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제일교회 담임, 대전성시화운동본부 대표회장으로 섬기며 하나님 나라를 위해 사역하는 김철민 목사
김철민 목사, “매 순간이 인생의 황금기. 부질 없는 나를 통해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나길”
하나님의 빅픽처를 꿈꾸며 대전이 거룩한 도시, 다음 세대들이 건강하게 자라는 도시가 되길

ㅣ 삶의 시선
Q.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난 때는?
어릴 적부터 교회를 다녔지만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처음 만난 것은 대학 때였다. 대학 때 나는 진로를 두고 아주 많은 고민을 했다. 그때 하나님께서 나 자신이 어떤 존재인지, 하나님 앞에 아주 작은 티끌 같은 존재로 크고 크신 하나님에 대해서 보잘것없는 나 자신을 보게 하시면서 나를 만나주셨다. 지금도 시시때때로 나를 만나주신다. 인생의 굽이 길에서, 또 전환점에서 하나님은 특별히 만나주시고 위로도 해주시고 때론 책망도 해주신다.
Q. 어떤 계기로 목회자가 되어야겠다고 생각했나?
대학교 4학년 때 나는 진로에 대한 고민을 많이 하고 있었지만 어머니는 아들을 주시면 목사를 만들겠다고 하나님께 서원을 했었기 때문에 집에서부터 신학을 해야 된다는 압력을 받고 있었다. “나는 목사님까지는 나는 생각하지 않는다, 나는 돈 많이 벌어서 내가 장로하겠다”라고 부모님께 말씀드리고 버튕기고 있었다. 그리고 나는 하나님하고 같이 씨름을 해야겠다고 결심했다. 얼마지않아 크신 하나님에 대해서 보잘것없는 나 자신을 깨닫게 됐다. 백기 투항하는 마음으로 신학대학원을 가게 됐다.
목회자가 되어 특별한 무엇을 해야겠다는 생각은 없었다. 대단한 꿈이나 그런 것보다도 단지 하나님을 많이 알고 싶고 또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싶다 그런 일념이었다. 나는 죄로 점철되어 있는 존재기 때문에 나 자신으로서는 그렇게 희망을 가지지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 같은 존재를 통해서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실 수 있고, 뭔가 하나님께서 드러나실 수 있다면 그게 뭐든 크든지 작든지 보람 있지 않겠나 그런 생각이었다.

ㅣ 사역의 시선
Q. 인도네시아 선교사로 사역하셨는데 특별한 소명이 있었나?
“중국 선교를 꿈꾸던 친구를 돕겠다 했는데, 내가 선교사로 가게 돼”
신학대학원 시절 선교를 준비하던 친구가 있었다. 중국으로 선교를 나가기 위해서 당시 90년대에 중국 윈난성으로 여러 번 다녀오고 석사논문도 중국에 종교정책에 대해서 썼는데, 결국 그 친구는 선교를 나가지 못하고 오히려 “네가 선교 가면 내가 팍팍 밀어줄게” 이렇게 얘기하던 내가 선교사로 나가게 되었다. 나는 국내에서 부목사로 사역할 때 섬기던 교회가 참 좋았다. 담임목사님도 좋으신 분이었다. 그 교회에서 교육 전도사부터 부목사까지 6년을 계속하다 보니까 아주 행복했다. 그런데 어느 날 “아 내가 지금 매너리즘에 빠져 있구나, 너무 내가 편안한 가운데 행복한 가운데 이렇게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떻게 해야 할까 고민하던 중에 교단 신문에서 대만에 있는 신학교에 1년 동안 장학생으로 가는 모집 공고를 봤다. 장신대 선교학과 교수님한테 전화를 드렸는데, “아니 이 사람아 자네가 왜 거기를 가려고 하나 선교를 가야지” 그래서 선교를 가게 되었었다. 대단한 일이 있었던 건 아니었다.
