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사는 그 마을에서 가장 행복해야 합니다"

순천대대교회를 섬기고 있는 공학섭 목사
순천대대교회를 섬기고 있는 공학섭 목사

'네명의 아이를 키우는 즐거움'
미세하고 세심한 부분까지 개입하신 하나님

ㅣ삶의 시선ㅣ

Q. 가장 행복했던 일

목사는 그 마을에서 가장 행복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행복에 대해서 설명해야 하고 또 행복한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마을 분들에게 행복이 무엇인지를 말씀드릴 수 있기 때문이다. 
그중에서 가장 행복한 순간을 얘기하라고 한다면 ‘네명의 아이를 키우는 즐거움’ 이것이 나에게 가장 큰 행복이었던 것 같다. 특히 요즘에 아이를 낳지 않으려고 하는 모습을 보면 ‘아이를 키우는 즐거움을 몰라서 그렇지 않은가?’ 하는 생각이 든다. 

Q. 가장 힘들었을 때

나의 생애를 전반과 후반으로 나눈다면 전반 30년 동안의 삶은 밑바닥의 삶이었다고 말할 수 있다. 태어난 가정도 가난하고, 목회를 할 때에도 개척교회를 하다 보니 무보수로 사역했다. 그러다 보니까 더 밑으로 내려갈 수 없을 만큼 그런 힘든 삶을 살았다. 
30년 이후의 후반은 녹록하지 않지만 평탄하고 행복했었다고 말할 수 있다.
힘들었던 일을 묻는다면 가장 믿음직했던 성도들이 어떤 불신앙적인 모습이랄지, 평소 기대하지 않았던 모습들이 보일 때 조금 허탈감이 생기고, 힘든 마음이 든다.

Q. 나의 삶에 개입하신 하나님의 일

원래 하나님은 삶의 주권자이시기 때문에 우리의 삶에 개입되지 않는 부분이 없다. 이제 와서 되돌아보면, 내가 신학을 시작할 때 하나님의 절묘하신 개입이 있었던 것 같다.
나의 우편물이 교도소에 있는 장기수(長期囚)에게 배달이 됐다. 지금도 생각해 보면 미스터리하다. 그 죄수께서 나에게 우편물을 보내주면서 인연을 맺게 됐다. 그런데 그분께서 한 번도 나와 대면한 적이 없는데, 나를 향해 “신학을 하라”라는 말을 계속해주셨다. 처음에는 그 말을 흘려들었는데 어느 날 나의 마음속에 ‘신학을 해야겠다’라는 마음이 굳게 들었다. 
하나님께서 교도소에 있는 그분을 통해서 나의 마음을 움직이시고 목회자의 길을 걷도록 해주신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미세하고 세심한 부분까지도 개입하신다. 며칠 전 임종을 앞두신 한 교구에서 전화가 왔다. “목사님, 어머니가 곧 임종하실 것 같아요.”라는 전화였다. 그래서 부랴부랴 그 성도의 집으로 갔다. 시간적으로 보면 내가 조금 빨리 가서 예배를 마치고 왔으면 돌아가시는 모습을 보지 못했을 건데 나하고 딱 손을 잡고 기도하는 순간, 그때 주무시듯이 기도하는 가운데서 돌아가셨다. 그 모습을 보면서 ‘하나님은 우리의 삶의 모습뿐만 아니라 마지막 죽는 그 순간까지도 세심하게 개입하신다’라는 은혜를 경험했다.

Q. 나의 삶을 한 장르로 표현한다면?

장르가 여러 장르가 있지만 나의 삶은 ‘멜로’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위로부터는 하나님의 따듯한 사랑을 내가 받고 살기 때문에 그렇고, 목회사역을 하면서 성도와 목회자의 관계에 있어서 하나의 멜로드라마처럼 펼쳐져가는 것을 느끼기 때문이다. 

