 멱살 잡아"

라면 나누는 천막을 칠 수 있게 된 계기도 드라마틱 한 사건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당시만 해도 노숙인들을 봉고차로 실어서 수용시설로 강제로 보내는 일이 많았다. 어느 날 대전역 광장에 있는 노숙자를 강제로 실어 가려고 하는 모습을 보게 됐다. 나는 연세 많으신 대전역 책임자를 멱살을 잡고 파출소로 끌고 가서 파출소장 나오라고 소리치면서 인권유린 죄로 잡아넣으라고 했다. 젊은 목사가 예의도 없이 행동하는 거 아니냐고 했지만, 나는 그때 30대 중반으로 젊을 때여서 씩씩거리며 “아무리 힘이 없다고 그렇게 할 수 있어요?”라고 따졌다. 나중에 들어보니 민원이 너무 많아서 어쩔 수 없었다고 했다. 그럼 그건 내가 민원 안 나오게 도울 수 있다. 대전역 광장 한 켠에 천막만 칠 수 있게만 해달라고. 그러면 대합실에서 노숙자들을 나오시도록 하겠다. 그 일이 계기가 되어 그분의 도움으로 역 광장에 천막을 칠 수 있었다. 예상하지 못한 일이었지만 때마다 하나님이 개입을 하셨다.

희망의 나무심기(식목행사 프로그램) 후 참석자와 기념사진
희망의 나무심기(식목행사 프로그램) 후 참석자와 기념사진

Q. 자신의 달란트를 PR한다면?

나는 어떤 상황이든 주어지면 ‘최선을 다하는 자세’를 하나님이 주셨다. 소위 농땡이 안 피우고 잔머리 안 굴리고 계산하지 않고 그냥 간다. 그것이 내 삶의 소신이고 목표이기도 하다. 그래서 나는 일을 할 때도 계획을 많이 세우기보다는 최선을 다해서 하다 보면 계획이 거기서 만들어진다. 이게 맞는 것 같다고 하면 최선을 다해서 한다. 벧엘의집 사역도 그랬다. 천막 치고 라면 끓이는 것도 계획을 하고 시작한 것이 아니다. 오히려 처음에 포장마차를 계획했었지만, 다른 상황이 주어졌을 때 나는 새로운 환경에서 그대로 달려갔다. 그래서 어떤 때는 하나님께서 다음엔 어떤 장을 허락하실 까 궁금하기도 하고 때론 신비롭기도 하다. 나는 지금도 여전히 하나님 앞에 고백한다. “하나님 내가 어떤 상황이든 내 몸을 아끼지 않고 다른 생각 하지 않고 그때그때 하나님께서 주신 것 안에서 최선을 다하며 살겠습니다.”라고.

보석같은남자들 배역 정리 및 하반기 공연 회의(2017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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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생각의 시선

Q. 요즘 가장 많이 하는 생각은?

첫째는 ‘하나님의 정의’에 대해 많이 생각한다. 하나님의 정의로움이 과연 무엇일까. 그것은 어떤 논리가 아니라,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원래의 상태로 인간이 돌아가는 것인 것 같다. 하나님의 생기가 불어넣어진 최초의 사람이 가졌던 그 사람다움. 그것이 나는 정의로움이라 생각한다. 둘째는 ‘하나님의 공의’다. 나는 교회가 가야 되는 길, 그리스도인들이 가야 되는 길이 공의라고 생각한다. 

Q. 우리 사회가 낮은 분들을 향한 어떤 시선을 가졌으면 좋겠는지?

요한복음서 3장 16절을 보면 하나님은 세상을 사랑하셨지 교회만을 사랑하신 것이 아니다. 그리고 교회는 하나님의 사역에 동참자라고 생각한다. 나는 벧엘의 집에 와서 봉사하시는 크리스천들에게 감사의 말을 들으려고 애쓰지 말라고 강조한다. 우리가 봉사할 때 주는 자와 받는 자의 구조가 만들어지고 우리는 권력자가 되어버리는 것 같다.  하나님은 세상을 사랑하셔서 가장 낮은 자의 모습으로 이 땅에 오셨고 가장 약한 자의 모습으로 공생애를 사시고 십자가 고난을 통해 우리의 죄를 대속하셨다. 그것은 구원의 사건이지만 그 당시 문화에서는 치욕적인 모습이었다. 예수님은 우리를 위해서 모든 것을 감내하셨다. 교회는 그저 하나님의 도구로써 함께 나누고 동참하면서 그 자리에 있고, 상대방을 나에게 끌어들이는 게 아니라 하나님의 관심이 있는 그들을 섬기려고 하고 그들과 함께하려고 하는 노력이 있으면 좋겠다.

울안공동체 설명절 공동세배 및 선물나눔(2018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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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세상의 시선

Q. 당신의 눈에 비친 세상의 모습은?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셔서 독생자를 주셨다고 했는데, 구약에서는 하나님의 관심이 고아와 나그네와 과부들에게 집중되어 있었다면, 지금은 왜곡되고 굴절되어 하나님으로부터 분리된 이 세상에 하나님의 관심이 가장 집중되어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인간은 하나님의 낙원에서 벗어났기 때문에, 하나님으로 충만한 완전한 세상을 추구하기 위해 여러 가지 것을 한다. 나눔의 사회, 더불어 사는 사회, 함께 사는 사회 이렇게 표현이 되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겠지만 그 모든 것의 정점에는 하나님으로 충만한 세상, 하나님이 일하시는 세상이 있다. 그것이 인간이 완전한 모습으로 회복되는 길이라고 생각한다.

Q. 변화했으면 하는 세상의 방향은?

하나님과 다시 그 낙원으로 돌아가기 위한 나의 사역은 하나님으로 충만한 세상을 만들어 가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이 일하시도록 해야 한다. 하나님과 분리되어 있으니까 우리는 낙원을 잃어버렸고 우리가 하나님과 하나 되면 다시 낙원을 향해서 가는 것이고 충만해질 것이다. 우리가 선물 자체가 아니라 선물을 주시는 하나님께 관심을 두고 집중하면 다른 복이 뭐가 필요할까. 이미 그 복의 근원이 내 속에 있기 때문에 어떤 것으로도 계산되어질 수 없는 것이다. 삶의 여정 그 자체가 의미가 있는 것이 될 것이다.

몸과 마음의 회복 프로그램 오리엔테이션(202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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