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내 최대 바스키아 회고전, 2월 7일까지
  • 포스트모더니즘을 담은 낙서화
  • 교회 밖, 미술관에서 발견하는 문화와 시대 정신
바스키아의 상징과도 같은 왕관이 그려져 있는 작품, <New York, New York>
바스키아의 상징과도 같은 왕관이 그려져 있는 작품, <New York, New York>

의무적으로 읽는 책이 있고, 의무적으로 쓰는 글이 있듯이, 의무적으로 찾아가서 보는 미술 전시가 있다. 오해하지 마시길. "의무적"이란 표현이 붙는다고 해서 원하지 않는 것을 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익숙하고 옳다고 믿던 생각과 경험에서 벗어나 어색하고 나와 다른 생각을 만나는 낯선 경험을 갖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그런 시간을 통해서 자주 사용하지 않던 생각과 감정의 근육을 쓰면서 얻게 되는 유연함과 넓어짐이 있다.

바스키아의 전시가 그랬다. 워낙 유명한 아티스트의 전시이기도 했지만 의무감 또한 앞섰다.

검은 피카소라고 불리는 바스키아는 1248억 원에 그림이 팔릴 만큼 미술계의 슈퍼스타다. 자유분방하게 그려낸 낙서화(그래피티 아트)는 1980년대 미국만이 아닌 2021년의 한국 관객에게도 "핫한" 작품이다. 왜일까?

관객들은 작가의 작품에서만 매력을 발견하지 않는다. 작가의 삶과 세계관이 만들어내는 스토리는 관객을 끌어당기는 중요한 요소이다. 그렇다면, 바스키아의 삶과 작품은 어떠한 특징이 있기에 여전히 매력적인 것일까?

이번 전시에서 가장 고가로 알려진 작품 ‘The Field Next to the Other Road’ (추정가가 약 2000억원이다.)
이번 전시에서 가장 고가로 알려진 작품 ‘The Field Next to the Other Road’ (추정가가 약 2000억원이다.)

이번 바스키아 전시는 국내 최대 회고전이라 불릴 만큼 다양하게 구성되어 있었다. 회화, 드로잉, 오브제 등 약 150여 점의 작품만이 아닌 다큐멘터리 영상과 앤디 워홀의 다이어리까지 풍성하다. 작품과 함께 바스키아의 삶과 생각, 이를 둘러싼 당시의 시대 상황을 친절하게 설명해주는 설치물을 확인할 수 있다.

바스키아의 작품을 인쇄물 또는 디지털 이미지, 상품으로만 감상한 관객에게 이번 전시는 다양한 재료에 그려진 작품을 만날 수 있는 기회다. 가난했던 20대의 흑인 청년은 캔버스를 살 돈이 없어 거리에서 물건을 주워왔고, 그곳에 그림을 그렸다. 거리의 벽에 그렸던 낙서화는 버려진 문짝, 창문, 거울 위에 그려졌다.

흑인이라는 바스키아의 정체성 그리고 낙서화에 담긴 저항정신, 여러 이미지와 모순된 의미들을 뒤섞은 콜라주란 형식의 작품은 당시 미국에서 뜨겁게 시작되던 새로운 시대 정신을 담기에 더없이 매력적이었다.

바스키아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관람하는 젊은 관객들이 많았다.
바스키아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관람하는 젊은 관객들이 많았다.

1980년대의 미국은 자유와 저항의 바람 속에서 새로운 "그 무엇"을 원하고 있었다. 두 차례의 세계 전쟁과 길고 긴 베트남 전쟁으로 진리로 여겨졌던 근대의 가치들은 무너져 갔다. 그리고 무너진 터 위에 포스트모더니즘이란 새로운 정신이 문화예술의 손을 잡고 등장했다.

주류 문화에 대항하는 저항문화, 인종차별 철폐, 여성 인권 신장, 동성애자 해방 운동 등의 포스트모더니즘의 정신은 주류 문화와 대결 구도를 갖게 되었다. 바스키아는 이러한 시대 정신의 전쟁터에서 선택된 "전사"와도 같았다.

"낙서화는 뉴욕에서 내가 목격한 모든 것들 가운데 가장 흥미로운 현상으로

문화와 성, 인종 간의 격차를 뛰어넘는 총체적인 것이다."

- 큐레이터 디에고 코르테즈 -

당시 영향력 있는 큐레이터였던 디에코 코르테즈의 전폭적인 지원과 포스트모더니즘을 온 몸으로 보여준 앤디 워홀의 지지 속에서 바스키아는 시대의 아이콘으로 자리를 잡아갔다.

미술 사학자인 한스 로크 마커는 "예술은 말 그대로 철학이 주의 깊게 사색하여 말로 표현해 낸 내용을 그려 내려는 시도"라고 말했다. 바스키아의 작품에는 당시 시대가 주의 깊게 사색하던, 그리고 지금의 일상까지 파고 들은 포스트모더니즘을 표현해 냈다.

이번 전시에는 바스키아와 앤디 워홀이 함깨 그린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다.
이번 전시에는 바스키아와 앤디 워홀이 함깨 그린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다.

신국원(총신대 신학과) 명예 교수가 <포스트모더니즘>에 적었듯이 "포스트모더니즘은 이미 우리의 문화에 깊이 자리 잡고 있다." 이를 "깨닫지 못하거나 무관심으로 외면한다면 그것은 현실적인 자세도, 책임 있는 신앙인의 자세도 아니다."

그런 의미에서 바스키아의 전시는 크리스천으로서 포스모더니즘을 시각적으로 느껴볼 수 있는 기회이다. 하지만 바스키아 전시장에서는 의미를 찾기보단 일단 느껴보시기를. 재즈의 즉흥연주처럼 바스키아의 그림에는 느낌으로만 전해지는 부분이 있기 때문이다.

전시장을 나선 후, 신국원 교수의 <포스트모더니즘> 권한다. 바스키아의 작품을 통해 예술로 접했던 포스트모더니즘이 예술을 넘어 우리 삶에 얼마나 깊은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 선명하게 다가올 것이다. 이 세대가 어떤 문화 속에 있는지를 알아차릴 때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로마서12:2) 를 받을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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