Q. 왜 ‘멜로’라고 생각하는가?

수많은 사연이 있는데 가장 최근에 겪은 일이 있다. 82세 되시는 할머니신데 이분께서 편지를 한 장 써서 오셨다. 편지의 내용은 ‘목사님! 이 코로나에 얼마나 힘드세요? 그렇지만 저희들이 있잖아요. 목사님, 사모님 힘내세요!’라고 쓰여있었다. 그 편지와 함께 금일봉이 들어있었다. 그때 마음속에 큰 위로가 되고 힘이 됐다. 그러고 나서 또 며칠 후에 86세 된 할아버지께서 내가 심방을 다녀왔을 때 집 앞에 봉지를 걸어 놓으셨다. 그때 우리는 주변에 혼자 사시거나 몸이 불편하신 어르신들을 위해 죽을 쒀서 배달하러 갔었다. 도착해서 봉지를 열어보니 싱싱한 낙지와 문어가 있었다. 나중에 집사님께 전화하니 “목사님을 대접하고 싶어서 시장에서 사 왔습니다.”라고 말씀하셨다. 그런 것들을 종합해볼 때 정말 하나님께서 멋진 멜로드라마를 하나 만드셨다고 생각한다. 

공학섭 목사가 사역하고 있는 순천대대교회는 순천만습지가 있는 동네이다.
공학섭 목사가 사역하고 있는 순천대대교회는 순천만습지가 있는 동네이다.

글로 쓰는 목회
순진하고 순수한 성도들
'지역의 필요를 채우는 교회'

ㅣ사역의 시선ㅣ

Q. 지금 하는 사역

지금은 사역들이 예전부터 해왔던 일들을 할 수 없는 ‘언택트’ 시대가 됐다. 그래서 하고 있던 사역들을 하지 못하고 있다. 
원래 성도들과 설교를 통해 소통하지만 나는 성도들과 ‘글’을 통해 소통을 자주 해왔다. ‘언택트’ 시대에 가장 적합한 또 하나의 도구가 글로 써서 성도들과 교통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주보에도 글을 게재해 소통한다. 요즘은 심방이 많이 줄고 다른 사역들을 많이 할 수 없어 교회 카페에도 글을 많이 쓰기도 한다. 또 이전에 올렸던 글도 다시 다듬는 사역을 하고 있다. 

Q. 글을 쓰는 사역이 왜 중요한가

내가 맨 처음 책을 출판할 때 ‘글로 쓰는 목회’라는 제목으로 책을 냈다. 그래서 어쩌면 지금 이 시대야말로 글을 통해서 서로 의사소통을 하고, 성도들에게 권면할 수도 있고, 사랑을 나눌 수도 있는 참 좋은 시대라고 생각한다. 
사도바울이 감옥에 갇혀있을 때 성도들과 서로 대면할 수 없었다. 그때 편지를 써서 성도들에게 사랑을 전하기도 하고, 믿음의 권면을 하기도 하며, 때때로 책망하기도 했다. 그래서 편지를 통해 아주 멋진 목회를 일구어내는 그런 역사가 일어났다. 특히 바울이 로마에 방문하고 싶어 하는 간절한 열망이 있었지만 번번이 길이 막혔다. 그래서 그 일이 이루어지지 않아 바로 ‘로마서’라고 하는 서신서가 쓰이게 됐다. 
이 시대를 위해 글로 자신의 마음을 표현할 수 있다는 통로가 있다는 것이 참 감사하다는 생각을 한다.

대대동 버스정류장 위에는 매달 문구가 바뀐다. 대대교회에서 기독교적인 색깔을 강하게 넣지 않고 지역 주민들을 위로하고 격려한다. 이 버스정류장은 지역 주민들에게는 쉼터의 공간이 된다.
대대동 버스정류장 위에는 매달 문구가 바뀐다. 대대교회에서 기독교적인 색깔을 강하게 넣지 않고 지역 주민들을 위로하고 격려한다. 이 버스정류장은 지역 주민들에게는 쉼터의 공간이 된다.

