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마다 그릇이 달라서 연단의 내용 또한 다를 터이다. 난 원래 종지처럼 작은 그릇이기에 남들이 별것 아닌 것 같은 시련도 험산준 령처럼 느껴졌는지는 모른다. 어쨌든 내 인생에서 그 때처럼 에이도 록 외롭고, 시리도록 춥고, 몸서리치도록 아픈 때는 없었다. 물질문 제, 환경문제, 사람들과의 문제, 내 자신과의 문제들이 뒤엉켜 나를 천길 벼랑 끝으로 몰아넣을 때였다. 그 절망의 한 복판, 칠흑 같은 터 널의 끝자락에서 주님은 내게 한 소리로 다가오셨다. 절망 끝, 행복 시작의 포문을 열어주신 것이다.

그 소리가 무슨 소리이기에 그토록 위대한 힘을 발휘했느냐고 묻는 다면 나는 서슴없이 답할 수 있다.

‘사랑의 시냇물 소리!’라고.

도대체‘사랑의 시냇물 소리’가 무엇이기에 그리도 자신이 있는지 궁금할 것이다. 이제 짧지 않은 내 인생여정에서 오늘의 나를 만든 그 분과의 러브스토리를 조용히 풀어내려 한다.

내 안에서 들리는 소리가‘사랑의 시냇물 소리’라는 것을 깨달은 것은그밤 이후다.

‘님과의 찬란한 사랑잔치가 펼쳐졌던 그 밤 이후’

난 과감히 절망과 불행의 터널을 뚫기 시작했다. 아니, 내 안에서 흐르는 그 사랑의 시냇물 소리의 힘이 영원히 무너트릴 수 없던 철옹 성 같은 짙은 흑암의 진들을 정복하고 있었다.

‘사랑의 시냇물 소리’가 들리기 시작한 순간부터 내 안에 천지개벽 이 일어났다. 그토록 집요하게 날 괴롭혔던 탐욕의 짙은 안개가 서서 히 걷히기 시작했다. 먹장구름 같은 절망의 큰 산도 무너져 내렸다. 미래에 대한 온갖 염려와 두려움과 불안이란 불청객도 스스로 떠나가 고 있었다. 미움과 증오, 시기나 질투의 가라지들이 제압되면서 이제 까지 나를 둘러쌓던 그 많은 가시들이 사라져 가기 시작했다. 실로 불 가사의한 기적이 일어난 것이다.

어떻게 내 안에 이런 변화가 찾아온 것일까? 불가항력적 은혜이기 에 명쾌하게 설명할 수는 없다. 애초부터 내가 노력해서 얻은 것이 아 니었기에, 그 분이 내 안에서 생수의 강을 터트리시면서 부어주신 절 대적 은혜였으니.

이제 내 인생에 그 어떤 가뭄이 온다 해도 걱정이 없음을 안다. 내 안에서 날마다 솟아 흐르는‘사랑의 시냇물’이 존재하는 한 난 항상 풍요할 수 있기에. 오늘도 난 이‘사랑의 시냇물 소리’에 취해 살고 있다. 하루라도 이 소리가 들리지 않으면 난 존재할 수가 없다. 오늘 도 난 이 소리가 주는 감미로움에 빠져 살려는 거룩한 몸부림, 의에 주리고 목마른 거룩한 생명의 갈증을 노래한다.

사랑의 시냇물 소리’를 깨닫고 난 후에도 내게 크고 작은 어려움 들이 계속 일어나고 있었다. 그런데 달랐다. 이전에는 그런 문제 앞 에서 씨름을 하면서 아파했었고, 때론 사람도 원망하며 적당하게 하나님께 불만도 토해냈다. 좀 크다 싶은 사건 앞에서 두려워하며 불안 에 떨었었다. 그랬던 내 안에 지금은 하늘의 평안이 가득 채워지고 있다.

전에는 모든 것이 다 하늘에서 내려와야 하는 줄 알았다. 그러기에 때론 가깝게, 때론 멀게, 때론 아주 멀게 느껴졌던 하늘나라였다. 그 러던 하늘나라가‘사랑의 시냇물’에 발을 담그면서 내 안에서 살아 있음을 누리게 되었다. 말로만 외치던 하늘나라가 내 마음 곳간 가득 히 채워짐을 누리게 된 것이다. 그 나라가 채워지니 만족할 수밖에 없 다. 사단이 차지하려던 하늘나라가‘사랑의 시냇물’과 함께내 안에 자리하니‘초막이나 궁궐이나 내 주님 모신 곳이 천국’이라 외칠 수 가 있게 되었다. 이전에는 구원을 받은 성도요, 영성을 이야기하는 목 사였음에도 세상 것이 크게 보일 때가 있었다. 나는 다른 분들의 마음 상태가 어떤지 잘은 모른다. 하지만 간혹 예수를 믿는 분들 중에서 과 거의 나처럼 자신을 관통하며 흐르는‘사랑의 시냇물 소리’를 듣지 못하는 분들이 있을 것 같은 감이 있다. 이 기막힌 소리를 듣지 못해 서 하늘나라를 누리지 못하는 분들이 있을 것 같다.