“뜻하지 않게 준비했던 선교지가 막히고, 인도네시아의 한인 목회의 길로”
선교를 나갈 몇 군데 사역지가 있었는데 그중에 솔로몬 군도에 원주민 사역을 가기로 결정했다. 한 달 가까이 현지답사를 다녀오고 짐도 다 부쳤는데, 아뿔싸 비자가 안 나와서 출국을 포기했다. 국내에서 거처를 모두 정리한 터라 체류할 곳이 없어서 어쩔 수 없이 급하게 처가살이를 시작했다. 처가살이는 겉보리 서 말만 있어도 안 한다는데, 선교를 떠난다고 인사를 다 마쳤던 사람들로부터 “아직 안 갔어?”라는 말을 들으니 마음이 어려웠다. 총회 세계선교부에서 인도네시아에 있는 한인교회로 가라고 연락이 왔다. 한국인을 대상으로 사역하는 것이 맞지 않다고 생각했지만 더 이상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그래서 인도네시아의 수라바야로 떠났다. 가니까 37살짜리인 나를 보고 담임목사라 불렀다. 7년 반 정도 한인 사역을 했다
Q. 선교지에서 경험한 특별한 일은?
인도네시아 수라바야엔 사업을 하러 온 교민들이 1천 명 정도 있었다. 나는 설교를 잘하는 것도 아니고 뭘 잘 하는 게 없는 사람이지만 하나님이 사람들을 보내주셔서 교회가 부흥하고 성장했다. 교민 1천 명 중에 150명가량이 교회에 출석했다. 성도들이 늘어나면서 교회를 건축하게 됐는데 백수십만 불 들었던 건축이 하나님의 은혜로 잘 마무리됐다. 건축 당시만 해도 위치가 외곽이었는데 지금은 중심지가 됐다. 또 감사한 것은 하나님께서 나의 눈을 키워주셨다. 그 곳에서의 이슬람권의 경험과 교민들, 여러 나라에서 온 선교사들과 교제하면서 나의 눈이 조금 더 열렸다. 그리고 교회 건축을 마무리해갈 때쯤 “건축이 잘 마무리되면 여기서 내 사역은 이제 마치겠구나. 1기 사역까지를 내가 하고 그다음에는 내가 떠나는 게 좋겠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던 중에 은사 교수님의 청빙 전화가 왔다. 그 계기로 연고가 없던 대전에 오게 됐다.
Q. 인도네시아에서 사역하면서 기억나는 특별한 성도가 있나?
어느 주일 오후에 테니스를 치고 있는 사람들을 보게 됐다. 거기엔 믿는 사람도 있고 안 믿는 사람들도 있었는데 목사님이 와서 반갑다고 해서 운동 마칠 때까지 기다렸다가 같이 저녁을 먹으러 갔다. 저녁밥을 내가 샀다. 자기들끼리 자주 가는 음식점으로 가서 먹었는데, 자기들끼리는 맥주도 마셨다. 만났던 날 저녁 헤어질 때 “제가 오늘 목사님께서 밥하고 술하고 사주셔서 잘 먹었습니다. 인사드리러 교회에 놀러 한번 가겠습니다.” 그런데 그다음 주에 정말 교회에 왔다. 그리고 그 이후로 계속 왔다. 그 이후로 집사가 됐다. 놀라운 것은 그때 내가 금식을 했는데 테니스 치던 사람이 본인도 금식한다고 하길래 금식한다고 며칠만 하고 말겠거니 생각했는데 처음에 5일 하고 출근할 거 다 하고, 그다음에 한 2주를 하고, 점점 기간이 늘어났는데 회사 다니고 할 일 다 하면서 금식을 했다. 내가 졸지에 술도 사주고 술기운에 힘입은 목사가 됐다. 주님이 세상을 사랑하신 것처럼 목회의 대상을 생각할 때 교회 안에 있는 양뿐만 아니라 바깥에 있는 양들도 볼 줄 아는 그런 시야가 필요하다는 걸 배웠다.
Q. 가정에서의 나의 모습은?
아내와 자녀들은 나를 굉장히 ‘권위주의적이고 밥맛이다.’라고 얘기를 한다. 아무래도 말씀대로 살기 위해 규칙과 질서를 강조하다 보니 그런 말을 듣기도 한다. 우리 가족에게는 늘 미안하다. 아내는 내가 목회만 잘하면 된다고 한다. 그래서 내가 우리 가족한테 특별히 할 만한 것이 없다. 내세울 것도 없고. 아이들은 자기네들끼리 스스로 잘 컸다. 하나님 은혜로 애들이 잘 한 거지 제가 특별히 한 게 없다.