Q. 사역의 방향

교회의 나아갈 방향은 교회의 머리 되신 예수님께서 정해놓으셨다. 그래서 교회가 가장 건강하게 살 수 있는 것은 ‘말씀’과 ‘기도’라고 생각한다. 이런 기본 바탕 위에서 내가 사역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사역하고 있는 지역은 순천만 습지가 있다. 그래서 환경 운동을 지역 맞춤으로 하고 있다. 그리고 내가 마을 목회를 하고 있다 보니 ‘항상 교회는 마을에 필요한 교회가 되어야 한다’라는 생각으로 이 마을 분들에게 교회가 해 줄 수 있는 일을 찾는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마을의 필요를 알게 되고, 그분들의 필요를 채우기 위해 노력하게 됐다. 지역사회에서 교회가 환영을 받고 “정말 교회가 있으므로 참 좋다”라는 말을 들을 수 있다면 그것이 교회가 나아갈 방향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우리 교회는 어린이를 위해서 공부방을 운영하고 있고, 청소년들을 위해서 도서관을 개관했다. 그리고 어르신들을 위해서는 노인대학과 반찬 나눔을 하고 있다. 

Q.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

내가 이곳에서 목회를 30년 넘게 하다 보니 에피소드들이 밤을 새워 말할 정도로 많다.
그중에서도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은 90세가 넘은 권사님께서 구역모임을 마치고 나서 오신 분들을 대접하신다고 이불 속에서 뭔가를 꺼내셨다. 그때가 한 겨울이었다. 권사님이 꺼내시면서 “드실 때 너무 이가 시릴까 봐 이불 속에 넣어놨다가 꺼냈다”라고 말씀하시면서 주셨다. 권사님이 주신 것은 ‘아이스크림’이었다. 아이스크림이 다 녹아서 먹을 수는 없었지만 먹은 것보다 더 즐거움을 선사해 주셨다.
생각나는 다른 에피소드는 한 할머니신데 이분께서 심방 온 우리들에게 벽에 걸려있는 손자 사진을 보시며 자랑하셨다. “우리 손자인데 며느리가 우리 손자에게 밥을 너무 조금만 줘서 작년이나 올해나 항상 이대로 크지 않고 있다”라고 말씀하셨다. 또 이분이 “밤마다 이웃집에서 많은 사람들이 우리 집에 놀러온다”라고 말씀하셨다. 이것은 TV에 나오는 사람들이 자기 집에 놀러 온 사람이라고 생각하시는 것이다. 다른 할머니도 그와 비슷한 이야기를 하신 적이 있다. “며느리 방에 있는 TV는 젊고 예쁜 사람이 나오는데 내 방에 있는 TV는 늙고 미운 사람만 나온다”라고 말씀하시는 순진함이 있다. 
성도들의 이런 순진함과 순수함이 참 사랑스럽고 하나님이 우리에게 색다른 즐거움을 주시는 것 같다.

마을 앞에서. 대대교회 공학섭 목사는 마을의 필요를 채우는 '마을 목회'를 하고 있다.
마을 앞에서. 대대교회 공학섭 목사는 마을의 필요를 채우는 '마을 목회'를 하고 있다.

"작은 도움을 주는 사람이 되고 싶다"
교회와 마을 공동체는 하나인 긴밀한 관계
다음 세대에도 물려줘야 할 마을 역사

ㅣ생각의 시선ㅣ

Q. 내가 갖고 있는 가치관

‘내가 살고 있는 주변에서 작은 도움을 주는 사람’이 되고 싶다. 그리고 ‘나로 인해 사람들에게 작은 도움이 되고 싶다’라는 생각을 한다. 그것이 가치 있는 삶이라고 생각한다. 

Q. 나에게 ‘대대마을’이란?

고향보다 더 고향 같은 곳이다. 이곳에 머물러 있는 시간이 길어서 그런 것도 있지만 이 마을에 대한 애착이 크다. 그 이유는 내 자녀들을 이곳에서 키웠기 때문이고, 마을 분들과의 유대 관계가 매우 깊다. 마을 분들이 나에게 많은 사랑을 쏟아주신다. 그래서 예수님 다음으로 나에게 가장 소중한 마을이다.