난 소망한다. 그리고 갈구한다. 이 글을 읽는 분들 가운데 단 한분 이라도 오늘의 나처럼 그분과의‘사랑의 시냇물’을 찾았으면 좋겠다. 모두에게 내 안에 흐르는‘사랑의 시냇물 소리’가 들렸으면 좋겠다.

내가 걸어본 길이다. 내가 누리는 삶이다. 내가 체험한 은총이자 축 복이다. 나 혼자만 가기엔 너무 아까운 길이다. 나 혼자만 소유하기엔 그 분 앞에 너무나 송구한 누림이다. 그래서 난 감히 이 글을 쓰고 있는 것이다.

사람들은 미래사회를 향해 막연한 두려움과 소망을 함께 안고 간 다. 모두가 창조주가 주신 소망이란 선물로 미래를 향해 최대치의 설 계를 펼쳐 놓는다. 헌데 사단이란 녀석이 우리의 소망을 가만히 구경 만 할 리가 없다. 사악하고 음흉한 녀석은 우리의 미래를 보는 눈에 검은 안경을 씌워 놓았다. 소망과 함께 불안과 두려움을 길동무하게 만들어 놓고 박수를 치며 쾌재를 부르고 있다.

세상적인 시각으로 보아 자신의 미래가 어떻게 펼쳐질지 아는 사람 은 없다. 그러나 나는 미래를 선명히 안다. 나그네 인생길에서 일어날 일들이 어떤 것인지 미리 본다. 그 길은 갈수록 기름질 수밖에 없다. 시간이 흐르면서 더 풍성해질 수밖에 없다. 나이가 들면서 더 기묘한 소리를 발할 수밖에 없다.

사람들로부터 간혹 노후를 걱정하는 소리를 듣는다. 한편으로 그들 의 염려가 이해는 간다. 참 죄송하지만 난 미래를 걱정하는 것을 부정 적이라 말한다. 나이가 들어서 무엇이 그리도 필요하단 말인가. 세끼 먹다 가는 인생에서 무얼 그리 걱정한단 말인가. 난 확언한다. 누구든 그 안에서 그 분과의‘사랑의 시냇물 소리’만 들을 수 있다면 나그네 인생길을 걱정할 이유가 전혀 없다.‘사랑의 시냇물’이 솟구치는 인 생은 생에 모든 문제를 다 해결 받는다.

나와 사랑을 속삭이는 그 분이 절대주권자이시다. 그 분 손에 살리 심과 죽이심이 있다. 그 분 손에 올리심과 내리심이 있다. 그 분 손에 부함과 가난함이 있다. 그 분 손에 높이심과 낮추심이 있다. 흔히 말하는‘생사화복’이 나와 사랑을 나누는 그 분에게 있다. 무엇이 걱정 이란 말인가. 적어도 내가 살아가는 동안의 모든 문제들은 내 안에서 솟아나는 그 분과의‘사랑의 시냇물’에서 다 해결된다고 자신 있게 선언 할수 있다.

지금 난 시냇가에 심기운 나무가 되어 있다. 해서 스스로 걱정할 일 이 전혀 없다. 그 어떤 폭풍우가 휘몰아쳐 와도 걱정하지 않는다. 사 랑의 시냇물이 내 안에서 솟구치는 한 무엇을 걱정하리. 그믐 초야 같 은 짙은 어두움이 몰려와도 두렵지 않다. 내 사랑하는 님이 의의 태양 이시니 무엇을 두려워하리.

난 오늘도 목마르지 않는 생수의 위력을 누리며 살아가고 있다. 내 인생은 무미건조한 삶이 아니다. 썩어질 것 좇다가 영벌을 받을 그 길 을 걷고 있는 것이 아니기에. 시냇가에 심겨져 시절을 좇아 열매를 맺 고 잎사귀가 마르지 않은 복을 누리며 산다. 가무는 해에도 걱정이 없 고 잎이 청청한 인생을 선포하며 산다. 날마다 새로운 피조물이 되어 다시 일어설 수 있는 생명의 소리들이 가득 찬 삶을 살아가고 있다. 이 순간도 난 날마다 행복을 토해내며 목회하고 있다. 저 멀리 보이는 내 본향 시온 성, 거룩한 새 예루살렘 성을 향해 보람찬 순례자의 길 을 걷고 있는 것이다.

난 다른 사람들에 대해선 잘 모른다. 그들이 왜 행복하며, 왜 불행 한지 모른다. 사람마다 보이는 세계보다 보이지 않는 세계가 더 크고, 넓고, 깊기 때문에 솔직히 타인의 행불행을 외적으로 판단할 수 없다. 하지만 절대자 앞에서, 내 마음 속을 불꽃같은 눈으로 꿰뚫고 계시는 그 분 앞에서 나 자신만은 정확하게 알 수 있다. 신이 알고 내 양심이 안다. 다 속여도 그 분만은 안 되고 나 자신 역시 속일 수 없다.

난‘사랑의 시냇물 소리’를 들으면서 천진스런 아이가 된다. 님의 사랑에 겨운 백치가 되어 세파에 매이지 않고 어디서나 감미로운 선 율을 연주할 수 있다.

지금부터 내 안에 흐르고 있는‘사랑의 시냇물소리’를 중심으로 내 행복한 삶을 나누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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