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수를 국어사전에서 뜻을 찾아 보면, “돈 한 푼 없이 빈둥거리며 놀고 먹는 건달”이라고 했습니다. 또 다른 뜻은 “직업이 없는 사람”입니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백수라고 할 때는 직업이 없는 사람을 가리킵니다.

교인들 중에도 직장에서 퇴직을 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스스로를 백수라고 부릅니다. 그 말을 하는 사람의 표정에는 무어라 말할 수 없는 쓸쓸함이 있습니다. 수십년을 직업현장에서 일을 하고 은퇴했다는 긍지 보다는 직업이 없다는 허전함이 큰 것 같습니다.

교회에서 직원을 이야기할 때 항존직과 임시직으로 나눕니다. 목사, 장로, 집사를 항존직이라고 하고 전도사, 서리집사를 임시직이라고 합니다. 과거에는 직분을 받은 사람이 많지 않았기 때문에 항존직은 정년이라는 것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교회가 부흥함에 따라 항존직원이 많아지고, 직분이 계급으로 인식되면서 교회 안에 문제가 일어나자 대부분의 교단이 항존직의 시무연한을 70세로 정했습니다. 어떤 사람은 “왜 항존직에 정년을 두느냐?”고 말하지만 긍정적인 면이 많은 제도입니다.

목사도 교회 헌법의 규정대로 70세가 되거나 그 이전이라도 은퇴를 합니다. 목사의 은퇴는 일반 직장인의 은퇴보다 더 서글픈 것 같습니다. 은퇴할 때 마음을 다쳐 교회를 떠나는 목사도 있고, 심지어 어떤 목사는 평생을 섬겼던 교회에서 떠나 줄 것을 강요당하기도 합니다.

저도 한 교회의 목사로서 27년을 섬긴 후에 은퇴를 했습니다. 현직에 있을 때는 한 주간에 열 번 가까이 설교를 해야 했고, 부교역자들과 함께 행정적인 일도 했고, 이런 저런 일로 교인들의 가정을 심방했고, 경조사를 챙겼습니다.

그러나 은퇴한 후에는 이 모든 것이 제 손에서 떠났습니다. 은퇴한다는 것에는 후회나 아쉬움이 없었지만 은퇴하고 난 후에 제게 주어진 생소한 환경을 받아들이는 것은 쉽지 않았습니다. 지금은 “목사가 이렇게 살아도 되는가?”라는 마음이 들 정도로 자유와 여유로움을 누리고 있습니다.

은퇴하고 몇일이 지났을 때 시집간 딸에게서 전화가 왔습니다. 제가 “무슨 일이 있냐?”라고 물었습니다. 딸의 첫 말이 “백수 아빠가 잘 지내는지 궁금해서 전화를 했다”고 했습니다. 그제서야 제가 백수가 되었다는 사실을 실감했습니다.

‘백수 목사’는 생각해 본 적도 없는데 제게 현실이 된 것입니다. 그 현실을 받아들이면서 ‘백수목사’가 되었다면 쓸쓸한 뒷모습을 보이는 힘빠진 백수가 아니라 꿈과 희망을 가진 당당한 백수가 되어야겠다는 다짐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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