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0년.

말만 들어도 끔찍한 동족상잔의 피비린내가 삼천리금수강산을 진 동시키던 육이오, 나는 이 처절한 시기에 충남 논산시 연산의 어려운 산골 마을에서 태어났다.

이름하여‘명가산골’, 거기가 오늘의 축복을 노래하며 창조주와의 사랑 놀음에 겨운 내 생명의 출발지다. 사방을 둘러봐도 산으로 둘러 싸인 내 고향은 다른 마을에 비해 계몽이 되지 않은 낙후된 마을이었다. 어머님은 14세에 전주 이씨 가문에 시집을 오셨다. 구남매 시누이, 시동생에 시부모님 모시고 힘겨운 시집살이하신 우리 어머님, 일곱의 며느리들 중에 둘째임에도 많은 식구들을 섬기면서 몸도 마음도 많이 힘드셔야 했다.

십 대에 첫 딸을 시작으로 내리 여덟 명의 딸을 낳으신 어머님, 그 마음고생이 오죽 하셨으랴. 내리 딸만을 낳으신 어머님은 염치가 없 으셔서 산후 조리도 하실 수가 없으셨단다. 우리 집 어른들이 너나없 이 다 좋으셔서 딸만 여덟을 낳았음에도 누구 하나 대놓고 구박을 하 는 것도 아니었다. 어머니 스스로 죄스러워 아이 탯줄 끊자마자 그대 로 나가 보리 방아 찧어그 많은 식구들 밥과 빨래를 하며 섬겨야하 셨다.

그래도 우리 어머님 곁엔 참 좋은 분들이 계셨다. 할머님 회갑 때의 일화다. 작은 아버님중한 분이 아버님을 향해 이제 그만 아들은 포 기하고 작은 집을 들이든지, 양자를 들이라고 말씀하셨다나? 그 말씀 에 우리 할머님께서는 눈물을 흘리시며“당치도 않다!”고 불호령을 내 리셨다니, 할머님은 딸만 줄줄이 뽑아내는 둘째 며느리임에도 유독 어머님을 사랑하셨다. 우리 어머님 곁에는 마음도 얼굴도 고우셨던 든든한 버팀목인 할머님이 계셨다.

여기에 우리 아버님을 빼 놓을 수 없다. 작은 아버님의 말씀에 아버 님이 하셨다는 말씀,“낳을 때까지 낳아 보겠다.”그렇게 딸만 낳으셨 어도 어머님을 향해 눈 한번 흘기지 않으시고 포기하지 않으신 우리 아버님이시다. 딸 여덟을 낳으셨으니, 그 많은 딸들이 지겹기도 했으 련만, 단 한 번도‘이놈의 지지배들”이란 말씀을 하지 않으셨던 성자 같으신 우리 아버님, 여덟 번째 딸을 낳으시고는 오죽하면 올해에는 제발 띄어 달라고 아명을‘올 띄기’라 하셨을까.

부모님의 정성인지, 막내 누님의 이름값인지,(물론 지금은 100% 하나님의 예정이고 은총임을 안다.) 드디어 아홉 번째 그토록 바라시 던 아들이 태어났다. 그 아들을 바라보며 이제까지의 설움을 단번에 날려버리고 감격의 눈물을 쏟으셨을 어머님, 아들이라는 말에, 고추 를 확인하시고선 온 동네를 춤을 추며 몇 바퀴를 도셨다는 우리 할머 님,‘고마우이!’한 말씀으로 어머니를 위로하셨을 우리 아버님, 아버 님의 9남매 가족들과 함께 그 날, 아홉 번째로 첫 아들이 태어나던 날 은 우리집뿐 아니라 우리 마을의 경사였다.

만약 그 날에 내가 태어났더라면 지금쯤 내 인생이 어디로 가고 있 을까? 우리 형님! 형님은 그렇게 많은 사람들의 축복과 환호 속에 태 어났다. 우리 집안에선 그야말로 절대요, 독보 그 자체였다.

모든 사람의 관심과 사랑이 이 축복받은 아들의 걸음마와 엄마 아 빠 소리에 쏠려 있을 무렵, 나는 어머님의 태지에서 사투를 벌이며 공 포에 떨어야만 했다. 나를 임신하신 어머니는 노산에 여러 가지 질병 이 겹치셔서 몹시 아프셨고 태 안에 나를 지워야 할 지경에 이르셨나 보다. 산모냐, 아이냐의 기로에 선 가족들, 이미 금쪽같은 아들을 안 으신 집안에선 산모 쪽을 택하셨지만 마땅히 방법이 없던 때였다. 민 간요법을 쓰셨겠지만 나를 포기하실 수 없으셨던 하나님의 손길이 계 셨기에 오늘의 내가 존재할 수 있었다. 난 태중에서부터 어머님께 고 통만을 안겨 드린 불효스런 아이로 이 세상에 첫 발을 내 디뎠다. 어 머님은 나를 낳으신 후에도 오래도록 몸이 불편하셔서 많은 고생을 하셔야 했다.

가까스로 세상 빛을 본 내가 힘겹고 거친 세상과의 첫 대면을 하면서 “응아, 응아!”하고 크게 울었을 터, 울음소리에 귀하신 우리 형님이 놀라 우니까 나를 받으시던 할머님은“아이쿠, 우리 손자 놀랠라!”하 시면서 산모를 놔두고 형을 안고 쏜살 같이 나가셨다나. 나는 야베스 처럼 어머님께 고통만을 선물하며 별로 축복 받지 못하고 태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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