Q. ‘대대마을 골목이야기’를 쓰게 된 이유

내가 이곳에서 산 세월이 많다 보니 마을에 계신 분들에게 마을 이야기를 많이 듣게 됐다. 그 이야기를 듣는 족족 메모도 하고 녹취를 해서 교회 카페에 한 컷, 한 컷 올리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 일에 대해서 교우들뿐만 아니라 마을 분들이 그것을 보면서 매우 흥미로워하셨고, 많은 관심을 쏟아주셨다. 그 이야기들이 쌓이고 쌓이다 보니까 어느 날 ‘이 이야기를 책으로 내면 좋겠다’라는 개인적인 욕심도 있었다. 그러던 중, 코로나로 인해 이 지역에 생태에 관련한 공모사업이 있었다. 그 공모사업과 관련해 책을 내면 어떻겠냐는 권유를 받게 돼 출판하게 됐다.  
이 책을 출판하게 된 배경은 책을 쓴 것으로 먼저, 이 마을에 묻힌 역사를 머릿속에만 보관하는 것이 아니라 ‘글로 남겨놔야 오랫동안 우리 후세들에게까지 전수할 수 있겠다’라는 생각에서 하게 됐다. 그리고 이 골목이야기 속에 마을과 교회와의 관계에 대해서 썼다. 마을과 교회가 얼마나 긴밀한 관계가 있는지, 어떤 기여를 했는지, 교회와 마을 공동체는 서로 하나다는 뜻을 심어주고 심었다. 
뿐만 아니라, 역사에 대해서 우리는 한국사와 세계사는 배우면서 정작 내가 사는 마을의 역사는 모른다. 자신이 사는 마을의 옛날 이름도 모른다. 그래서 자라나는 세대들에게 ‘내가 살고 있는 곳이 역사의 현장이고 나 자신이 역사를 만들어가는 주인공이다’라는 생각을 심어주고 싶었다. 
마지막으로, 마을 분들에게 받았던 사랑이 큰데 그 사랑을 보답하고자 이 책을 만들어서 선물로 드리고 싶었다.   

Q. 왜 교회가 마을이야기를 해야 하는가?

우리 마을도 나름대로 지역의 전설이 있고 내려오는 많은 이야기들이 있다. 그런데 그 이야기 대부분은 미신이나 설화 같은 부분이 많다. 그래서 우리가 이런 것들을 걸러내고 성경적으로 쓰는 것은 아니라고 할지라도 설화적인 요소들을 제거하기 위해서라도 교회가 써야 한다. 성도들이 마을의 역사를 쓰면 좋겠다.

대대교회 초대 담임목사였던 서재신 목사 이야기. 여순사건 이후 좌익에 부역한 사람들을 골라내기 위해 지역 모든 사람들을 인근 초등학교에 모았다. 그때 서재신 목사가
대대교회 초대 담임목사였던 서재신 목사 이야기. 여순사건 이후 좌익에 부역한 사람들을 골라내기 위해 지역 모든 사람들을 인근 초등학교에 모았다. 그때 서재신 목사가 "이 중에는 아무도 공산당에 부역한 사람이 없습니다. 만일 있다면 내가 책임을 지겠습니다."라고 말했다. 이 한 마디에 대대마을은 한 사람도 희생되지 않았다. 대대마을 골목이야기를 교회에서 출판하지 않았다면 이 이야기는 묻혔을 지도 모른다.