ㅣ 생각의 시선
Q. 요즘 많이 하는 생각은?
큰 그림, 빅 피처를 보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전체로부터 부분으로 나와야지 부분을 하다 보면 나중에 전체를 놓칠 수가 있다. 하나님께서 우리나라와 교회를 향하신 전체적인 부분을 보려고 노력하지 않으면서 지금 당장에 떨어져 있는 문제를 해결하려고 발버둥 치는 건 아닌지 생각한다. 스스로 그렇게 느낄 때가 많다. 부분을 무시하라는 말이 아니라 우리는 큰 그림을 봐야 되고 정치 사회 문제나 우리 한국 교회의 앞날에 대한 큰 그림 속에서 우리가 지금 어디에 있는지 좌표를 찾아야 된다. 그런 생각 많이 한다. 예수님은 전체적이면서 부분적인 것을 잘하시는 분이셨다. 사도행전 1장 8절을 보면 예루살렘부터 시작을 해서 땅 끝까지. 전체 속에서 예루살렘과 온 유대, 사마리아 땅끝까지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우리도 하나님의 섭리와 경륜 속에 지금까지 하나님이 해 오신 것들을 좌표를 죽 읽어가면서 전체 안에서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기 위해서 발버둥 쳐야 한다.
Q. 내가 갖고 있는 가치관에 영향을 끼친 존재는?
무엇보다 나는 성경에서 가장 큰 영향을 받았다. 성경말씀을 읽으면 읽을수록 신기하고 놀랍다. 그리고 영국의 복음주의 신학자 존 스토트를 좋아한다. 그분은 예수님을 닮은 것 같다. 평생 독신으로 살면서 사제로 학자로 그리스도인으로서 온전한 삶을 살려고 노력했다. 나는 존 스토트의 책이나 삶을 보면 참 좋다. 또 오스기니스가 있다. 참 겸손한 분이다. 엄청난 지적 소유를 가지고 있는 분인데 굉장히 겸손하다. 요즘엔 팀 켈러 목사님이 좋다. 팀 켈러 목사님은 정말 현대인을 향한 커뮤니케이션을 잘하면서도 복음적 열정으로 불타오르는 분인 것 같다.
무게 있는 저자 가운데는 피터 드러커가 있다. 피터 드러커는 정말 내가 지식으로는 세상에 그만한 지식인이 있을까 싶다. 글을 쓸 때 한 줄에 다른 사람의 몇 십 페이지가 들어있다. 피터 드러커는 경영학의 구루라고 일컬어지는데 풀러신학교의 리처드 마우 총장과 절친이었다. 그런데 피터 드러커가 ‘왜 미국의 교회가 이렇게 몰락하게 되었느냐’를 진단할 때 ‘미국의 교회가 압력단체가 되고, 사회 복지 기관이 되고, 그러면서 교회의 근본 본질을 잃어버렸다’고 아주 예리하게 짚어냈다. 지적인 부분에 있어서는 나에게 상당 부분 피커 드러커가 많은 영향을 줬다. 피터 드러커의 책을 한번 읽어보길 추천한다.

Q. 지난 1월 10일 대전성시화운동본부 대표회장으로 취임하게 됐는데, 소감이 어떤가?
내가 대표회장을 맡았다기보다는 하나님께서 맡겨주신 부분에 대해서 응답했다고 생각한다. 대전성시화운동본부에서 해야 될 것이 3가지 정도 있다고 생각하는데, 하나는 내부적인 네트워킹이 필요하고, 둘째는 대외적인 이미지메이킹이 필요하다. 세 번째는 다음세대를 세워나가는 다음세대 인프라를 구축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내부적인 네트워킹은 대전에 2천5백 개의 교회가 있지만 교회마다 열심히 하는데 전체를 못 보니까 안타깝다. 배가 침몰하고 있는데 갑판에서 의자 고치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전체를 못 보니까 지금 우리 한국교회의 위상이나 좌표를 읽는 그런 눈이 없으니까 개 교회에서 열심히 하면 부흥하고 그러다 보면 도시 전체가 복음화되지 않겠냐 이렇게 생각한다. 그런 생각이 전혀 틀린 것은 아니지만 전체로부터 시작을 해야 된다. 예루살렘 전체. 우리 2천5백 개의 교회가 대전광역시 전체를 위해서 존재하는 것이다.