Q. 대대마을 중 가장 애정이 깊은 곳

나는 골목마다 사연이 없는 골목이 없다고 생각한다. 골목은 우리가 태어났을 때 소리를 듣는다. 그리고 걸음마를 배우는 것을 지켜본다. 이 마을에 새 신부가 시집올 때 마을에 처음 와서 골목을 걷는다. 그리고 자신이 이 세상을 떠날 때도 골목을 통과하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골목은 마을의 모든 이야기를 담는다고 생각한다. 그렇기 때문에 모든 골목에는 사연이 있고 다 애정이 있는 곳이지만 그중에서 딱 한군데를 뽑으라고 한다면, 교회로 들어오는 골목이다. 골목 이름이 ‘큰 골목’이다. 좁은 골목이지만 ‘큰 골목’이라는 이름이 어떻게 붙여졌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그 이름이 참 적절하다고 생각한다. 하나님을 예배하기 위해 예배당으로 가는 이 길을 ‘큰 골목’이라고 한 것이 잘 어울린다고 생각한다. 크신 하나님을 예배하기 위해 오는 이 골목이야말로 ‘큰 골목’이라고 생각한다. 실제로 이 마을에는 ‘큰 골목’보다 더 큰 골목들이 있다.

교회로 들어가는 '큰골목'
교회로 들어가는 '큰골목'

'겉은 화려하지 않지만 은은하게 계속 그리스도의 향기를 풍기는 사람' 되고파
어려운 때에 더 아름다운 믿음의 빛을 발하는 성도들이 되길...

l세상의 시선l

Q. 세상의 눈으로 보았을 때 나의 모습은?

그리스도의 아름다운 향기를 풍기는 그런 사람으로 보이기 원한다.
밤에 운동 겸해서 마을을 산책한다. 그런데 꼭 어느 지점만 지나가면 매혹적인 향기가 났다. 밤에 돌아다녔기 때문에 ‘이 꽃은 무슨 꽃이지?’라고 궁금해했다. 12월까지도 향기가 났다. 너무 궁금해 낮에 간 적이 있다. 그랬더니 큰 나무 그늘에 ‘은목서’ 꽃이 피어있었다. 그늘에 있었기 때문에 꽃도 제일 늦게 피고 맨 마지막까지 남아있는 것이었다. 큰 나무 밑에 있다 보니 모양도 볼품이 없었다. 그 꽃을 보다 보니 ‘겉은 화려하지 않지만 저렇게 은은하게 계속 그리스도의 향기를 품어내는 사람’이 되어야겠다고 생각했다.

Q. 변화했으면 하는 세상의 방향

세상이 변화기를 바라기 보다 사실 우리가 먼저 변하는 것이 답일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인에게 특별한 은총을 주셨는데 그와 마찬가지도 일반 사람들에게도 은총을 주셨다. 그래서 그들의 마음속에 양심을 주셨다. 그런 점에서 좀 상식이 통하는 그런 세상이면 좋겠다. 
특히 땀 흘린 대로, 수고한 대로 대가를 받을 수 있는 그런 세상이 되길 바란다. 
요즘 학생들이 학교에 가서 취업 걱정하느라고 공부와 연구에 게을리한다. 그렇게 되면 학문이 발전하지 않는다. 그래서 좀 국가가 다음 세대의 일자리를 풍성하게 만들어주고 정말 학생들은 학문에 정진하길 바란다. 학문의 깊이가 심오하게 나아갈 수 있는 그런 바탕이 만들어지면 좋겠다. 

Q. 독자들에게 한 마디

우리는 지금 어려운 시대를 통과하고 있다. 그렇지만 어렵다고 해서 신앙의 게으름, 육체의 기회로 삼아서는 안된다. 요셉은 애굽으로 팔려갔고, 종이었다. 그곳은 하나님을 섬기는 자도 없었다. 참 최악의 경우였지만 거기에서도 하나님을 섬기는 삶에는 변화가 없었다. 정말 심지가 곧게 하나님을 섬겼다. 다니엘도 마찬가지다. 바벨론이라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곳 한복판에 떨어져 있었다. 그곳에서 참 빛난 믿음을 가꿨던 모습들을 볼 수 있다. 비록 지금은 우리의 예배가 원활하지 않고 우리가 하나님께 나아가는 것들이 쉽지 않지만 자신의 신앙을 스스로 잘 관리해야겠다. 어려운 때에 더 아름다운 믿음의 빛을 발하는 성도들이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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