Q. 대전이 영적으로나 사회적으로 어떤 도시로 변했으면 좋겠는지?
성시화운동은 홀리 시티 무브먼트(Holy City Movement)이기 때문에 세속 도시 안에서 이루어져야 될 일이다. 먼저 교회가 존중받는 곳이 돼야 한다고 본다. 교회가 있음으로 인해서 주민들이나 관공서나 기업들이나 모든 경제주체들이 ‘교회가 있어서 너무 좋다’라고 말할 수 있길 기대한다. 교회의 존재 자체가 존경을 받고 존중받는 그런 풍토가 이루어지기를 바란다. 그리고 또 대전에 있는 교회들 때문에 다음 세대들이 자라는 데 있어서 최적화되는 도시가 되었으면 좋겠다 안전하면서도 건강하고 건전한 다음 세대들이 자라나는 건전한 도시가 됐으면 좋겠다.

ㅣ 세상의 시선
Q. 당신의 눈에 비친 세상의 모습은?
장망세. 장차 망할 세상이다. 감히 말씀드리기는 세상에 희망과 소망을 둘 수 있는 여지가 0.00001%도 없다. 만약에 희망과 소망을 둘 수 있다면 그것은 유일하게 예수님 안에서만 볼 수 있다. 인간이 죄짓는 것을 보면 잘 알 수 있다. 정당이 정권을 잡으면 그 힘을 계속 유지하고 휘두르기 위해서 갖은 술수를 쓰고 그러는 것을 보면 인간에게는 우이건 좌이건 관계없이 희망이 없다. 인간은 이 세상에 희망을 둘 수 없다. 교회는 좌와 우의 편에 서는 게 아니라 주님 편에 서서 좌와 우를 지도하고 이끌어야 한다. 잘못하면 꾸짖고 그래야지 교회가 왜 한쪽 편에 서서 춤을 추는가. 나는 그게 이해가 안 된다. 교회는 좌와 우를 막론하고 어울러서 하나님 말씀 중심으로 그들을 궤도하고 이끌어야 하는 책임이 있는 곳이다.
Q. 변화했으면 하는 세상의 방향은?
교회가 교회다워지도록 하면 딱 맞는다고 본다. 이 말씀은 교회에 머리 되신 예수께 철저히 순복하고 있는 모습 보이면 되는 것이다. 예수님이 주인 되신 모습. 그것이야말로 교회가 지향해야 될 유일하고도 가장 큰 책무라고 생각한다. 예수님께 굴복해야 한다. 목사도 장로도 성도들도 예수님의 말씀 앞에 엎드리고 내 생각과 주장과 다르더라도 예수님의 말씀이기 때문에 순종할 줄 아는 게 진짜 교회의 모습이라고 생각한다.
Q. 독자에게 권면과 도전의 한마디?
세월이 지나면서 느끼는 것은 지금 이 순간이야말로 인생의 황금기라고 생각한다. 어떤 시인의 시구처럼 ‘모든 순간이 꽃봉오리다.’ 진짜 귀중한 시간이다. 이 귀중한 시간에 대한 투자 대비 최고의 회수율, 최고의 수익률을 낼 수 있는 그것은 나 같은 존재, 부질없는 존재를 통해서 예수님께서 영광을 받으시고 하나님의 말씀이 드러나는 것. 그것이야말로 짧디짧은 우리 인생에서 할 수 있는 최상의 투자 수익을 보장하는 것이다. 그 일에 매진할 수 있으면 참 좋겠다.
김 철 민 목사
† 학력
– 부산대학교 중어중문학과 졸업
– 장로회신학대학교 신학대학원 신학과 졸업
– Fuller Theological Seminary 박사과정 이수중
† 경력
– 서울 서부제일교회 교육전도사
– 서울 서부제일교회 전임전도사
– 서울 서부제일교회 부목사
– 인도네시아 수라바야 한인교회 담임목사
– (전)대전시기독교연합회 회장
– (현)대전성시화운동본부 대표회장
– (현)대전제일교회 담임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